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33(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2. 28. 10:09

가지를 뚫는 햇살33(손진길 소설)

 

20131210일 화요일 오전 11시경에 여의도에 자리잡고 있는 서하 미래연구소3사람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그 옛날 1980년대 중반에 미래연구소를 함께 개설했던 3인의 이사(理事)들 곧 윤광일 박사, 허숙 박사, 서운갑 박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허숙 박사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지난달부터 저는 윤광일 박사님과 이야기를 하나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근 12월 초순에 90세가 된 서운갑 이사님에게 이제는 그만 쉬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옳다는 것이지요. 다만 그 말씀을 어떻게 드리는 것이 좋을까? 그 점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 결과… “.

UK 서운갑 박사가 그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허허허, 허박사는 그렇게 내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지난 주일에 벌써 90세가 되어 집에서 생일상을 받았어요. 그러니 이제는 미래연구소에 그만 나오고 집에서 회고록을 작성하는 것이 옳지요. 그렇지만 이번 주말에 개최가 되는 강호달(姜好達) 박사의 주제발표는 듣고 싶군요. 그것으로 나는 여의도 출입을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허허허“.

그 말을 듣자 앞좌석에 앉아 있던 윤광일 박사가 탁자위로 팔을 뻗어서 서운갑 박사의 손을 잡으면서 말한다; “저는 긴 세월 우리 미래연구소에서 언제나 UK형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가 있을까요? 저도 나이가 87세나 되었기에 형님과 헤어지는 것이 섭섭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3년이 지나면 저도 90세 정년을 맞이하여 이사직을 내려놓고 여기를 떠나야 하니까요!... “.

그 말에 허숙 박사가 두사람의 손을 마주 잡으면서 말한다; “윤박사님이 떠나고 나면 그 다음 2년후에 저도 미래연구소 생활을 마감하게 되지요. 그러니 모든 것이 시간문제입니다. 참으로 오랜 세월 서로 이곳에서 많은 토론을 하면서 즐겁고 좋았지만 막상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그 결말이 허허롭기 그지없습니다, 허허허이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

그 말을 듣자 UK 서운갑 박사가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허허허, 여보게 허박사, 그 말씀은 내가 해야 될 말 같은데 어째서 그대가 하고 있는 것이요? 그것참 나보다 5년이나 연하인 우리 허숙 박사님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는가 봅니다, 하하하… “.

그 말에 허숙 박사와 윤광일 박사가 함께 웃는다. 그것을 보고서 UK 서운갑이 두사람에게 묻는다; “내가 당장 내년부터 출석하지 않으면 당초에 3사람으로 출발한 우리 미래연구소의 운영에 차질이 생기지 않겠어요? 누구 한사람 이사로 보충해야 할 터인데생각해둔 인물이 있는 것이요?... “.

두사람이 고개를 끄떡인다. 허숙 박사가 윤광일 박사를 한번 본 다음에 말한다; “우리 두사람은 합의를 했습니다. 저의 후임으로 국방대학원에서 오래 정치학을 가르친 바가 있는 강호달 박사를 이사로 영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도 좋다고 말했고요!... “.

그 말에 서운갑 박사가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잘 되었군요. 강박사는 이번에 지난 2월에 임기를 마친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에 대하여 주제발표를 하겠다고 나섰지요. 이제는 나를 대신하여 미래연구소에서 이사로 일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잘되었습니다, 하하하… “;

윤광일 박사가 따라 웃으면서 싱거운 이야기를 한다; “하하하, UK형님은 조카사위 강박사를 참으로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하하하… “. 그 말에 허숙 박사도 함께 웃으면서 한마디를 한다; “하하하, 운갑 형님, 강박사와 조카딸 서미옥을 중매한 사람이 바로 접니다. 그러니 저의 공을 잊어버리시면 안됩니다, 하하하… “.

그렇다, 두사람의 말이 사실이다. 20년전 1993년 여름에 허숙 박사가 한사람을 데리고 마포 서운갑 박사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서재에서 서박사가 두사람을 맞이하자 허숙 박사가 그 사람을 먼저 소개하는데 그 내용이 뜻밖이다.

대충 허박사의 설명이 다음과 같았던 것이다; “형님, 이번에 제가 65세가 되어 국방대학원 교수직에서 은퇴를 합니다. 제 후임으로 여기 강호달 박사가 부임하고요. 그런데 강박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형님과 동향이라고 했어요. 또한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고요. 반가운 김에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서운갑 박사가 강호달 박사를 반긴다. 그리고 자세하게 물어본다. 그때 강호달 박사의 답변이 다음과 같았다; “제 고향이 안강입니다. 경주중학교와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지요. 그 다음에 미국무성 장학금을 받고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과정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니… “.

강호달 박사가 서운갑 박사에게 공손하게 말한다; “따지고 보면, 두분 박사님의 하와이대학교 후배이지요. 물론 국방대학원의 정치학교수로서도 후배가 됩니다. 특히 안강과 포항이 고향이신 서박사님과는 동향인 셈입니다. 이제서야 직접 찾아 뵙고 이렇게 인사를 올립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바랍니다”.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은 얼마나 반가운지 일어나서 강호달 박사의 손을 잡고서 포옹까지 한다. 그때 조카딸 서미옥이 커피를 가지고 서재로 들어오다가 강호달 박사의 얼굴을 보고서 어머머하고서 깜짝 놀라고 있다. 그 소리를 듣고서 강호달서미옥을 쳐다보고서 똑같이 놀라고 있다. 그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강호달이 돌연 서미옥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말하면서 질문한다; “너는 서미옥이 아닌가?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만 그 옛날에 듣고서 오랜 세월 한번도 만나지를 못했더니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되는구나! 그래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니? 그리고 어떻게 지낸 것이야?... “.

그 말에 서운갑은 물론 허숙도 깜짝 놀라고 있다. 다만 서미옥강호달의 얼굴을 그리운 듯이 바라보면서 말한다; “호달이 오빠,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어떻게 옛날 안강교회에서 보던 얼굴 그대로이시네요. 당시에 오빠는 경주고등학교 학생이었고 경북대학교로 진학했지요. 저는 근화여고를 졸업하고 몇 년 지나지 아니하여 곧바로 시집을 갔고요. 그리고 처음 만나게 되네요. 정말 반가워요, 호달이 오빠!... “.

그 말을 들으면서 돌연 허숙 박사가 우스개소리를 한다; “여보게, 강박사. 자네 몇 년 전에 상처를 하고 독신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게 어떻게 된 인연인가? 내가 알기로는 서박사님의 조카 딸도 오래 전에 남편을 사별하고 독신이야! 그러니 앞으로 자주 이곳 마포집을 출입해보라고분명 좋은 일이 있을 것이야, 허허허… “.

그 말을 듣자 신기하게도 45세의 강호달 박사와 43세의 서미옥이 함께 얼굴을 붉힌다. 그 모습을 보고서 서운갑 박사가 두사람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그러자 서미옥이 조용한 음성으로 말한다; “삼촌, 호달이 오빠는 제가 다니던 안강교회에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착실하고도 모범적인 선배였어요. 공부도 잘했고요. 그래서 우리 여학생들은 누구나 호달이 오빠를 좋아했지요!...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의미 있는 한마디를 했다; “미옥아, 너는 평소에 선을 보라고 해도 끝내 거절하면서 이곳 마포집에 있으면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된다고 말했다. 이제 보니 그것이 헛말이 아니구나. 두사람의 인연이 참으로 묘하구나. 한번 잘 사귀어 보도록 해라. 나는 찬성이다!... “.

그래서 그런지 그해가 가기 전에 두사람은 간단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기를 시작한다. 강호달 박사에게는 10살이 된 딸 강한나가 있을 뿐이다. 서미옥에게는 자녀가 없다. 따라서 두사람은 딸 강한나와 함께 좋은 가정을 이루어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특히 5년전에 부친상을 당하고 3년전에 모친상을 당했기에 서미옥은 삼촌 서운갑을 부친으로 알고 자주 마포집에 출입을 하고 있다.

서운갑으로서는 5년전에 친형 서운석을 여의고 3년전에 형수 김영주마저 별세하고 말았기에 이제는 장조카 서춘수와 더러 연락을 주고 받을 뿐이다. 오래 공직생활을 한 장조카도 2013년이 되자 나이가 70줄에 들어서고 있다. 하기야 금년에 조카딸 서미옥63살이고 조카사위 강호달65세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

20131214일 토요일 오후 2시에 여의도에 있는 서하 미래연구소에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참석인원이 30명 정도의 소모임이다. 민감한 문제 곧 금년 2월에 퇴임한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에 대하여 주제발표를 하고 토론하는 자리이므로 참석인원을 크게 제한한 것이다.

그 자리에서 금년에 65세가 되어 국방대학원 정치학 교수자리에서 물러난 강호달 박사가 주제발표를 한다. 자신이 참석하는 마지막 토론회이므로 서운갑 박사가 주의를 기울여서 메모를 하면서 듣고 있다. 강박사의 발표가 상당히 조리가 있다.

따라서 그날 메모한 내용을 간추려서 서운갑은 자신의 회고록에 적어두고 있다. 그 내용을 조금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명박 후보는 200712월 대선에서 승리하고 이듬해 20082월에 한국의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후 청와대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찍이 현대그룹에서 건설사 사장과 회장을 지내면서 해외수주를 성공적으로 따낸 경험이 많은 CEO이다. 그의 장기가 주요국 정상과의 안보 및 경제외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대통령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면서 다음 3가지의 과실을 얻고 있다;

1)    첫째, 한국미사일의 사정거리를 종전의 300km에서 800km로 획기적으로 늘린 것이다;

그 정도의 사거리이면 북한과 만주 전역을 커버할 수가 있으며 북경과 상해를 제외한 그 동쪽은 거의 사정거리 안에 둘 수가 있다. 둘째, 미국방문에 있어서 비자면제국이 된 것이다. 그에 따라 부시대통령과 오바마대통령 시절에 많은 한국사람들이 미국을 손쉽게 방문할 수 있게 된다.

2)    셋째, 한국이 중국 및 러시아의 공산권 그리고 중동의 아랍권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미국정부가 용인한 것이다;

 그 결과 외교적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경제적으로 중동국가 UAE에 한국형 원전을 수출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올리고 있다.

3)    사족을 더하자면, 한국이 자체기술로 원자로를 설계하고 세계 6번째로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는 국가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 과학기술적으로 놀라운 성과인 것이다;

 참으로 MB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외교와 실리외교에 있어서 국가정상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2)  그 외에 MB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손꼽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 가운데 몇가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독도를 방문하여 한국영토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1)    둘째, 일본을 방문하여 정치지도자들에게 역사적인 피해자인 한국사람들은 그 고통을 잊지 아니하고 있는데 정작 가해자인 일본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고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앞으로 한일간의 미래적인 발전을 위하여 일본은 과거를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상호 협력하자고 강조하고 있다;

2)    셋째, 서쪽에 있는 중국은 물론 북방의 러시아 그리고 서방의 EU와의 관계도 강화하고 있다. 단지 외교적인 협력에 그치지 아니하고 실질적인 경제관계의 협력을 증진하고 있다. 그와 같이 MB대통령이 비즈니스 외교를 적극 펼친 결과 한국무역 1조불의 시대를 열어가는데 있어서 큰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3)  그렇지만 국내정치에 있어서 MB 이명박 대통령은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4대강에 대한 무리한 정비사업이다. MB 대통령은 마치 건설업체와 협약을 맺은 것처럼 환경전문가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도저식으로 4대강 정비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 한강유역처럼 준설공사를 통하여 강바닥을 깊이 파고 양 옆에 콘크리트로 고수부지를 만들어 지방자치단체가 활용하도록 한 것은 좋은데 그것이 예상하지 아니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마는 것이다.

1)    댐과 보를 지나치게 인공적으로 많이 만들어 물을 가두어 버림으로 말미암아 일부 강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아예 고인물이 되어 썩어가고 있다. 그에 따라 물고기와 식물이 살기 힘든 강이 되고 만다. 특히 홍수가 발생하면 수량조절이 힘들어서 자주 범람하고 만다;

2)    그와 같은 시행착오의 부담은 전부 국민 몫으로 남게 된다. 그때서야 국민들은 21세기에 들어서 10년이 벌써 지나고 있는 이 시점은 그 옛날 한강의 기적을 노래하던 20세기 후반과 전혀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고 있다. 경제개발 초기단계에서는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던 정주영 스타일의 경영이 통했는지 모른다.

3)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차분하고도 설득력이 있는 정치인과 국정전반을 골고루 돌볼 수 있는 경륜 있는 행정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점을 진작에 인지하지 못하고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아서 한강의 기적을 재현하고자 했으니 그 폐해가 큰 것이다.

(4)  두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대북지원을 축소하고 만 것이다. 북한정권이 한국의 지원을 받아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하면 그것은 선견지명이 있는 조치이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운 북한의 인민을 위하여 북한의 경제개발을 돕는데 사용하는 자금이라고 하면 그것은 대북관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조치이다. 그로 말미암아 경제교류와 인적교류가 제한을 크게 받고 있다. 참으로 명암이 엇갈리고 있는 대북지원의 축소라고 하겠다.

(5)  세번째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여 여당안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도록 한 것이다.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MB가 어떠한 경제적인 이익을 개인적으로 얻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MB 이명박 대통령은 그동안 이권사업에 개입하고 정치자금을 만든 어두운 구석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전부 감추어 버리고 만 것이다.

따지고 보면, 5년전에 서로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기 위하여 무섭게 이전투구를 벌이면서 서로의 약점을 최대한 찾아내어 공격한 두사람이다. 그러므로 MB의 실상은 박근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며 반대로 박근혜의 실체는 MB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정치적으로 담합하여 서로의 약점과 문제점을 일체 막후에 감추고 만 것이다. 만약 뒤늦게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되면 그때까지 대통령의 잘못 때문에 국민이 겪게 되는 피해와 고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그런지 임기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함과 암울한 실체가 그만 수면위에 떠오르고 만다.  그에 따라 20132월에 제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근혜5년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2017310일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하여 파면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최순실 국정문란사태에 연루되어 법정에 서게 되는데 그때 전임대통령 MB도 임기중 여죄를 추궁 당하고 함께 법정에 서게 된다. 당시 MB에 대한 죄목이 박근혜와는 상당히 다르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