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29(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2. 18. 04:04

가지를 뚫는 햇살29(손진길 소설)

 

서운갑 박사는 19971218일에 치루어진 제15대 대통령선거일에 일찍 투표를 하고 마포집으로 돌아와서 혼자 서재에 앉아 다음 몇가지 생각을 하고 있다;

첫째로, 서박사는 금번 대선이 27년전 19709월에 치루어진 제1야당 신민당의 대통령후보 선출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당시 40대 기수론을 부르짖으면서 소장파 의원이 대권에 도전하고자 나섰는데 그가 젊은 나이에 원내총무를 맡고 있던 YS 김영삼 의원이다. 거기에 편승하여 대통령 지명전에 뛰어든 2명의 40대 의원이 바로 DJ 김대중이철승 의원이다.

(1)  신민당의 원로들은 처음에 그들 소장파들을 견제하였으나 다수 국민들이 40대 기수론에 지지를 보내자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여론의 향방을 깨달은 당시의 유진산(柳珍山) 총재는 YS를 지지하기에 이르렀다. 그와 같은 분위기 가운데 3명의 40대 후보를 두고서 1차 투표를 실시했는데 과반수 득표자가 없다. 따라서 오후에 결선투표를 실시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당시 YS는 원로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으므로 재투표에서 최다득표를 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었다.

(2)  그러나 결선투표의 결과는 그 반대였다. 1차 투표에서 2등을 한 DJ 김대중이 은밀하게 3등을 한 이철승을 찾아가서 서로 주고 받기를 밀약하고서 그의 지지를 획득한 것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DJ 김대중이 제1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이 되고 만 것이다;

 그와 같은 27년전의 일을 UK 서운갑 박사가 회상하고 있는 이유는 금번의 제15대 대통령 선거의 전개과정이 그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3)  DJ 김대중 후보는 1995년에 YS 김영삼 대통령과 뜻이 맞지 아니하여 민자당에서 뛰쳐나온 JP 김종필을 포섭했다. 그 결과 JP의 정당과 합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라고 하는 거대 야당을 만들고 거기서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당의 대통령 후보 이회창(李會)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7월의 후보자 결선에서 2등을 한 이인제(李仁濟) 의원을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 내분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4)  야권은 DJ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있는데 여권은 이회창이인제로 내분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199712월에 실시가 된 제15대 대통령 선거는 UK 서운갑 박사가 보기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호남의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는 DJ 김대중 후보에게 유리한 판세이다. 그렇지만 정부 여당의 프리미엄이 있기에 그 차이가 근소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운갑은 이번에는 김대중 후보가 당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그렇게 보고 있는 이유는 두가지 요인이 더 있기 때문이다;

(1)  그 하나가, 국가경제가 IMF위기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옛날 국회에서 재정통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DJ 김대중 후보가 경제적인 위기상황을 타결하는데 있어서 적임자로 보이는 것이다;

(2)  또 하나는, 지난 1994725일에 YS 김영삼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지도록 되어 있었으나 별안간 김주석이 78일에 사망하는 바람에 그 회담이 무산되고 만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정부는 일단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면 그 다음에는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해야 한다. 그 일에는 고려연방제와 같은 남북한 사이의 평화통일론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표해온 DJ 김대중 후보가 적격이라는 것이다.

(3)  서운갑 박사가 예상한 대로 대통령선거의 결과는 DJ 김대중 후보가 40.3%를 득표하여 38.7% 득표에 그친 여당 후보 이회창에게 신승(辛勝)하고 있다. 비록 1.6%의 근소한 차이라고 하더라도 이긴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여야간의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발생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호남에 기반을 가진 김대중 후보가 한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고 있다. 과연 동서간의 정권교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만, 서운갑 박사가 DJ의 대통령 당선을 바라보면서 우선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제는 다음 두가지이다; 하나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신군부 출신 전직 대통령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긴급한 경제적 위기를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1)  서운갑이 알기로는 DJ가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에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내어 자신의 석방과 미국으로의 망명생활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 요구를 전대통령이 두말하지 아니하고 들어준 것이다. 그러므로 DJ가 그 빚을 어떻게 갚는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1)    서운갑의 예상이 적중하고 있다. DJ는 대통령에 당선되자 취임식도 하기전에 퇴임을 준비하고 있는 YS에게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정신으로 전직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을 사면하고 복권시키라는 것이다. 1997년 한해가 저물기 전에 그 일이 성사가 되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광주시민들에게 정치적인 빚을 지고 있는 DJ는 자신의 손으로 광주사태의 주모자인 그들을 사면 복권하는 부담을 용의주도하게 YS에게 떠넘기고 있다.

2)    반면에 YS는 그들을 자신의 손으로 사면하고 복권 조치함으로써 그동안 군부와 TK에 대하여 매우 섭섭하게 대했던 그 부담을 상당히 덜어내고 있는 셈이다. 참으로 정치 10단인 DJ YS의 셈법이 희한하게 맞아 들어가고 있는 경우이다. 그 점을 새삼 생각하면서 UK 서운갑이 쓴웃음을 혼자서 짓고 있다;

(2)  서운갑은 재무통인 DJ가 국민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 IMF사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기대에서 어긋나고 있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1)    하나는, DJ가 한국의 노른자위 기업을 국제펀드에 넘기는데 있어서 너무나 대범하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로 말미암아 서운갑이 보기에 10대 재벌기업들이 모두 다국적기업이 되고 주식의 과반을 외국자본이 차지하고 만다. 그러므로 껍데기는 분명히 한국의 재벌가문이 지배하고 있지만 그 실소유자는 국제펀드인 셈이다. 거기에 3할 내지 4할의 자본참여를 한국인들이 주식투자로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보면 소위 재벌의 오너라고 부르고 있는 그들 집안의 보유주는 1할 정도에 불과하다.  

2)    또 하나는, 외국자본이 국내에 들어와서 카드장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만다. 본래 한국사람은 외상이라고 하면 소도 잡아 먹는 습관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외국자본이 손쉽게 카드대출을 해준다고 하니 그것이 고리대인 줄을 모르고 주저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 점을 생각하면서 서운갑 박사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된다. 과연 DJ 이후에 한국사람들은 대기업을 외국자본에 넘기고 또한 개인적으로 외국 빚을 잔뜩 지고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19241월생인 DJ 행복하게도 만으로 74세가 되자 19982월에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청와대에 들어가서 집무를 시작한다. 그는 5년간 대통령으로 일하고 퇴임하면 한국나이로 팔순이다. 그러므로 그 다음의 일을 깊이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 같다.

그와 달리 DJ보다 1살 연상인 UK 서운갑 박사가 더 한국의 장래와 한국인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을 훗날 발견하고서 서운갑이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다. ‘내가 한국의 정치지도자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혼자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 

한편 서운갑 박사는 DJ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와 대결하여 패한 후에 박대통령의 탄압을 받아 주로 해외에서 망명에 가까운 생활을 영위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정보부장 이후락이 그를 일본에서 납치하여 암살에 실패하고 한국에 데리고 와서 내팽개친 사실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호남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는 DJ40대 후반의 나이부터 한국민주화를 위한 상징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인물이다. 197910월에 유신의 중심인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잠시 서울의 봄이 이듬해에 찾아오는 것으로 보였지만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에 의하여 DJ를 위시한 3김씨는 모두 정치활동을 금지당하고 만다.

특히 DJ19805월에 발생한 광주사태의 배후라는 죄목으로 정치범이 되고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감옥에서 DJ는 전대통령에게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주면 정치일선에 나서지 아니하겠다고 탄원하게 되고 2년 7개월만에 출소하여 미국으로 망명 아닌 망명을 가게 된다.

그러나 유신의 뒤를 이어가고 있는 신군부의 독재정치를 한국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서 미국정부는 민주화를 요구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DJ가 귀국하게 되고 YS는 물론 JP도 해금이 되어 다시 정계에 나설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한미관계에 밝은 정치학자 UK 서운갑 박사가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고 있다;

그와 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DJ는 물론 YS JP198712월에 신군부 출신 노태우 후보와 대통령선거에서 4파전으로 맞붙게 된다. 만약 그들 3김씨 사이에 후보단일화를 했다고 한다면 신군부의 통치는 19882월에 진작 종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3김씨가 전부 한국정치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가장 적임자라고 과신하고 있었기에 4파전에서 어부지리로 유일한 여당 후보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19882월에는 제6공화국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YSJP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손을 잡고 3당합당을 함으로써 인위적인 거대여당 민자당1990년에 탄생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신군부 출신의  노태우 대통령이 무사히 5년의 임기를 채우고 19932월에 퇴임한다.

그렇지만 여당후보로 나서서 당선이 된 YS 김영삼 대통령이 19933월부터 신군부의 뿌리인 하나회를 연내에 정리한 것을 보면 보기에 따라서는 DJ보다 먼저 대권을 차지하기 위한 YS의 전략적인 제휴였던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YS는 정치민주화에는 상당한 업적을 내었지만 경제에는 문외한이므로 그만 집권말기인 1997년에 외환보유고가 너무 부족하여 이른바 IMF사태를 맞이하고 만다. 그 때문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DJ 김대중 대통령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국회에서 진작부터 재무통이라고 불린 인물이 이중재(李重)김대중(金大中) 두사람이다. 그들은 열심히 국가재정에 대하여 공부하고 의정활동을 펼친 인물들이다. 그 가운데 DJ가 대통령이 되자 효과적으로 국가부도의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 물론 그 대가는 엄청난 손해를 동반한 것이다.

UK 서운갑 박사가 2001년에 미래연구소에서 경제학자 윤광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음과 같다; “금년에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이 국제통화기금의 빚을 모두 갚고 졸업을 하였다고 자랑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아니지요. 그 대가가 너무 비참해요. 한국기업의 노른자위가 대부분 외국회사에 넘어가고 특히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주식의 과반이 해외펀드에 넘어가서 이제는 모두 다국적기업이 되고 말았어요. 더구나 외국자본이 들어와서 국민들에게 카드 빚을 대대적으로 제공하였기에 언젠가는 빚잔치를 하고 나면 모두들 빈털털이가 될 형편입니다!... “;

윤광일 박사가 한숨을 쉬면서 맺고 있는 다음과 같은 결론이 오랜 세월 서운갑 박사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20032월이 되면 팔순이 되는 DJ는 그 모든 것을 모른체하고 대통령임기를 마치게 되겠지요. 그것도 작년 곧 20006월에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최초의 정상회담을 가진 위대한 한국 대통령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영예를 자랑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그것이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이라고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끝까지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과 기업인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지요!”;

그 말을 들었을 때에 UK 서운갑 박사가 윤광일 박사에게 한 말이 다음과 같다; “윤박사, 그래도 DJ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었기에 정치적 경제적 현안 두가지는 해결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지요. 하나는, 호남 푸대접이라는 말이 사라진 것이지요. 또 하나는, 어쨌든 당장의 국가부도사태만은 막은 것이지요. 그렇지만… “.

당시 윤광일 박사가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고 있기에 서운갑이 자신의 의견을 더 진술했다; “윤박사의 말처럼 해외자본이 들어와서 한국의 재벌기업을 지배하고 국민을 카드 빚으로 옥죄고 있는 후유증이 엄청 심각하군요. 그런데 나는 차제에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문제점을 추가하고 싶어요. 그것이 바로 북한정권의 이중 플레이입니다… “.

화제가 달라졌기에 서운갑이 천천히 설명한다; “그들은 21세기가 시작되자 못이기는 체하면서 20006월에 한국의 DJ 김대중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서 평화통일의 길을 마련하고 있지요. 하지만 속으로는 핵무장을 할 때까지 시간을 벌고 있는 것으로 저는 보고 있어요. 저의 판단이 맞다고 한다면 말입니다“;

당시에 서운갑윤광일에게 말한 결론이 다음과 같다; “참으로 21세기의 한국은 훗날 북한의 핵무장 완성이라고 하는 위기와 위협 앞에 맨손으로 서있게 될 수가 있어요. 나는 그것이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허허허, 나이든 사람의 기우(杞憂, 쓸데 없는 걱정)라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허허허… “.

202312월 초순에 100세의 생일을 맞이하면서 서운갑 박사는 그 자리에 윤광일 박사가 없는 것을 보고서 그 마음에 허허로움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그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 “나보다 3살이나 어린 윤광일 박사가 90세가 되자마자 7년전에 벌써 세상을 떠나고 말았구나! 진심으로 한국경제를 걱정하고 이론에 밝은 인물이었는데그가 걱정하던 사태가 앞으로 발생하지 아니하면 얼마나 좋을까!… “.

그리고 서운갑 박사는 윤광일 박사와 자신의 생각을 중심으로 하여 DJ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말엽인 200210월에 미래연구소에서 양 김씨 YS DJ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한 연구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던 기억이 난다. 두사람이 평소 나누었던 대화가 그 세미나에서 방청인들에게 체계적으로 발표가 된 것이다;

그때 참석했던 사람들의 눈망울이 새삼 100세의 정치학자 UK 서운갑 박사의 뇌리에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서운갑 박사는 그 다음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