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26(손진길 소설)
서운갑은 굉장히 가정(家庭)생활을 중시하고 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그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아내 황옥주는 물론 강남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장남 서경일 부부와도 대화나누기를 평소 즐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조카딸인 서미옥의 의견도 폭넓게 수렴하고 있다.
그러한 그가 1990년 연말이 되자 저녁식사를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아내 황옥주에게 슬쩍 물어본다; “여보, 재작년 1988년 10월에 서울올림픽이 끝나자 11월에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가 강원도 백담사로 떠났어요. 그리고 금년 초에 3당합당이 이루어지자 며칠전에 비로소 백담사 귀양에서 풀려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되돌아왔어요. 그 점에 대해서 서울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
무슨 대단한 고견을 듣고자 말을 꺼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뜻밖에 황옥주가 진지하다; “여보, 그런 질문은 식사가 끝난 다음에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제게 제대로 물어보셔야 해요. 정치학박사로 평생을 지내고 계신 분이 어떻게 그런 에티켓도 모르세요. 무릇 국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자면 언제나 겸허하고 진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맞은편 앞자리에서 듣고 있던 맏며느리 최영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시어머니 황옥주의 당찬 한마디에 퍽이나 놀라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서 장남 서경일이 한마디를 한다; “아버지, 어머니 말씀이 옳아요. 연말이고 하니 오늘은 식후에 차를 마시면서 한해를 결산하는 이야기를 좀 나누도록 하지요. 저희들도 그 진지한 대화에 동참하고 싶어요”.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다. 따라서 저녁식사 후에 서운갑은 가족들과 함께 속 깊은 대화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그 자리에서 먼저 황옥주가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고 있다; “3년전 여름에 6.29민주화선언이라는 정치적 쇼를 하여 신군부 출신 노태우 후보가 1987년 12월 대선에서 힘겹게 당선이 되었어요. 그는 국민의 표를 40%도 얻지 못하였기에 사실은 야당의 도움이 없이는 국정을 힘있게 운영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니… “.
잠시 숨을 돌리더니 황여사의 놀라운 정치적 식견이 천천히 나타나고 있다; “노대통령이 야당지도자들의 협조로 국제행사인 88년도 하계 서울올림픽을 치루고 난 다음에 친구인 전직 대통령 부부를 강원도 백담사로 보내고 말았지요. 그것은 아무리 절친이라고 하더라도 전직대통령과 현직대통령은 정치적인 입지가 다르다고 하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
황여사가 야무지게 침을 한번 꿀꺽한 다음에 제 나름대로 현실정치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1990년 2월부터 3당합당의 효과로 힘있게 국정을 수행하게 되자 국민들의 눈치를 보면서 12월에 전두환 부부를 다시 서울 연희동 집으로 돌아가도록 조치한 것이지요. 그러니 저는 내후년 1992년말에 치루어지는 대선에 누가 여당후보가 되는가에 따라서 노대통령의 장래 입지가 결정될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면 말입니다… “.
황옥주가 잠시 말을 멈추는 것을 보고서 서운갑이 한마디를 한다; “여보, 황여사, 이제 보니 내가 정치학박사가 아니라 사실은 당신이 더 정치학박사 같습니다. 언제 그렇게 정치적인 현실분석에 달통하게 되었지요? 그것 참, 놀라운 일입니다!... ”.
그 말에 황여사가 호호라고 웃으면서 말한다; “호호호 여보, 사찰의 개도 3년이면 염불을 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평생을 똑똑한 남편 서운갑 정치학박사의 내조를 한 제가 이 정도의 식견을 가지게 된 것은 때늦은 감이 있는 것이지요. 이제는 3자녀가 모두 성가하여 일가들을 이루고 있으니 제가 할 말을 떳떳하게 다할 수가 있지요. 그래서 말입니다!... “.
이어서 황옥주의 정치적인 견해가 나름대로 계속된다; “노대통령은 처조카가 대통령후보가 되면 그 힘이 여전할 것이고, 그와 달리 YS가 여당에서 대통령후보가 되면 그 즉시 절름발이가 되고 말겠지요. 사실 5년제 단임대통령에 불과하므로 연임할 수가 없는 현직 대통령이 무슨 힘이 그렇게 세겠어요? 그러니 민주주의 국가에서 5년제 단임대통령제도라고 하는 것은 상당히 이상한 것이지요. 따라서… “.
황여사가 드디어 결론을 맺고 있다; “당연히 그것은 미국처럼 임기를 4년제로 하고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하여 국민들의 재신임을 묻도록 하는 것이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올바른 민주제도인 것이지요. 그런데 지난 1987년 가을에 대선주자들이 서로 나눠먹기식으로 5년 단임제 헌법개정에 합의하고 말았으니 제6공화국 헌법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은 여야지도자들의 대권욕을 교대로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지요.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요!”;
아내의 날카로운 정치분석과 민주적인 정치발전을 염원하는 발언을 듣자 서운갑 박사가 질끈 눈을 감고 만다. 그 모습을 장남 서경일 부부와 조카딸 서미옥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마침내 서운갑이 눈을 뜨고서 딱 한마디를 한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 당당한 정론 앞에 누가 토를 달 수가 있겠어요. 앞으로 그렇게 되어야지요. 그리고… “.
서운갑은 역시 뛰어난 정치학자이다. 어느 사이에 슬쩍 화제를 바꾸고 있다; “경일이 부부는 어떻게 1990년대에 서초동 법원단지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고서 그렇게 일찍 강남에 법률사무소를 개설한 것이지! 나는 그것이 신기해요”.
그 말에 장남 서경일이 진지하게 답변한다; “아버지, 저는 서대문에 있는 로펌 ‘법촌’에서 오래 근무를 했잖아요. 서울 중심에 밀집되어 있는 변호사사무실을 보고서 저는 서울시민의 강남이주에 발맞추어 변호사사무실도 분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어요. 강남의 시민들이 강북인 서울중심의 변호사사무실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수고를 덜어주는 것이 옳지요. 변호사도 일종의 서비스 업종인 걸요!”.
맞는 말이다. 그래서 강남에서 진작에 변호사사무실을 열었는데 그것이 적중하여 나름대로 고객이 많았던 것이다. 이제는 아예 강남 서초동에 법원단지가 들어서고 있으니 장남에게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설명을 들으면서 그 옆의 최영미 변호사가 생긋 웃고 있다.
서운갑이 그제서야 조카딸 서미옥을 바라보면서 한마디를 한다; “미옥아, 네가 한국이와 동갑이니 금년에 41살이겠구나. 이제는 좋은 혼처가 나서면 재가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야 네가 손주들을 키워주고 있으니 한없이 고맙지만 그렇다고 하여 오래 너를 홀몸으로 둘 수가 없단다. 내가 좋은 자리를 한번 알아보아줄까?... “.
그 말에 미옥이가 차분하게 말한다; “삼촌 말씀이 맞아요.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곳 마포에서 살다가 보면 장차 좋은 인연이 반드시 생길 것으로 생각이 되어요. 그러니 일부러 마음 쓰실 필요가 없으세요. 숙모님도 그렇게 알아두세요”.
당사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구태여 일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옥이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는 처지인지라 모두들 마음속으로는 좋은 사람이 있으면 짝을 지어주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고 있다. 과연 서미옥은 언제 누구를 만나 재가하게 되는 것일까?...
새해 1991년 정초가 되자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딸 서민경과 사위 유태삼이 서울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내고 있다. 먼저 황옥주가 딸 내외와 이야기를 한 다음에 서재에 있는 남편 서운갑에게 전화를 돌려준다. 서박사가 반갑게 전화를 받았더니 딸에 이어서 사위가 새해인사를 한다.
그 다음에 유태삼이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를 한다; “아버님, 작년에 저희들은 유럽을 다녀왔어요. 사실은 업무와 관련하여 동유럽 몇 나라를 방문하고 온 거예요. 그 가운데 저희 부부가 서독과 동독을 방문한 후에 UN사무처에 제출한 보고서가 있어요. 그것 사본을 하나 아버님께 참고하시라고 송부했어요.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새해 좋은 일들이 많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버님, 내내 강녕하십시오!”.
사위의 말이 맞다.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 영어로 된 보고서가 1부 마포집으로 배달이 되고 있다. 서운갑이 그 내용을 읽어본다. 그리고 머리속으로 그 내용을 요약하여 체계화한다. 그 주요내용이 다음과 같다;
(1) 첫째, 1989년 11월에 동서 베를린을 가르고 있던 장벽이 무너진 것은 동독과 서독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는 인위적인 장벽이 제거되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그것을 시민들은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아니다. 유럽공동체를 리더하고 있는 서독의 경제력이 너무 막강해지고 있으므로 패권국 미국이 패권도전국을 미리 주저앉히기 위하여 묘수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여 통합하게 되면 하나의 독일로 만들기 위하여 서독은 향후 30년동안의 국내총생산을 동독 땅에 퍼부어야 할 것으로 예의분석한 것이다.
(2) 둘째, 이제는 세계경제에 있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는 동아시아에서 고도경제성장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일본이다. 과연 패권국 미국은 어떠한 책략을 사용할 것인가? 국제경제를 전공하고 있는 보고자는 1990년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1) 일본산업의 하부구조를 담당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과 중진국 한국에 대하여 미국은 국제펀드를 통하여 자본투자를 일시에 중단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에 빠지는 동아시아의 국가들이 현찰부족으로 한꺼번에 부도사태를 맞게 될 것이고 일본의 경제도 심대한 타격을 받고 말 것이다.
2)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는 국제펀드회사는 미국정부의 비밀작전에 동참할 것이다. 그 이유는 국가부도사태를 맞게 되는 제3세계에 과감하게 투자하게 되면 그 이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필요한 노른자위기업을 사냥하게 되면 그 이익은 천문학적인 것이다.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옥까지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국제펀드가 그 호기를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3) 그렇지만 유동성함정에 빠지게 되는 국가들과 협상하기 위해서는 국제펀드회사가 전면에 나서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통화기금(IMF) 등 제도적인 국제기구를 동원하여 미국이 구제금융을 주는 것으로 유도할 공산이 크다. 그와 같은 미래에 대하여 우리 국제연합은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 그 점에 대한 검토가 앞으로 필요할 것으로 본다.
(3) 셋째, 동서독의 통일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의 대외정책만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과 무섭게 경쟁하던 소련이 경제적으로 바닥을 보이고 재정파탄을 맞이하여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완전히 해체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련의 위성국으로 존재하고 있던 동구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1) 소련의 위성국들이 동구에 많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유지시킨 것은 과거 소련의 재정원조 덕분이다.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원조가 없이는 그들 위성국들이 결코 존재할 수가 없는데 그 이유는 공산주의 경제이론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다음과 같은 약점 때문이다.
2)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배급을 받는다’라고 하는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은 현실적인 타당성이 없다. 그 이유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소외된 계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그러한 성자(聖者)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살기다툼에 바쁘고 능력이 많으면 재화나 권력을 많이 차지하고서 사회적으로 승리자가 되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남을 위하여 자신의 것을 무한정 퍼줄 수가 있을 것인가?...
3) 공산주의국가에서는 그러한 태생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민들에게 공산주의이념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나 그 효과가 한시적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이념에 대한 헌신은 10년을 넘기지 못한다. 따라서 독재정권이 계속되고 10년마다 다시 혁명을 해야 그 위기를 겨우 극복하게 되는 것이다. 중공의 경우 마오쩌둥(毛澤東)의 문화혁명이 역사적으로 그러한 것이다.
4) 러시아에서는 1917년에 피의 혁명을 통하여 세계최초로 공산주의 정권을 수립했다. 노동자와 농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고 모든 재화를 국유화하는 새로운 시대로 그들이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라져버린 러시아제정시대의 황제와 귀족들이 모습을 달리하여 역사 가운데 다시 등장하고 있다. 그것이 독재자 스탈린과 그의 후계자들이며 그들의 손발이 되고 있는 이른바 노동귀족인 ‘노멘클라투라’(러시아어 номенклату́ра, 영어로는 Nomenklatura)이다. 그러므로 인민의 피의 혁명의 결과가 헛수고에 그치고 있다고 갈파한 막스 베버(Max Weber)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5) 실제로 동독지역에서는 히틀러 시절에 그곳 곡창지대에서 수확한 곡물로 독일사람들을 전부 먹여 살릴 수가 있었다. 그런데 동독정부가 공산주의식 중앙계획경제를 실시한 결과 작물생산량이 급격하게 줄고 배급과정에서 많이 손실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지금은 동독지역에서 인민들을 먹여 살리기에도 식량이 부족해지고 만 것이다;
그러한 공산주의경제이론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자본주의 경제방식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4) 결론적으로, 1978년부터 중국을 개방하고 1980년부터 경제개혁조치를 단행하고 있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실용주의 노선을 가지고 세계경제와 정치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제는 소련이 지도하고 있던 공산주의진영과 미국이 리더하고 있던 자유자본주의진영이라는 해묵은 양진영논리로 냉전체제를 계속해서는 안된다. 그와 같은 이념적 대결로 편가르기를 해서는 더욱 안된다. 오직 국부를 증대하고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면 그 정치적 경제적 이론과 국가정책이 유효한 것이다. 더 이상의 불필요한 이념대결을 버리고 이제는 실용주의와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사회복지정책의 우열로 모든 현대국가는 정권과 정부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1990년대부터 시작되고 있는 새로운 국제시대의 특징인 것이다.
이상과 같이 사위 유태삼 박사 부부가 1990년말 유엔사무처에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하고 체계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서운갑 박사이다. 그 내용을 가지고 그는 한국의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과연 그의 눈에 한국사회의 어떠한 문제점이 부각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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