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손진길 소설)

가지를 뚫는 햇살28(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4. 2. 16. 21:35

가지를 뚫는 햇살28(손진길 소설)

 

서운갑 박사는 19932월에 민주투사 YS가 제14대 대통령에 취임하고 청와대에 들어가자 그때부터 그가 어떠한 민주화조치를 취하는지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와 같은 관심은 서하(SeoHa) 미래연구소를 함께 이끌어가고 있는 벗들 곧 윤광일 박사와 허숙 박사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그들 3인은 자주 여의도에 있는 미래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나 그러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의 주인이 된 9선 국회의원 출신 김영삼 대통령은 그들의 기대에 크게 부응하고 있다. 그 실질적인 내용이 1993년 한해만 보더라도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1)  첫째, 무엇보다도 군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신군부의 지지세력을 한꺼번에 도려낸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한달도 기다리지 아니하고 곧바로 하나회의 명단을 입수하여 별자리부터 차례로 옷을 벗기고 있다. 그로 말미암아 군부에서 정치군인들이 선후배사이에 비밀 사조직을 만들어 활동해오던 그 실체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이내 역사 가운데서 사라지고 만다;

1)   향후 그러한 사조직을 다시 만드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 정보를 사전에 탐지하여 처벌하는 것은 모두 보안사령부 또는 정보사령부의 업무가 될 것이다. 더구나 문민출신의 국방부장관이 보안사령관 또는 정보사령관을 휘하에 두고서 그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여야 하는데 실제로 그것이 문민출신인 대통령을 올바르게 보필하는 국방부장관의 가장 중요한 직무의 하나이다.

2)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국방부장관에게 강력하게 지시하여 은밀하게 군부내의 사조직 하나회의 명단을 입수하고 그 진실성 여부를 파악한 후에는 전격적으로 하나회원에 대하여 전면적인 숙청작업을 실시하고 만다. 그로 말미암아 1993년이 지나가기 전에 문민정부에 의한 민주주의의 정착이 확고해지고 있다. 그 작업이 마무리가 됨으로써 김영삼 정부는 그 이전의 정부와 비교하여 가장 선명한 문민정부이며 민주정부라고 대내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2)  둘째,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직후에 자신의 재산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임명을 받고 있는 정무직 공무원들이 재산공개에 동참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다. 마침내 19937월에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4급 서기관 이상의 공무원들이 전부 재산을 등록하게 된다. 매년 재산의 변동상황을 각 부처별 감사관실에 등록하게 되므로 공직자들이 함부로 재산을 증식할 수가 없다. 그만큼 공직사회가 맑아진다고 말할 수 있다;

(3)  셋째, 19938월에는 금융실명제를 실시한다. 이제는 남의 이름을 함부로 빌려서 차명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기에 경제부조리를 척결하는 큰 효과를 보고 있다. 금융거래가 실명으로 이루어지게 되자 개인의 금융재산과 각종 회사와 법인체의 재산상태를 투명하게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1)   이제는 익명으로 재산을 숨길 수 있는 방법은 현찰로 비자금을 개인의 비밀금고에 보관하거나 공식적으로는 간간이 정부가 발행하고 있는 무기명채권을 사두는 방법 뿐이다. 그것은 자본이 해외로 탈출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하여 고육지책으로 정부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서 실시하고 있는 제도이므로 그 발행이 상당히 제한적인 것이다.

2)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현대사회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당연한 논리이지만 오랜 세월 차명으로 금융거래를 해오던 매우 편리한 관행이 있었기에 그 실시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 오래된 경제적 부조리를 단숨에 척결한 대통령이 민주투사 출신의 대통령 YS이다.

3)   그것을 보면 두가지로 평가할 수가 있다; 하나는, 투명한 경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하여 획기적인 조치를 대담하게 실시한 인물이 YS라는 좋은 평이다. 또 하나는, 그만큼 위험한 대통령이라는 부정적인 평가이다. 왜냐하면, 너무나 경제를 모르고 있기에 그와 같이 무모한 조치를 단숨에 해치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와 관련하여, 당장에 있어서는 국민들이 쌍수를 들고서 속시원한 YS 대통령의 대담한 조치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 점은 정치학박사인 서운갑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분명히 그러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YS정권의 말기인 1997년 하반기에 들어서자 국가의 외환보유고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갑자기 국가경제에 초비상이 걸리고 있다. 민주투사 출신의 대통령 YS는 자신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 1990년대는 국제화의 시대이므로 전세계에 나가서 국민들이 마음 놓고 해외여행을 즐기고 국제경쟁력을 발휘하라고 종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를 모르는 정치지도자의 자아도취의 면모가 강하다. 건실한 국가경제의 관건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충분히 유지함으로써 국가경제가 유동성함정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인데 그 점을 깜빡한 것이다. 해외여행을 하라고 외화를 마음대로 풀어주고 기업의 해외투자를 권장만 하고 있으니 국가경제의 운영주체들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개인적으로 YS의 고향 선배이며 한국경제학계의 원로인 윤광일 박사는 과연 그 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일까? UK로 불리고 있는 서운갑 정치학박사는 훗날 그것이 참으로 궁금하여 미래연구소의 모임에서 오랜 벗인 윤광일 박사에게 그 점을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 대답이 별로 신통하지가 아니하다.

그만큼 YS 대통령의 시대에는 모든 국민들이 한국정치의 민주화에만 목말라 있었지 기타 부문에 있어서는 국정운영이 미숙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구태여 지적하지 아니하고 있었던 상당히 이상한 시대였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21세기 202312월에 100세를 맞이하고 있는 UK 서운갑 박사의 개인적인 소회인 것이다.   

한편, 서하 미래연구소에서는 1993년 한해동안 위와 같은 YS3가지 업적을 중심으로 2달에 한번씩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참석자들의 반응이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하루는 장남 서경일 변호사가 집에서 부친 서운갑 박사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그 내용이 과연 무엇일까?...

서경일의 첫마디가 다음과 같다; “아버지, 저의 옛날 군동기들은 달리 말하고 있어요. 하나는, 사관학교시절부터 제가 알고 지낸 절친 이야기인데요. 장군인 그는 단지 하나회에 가입되어 있었을 뿐 실제로 군내부의 인사에 있어서 이익을 본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고 있어요. 하나회를 만든 11기 선배와는 워낙 기수차이가 나고 있으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지만“.

육사 출신이며 전방에서 군장교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장남 서경일 변호사의 언급이므로 서운갑 박사가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들의 설명이 계속된다; “YS 대통령의 추상같은 하나회 척결조치에 따라 그는 그만 군복을 벗고 말았다고 해요. 제에게 몇 번이나 자신은 억울하다고 말하더군요. 참으로 불운한 경우이지요. 또 하나는… “;

서운갑은 아들의 말을 흘려버릴 수가 없다. 이어서 다른 내용이 들려온다; “군부 뿐만 아니라 고위직 공무원 사회에 있어서도 요즘은 부산 경남 출신 곧 PK가 아니면 승진이 어렵고 요직을 맡지도 못한다고 하는 불만이 새어 나오고 있어요. 이전 정권에서는 대구 경북 출신 곧 TK그룹이 그러했는데 지금은 단지 TKPK로 바뀌고 있는데 불과하다는 거예요. 저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요!”;

아들 서경일 변호사의 말을 듣고나서 자신의 서재로 돌아온 다음 서운갑 박사가 깊은 생각에 잠긴다. 잠시 후 혼자서 중얼거린다; “개혁 운운하면서 자기사람과 동향인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그런데 좁은 땅덩어리에서 단지 PK출신이라고 하여 마구잡이로 특혜를 베푼다고 하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는 거야... “.

예지적인 능력이 있는지 서운갑 박사는 그 다음의 일까지 걱정하고 있다; “수년후에 만약 호남대통령이라고 불리고 있는 DJ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면, 그는 호남출신으로 고위직을 대부분 채워버릴 수도 있겠구만! 1997년말에 실시되는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그가 당선된다고 하면 그는 무려 4번이나 대선을 치루게 된 것이지. 그러니 그동안 빚진 것이 너무나 많아!... “.

서운갑의 독백이 계속되고 있다; “DJ 가 그 신세를 모두 갚자고 하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수천개의 정무직과 국영기업체의 간부 자리로도 부족할 것이야! 그러면 청와대 비서들을 동원하여 호남출신들에게 대대적인 승진기회와 온갖 특혜를 베풀게 되겠구만. 그렇게 된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

끝내 서운갑은 허허라고 웃으면서 상념에서 깨어나고 있다; “그것이 오랜 세월 소외된 호남출신들에게는 단비가 되겠군! 그렇지만 DJ가 대통령이 되면 영남 출신들에게는 엄청난 시련의 시대가 되겠구만, 허허허그것 참 내가 먼 훗날의 일까지 쓸데 없이 걱정하고 있구만! 걱정도 팔자이지, 기우야 기우, 허허허… “.

그런데 UK 서운갑이 경험하고 있는 YS 대통령의 그 다음 시대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첫째, 19956월에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실시하고 있다. 그것은 4년전 노태우 정부에서 지방의회를 30년만에 부활하였는데 그 후속조치로서 이제는 단체장을 주민들의 직접선거로 선출하고자 한 것이다. 민간인 출신 대통령 YS가 실시한 지방민주정부의 수립이다. 그것을 보고서 서운갑 박사가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2)  둘째, 19958월에 우리역사 바로 세우기를 한다는 명분으로 그동안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던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기 시작한다. 일제의 잔재를 서울 한복판에서 제거한다고 하는 것이 국민의 감정상 속시원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서운갑 박사는 당시 72세가 되어가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고 있다;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나 19458월에 해방을 맞이할 때까지 22년을 일제치하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그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듯이 중앙청도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던 건물이다. 그것을 해체하여 버린다고 하여 옛날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차라리 돈이 좀 더 들고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하더라도 다른 먼 곳으로 이전하여 박물관 가치를 가지는 역사적인 건물로 사용했다고 한다면 후세들에게 더 생생한 교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인데!... “;

(3)  셋째, 199511월에는 전직 대통령 노태우를 구속하여 대검 중수부가 조사하고 12월에는 전직 대통령 전두환이 역시 검찰의 손에 넘겨지고 만다. 2명의 신군부 출신 전직 대통령의 죄목은 비자금 조성 등도 있지만 더 큰 죄목은 19805.17 내란음모와 5.18 광주학살사건의 배후라는 것이다. 마침내 중형을 받고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자 국민들 가운데 박수를 치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예지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UK 서운갑 박사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검찰조직에 전직 대통령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것은 엄청난 칼을 검사들의 손에 쥐어 주고 있는 것이다! YS는 그 칼이 자신에게도 훗날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처 모르고 있다. 무릇 칼의 권력이란 그 속성이 주인을 베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것인데!“;

(4)  넷째, 서운갑 박사가 우려하던 일이 YS 김영삼 대통령 말기 1997년초에 기어코 발생하고 만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뇌물수수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여론이 나빠지자 그해 2월에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의 말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97517일에는 검찰에 의하여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그것을 보고서 서운갑 박사가 깊은 생각이 빠지고 있다. 그가 어떠한 미래를 예상하고 있는지 오랜 정치학자인 UK의 중얼거림이 다음과 같다; “지금은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판사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그만 구속수감이 되고 있다. 훗날에는 현직 대통령이 그러한 자리에 서게 될 지도 모르겠구나!... “.

서운갑 박사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고서 내심 다음과 같이 중얼거리고 있다; “정치란 한마디로, 현재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을 발견하고 서로 타협하여 국가를 전진하게 만드는 힘이다. 그런데 미래로 전진하도록 만드는 정치력이 사라지고 법치에 의한 현실유지만을 기본으로 하는 사법과 검찰력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면 국가는 미래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만큼 퇴행만을 거듭할 따름이다“.

그가 맺고 있는 결론이 다음과 같다; “정치의 협상력과 정치의 기능이 사라지고 정치인들이 서로 극한적으로 대치하면서 모든 문제를 법치주의에 맡기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때에는 검찰력이 정치를 대신하게 되고 법원의 판결이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고 만다. 그러면 과연 한국정치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마는 것일까? 참으로 걱정이다!... “.

서운갑이 그러한 걱정을 하고 있는데 1997년 하반기에 그만 외환보유고의 부족으로 한국경제가 빈사의 상태에 처하고 만다. 경제에는 거의 문외한인 YS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말기에 가장 큰 위기에 처하고 있다. 그에게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다. 그러한 시기에 199712월 제15대 대선에서 재정통이라고 알려지고 있는 DJ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있다;

다음해 19982월에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적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되는 것일까? 국민들은 그 옛날 구한말에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하던 심정으로 이제는 금붙이 모으기에 나서고 있다.

서운갑 박사와 그의 동지들은 미래연구소에서 그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미래를 직면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