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를 뚫는 햇살27(손진길 소설)
1991년 10월에 열린 ‘서하 미래연구소’의 토론회에서는 “한국정치의 민주화를 위한 3김씨의 역할”이란 주제를 가지고 서운갑 박사와 허숙 박사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도서관의 소회의실을 빌려서 개최가 되고 있는 토론회이다.
그날 국방대학원의 교수인 허숙 정치학박사가 먼저 주제발표를 통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기 시작한다; “1987년말에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여당의 노태우 후보와 야권의 3김씨의 대 격돌이었습니다. 야권을 지지하는 표가 3김씨로 쪼개어져 버렸기에 단지 36.6%를 득표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
좌중을 둘러본 다음에 허숙 박사가 설명을 계속한다; “비록 제6공화국 민주헌법에 의거 국민의 직접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1988년 2월에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의 힘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2달후 4월에 제13대 총선에서 여당인 민정당이 전체의석 299석의 41%에 불과한 125석을 얻고 말았지요. 소위 ‘여소야대 정국’이 형성되고 노태우 대통령은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어요. 따라서 불가피하게 2가지 타개책이 실시된 것입니다… “.
서운갑 박사는 허박사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미리 짐작해본다; ‘그 하나가, 노태우 대통령이 야권의 협조를 얻어서 국제행사 88서울하계올림픽을 무사히 그해 가을에 잘 치른 것이겠지. 또 하나는, 올림픽이 끝나자 그 다음달에 신군부 출신인 전직 대통령부부를 강원도의 백담사로 유배하면서 은밀하게 야당에게 합당의사를 타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허숙 박사가 그 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평화민주당의 DJ는 거절했지만 통일민주당의 YS와 신민주공화당의 JP는 찬성했지요. 그 결과 1990년 1월에 3당 합당하여 인위적인 거대여당 민주자유당을 창당했습니다. 그러자 야당의 대표주자가 된 DJ가 3당합당을 반대하면서 통일민주당에서 탈당한 소위 ‘꼬마민주당’과의 합당을 금년 1991년초부터 서서히 논의했지요. 그 결과… “.
이제는 최근의 정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두 세력이 하나가 되어 한달 전 9월 16일에 민주당이 창당되고 이제 야당에서는 DJ가 내년 1992년 12월에 실시되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야권단일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점쳐지고 있어요. 그러므로 여당인 민자당에서도 긴장하고 있어요. 그 이유가 따지고 보면 두가지이지요!... “.
모두가 흥미를 가지고 허숙 박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재미있는 설명이 들려온다; “하나는, 호남의 대통령이라고 불리고 있는 민주투사 DJ와 상대하여 정권연장에 성공할 수 있는 인물이 과연 누구냐? 하는 것이지요. 또 하나는, 거대여당 민자당에서 누가 대통령후보가 되어야 한국의 민주주의가 진일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
국방대학원 교수인 허숙 박사가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결론을 맺고 있다; “유신시대의 민주투사 DJ와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정치인은 여당에서는 당연히 YS이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민주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고 언제나 강조하고 있는 DJ와 YS가 맞대결하여 이번에 승리하는 자가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청중들이 조심스럽게 박수를 치고 있다. 그 이유는 노태우 대통령의 제6공화국에 있어서는 진작부터 그의 처조카 뻘인 검사 출신 박철언(朴哲彦)이 황태자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992년에 들어서면 민주투사로 불리는 YS김영삼과 검사 출신 박철언 가운데 과연 누가 공식적으로 민자당 대통령후보가 될지 아직 오리무중인 것이다;
그날 토론회에서는 허숙 박사의 주제발표가 끝나자 뒤를 이어서 서운갑 박사가 단상에 올라서 자신의 주제발표를 시작한다. 그의 서두가 다음과 같다; “저는 허숙 박사가 미처 발표하지 아니한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의 민주정치 발전을 위하여 3김씨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
서운갑이 잠시 좌중을 둘러본 다음에 천천히 설명한다; “여당에서는 민주투사 YS가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도록 JP가 그를 도와줄 필요가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JP 역시 박대통령 치하에서 제2인자였던 자신에게 대권도전의 기회가 전혀 없었기에 자신은 유신독재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
그 다음 서운갑 박사의 설명이 명쾌하다; “JP 김종필이 그 옛날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의 주모자임은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군부의 정치개입을 끝내고 민주주의 정착을 위하여 JP는 YS를 대통령후보로 밀어주고 자신은 정치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이 역사적인 순리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
서운갑은 68세가 되어 가는 나이라서 그런지 잠시 숨을 돌리고서 천천히 설명한다; “민주정치는 문민정부가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만 문민정부라고 역설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군부의 입김을 완전히 차단해야 합니다. 따라서… “.
수년후를 미리 보고 있는지 서운갑이 소회의실 제일 뒤를 응시하면서 말한다; “3김씨가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진정 원한다고 하면 정치군인들의 정권장악과 정치개입이라고 하는 구악(舊惡, 오래된 악습)을 뿌리뽑기 위하여 신군부의 군대 내부세력을 완전히 정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셋째를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
평생을 정치학박사로서 그리고 청와대 안보특보로서 일한 경력이 있는 서운갑 박사가 마침내 한가지 사항을 추가하고 있다; “민주정치의 발전과 아울러 경제발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나아가서 안보를 튼튼히 하면서 민족통일을 위한 남북한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
마침내 서운갑 박사가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요컨대, 정치의 선진화, 경제발전, 그리고 민족통일에의 노력 등 이 3마리의 토끼는 한꺼번에 잡아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 놓쳐버리게 되면 한마디로, 후회막급(後悔莫及)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서운갑 박사가 사족을 하나 덧붙이고 있다. 그것은 특이하게도 노태우 대통령의 치적에 관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나름대로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북방외교 및 서울올림픽의 성공이라고 하는 3관왕의 자리에 올라있습니다. 마침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북방의 공산진영이 재정난으로 분열이 되고 있었어요. 그는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하여 북방외교에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경주했지요. 그 결과… “.
좌중이 서운갑 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때 서박사가 이어서 말한다; “88서울올림픽은 그야말로 동서와 남북의 화합을 구현하는 한마당의 범세계적 축제가 될 수 있었어요. 게다가 그는 군 출신 대통령 답게 과감하게 공권력을 총동원하여 사회악을 일삼고 있는 온갖 범죄조직을 소탕했지요. 그 공이 적지 않습니다“.
그 다음 서운갑 박사의 설명이 이채롭다; “그리고 노태우 대통령은 무너지고 있는 소련에 재정지원을 해주고서 그 대신에 지하자원과 첨단 국방산업관련 자료들을 받아들였지요;
당장은 한국의 국방산업의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서 그 첨단자료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지만 훗날에는 반드시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
서운갑 박사가 싱긋 웃으면서 말한다; “1988년 2월에 노태우 대통령이 처음으로 여의도 국회 앞마당에서 취임식을 가졌어요. 그것은 참으로 잘한 일입니다. 앞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좋은 전통이 될 것으로 봅니다. 또한 지난 9월 17일에는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지요. 그것도 잘한 일입니다. 그와 같이 잘한 일들은 차기의 민주정부가 발전적으로 계승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서운갑 박사가 마무리 발언을 한다; “결론적으로, 양 김씨 가운데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될지 몰라도 반드시 현정권이 잘한 일은 더욱 발전시키고 더 나은 민주정부를 만들어 나가는 역사적인 소임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저와 같은 정치학자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의 한결같은 바램이라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해 1992년에 들어서자 정초에 윤광일 박사가 마포에 있는 서운갑 박사의 집을 일부러 방문한다. 귀한 발걸음이므로 서운갑이 그를 환대한다. 자신의 서재에 데리고 들어가서 손수 커피를 타서 한잔 대접한다. 커피를 천천히 마시면서 윤광일 박사가 방문목적을 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의 첫마디가 익살스럽다; “허숙 박사는 서박사님을 개인적으로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저는 그와 달리 이제부터 UK라고 편하게 부르고 싶습니다. 그 옛날 1959년에 벌써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4년만에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선구자적인 인물이 바로 서박사님이시기에 제가 후진으로서 애칭 UK를 선물하는 것입니다, 하하하… “.
그 말을 듣자 서운갑 박사가 웃으면서 응대를 한다; “허허허, 간단하게 UK라고 부르는 것도 듣기에 편해서 좋습니다. 영국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면 앞으로 그렇게 하시지요, 하하하… 그런데 경제학박사인 윤박사께서는 오늘 저희 집에 어쩐 일로 들리신 것입니까?... “.
다음 순간 윤광일 박사가 약간 긴장을 하면서 말한다; “사실은 제가 개인적으로 나이는 YS보다 3살이 많지만 고향 소학교에서는 2년 선배입니다. 우리는 둘 다 경남 거제 출신이지요. 그래서 그런지 제가 KDI에 근무한 경력이 있음을 알고서 YS가 최근에 심복을 저의 집에 보내서 좀 만나자고 했습니다. 상도동 그의 자택으로 가서 만났더니 YS가 저에게 두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하나는… “.
중요한 이야기이므로 서운갑이 신중하게 그의 말을 듣고 있다. 그의 설명이 들려온다; “YS가 여당 민자당의 대통령후보가 될 수 있도록 동향이고 학교 선배인 나에게 좀 도와달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정치학자로서 자신에게 조언해줄 인물을 한사람 소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개인적으로 부탁드리기 위하여 오늘 UK형님을 일부러 찾아온 것이지요!... “.
그 말을 듣자 서운갑이 잠시 눈을 감고서 생각에 빠진다. 이윽고 눈을 뜨고서 그가 말한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그렇지만 제가 직접 만나서 YS에게 조언하는 것보다는 윤박사께서 제가 말하는 내용을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그 내용이 한가지입니다. 그것은… “.
잠시 서운갑이 말을 멈추자 윤광일이 눈을 떼지 아니하고 UK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서운갑이 이어서 말한다; “YS는 민주 투사이며 25세부터 국회의원으로 일한 대단한 정치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그 나이도 1929년생이므로 현 대통령 노태우보다 3살이나 많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군부 출신 노대통령 앞에서 착실하게 제2인자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길들여지게 되면 결코 대통령후보가 되지 못합니다!... “.
윤광일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말한다; “노대통령에게 잘 보여야 여당의 대통령후보로 낙점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 그 말에 허허하고 웃으면서 서운갑이 대답한다; “그래요? 허허허, 그렇게 하면 JP꼴이 되고 말지요. 예나 지금이나 말 잘 듣는 부두목에게 구태여 두목이 자신의 모든 권력을 내어주지 않지요. 그 이유는 대권이란 이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투쟁하여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
무언가 둔탁한 것이 윤광일의 머리를 내리치는 것만 같다. 그래서 그가 숨도 쉬지 아니하고 UK의 입만 바라본다. 서운갑의 설명이 이어진다; “YS가 진정으로 차기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민자당을 박차고 나갈 결심으로 노대통령에게 달려들어야 합니다. 자신을 후계자로 밀어주지 아니하면 딴 살림을 차리고 나가서 DJ를 밀어주고 말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노대통령이 항복할 수밖에 없지요, 하하하… “;
맞는 말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윤광일은 UK를 한번 더 쳐다본 다음에 말한다; “UK형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그 말씀을 꼭 그대로 YS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그 결과를 한번 지켜 보시지요!... “.
그런데 생각보다 YS가 신중한 사람이다. 그는 윤광일 박사의 말을 듣고서 그에게 서운갑 박사를 꼭 한번 만나볼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서운갑이 하루는 상도동 YS의 저택을 찾아가서 그를 만난다. 그 자리에는 가신 그룹의 수장인 최형우와 김덕룡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서운갑은 차제에 세가지의 조언을 해준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1) 첫째, 민자당 내에서 그 옛날의 JP가 될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DJ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민주투사가 될 것인지 조속히 노선을 선택해야 한다.
(2) 둘째, 노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서둘러야 한다. 신군부 출신이 아닌 민주투사 YS임을 선명하게 부각해야 한다. 25세부터 제3대 국회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의정활동과 정당활동을 가장 많이 한 고참 중의 고참이 YS임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3) 셋째, 대통령이 되면 명실상부하게 문민정부에 의한 확실한 민주정치를 실현할 것임을 비전으로 내걸어야 한다. 이제는 경제발전에 맞는 정치발전을 이루어야 할 때임을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아니할 것이다. 진정한 민주정부에 목말라 있는 국민들에게 생수를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판이라고 하는 것이 항상 정치학자나 현실정치인들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1992년 3월에 실시되는 총선과 12월에 실시되는 제14대 대통령선거에 있어서는 느닷없이 현대그룹의 왕회장인 정주영 씨가 정초에 급히 선거용 정당인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서 선거판에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주영의 통일국민당이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려 31석을 확보한다. 그리고 12월 대선에서는 여당후보인 YS와 야당후보인 DJ의 표를 다같이 갉아먹고서 16.3%의 득표를 하고 있다;
비록 여당후보인 YS가 42%를 득표하여 무난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그는 재력으로 정치판을 어수선하게 만든 정주영 왕회장을 괘씸하게 여기고 있다. 따라서 이듬해 1993년 2월에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취임식을 가지고 청와대로 입성하자 가장 먼저 정주영 씨를 손보기 시작한다. 그에 따라 정주영은 자신의 기업을 살리는 대신에 정치적인 기반을 모조리 해체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서운갑 박사가 딱 한마디를 하고 있다; “재력으로 선거용 정당을 만들고 자신의 회사직원을 선거원으로 뛰게 한 결과 단숨에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고 대선에서 16.3%의 득표를 했다고 하면 그것은 한국의 정당체계화가 참으로 미흡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정치발전은 요원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구나!... “.
과연 한국의 정치적 민주화는 YS의 시대에 어떻게 진행되는 것일까?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YS 대통령이 초래하고 있는 경제적인 국난은 어떠한 것일까? 그 점에 대한 서운갑 박사의 지적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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