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하 주석

역대하 제25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손진길 2024. 2. 4. 09:43

역대하 제25장 주석(요약자; 양인국)

 

역대하25
 
25:1-4. “1 아마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호앗단이요 예루살렘 사람이더라 2 아마샤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3 그의 나라가 굳게 서매 그의 부왕을 죽인 신하들을 죽였으나 4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함이라 곧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자녀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죽이지 말 것이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녀를 죽이지 말 것이라 오직 각 사람은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죽을 것이니라 하셨더라

아마샤는 이십 오세에 유다 왕이 되어 이십 구년을 치리하였다.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않았다.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의미이고, “온전한 마음으로 행치 않았다”는 것은 유다의 왕으로서 유다를 부패하게 하는 것을 마땅히 제하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여기 아마샤가 유다 가운데서 마땅히 제해야 했던 것은 산당이다.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14:4)” 여기 산당은 가나안 정복 후, 동양의 풍습을 본받아 높은 곳(주로)에 흙이나 돌로 단을 쌓고 기도 또는 제사하던 곳을 말한다. 대표적인 곳으로 라마(삼상7:17), 실로(삼상1:3), 벧엘(삼강7:1), 단(사18:27), 미스바(사11:11), 놉(삼상21:1), 베들레헴(삼상20:28), 기브온(왕상3:4) 등을 들 수 있다. 산당은 본래 하나님을 섬기는 곳이었으나 가나안 문화의 영향을 받아 바알과 아세라 예배 의식까지 채택함으로 종교적 혼합주의 형태를 낳았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산당은 이스라엘을 부패하게 하는 곳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왕은 마땅히 자신이 통치하는 곳에 산당을 허용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아마샤는 유다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 그러나 백성들 가운데 산당을 제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기는 하였으나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듣게 된 것이다.

여기 “온전(םלשׁ)”이란 “완전하다” “건전하다”라는 뜻이고 “평화(shalom)”라는 말도 이 말에서 파생되었다. 그러므로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만 향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의미다. 이런 마음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해 줌으로 어떤 경우에도 요동하지 않게 해 준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는 이해관계에 따라서 살 수밖에 없고 또한 이해관계는 언제나 변하므로 이해관계에 따라 살 때 요동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아마샤의 예를 들어 본다. 그는 온전한 마음을 결여(缺如)하고 있었으므로 세속으로부터 오는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보다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은 일백 달란트를 주고 이스라엘로부터 군사 십만을 용병했다(25:6).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미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군사를 용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대하19:2절). 아마샤는 그의 전(前) 왕들이 이스라엘과 가까이 함으로 실패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이스라엘의 군사를 용병했다. 이것은 온전한 마음이 결여 되어 있을 때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유혹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확실한 믿음의 태도를 가진 사람들만 이길 수 있다. 에스더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페르시아에서 유다 민족이 큰 위기에 놓여 있었을 때 왕후로서 자신의 안전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고 자기 민족을 위험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었고,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벨론에서 누릴 수 있었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오히려 신앙을 위하여 풀무불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샤에게는 이런 마음이 없었다.

아마샤는 유다의 왕이 된 초기에는 율법에 따라 행하였다. 그래서 그는 나라가 굳게 섰을 때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신하들을 죽였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죽이지 않았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따른 것이었다(25:3,4).

25:5-13. “5 아마샤가 유다 사람들을 모으고 그 여러 족속을 따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을 세우되 유다와 베냐민을 함께 그리하고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하여 창과 방패를 잡고 능히 전장에 나갈 만한 자 삼십만 명을 얻고 6 또 은 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 명을 고용하였더니 7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아마샤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여 이스라엘 군대를 왕과 함께 가게 하지 마옵소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곧 온 에브라임 자손과 함께 하지 아니하시나니 8 왕이 만일 가시거든 힘써 싸우소서 하나님이 왕을 적군 앞에 엎드러지게 하시리이다 하나님은 능히 돕기도 하시고 능히 패하게도 하시나이다 하니 9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 하니라 10 아마샤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온 군대를 나누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그 무리가 유다 사람에게 심히 노하여 분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11 아마샤가 담력을 내어 그의 백성을 거느리고 소금 골짜기에 이르러 세일 자손 만 명을 죽이고 12 유다 자손이 또 만 명을 사로잡아 가지고 바위 꼭대기에 올라가서 거기서 밀쳐 내려뜨려서 그들의 온 몸이 부서지게 하였더라 13 아마샤가 자기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고 돌려보낸 군사들이 사마리아에서부터 벧호론까지 유다 성읍들을 약탈하고 사람 삼천 명을 죽이고 물건을 많이 노략하였더라

아마샤는 에돔을 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유다와 베냐민에서 군사 삼십만을 모으고 또한 은 일백달란트를 주고 이스라엘로부터 십만의 군사를 용병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마샤의 계획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아마샤에게 보내어 용병을 돌려보낼 것과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말씀하셨다.

“아마샤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내가 백 달란트를 이스라엘 군대에게 주었으니 어찌할까 하나님의 사람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능히 이보다 많은 것을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25:9)” 아마샤는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선지자에게 이미 은 일백달란트를 주고 이스라엘로부터 용병했음을 말했다. 그때 선지자는 아마샤에게 “여호와께서 능히 이 보다 많은 것으로 왕에게 주실 수 있나이다(25:9)”라고 말했다. 이것은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하여 많은 것을 포기할지라도 순종을 통하여 받는 축복이 포기한 것보다 더 많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만일 아마샤가 이스라엘 군대를 용병하는 것에 대하여 먼저 하나님께 물었더라면 은 일백 달란트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묻지 않을수록 손해가 가는 것이다. 아마샤가 은 일백달란트를 돌려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때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손해를 최소화 하는 길이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 손해를 보면 그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계속 하나님을 거역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다. 이와 같은 선택으로는 손해 본 것에 대하여 조금도 만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선택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그것으로 인하여 손해를 볼지라도 속해 하나님께 돌이켜야 한다. 이것이 피해를 최소화 하는 길이다.

아마샤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에 순종함으로 에돔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다(25:11,12). 그러나 아마샤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묻지 않음으로 많은 값을 지불해야 했다. 그는 이스라엘 군대를 용병하기 위하여 지불한 은 일백달란트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되돌려 보냄을 당하여 분노한 용병들에 의하여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죽임을 당했고 그들의 재물도 약탈당했다.

25:14-16. “14 아마샤가 에돔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세일 자손의 신들을 가져와서 자기의 신으로 세우고 그것들 앞에 경배하며 분향한지라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아마샤에게 진노하사 한 선지자를 그에게 보내시니 그가 이르되 저 백성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왕의 손에서 능히 구원하지 못하였거늘 왕은 어찌하여 그 신들에게 구하나이까 하며 16 선지자가 아직 그에게 말할 때에 왕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로 삼았느냐 그치라 어찌하여 맞으려 하느냐 하니 선지자가 그치며 이르되 왕이 이 일을 행하고 나의 경고를 듣지 아니하니 하나님이 왕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줄 아노라 하였더라

아마샤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대로 에돔과 싸워 승리를 얻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승리는 그를 넘어지게 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에돔으로부터 우상을 도입하여 우상 숭배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로마가 헬라 제국을 정복한 후 그들의 문화를 압도된 것과도 같았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어 그의 죄를 책망하셨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선지자에게 “우리가 너를 왕의 모사를 삼았느냐”라고 말하며 “그치라 어째하여 맞으려 하느냐”라고 말하며 선지자를 위협했다.

25:17-28. “17 유다 왕 아마샤가 상의하고 예후의 손자 여호아하스의 아들 이스라엘 왕 요아스에게 사신을 보내어 이르되 오라 서로 대면하자 한지라 18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유다 왕 아마샤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레바논 가시나무가 레바논 백향목에게 전갈을 보내어 이르기를 네 딸을 내 아들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하였더니 레바논 들짐승이 지나가다가 그 가시나무를 짓밟았느니라 19 네가 에돔 사람들을 쳤다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는도다 네 궁에나 있으라 어찌하여 화를 자초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20 아마샤가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그들이 에돔 신들에게 구하였으므로 그 대적의 손에 넘기려 하심이더라 21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올라와서 유다 왕 아마샤와 더불어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대면하였더니 22 유다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한지라 23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벧세메스에서 여호아하스의 손자 요아스의 아들 유다 왕 아마샤를 사로잡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예루살렘 성벽을 에브라임 문에서부터 성 모퉁이 문까지 사백 규빗을 헐고 24 또 하나님의 전 안에서 오벧에돔이 지키는 모든 금은과 그릇과 왕궁의 재물을 빼앗고 또 사람들을 볼모로 잡아 가지고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25 이스라엘 왕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죽은 후에도 유다 왕 요아스의 아들 아마샤가 십오 년 간 생존하였더라 26 아마샤의 이 외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27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28 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

아마샤는 전쟁에서 승리함으로 마음이 높아져서 형제 나라인 이스라엘까지 정복하고자 했다. 그러나 에돔과 전쟁에서 승리를 얻은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셨기 때문이었음으로 아마샤의 마음이 높아질 이유가 없었다. 아마샤는 어리석게도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자신이 한 일로 착각했다. 그래서 그는 형제의 나라 이스라엘을 쳤지만 패하였다. 이 전쟁에서 아마샤는 이스라엘의 포로가 되었고 예루살렘 성벽은 헐리었고 또한 왕궁과 성전 곡간에 있던 귀중품들은 모두 이스라엘에게 빼앗겼다(25:23,25).
그리고 그는 신하들로부터 살해당했다. “아마샤가 돌아서서 여호와를 버린 후로부터 예루살렘에서 무리가 그를 반역하였으므로 그가 라기스로 도망하였더니 반역한 무리가 사람을 라기스로 따라 보내어 그를 거기서 죽이게 하고 그의 시체를 말에 실어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유다 성읍에 장사하였더라(25:27,28)” 그는 좋은 출발을 하였고 왕으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인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났고 이로 인하여 그의 삶은 멸망으로 향하게 되었다. 만일 아마샤가 끝까지 성실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의 삶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안전하고 복된 길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삶이다. 안타깝게도 아마샤의 불행한 삶은 여호와를 버림으로 인한 것이다
아마샤를 통하여 우리는 영적 삶으로부터 멀어져갈 때 나타나는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묻지 않는 것이고, 세속적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이고, 그리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아마샤는 에돔과의 전쟁을 앞에 두고도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 여기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은 기도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또한 그는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우상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가 영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면 승리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영적 삶으로부터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세속적인 것에 더 큰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가 에돔으로부터 가지고 온 우상은 오늘의 우리에게 세속적인 것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그릇 행하고 있는 아마샤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하여 회개의 메시지를 전해 주셨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권고의 말씀을 주실지라도 그 말씀을 듣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