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길 목사 설교요지 및 음성설교 모음

시행착오를 줄이는 이삭의 믿음생활(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0. 12. 15. 17:01

설교제목; “시행착오를 줄이는 이삭의 믿음생활”(설교자; 손진길 목사)

성경말씀; 24:61-67, 26:1-6.

설교일 및 장소; 주후 2020119일 주일 새노래장로교회(오클랜드 소재)

 

창세기는 성도들의 믿음생활의 비결에 대하여 이야기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주인공이 크게 보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입니다. 아브라함의 기사는 제12장에서부터 시작이 되어 제25장에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경우에는 제25장에서 태어나지만 그의 독자적인 믿음생활에 대해서는 제28장에서부터 제49장에 걸쳐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애굽의 총리가 된 그의 아들 요셉의 이야기가 상당히 들어 있습니다. 

이삭의 경우에는 제21장에서 태어나지만 독자적인 활동은 제24장 끝부분에서  28장까지입니다. 35장에서는 그의 장례식만이 기록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를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야곱의 기사가 14장 또는 15장의 분량인데 비하여 이삭은 5장의 분량도 되지 아니하기에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아니한 것으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많고 적음이라는 양만 생각하는 사고방식입니다. 우리의 기독교는 그러한 양의 종교가 아니라 그 본질이 질의 종교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아브라함과 야곱은 험난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고쳐야만 하는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이삭의 생애는 그 두사람에 비하여 시행착오가 훨씬 적으며 평탄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아들을 낳게 되면 이삭처럼 그렇게 우여곡절이 적으며 평탄한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는 의미에서 이삭이라는 이름을 즐겨 지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창세기 제24장에 있는 말씀의 한대목과 제26장에 있는 한대목의 말씀을 본문으로 하여 저의 주일설교의 제목을 시행착오를 줄이는 이삭의 믿음생활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치 밭에서 보화를 발견하듯이 인생 가운데 시행착오를 줄이며 풍파를 잠재울 수 있는 믿음생활의 비결을 이삭의 사례를 가지고 한번 찾아보고자 합니다.

제가 오늘의 성경말씀으로 먼저 창세기 제24장에서 61절부터 67절까지를 제시한 이유는 그 가운데 이삭이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평탄하고도 형통한 인생을 살아간 믿음생활의 비결이 두가지 용어로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가 제63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묵상입니다. 그 둘째가 제62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브엘라 해로이입니다.

먼저, 묵상에 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흔히 성도들이 기독교의 묵상을 다른 종교나 정신수련단체에서 말하고 있는 명상과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영어성경을 보면 같은 뜻을 가지는 meditate라고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의 믿음생활의 본질인 묵상에 대하여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저보고 묵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그것은 성경의 말씀을 살피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주님의 도우심을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묵상이란 영어로 contemplate and pray’라고 생각합니다.

이삭이 그날 저녁 들판에서 무엇을 묵상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생활을 보고서 자란 40세의 청년입니다. 그가 묵상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믿음생활이 어떠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신은 그러한 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평탄하고 형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청년 이삭은 부친의 믿음생활의 장점은 본받고자 합니다. 반면에 단점은 그 반대로 행동을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순탄한 믿음생활을 향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자신의 힘과 지혜로는 불가능한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부친 아브라함보다는 더욱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기도생활에 힘쓰고 있는 이삭입니다.

그러한 이삭이 묵상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거처를 부친이 거주하고 있는 장소인 헤브론이 아니라 그곳에서 140km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는 브엘라 해로이로 옮겨 가서 홀로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언뜻 보면, 젊은 여인 그두라와 재혼하여 헤브론에서 잘 살고 있는 부친 아브라함의 곁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삭은 자신의 모친인 사라가 벌써 3년전에 헤브론에서 죽고 말았기 때문에 부친 아브라함이 재혼을 하고 나자 문득 고아와 같은 외로움을 느낀 청년입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장소가 가나안의 중심인 세겜이 아니라 그 반대입니다. 가나안 남부의 메마른 네게브 지역보다 더욱 메마른 광야인 브엘라 해로이입니다. 어째서 이삭이 스스로 그 황무지를 찾아가서 새로운 삶을 이루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창세기 제12장 첫머리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독자적인 믿음생활을 하라는 명령에 따른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삭이 브엘라 해로이에 이주하여 살고자 한 이유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복형 이스마엘과 서모인 하갈을 찾아간 것입니다.

창세기 제21장에 보면 여호와의 뜻을 따라 아브라함이 13세에 불과한 서장자인 이스마엘과 자신의 첩인 하갈을 냉정하게 브엘세바에 있는 집에서 내어쫓는 광경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 조금과 양식 조금만을 가지고 광야로 쫓겨난 모자는 브엘라 해로이에서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서 샘물을 발견하고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데리고 북쪽이 아니라 남쪽의 수르광야로 들어선 이유는 그녀가 애굽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브엘세바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는 광야가 바로 수르광야이며 그곳에 샘물이 있는 브엘라 해로이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 장소는 14년전에 하갈이 진작에 발견한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가출한 그녀가 광야에서 죽어갈 때에 그곳 브엘라 해로이에서 하나님의 천사가 샘물을 발견하게 하여 그 목숨을 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16:6-16). 그곳에서 하갈은 아들 이스마엘을 키웠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장성한 이스마엘이 그 지역의 지배자가 된 것입니다(21:20-21).

이삭은 모친 사라가 죽고 나자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젊은 여인 그두라를 집에 들이고 아들을 생산하고 있는 부친 아브라함에 대하여 참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옛날 이복형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쫓고 만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살아가고 있는 부친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이 17세의 청소년이었을 때에 브엘세바에서 모리아 산까지 무려 90km를 북상하여 그곳에서 이삭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고자 한 부친 아브라함입니다. 이삭이 생각하기로는 그것은 맹신에 가까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진정한 하나님의 뜻은 자신의 혈육을 돌보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함께 동고동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생 이삭이 헤브론에서 140km나 남쪽에 떨어져 있는 수르 광야로 자신을 찾아오자 13살이 많은 이복형 이스마엘이 참으로 기뻐합니다. 이 천지에 단 두 형제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매정하기 그지 없는 부친 아브라함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있는 이스마엘입니다. 하지만 인간적인 따뜻한 정이 있고 사랑이 넘치는 아우 이삭에 대해서는 그 대접이 다릅니다.

그래서 두 형제는 오손도손 브엘라 해로이에서 이웃하여 잘 살았으며 형 이스마엘이 힘껏 동생 이삭을 도와준 것입니다. 그 결과 175세로 부친 아브라함이 헤브론에서 별세하였을 때에 이삭은 형 이스마엘과 함께 부친의 장례식을 치르게 되는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브엘라 해로이라고 하는 장소는 마가복음 제1230절과 31절에 기록이 되어 있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 사랑이란 하나님이 창조한 나와 같은 이웃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창조한 이웃을 돌보지 아니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히브리정경에서도 율법으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와 기업이 없는 레위인을 돌보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웃을 돌보고 사랑할 수 있도록 이삭처럼 브엘라 해로이를 찾아가서 버림 받은 자의 마음을 달래어 주고 같은 형제로 살아가는 성숙한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브엘라 해로이에 담겨 있는 깊은 뜻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해달라고 말씀을 보면서 기도하는 삶이 바로 묵상입니다.

한가지 더 첨언을 하자면 그와 같은 묵상의 기도가 있었기에 이삭은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을 때에 애굽의 나일강변이 아니라 블레셋의 그랄 평야로 이주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이삭에게 애굽이 아니라 그랄 땅으로 들어가라고 답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제26장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기도를 먼저하고 여호와의 가르침에 따라 이민생활을 하였기에 이삭이 부친의 잘못을 절반으로 줄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삭의 믿음생활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부친 아브라함의 많은 시행착오를 줄인 성숙한 신앙인 이삭의 묵상브엘라 해로이의 삶을 본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