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길 목사 설교요지 및 음성설교 모음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의미(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0. 12. 14. 15:38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의미(20:8-1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설교일; 주후 20171217(주일)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대공회의 구성원들이며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전 현직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20:1, 19)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된 것은 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선민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께 시비를 걸어 왔기 때문입니다(20:1-2).

그 시비의 깊은 내용은 예수님이 무슨 권위로 유대교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유대교리의 기초 곧 선민구원사상과 외세를 배격하자는 메시아사상을 부인하고 도리어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자는 만민구원사상을 천국복음으로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환언하자면, 나사렛 예수가 전파하고 있는 천국복음이 과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그 근거를 제시하라는 것입니다. 그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너나없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는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서 주어진 것인지 먼저 답을 해보라고 말씀하십니다(20:3-4).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역공세에 대하여 감히 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주지 아니하시면 세례 요한과 같은 담대한 선지자의 활동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과감하게도 선민 유대인들의 잘못을 꾸짖고 회개를 종용하였으며(3:7-14) 외세인 헤롯 왕가의 분봉 왕 헤롯 안디바의 잘못을 질책했습니다(14:3-5). 또한 이 세상에 곧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하여 선지자인 자신에게서 물세례를 받으라고 말했습니다(3:3-9).

그렇게 공식적으로 주전 410년경에 선지자 활동을 한 바가 있는 말라기 이후 400여년이 지나서 선민 유대인들의 땅에 오신 귀한 선지자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선지자 세례 요한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아라고 두 차례나 소개를 한 것입니다(3:21-22, 1:29-36).

그래서 유대교지도자들이 아주 곤궁하여 답이 아닌 대답을 예수님께 하고 있습니다; “알지 못하노라”(20:7). 예수님께서도 응수를 하십니다;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0:8).

유대교지도자들은 피조물인 사람이므로 그 정도로 알지 못한다고 답변함으로써 자신들의 곤란한 처지를 벗어나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명령으로 이 세상에 진리의 말씀을 정확하게 계시해주시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11:27, 8:25-30).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가 바로 천국복음에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제부터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 담겨 있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20:9). 그 말은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포도원 주인과 그 포도원을 세로 얻어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 사이에 양자계약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주인이 타국으로 가서 오래 머물면서 농부들이 어떻게 포도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지 전혀 관여를 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주인과 농부 사이의 양자계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말하지 아니한 채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의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자신의 종을 보냈다고만 말씀하십니다(20:10a). 그런데 농부들이 그 소출을 주지 아니하고 종을 심하게 때려서 빈손으로 돌려보냈다고 또한 말씀하십니다(20:10b). 그러므로 본문의 비유는 두가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그 스토리에 들어 있는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①하나는 포도원 주인과 농부들 사이에 양자계약을 체결할 때에 반드시 때가 되면 주인에게 바치도록 되어 있는 그 소출의 내용과 의미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농부들은 어째서 그 소출을 주인에게 종을 통하여 바치지 아니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셋째로, 그 소출의 내용은 모세오경과 선지서 그리고 복음서에 두루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제10, 이사야 제66, 마태복음 제25장과 제5장에서 쉽게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그 구절들을 적어 봅니다;

1)    첫째, 신명기 제10장 제18절과 19절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10:18-19). 선민 유대인들은 선민사회에 있어서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고 그 생계를 도와 주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율법이며 사회적인 정의의 실현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이방 나그네까지 돌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이방인까지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선민 유대인들만 여호와의 창조물이 아닌 것입니다. 이방인들도 자신과 같은 여호와의 창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서 선민 유대인들이 그들도 자신의 동포와 같이 사랑할 때에 선민사회의 정의의 실현은 더 넓은 차원으로 전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똑같이 사랑하는 여호와의 공의의 실현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2)    둘째, 이사야 제66장 제20절과 21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66:20-21). 선민의 의무와 책무가 무엇인지를 아주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방세계로 나아가서 그들에게 여호와의 구원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선민들의 예물입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포도원의 소출로서 주인에게 바치는 세금이라고 하겠습니다.

3)    셋째, 마태복음 제25장 제40절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양과 염소와의 비유에서 나타나고 있는 임금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약자이며 생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극히 작은 자가 바로 자신의 형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작은 자를 잘 섬기고 사랑하며 살 길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실천인 것입니다.

4)    넷째, 마태복음 제5장 제43절에서 제4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3-48).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 자신의 가족, 자신의 민족만 챙기고 사랑하고자 하는 피조물인 인간의 이기적인 정의의 차원을 뛰어넘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 공의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이 바로 포도원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에게서 받고자 하는 소출의 일부라고 하겠습니다.

(4)  넷째로, 포도원 농부들인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어째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전혀 실천하지 아니한 것일까요? 그들은 어째서 선민만의 구원사상을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일까요? 그리고 메시아가 오시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다시 건설해준다고 하는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을 동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이익과 영광만을 보전해주시는 그러한 수호신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수호신이기 때문에 외세를 물리쳐 주시고 애굽제국과 같은 이방제국의 지배를 물리쳐 주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수호신사상은 정확하게 이 세상을 전부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똑같이 사랑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과는 반대가 되는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전파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은 유대교지도자들의 이기적인 선민사상과는 정반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5)  다섯째로, 포도원 농부들은 주인과 맺은 양자관계 계약에 따라 소출의 일부를 주어야 하지만 그것을 실천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이방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실현하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포도원 주인이 보낸 종을 심히 때려서 빈손으로 돌려보내고 맙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이 회개하기를 바라며 세차례나 반복하여 종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같습니다(20:11-12).

(6)  여섯째로, 어째서 포도원 농부들이 주인을 겁내지 아니하고 감히 주인이 보낸 종들을 심히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본문 첫머리에 나타나고 있는 두가지 용어입니다; ①하나는 타국입니다(20:9a). ②또 하나는 오래라고 하는 용어입니다(20:9b). 타국이란 전혀 다른 나라이며 먼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전혀 다른 세계로 떠나 버리신 주인입니다. 이 세상과는 다른 천국으로 떠나 버리신 하나님이시기에 다시 이 세상에 오시지는 않는다고 농부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너무 오래 그곳에 머물고 계십니다. 한번도 농부들에게 직접 찾아오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농부들은 주인이 다른 세상에 가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 무주공산(無主空山, 주인이 없는 빈 산)이 되어버린 이 세상은 자신들이 주인이 되어 차지하고서 대신 자신들의 뜻대로 경영을 할 수가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신론자들의 생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하는 신정국가의 백성들이 어느 사이에 수호신 사상과 무신론에 빠져서 우상문화적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7)  일곱째, 포도원 주인이 마지막으로 아들을 파견하고 있습니다(20:13). 그것이 농부들에게 주고 있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입니다. 자신들의 선민사상만 고집하지 말고 이방인까지 모두 사랑하고 구원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라는 선포이며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농부들인 유대교지도자들은 그 소리가 듣기 싫습니다. 이제 여호와를 섬기는 유대교가 자신들의 종교가 되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기가 싫은 것입니다. 따라서 포도원을 독차지하고자 그 상속자인 하나님의 아들까지 살해하고 맙니다(20:14-15). 그것이 장차 예루살렘에서 발생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처형입니다.

이상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자신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과 이유를 전부 비유로써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20:9-15). 그리고 선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배척하고 하나님의 아들마저 처형해버린 결과 천국복음은 이방인들에게 넘어 가고 그들을 구원하는 초석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20:17).

또한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아니하게 되면 그 돌에 맞아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20:18). 그러한 확실한 경고를 똑똑한 서기관들이 무시하고 있습니다(20:19a). 그래서 유대교의 최고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 현직 대제사장들과 힘을 합쳐서 예수 그리스도를 잡어서 처형해버리고자 합니다(20:19b). 그에 따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과 그에 따른 예루살렘과 유대 땅의 멸망은 점점 역사적인 사건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 구원이라고 하는 천국복음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20:18). 따라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이제는 누구나 자신들의 이기적인 사랑과 집단 이기적인 정의를 버리고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으로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그들 모두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복음의 일꾼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영생의 하나님나라를 건설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초석이 되고 계신다고 하는 것이 본문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또 하나의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20:17).

그러므로 아무쪼록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의미하고 있는 깊은 내용을 음미하시면서 풍성한 생명의 꼴을 얻으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