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길 목사 설교요지 및 음성설교 모음

참된 안식에 들어가는 믿음의 비결(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0. 12. 16. 14:50

참된 안식에 들어가는 믿음의 비결”(4: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설교일; 주후 2017 7 9(주일)

 

성경말씀;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1-13).

 

1.    서언;

(1)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저 안식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4:11a). 그것은 아직 우리 성도들이 누리고 있지를 못하고 있는 안식의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성도들은 사실 놀라운 영적인 축복을 벌써 누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스스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시고 그 귀한 피를 저희들에게 뿌려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눈물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의인으로 변하였으므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성령님으로 보내어 주셔서 내주 역사하게 하십니다. 이제 성도들은 성령님을 모시고 복음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안식의 복을 누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3)  그렇지만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참된 안식이 성도들에게 멀다고 하는 의미에서 저 안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4:11a).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그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고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의 비결을 얻는 것이 본문을 읽고 그 뜻을 묵상하는 목적입니다.

 

2.    성도들이 여전히 주님의 화평함과 거룩함의 본을 온전히 따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1)  성도들이 원수와 같은 인간들에 대하여 과연 예수님처럼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라고 중보의 기도를 하고 있을까요? 그들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스스로 산 제물이 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를 못합니다.

(2)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라고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데(12:1) 그러한 삶을 살고 있지를 못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러한 영적인 예배인생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에 대하여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져 있다”(4:11b)고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양은 그럴 듯하게 거룩한 백성인 것 같은데 실제적인 삶의 내용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있는 예수님의 형상이 나타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 결과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시험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의 평강과 안식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16:33).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그 믿음의 비결은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다시 하는 것입니다.

(3)  그 점에 대하여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님이 되셔서 성도들에게 어떠한 일을 행하시고 계시는지도 인식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과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떠한 능력의 소유자이신지를 다시 똑똑하게 인식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성도의 인식이 새롭게 변화할 때에 비로서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종으로 살아갈 수가 있게 되며(1:1) 참된 안식의 복을 누릴 수가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8:31-39).

 

3.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성도들은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 복음사역을 마치시고 지금은 부활 승천하여 천국에 들어가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고 하는 인식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요한의 증거와 같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1-14. 4:12a).

(2)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하여 사람의 아들로 살아 보셨기에 인간에 대하여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날카로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활력 곧 생명력으로 역사하십니다(4:12b);

1)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마치 날카로운 수술용 메스’(mes, a surgeon’s knife)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 메스로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분해하시고 필요한 수술까지 하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 하나씩 살펴봅니다;

2)    첫째, 성도의 혼()을 먼저 진단하십니다. 성도의 지식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용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필요가 없는 세상의 잡동사니로 꽉 차 있는지를 살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기도로 동의만 한다면 그것들을 복음사역에 필요한 지식과 지성으로 채우시고 필요가 없는 세상적인 욕심에 물든 지식과 지성은 수술을 하실 것입니다.

3)    둘째, 성도의 예술적인 탁월성이나 감정의 흐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 성도의 예술성과 감성이 발휘될 수가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성도들의 마음의 문을 주님께서 지금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며 피조물을 살리는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결심을 하고서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4)    셋째, 성도의 의지가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불타고 있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부탁하여 자신의 자유의지의 발휘마저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일대 수술을 행하실 것입니다.

5)    넷째, 성도의 영성이 창조주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테나의 기능을 잘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훼손이 되어 있으면 영적인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러므로 인자의 영성으로 영적인 삶을 살아본 경험이 있으신 주님에게 부탁을 드려야만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음성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안테나가 될 수 있도록 주파수 조절을 잘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신앙적인 양심이 살아나며 말씀에 대한 통찰력이 생길 것입니다.

6)    다섯째, 주님께서 성도들의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신다는 대목이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왜냐하면, 뼈와 살로 구성이 되어 있는 인간의 몸체 가운데 살보다는 뼈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2:21).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하여 살을 많이 빼거나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뼈에 대해서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살이라고 하는 것은 흙과 같은 것이지만 뼈는 흙으로 먼저 필요한 모양을 만들고 그것을 오래 불에서 구워 낸 도자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은 목숨이 사라지면 빨리 흙으로 돌아가지만 도자기와 같은 뼈는 수천년을 견디기도 하는 것입니다.

7)    그와 같이 단단한 뼈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절과 골수가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관절은 마치 자동차의 베어링(bearing)과 같습니다. 그 베어링에 윤활유와 같은 것이 골수에서 공급이 되면 기계적인 작동이 가능해집니다. 그리고 골수에는 두가지가 더 들어 있습니다; ①하나는 백혈구나 적혈구와 같은 자연 항생제입니다. 그것이 병원균을 죽이며 몸을 살리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중요한 신경계가 골수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신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8)    그러한 것들은 모두 자율신경에 속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의지가 미치지 못하고 있는 그 내밀한 부분에 대하여 주님께서 진단하시고 필요한 모든 수술을 하시며 유지보수작업을 해주십니다. 그 덕분에 건강한 육체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입니다. 그와 같은 주님의 보호하심과 역사하심을 철저하게 인식하게 되면 성도들은 다시금 주님을 나의 주인님이라고 고백하면서 그 종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성령님의 능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칭의의 은혜를 받게 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성령님으로 임재시켜 주십니다. 따라서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그 심령 속에 그리고 속사람 속에 내주하여 역사하십니다. 성도의 심령 속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마음속의 생각을 읽고 계십니다(4:12c). 성도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먼저 간파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성도의 속사람 속에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에 내심 은밀하게 감추고 있는 뜻까지 판단을 하십니다(4:12d). 따라서 성도들이 성령님을 속이고 가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5.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전능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천지와 만물 그리고 사람까지 모두 창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창조의 행위를 계속하십니다.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그 생명을 살리시며 필요한 창조를 계속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조세계를 돌보고 그 생명을 살리는데 있어서 사람들을 청지기로 사용하십니다(1:26-27);

(1)   특히 사랑하는 성도들을 종으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점검하시고 때가 되면 중간결산을 하십니다(4:13b).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21:33-46, 12:1-12, 20:9-18)달란트의 비유”(25:14-30, 또는 므나의 비유19:11-27) 등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주 그러한 사실을 잊어버리고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2)   더구나 사람들을 속일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눈도 피할 수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원죄의 유전에 해당이 됩니다. 왜냐하면, 아담부부의 장남인 가인이 그와 같이 생각하고서 완전범죄를 도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8-9). 그는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살해합니다. 아무도 보지 아니하는 들판으로 불러내어 암살을 하고 그 시신을 땅에 묻어 버린 것입니다.

(3)   그러나 그의 범죄는 백일하에 드러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땅에 떨어진 동생 아벨의 무죄한 피가 자신의 억울함을 창조주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10). 그리고 그 피를 받아 마시게 된 땅도 견딜 수가 없어서 창조주 여호와에게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4:11). 따라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4:13a).

 

6.    결론; 이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함으로써 저 안식의 복을 누려야 할 때입니다;

(1)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어떻게 투시가 되고 감찰이 되고 있으며 그 인생의 결과에 의하여 어떠한 결산을 해야만 하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라고 하여 함부로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성도들은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고 하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만 합니다.

(2)  그러므로 시간을 정하여 전적으로 말씀의 묵상과 기도 가운데 자신의 주인이신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들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예수님처럼 세상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모두 고쳐 달라고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성도에 대한 수술이 가능해지고 환경의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믿음생활로 참된 안식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