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죄와 빚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마18:21-35)
작성자; 손진길 목사(두란노순복음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9년 5월 5일 주일
오늘은 주후 2019년 5월 5일 어린이 주일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께서 어린이와 같은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를 본문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 제목이 “죄와 빚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죄와 빚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쉽게 설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비록 저희들이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죄’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알기 쉽게 그것을 두가지로 설명하십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죄’라고 말하는 그것은 누구나 7번이 아니라 7X70곧 490번이라도 용서를 해주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마18:21-22). 그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그 이상의 ‘죄의 용서’를 이미 받았기 때문입니다(마18:23-27).
또 하나는, 위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기에 다시 예화를 들어서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의 이야기입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사실 첫 구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18:23)라는 대목입니다.
그 대목을 잘 살펴보면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의 이야기’가 다음과 같은 의미의 비유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죄’라고 하는 것은 천국의 임금이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과 그 종들 사이에 결산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마18:21-23). 그러므로 그것은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다룰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입니다.
사람들은 고작해야 ‘빚’의 문제를 다룰 수가 있지 ‘죄’의 문제를 다룰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스스로 제물이 되시는 속죄의 제사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요3:16-18, 롬7:17-8:2).
결국 ‘죄의 청산’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아들의 희생을 통하여 처리하지 아니하면 안되는 정도로 무거운 것입니다. 그것을 인간들이 다른 방법으로 청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교만이며 가벼운 말씀입니다(행4:12).
둘째로,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 대한 탕감의 이야기”입니다(마18:27-35).
그 요지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제사를 통하여 일만 달란트나 되는 자신의 그 무거운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셨기에 그 사실을 알고서 성도는 남은 인생을 대인관계에 있어서 ‘빚의 탕감’ 정도의 은혜를 베풀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형제들 사이에서도 서로 용서하지를 아니하게 되면 그것은 ‘그 60만배나 되는 무거운 죄’를 용서받은 자의 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1달란트는 1사람이 평생 노동을 하여 벌 수가 있는 품삯인데 그것을 평균 생존연령이 40세인 고대사회에서는 20세 어른이 되어 40세까지 20년 동안 노동한 일수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비가 적게 오는 이스라엘 지역이므로 일년 365일 가운데 평균 300일은 농장에서 일을 할 수가 있다고 보면 300X20은 6천이 됩니다. 그것에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이라고 하는 ‘일만’과 ‘백’ 곧 100배의 차이가 또 있습니다. 따라서 ‘일만 달란트’는 ‘백 데나리온’의 6,000X100배입니다. 그것이 전체적으로 ‘60만배의 차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평생 자신이 번 그 큰 돈을 빌려 가서 갚지 아니하고 있는 이웃을 만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갚지 아니하고 있다고 한다면 응당 법에 호소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 ‘마18:29’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진실로 갚을 능력이 없으므로 기다려 달라고 진심으로 요청하고 있다면 그때에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그때에는 법에 호소하여 옥에 가두지를 말고 빚을 탕감하는 심정으로 기다려 주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자기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의 빚을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롬13:8). 일만 번의 생애를 살면서 여호와의 종으로 일하여 갚아야만 하는 그 엄청난 죄를 모두 용서하여 주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단지 한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게 되면 모두 탕감하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100데나리온 정도 빚진 자가 진심으로 기다려 달라고 간청을 할 때 어찌 그것을 거절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빚을 모두 탕감하는 심정으로 허락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독생자를 희생하여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막12:30-31).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통하여 성도들이 지고 있는 그 사랑의 빚을 대인관계에 있어서 60만분의 1정도도 갚지 아니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다음과 같습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2-35).
할렐루야! 아무쪼록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그 무한한 주님의 사랑의 빚을 60만분의 일이라도 매일 갚아 가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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