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용18(손진길 소설)
2032년 12월에 접어들자 장주옥 여사가 남편 하영웅 차관보에게 미리 말한다; “여보, 다음주 토요일 11일 저녁에는 제가 대학 우리 같은 과 동창들과 송년모임을 가지도록 되어 있어요. 한 3시간 정도 걸릴 거예요. 그렇게 알고 계세요!... “;
그 말을 듣자 하영웅이 아내에게 물어본다; “대학교 같은 과 동창들이라고 하면 경제학과 친구들이겠군요. 모두들 50대가 되었으니 할 이야기들이 많겠어요. 그래, 과동기들만 모이는 거예요?... “.
우연히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더니 장주옥이 착실하게 대답한다; “아니에요. 이번에는 은사님 한 분을 모신다고 들었어요. 아마 당신도 알고 계실 거예요. 연세가 많아 비록 교수직에서 은퇴하셨지만 여전히 화폐경제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주현중 박사님이세요!”.
그 말을 듣자 하영웅이 관심이 있어서 아내에게 한마디를 한다; “주현중 박사님은 요즈음 동아경제공동체에서 경제고문으로 일하고 계시는 것으로 내가 알고 있어요. 그러니 송년회에서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겠군요. 다음 주말에 잘 다녀오시구려. 나는 마침 그날 저녁에 개인적으로 서울에서 박소장을 좀 만나도록 되어 있어요… “.
장주옥은 이미 남편에게 언급한 그대로 12월 11일 토요일 저녁에 대학 과동기들과 송년모임을 가지고 있다. 그 자리에는 대학시절 은사였던 경제학박사 주현중이 참석하고 있다. 자연히 주박사님의 한말씀을 듣는 시간이 주어지고 있다;
70세가 가까워지고 있는 주현중 박사는 나이든 제자들이 송년모임에 특별히 초청해주고 있으니 그것이 매우 기꺼운 모양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인사를 한다; “정말 고마워요, 여러 제자님들. 이제 함께 늙어가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덕분에 나는 교수로서 정년에 은퇴하고 지금은 동아경제공동체에서 나름대로 일을 하고 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
그날 송년모임에는 한국의 학계 뿐만 아니라 금융계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는 동기들도 많이 참석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한국은행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동문 심학수가 은사이신 주현중 박사에게 개인적으로 한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교수님, 요즈음 혹시 공동체에서 새로운 통화를 만드는 일을 연구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이제 우리 동아경제공동체도 그 옛날 유럽공동체처럼 회원국 사이에 서로 통용할 수 있는 새로운 통화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 같은데요!... “.
그 말에 주현중 박사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허허허, 자네가 그렇게 보고 있으니 우리 경제공동체에서도 그 점에 대하여 검토를 하고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 문제는 달러의 사용을 계속 원하고 있는 패권국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인지라 아주 조심스럽게 검토를 해야 할 문제이지요, 허허허… “.
그날은 송년회 모임이므로 그 정도에서 이야기가 끝나고 만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은사님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장주옥 여사는 그 자초지종을 집에 돌아와서 남편 하영웅 차관보에게 알려준다.
그러자 뜻밖에도 하영웅이 장주옥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래요, 그 문제는 참으로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하지요. 내가 오늘 친구 박일도를 만나서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 동아경제공동체로 보면, 새로운 통화가 필요한데 그것은 역시 패권국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위험성이 있다고 말입니다!... “;
가정주부인 장주옥으로서는 하영웅이나 주현중 박사만큼 그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에 그 정도에서 이야기가 끝나고 있다. 하지만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여전히 한국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정보책임자 기노네스는 그것이 아니다.
그는 2032년을 마무리하는 종합보고서를 미국 중앙정보국에 올리면서 그 가운데 동아경제공동체 이엑(EAEC)이 공동체 내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할 새로운 통화를 만드는 문제를 은밀하게 논의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서울의 기노네스 뿐만이 아니다. 동경에서는 일본과장인 토빈 역시 동일한 내용의 보고를 상부에 올리고 있다.
동시에 그러한 내용의 보고서가 올라오자 미국 정보국장이 연방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하고 있다; “그대로 두고 보실 일이 아닙니다. 지난 20세기 말에 유럽공동체에서 유로화를 만들어 통용하게 되자 우리 미국의 달러화가 시장을 크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
중앙정보국장의 결론이 강경하다; “이번에 이엑에서 자체 통화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 그때는 우리 미국의 달러화가 세계통화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대통령님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국가원수들을 만나 강력하게 경고해야 합니다. 독자적인 공동체의 통화를 발행할 경우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말입니다!”.
이듬해 2033년이 되자 미국대통령이 동북아 순방에 나선다. 백악관의 발표에 따르면 새해가 되었기에 미국대통령이 태평양국가로서 대양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의 원수들을 차례로 만나 지역이익을 크게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대통령을 만나고 있는 동북아 3국의 원수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그들이 미리 영상회의를 하면서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고 있다; “미국대통령은 두가지를 요청할 것으로 본다. 하나는, 우리 공동체에서 자체통화를 발행하는 것을 만류할 것이다. 또 하나는, 태평양국가 운운하면서 우리 공동체에 가입하겠다고 말할 것이다. 우리 3국은 앞으로 신중하게 고려해보겠다고만 대답하면 된다!”.
미국대통령이 일본에 이어 한국과 중국합중국을 차례로 방문하여 국가원수들과 회담을 한다. 그렇지만 그가 얻고 있는 한결 같은 답변은 전부 고려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어떻게 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인지 그 점이 아리송하다. 그것은 긍정적인 답변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것이다.
그 점을 일본의 정치지도자들과 오래 지내본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벌써 알고 있다. 일본인들이 말하고 있는 ‘고려하겠다’(かんがえます)는 답변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부정적인 것을 그렇게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미국과 동아경제공동체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어가고 있는 도중에 돌연 아세안 10개국이 2033년 5월에 동시에 이엑에 들어가겠다고 가입절차를 밟고 있다. ‘어째서 미국의 강력한 영향 하에 놓여 있는 그들 아세안 국가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국의 조야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지만 서울과 동경에서 동시에 올라온 기노네스와 토빈의 보고서를 읽어보고 있는 미국의 중앙정보국장은 그 속사정을 넉넉하게 짐작하고 있다; ‘그것은 금방 이루어진 결정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
그가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동안 끈질긴 한국수뇌부와 일본수뇌부의 설득에 의하여 아세안 국가들이 작년에 이미 그러한 결정을 하고 있었다. 다만 결정적인 가입시기를 이번에 잡은 것이다. 그것은 미국대통령에게 모종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 이제는 명실상부하게 이엑은 거대한 공동체가 되고 만 것이다. 참여국의 숫자가 보통이 아니다. 중국합중국의 자치정부 14개국, 러시아연방의 자치정부 6개국, 한반도연방의 자치정부 2개국, 일본이 연방조직으로 개편하면서 만든 자치정부 3개국, 아세안의 10개국 등 도합 35개의 국가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자 이엑에서는 다음과 같은 발표를 2033년 10월에 하고 있다; “우리 동아경제공동체에서는 앞으로 새로운 통화 ‘칸’(Khan)을 발행하여 그것으로 공동체 내에서의 여행과 무역에 사용하고자 합니다. 단지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의 결제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 점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발표이지만 그 여파는 그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제 세계는 유로화로 결제하고 있는 유럽공동체, 칸화로 결제하게 되는 동아경제공동체, 그리고 미국의 달러화로 결제하고 있는 기타 국가들로 3대별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의 준비은행이 달러를 발행하더라도 그것을 사가는 수요가 엄청 줄어들고 있다.
세계 제2차대전 이후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되면서 세계인들의 여행과 무역에 있어서 유일한 결재수단이 되어 왔다. 그러므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은행들이 미국의 달러를 사들여서 수수료를 많이 받고 수요자들에게 팔았다. 그에 따라 미국은 달러를 많이 발행하여 전세계에 풀면서 자신들의 경제적인 이익을 보전한 것이다.
그것이 전세계에 미군을 주둔하여 패권을 유지하면서 얻게 되는 가장 큰 경제적인 국가이익인데 이제는 그것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유로화가 동아시아에서는 칸화가 달러화 대신 사용되고 있으니 그만큼 미국의 달러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을 보고서 미국에서는 모종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동아경제공동체 이엑(EAEC)에서는 어떻게 그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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