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82강(히13:14-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8. 01:25

히브리서 강해 제82(13:14-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18()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고 영생의 도성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히브리서 저자의 권면에 대하여(13:14-16);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정확하게 기독교가 유대교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차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영구한 도성에 관한 견해의 차이입니다(13:14). 유대교인들은 그들 선민의 시온 성 예루살렘이 다시 영구한 도성이 될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선민의 예루살렘이 붕괴가 되고  만민구원의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다고 믿고 있습니다(21:1-2);

1)    선민 유대인들은 다윗의 후손이 메시아로 오셔서 외세를 물리치시고 선민의 영광을 재현하시게 되면 시온 성 예루살렘이 다시 이스라엘 제국의 도성이 되며 영구한 도성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일을 실현해 줄 메시아를 그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선민의 시온의 영광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    선민 유대인들이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믿었던 선지자 예수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는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왕가를 물리칠 의사가 조금도 없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사랑하고 구원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세상만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28:18-20). 그러한 나라의 도성이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이며 영원한 도성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65:17-20, 66:20-21, 21:23-27).

(2)  둘째, ‘속죄의 제사에 관한 견해의 차이입니다(13:15). 선민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른 성전의 제사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의 희생의 제사를 믿고 있습니다;

1)    선민 유대인들은 율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속죄의 제물로 가축을 잡아서 번제로 바치고 있습니다. 특히 매년 대 속죄일이 되면 모든 백성들의 일년 동안의 죄를 한꺼번에 용서받기 위하여 제물의 피를 가지고 대제사장이 지성소까지 들어갑니다(16:14-15, 29). 속죄소에 피를 뿌리고 그 속에서 울려 나오는 하나님의 사면령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음성을 듣고서 성막의 뜰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선포를 합니다. 그렇게 율법에 따라 대 속죄일의 제사와 대제사장의 사역이 있기에 유대교인들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죄 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민족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2)    히브리서의 저자는 선민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른 성전의 제사가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8:6-7). 가축을 제물로 삼고 있으며 사람인 대제사장의 드리고 있는 속죄의 제사이므로 그 효력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7:28, 8:7, 9:12-14).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서 태어나셔서 그 몸으로 드리시는 대속의 십자가의 희생만이 모든 사람들의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7:24-28). 히브리서 저자의 주장이 옳다는 것은 두가지 사실로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①첫째,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성전이 붕괴가 되고 맙니다(19:41-44). ②둘째,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3일만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역사로 무덤에서 부활하십니다(23:33-46, 24:1-12). 그것은 에수님의 천국복음 곧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에 대한 견해의 차이입니다(13:16);

1)    선민 유대인들은 오직 선민들만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다윗 대왕처럼 주변의 이방나라를 군사력으로 정복하고 그들의 조공을 받으며 이방인들을 종으로 삼는 것이 선민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재현하여 줄 메시아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선민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메시아는 그들에게는 플러스이지만 이방인들에게는 마이너스입니다. 선민들의 영광을 위하여 이방인들을 희생시키는 그러한 역사의 섭리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원하시지를 않습니다(19:22-25).

2)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논쟁을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3:4). 당연히 생명을 살리는 선한 일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2:28, 3:5). 그에 따라 성도들의 복음사역도 영과 육이 병든 자를 고쳐서 만민구원의 일꾼으로 파송하는 것입니다(28:19-20). 그렇게 생명을 살리고 위기에 처한 자를 돌보고 구해주는 것이 성도들의 사명입니다(10:33-37).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성도가 희생하고 봉사할 때에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12:1-2).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13:14);

(1)  여기서 우리가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자신을 포함하여 교회의 성도들은 이 땅의 도성이 영원하다는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13:14a). 그와 같은 생각은 선민 유대인들의 관념과는 다른 것입니다;

1)    유대교인들은 선민들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영원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솔로몬 대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서 여호와 하나님께 봉헌하였을 때에 주신 예언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과 왕국 건축하기를 마치매 자기가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을 마친 때에 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과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령한 대로 온갖 일에 순종하여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네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왕상9:1-5).  

2)    그러나 그와 같은 선민 유대인들의 신앙은 그 예언의 말씀을 절반만 믿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씀에 이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의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이 성전이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마다 놀라며 비웃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대답하기를, 그들이 그들의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왕상9:6-9).

(2)  선민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바라고 있는 소원을 이루어주지를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선보여주고 계시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여 외세인 로마제국이나 헤롯왕가를 물리칠 생각을 전혀 하시지를 않습니다. 도리어 선민들의 유대교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선민만 구원을 받고자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고서 이방인들에게 전해주지를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12:39-42).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선민만이 아니고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였을 때에(24:14)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나라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성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13:14b, 22:20).

둘째로,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3:15); 교회에는 유대교의 율법에서 정하고 있는 바에 따라서 시행이 되고 있는 성전의 제사가 없습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1)  유대교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의 제사와 화목제 그리고 각종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주로 가축을 제물로 사용하고 있지만 곡식과 기름종류도 소제와 전제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매년 대 속죄일에 드리는 대제사장의 속죄의 제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날에는 가축인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까지 들어갑니다. 그 피를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리고서 대제사장은 여호와의 대 사면령이 속죄소에서 울려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마침내 그 음성을 듣게 되면 성전의 뜰에서 기다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드디어 지난 일년 동안 백성들이 지은 모든 죄가 여호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 한해동안 의인으로 살아가면서 구원의 은혜를 바라볼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2)  그런데 히브리서의 저자는 율법에 따른 선민들의 제사가 영원한 속죄의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벌써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7:27-28, 8:6-7, 9:11-15). 가축을 사용하는 피의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셔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을 때에 비로소 영원한 죄 사함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은혜가 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이제는 누구나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의 피를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를 해야만 합니다. 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는 율법에 따른 성전의 제사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는 찬송과 예배가 있을 따름입니다.

(3)  의인으로 여김을 받게 된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성령님으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며 함께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십니다. 그 결과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도들이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1:8). 그와 같은 의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13:15)고 적고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그 제자들인 성도들이 만민구원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며 이방인들의 영생구원을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서 살아갈 때에 그것이 율법에 따른 속죄의 제사보다 더욱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송의 제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성도들의 복음전파와 양육의 열매는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예물이라고 하겠습니다. .

셋째로,오직 선을 행함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13:16);

(1)  선민 유대인들이 율법선생인 바리새인들에게서 결례의 율법과 식사 예법 그리고 안식일 규례 등을 배워서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열심입니다. 할례 및 성전제사와 더불어 그러한 생활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의인이 되고 구원을 얻는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달리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보기에 깨끗하게 보이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원하시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차별하지 말고 골고루 사랑하며 진심으로 돌보아주라는 것입니다(12:30-31).

(3)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돌보고 사랑하듯이 그렇게 이웃을 돌보고 그 생명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어떠한 율법이냐 규정도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원하시고 계시는 생명사랑과 공의의 정신을 훼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가장 귀한 제사는 모든 생명을 돌보고 살리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는 헌신이라고 하겠습니다(13:16).

결론적으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고 영생의 도성으로 들어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선민들의 유대교와 예수님의 기독교가 무엇인 다른가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1)  첫째, 선민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이 다시 건설이 될 것이며 그들의 예루살렘성이 영원한 성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반면에 기독교인들은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하고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장차 이 세상에 강림하는 하나님나라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성에 들어가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2)  둘째, 선민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이 드리는 대 속죄일의 제사로 말미암아 매년 자신들의 죄를 탕감 받을 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죄 사함의 장치가 이방인들에게는 없으므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 언덕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제물로 사용하신 그 제사가 영원한 죄 사함을 얻을 수 있는 관건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선민 이방인 차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셋째, 선민 유대인들은 할례와 성전에서의 제례의식, 절기와 안식일, 기타 생활율법을 잘 지키면 의인이 되고 구원을 받는 줄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거듭난 때부터 주님을 모시고 지상명령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천국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여 파송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요컨대,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사랑으로 돌보며 그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제사나 율법보다 더욱 귀한 것입니다. 아무쪼록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