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81강(히13:10-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8. 01:23

히브리서 강해 제81(13:10-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17()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기 위하여 이방 땅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일생을 살아가라고 하는 히브리서 저자의 깊이 있는 주장에 대하여(13:10-13);

 

히브리서 저자는 본문에서 그의 해박한 히브리정경에 대한 지식과 선민 유대인들의 제례의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는 그 지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와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그 이치와 의미를 깨닫고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아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이 무엇인지 다음과 같이 살펴봅니다;

(1)  첫째,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장소는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입니다. 대제사장은 대 속죄일에 단 하루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속죄소 위와 앞에 뿌리게 됩니다(16:14-15, 29-34). 대제사장은 여러 제사장들과 함께 그 일을 위하여 일년동안 번제단에서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와 화해의 제사를 드리고 식사도 제물의 고기를 삶아 성소가 아니라 성막의 뜰에 있는 회막문에서 먹고 있는 것입니다(29:31-33).

(2)  둘째,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늘 성전의 모형인 지상의 성전에서 드려지는 속죄의 제사와 관련하여 제물의 피를 뿌리는 장소 그리고 제사장들이 어디에서 제물의 고기를 삶아서 먹고 있는가 하는 점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장소와 그 피와 살의 의미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성도들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1)    첫째, 번제단이 성소 안이 아니라 바깥에 있듯이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장소도 하늘의 성소나 이 땅에 있는 성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1.5km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골고다 언덕입니다.

2)    둘째, 속죄의 제물로 사용이 된 가축은 세가지의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①첫째, 그 피는 성소로 들여보냅니다(13:11a). ②둘째, 살코기는 제사장들이 성소나 번제단이 아니라 회막문에서 먹습니다(13:10). ③셋째, 기타 부위는 전부 성전 바깥에서 불사르고 있습니다(13:11b).

3)    셋째, 위의 세가지 장소를 가지고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과 희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만민을 구원하고자 자신을 불태운 희생과 헌신의 장소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올 수가 없는 죄인들과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성문 밖입니다(13:12b). ②둘째, 그리스도가 회개하는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뿌려준 그 대속의 피는 성도들에게 뿌려져서 하늘의 성소에 들어갈 수 있게 합니다(13:12a). ③셋째, 그 은혜를 알게 된 성도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온세상으로 나아가 만민을 구원하는 일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13:1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13:10);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13:10a); 여기서 우리는 선민 유대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전 내에 번제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자신도 포함하여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으므로 그 역시 선민 유대인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2)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13:10b);

1)    번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冒頭, 글의 머리 부분)에서 설명을 드린 바와 같이 그들은 제물의 살코기를 회막문에서 삶아서 먹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29:31-32).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소 안이 아니라 성막의 뜰에서 먹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의 성소에 올라가서 먹고 마실 수 있는 권한이 히브리정경에 등장하고 있는 율법에 의한 제례의식과 그 속죄의 제사를 집전하고 있는 제사장들에게는 부여가 되고 있지를 않다고 하는 의미를 여기서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2)    또 하나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여기서 성막에서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막과 장막은 다른 것입니다; 성막은 제사장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반면에 장막은 백성들이 사용하고 있는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번제단에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며 회막문에서 그 살코기를 먹을 수가 있지만 일반백성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장막에서 식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율법에서 제사장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섬기며 당연히 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하지 못한 일반백성들은 자신들의 장막에서 혈통적인 제사장 계급이 아니므로 소외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둘째로,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13:11); 히브리서의 저자는 누가 속죄의 제물의 피와 살을 먹고 마시며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의 성소 그 잔치자리에 참여할 수가 있는가? 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말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은 주안점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장막에 거하고 있는 일반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려지는 속죄의 제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러하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속죄의 제물을 끌어 다가 바치는 것 외에는 별도로 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2)  둘째, 매년 태양력으로 10 10일이 되면 대제사장이 모든 백성들이 지은 일년 동안의 죄를 여호와 하나님께 속죄하기 위하여 대 속죄일의 제사를 드립니다(16:29-30). 그날에는 대제사장만이 속죄의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까지 들어갑니다(13:11a). 그 피를 속죄소의 위와 앞에 뿌립니다(16:14-15). 대제사장 외에는 그 누구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반백성들이 그 피를 자신들에게 뿌리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3)  셋째, 제물의 살코기를 삶아서 제사장들이 회막문에서 먹습니다. 그리고 일반백성들이 그 제물을 먹을 수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살고 있는 진영의 영문 밖에서 모두 불살라버립니다(13:11b, 16:27). 그에 따라 그 제물의 살과 일반백성들과는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13:12-13);

(1)  히브리서의 저자는 율법에 따라 매년 대 속죄일에 모든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제사가 대제사장에 의하여 성전에서 드려지고는 있지만 그 제물의 피가 장막에 거하고 있는 백성들의 마음에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벌써 제9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9:13-14). 또한 그 제물의 살을 제사장들이 먹고는 있지만 그것은 식용에 불과한 것입니다(29:31-32). 자신들의 죄 때문에 가축이 대신 희생이 되었으므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되겠다고 그들이 그 고기를 씹으면서 결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백성들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속죄의 제물을 먹으면서 자기 대신 죽임을 당한 그 제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애초부터 백성들에게는 없다는 것입니다.

(2)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러한 점을 시정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조금 풀이를 더 해봅니다;

1)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가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전파하십니다. 그리고 그 복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치유의 사역과 오병이어의 기적 등으로 보여 주십니다.

2)    나아가서 모든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마치 제물인 가축처럼 자신이 속죄의 제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8:31, 9:31, 10:33). 그 대속의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고 백성들이 살고 있는 장소도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쪽으로 1.5km나 떨어져 있는 공동묘지의 위쪽인 소위 골고다’(해골, 27:33) 언덕입니다.

3)    그 점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12)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백성들을 찾아가서 천국복음을 전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다가 마침내 성문 밖에서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뜻을 계승하고 있는 제자들의 삶도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13:13).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백성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천국복음으로 전파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하여 복음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제자들을 양육하십니다.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끝은 골고다 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나 자신을 대신하여 흘리신 그 피를 생각하고 그 죽음의 의미를 깨닫는 성도들은 이제 자신만을 위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더 이상 율법에 따른 대제사장처럼 제물의 피를 속죄소에 뿌리고 제물의 고기를 회막문에서 식용으로 먹는 일만을 할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그 대속의 피를 자신의 마음과 양심에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대속의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의 육신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고난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희생의 살을 씹듯이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성도들이 그러한 마음가짐과 결단으로 세상 끝까지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처럼 살아갈 때에 장차 부활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 천국의 성소에서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영생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22:28-30).

그러므로 아무쪼록 지상명령을 실천하시고 천국의 잔치자리에서 함께 만나는 은혜가 성도님들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