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79강(히13:4-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7. 08:50

히브리서 강해 제79(13:4-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15()

 

성도들의 결혼관과 재물관에 대하여(13:4-6);

 

히브리정경에 정통하고 있는 히브리서의 저자는 성도들이 어떠한 결혼관과 재물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의 결혼생활과 재물에 대한 관념이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 점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1)  첫째, 혼인은 사람에게 귀한 것이며 부부의 침소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3:4a). 흔히 순결교육이 잘못된 경우에 아예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제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아담과 하와의 사랑의 고백과 결혼제도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허락하신 귀중한 결혼생활입니다.

(2)  둘째,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아니하는 것이 사회 윤리적으로 중요합니다(13:4a). 창세기 제6장을 보면, 노아 시대 홍수심판의 원인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하나님신앙을 대물림하고 있는 집안의 아들들마저 일부일처의 아름다운 부부생활을 떠나서 제멋대로 세상적인 권력과 부를 행사하여 마음에 드는 모든 여자를 그 아름다운 외모만을 보고서 마구 아내로 삼고 있습니다(6:2-5). 따라서 돈과 권력이 없는 남자와 외모가 아름답지 아니한 여자는 아예 결혼도 할 수가 없는 무서운 사회가 되고 맙니다. 그것이 패악한 사회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3)  셋째, 성도들은 특히 순결한 결혼생활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음행과 간음이 하나님과의 순결한 믿음생활을 타락시키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13:4b).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음란한 신앙생활을 선지자들을 보내어 계속 경고하시며 끝내는 그 잘못을 심판하십니다(13:4c).

(4)  넷째, 돈을 사랑하고 그것을 섬기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생활에서 실족하게 됩니다(13:5).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 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재물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 대신에 재물을 섬기게 되면 영적으로 불안합니다. 따라서 자꾸만 돈을 사랑하며 더 많이 가짐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불안감을 떨쳐버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평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한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그 사실을 벌써 말씀해 주시기 때문입니다(12:19-21)

(5)  다섯째,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물질적으로도 만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13:5a).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떠나지 아니하시고 항상 함께하신다는 확신 가운데 담대하게 세상과 맞서며 믿음생활에서 승리를 할 수가 있습니다(13:6).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모든 사람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13:4);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모든 사람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13:4a); 성도들에게만 히브리서의 저자가 권면하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는 성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결혼을 귀하게 여기고 부부생활을 깨끗한 것으로 유지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첫째, 어떤 사본에서는 사람에게 혼인은 귀하니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혼인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거나 부부관계를 단지 인간의 더러운 욕정을 사회적으로 합법화하는 방법이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잘못 생각하지를 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2)    히브리서의 저자가 자신 있게 혼인은 귀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창세기 제2장의 기록입니다; “인류최초의 하나님신앙인으로 그 실명(實名)이 수록되고 있는 아담은 비록 에덴동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2:7-9, 18). 그 빈 공간을 채워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애완동물을 만들어 줍니다(2:19). 하지만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다정하게 생활하지만 아담은 여전히 자신은 혼자라고 하는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합니다(2:20). 그 이유는 아담이야 말로 흙으로 만든 육신에 하나님께서 영적인 호흡을 불어넣어준 독특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2:7). 애완동물들은 영육합일체가 아니므로 아담과는 다른 존재인 것입니다”.

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닮은 배필을 만들어 주고자 결심하십니다. 그 방법이 아담의 뼈를 하나 취하여 살을 붙이고 생기를 불어넣어 여자인 하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2:21-22). 그녀를 아내로 삼도록 아담에게 손수 데려다 주십니다. 아담이 크게 만족해 합니다. 그는 하와에게 사랑고백을 하면서 평생을 하와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합니다(2:23-25). 그녀를 아내로 삼아 기쁘게 가정생활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비록 도중에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을 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아담부부의 사랑과 가정생활은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습니다(3:1-7, 4:1). 하나님을 모시고 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혼인제도를 귀하게 여기고 부부생활을 깨끗하게 보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4)    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혼인제도를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고 부부생활을 제멋대로 정욕적으로 영위하고 있는 자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모든 사람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13:4a)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결혼제도와 부부생활을 더럽힌 자들이 창세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대의 용사들이며 권력자들입니다(6:4). 그들은 자신들의 용력과 권세를 사용하여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여자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6:1-2). 일부다처제의 폐단이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남의 아내까지 권력으로 빼앗고 있습니다 무죄한 자의 피와 억울함이 땅에 충만합니다(6:11-13). 그 결과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찾아오게 되고 맙니다(6:3-8).

(2)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13:4b); ‘음행간음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1)    음행’(淫行)은 음란한 행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욕정이 지나쳐서 육신적인 삶을 탐닉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지 못하고 세상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세속적인 타락입니다. 나아가서는 세상적인 음란한 쾌락을 허용해주고 있는 우상문화를 선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결혼제도와 부부생활의 소중함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혼인과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떠나서 육체적인 통간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좋은 사례가 야곱의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장남인 약관의 르우벤이 서모 빌하와 정치적인 야합을 하다가 마침내 통간사건까지 자행하고 말기 때문입니다(35:22).

3)    그러한 간음이 종교적으로나 법적으로 허용이 되게 되면 음란한 세상이 나타나고 드디어 우상문화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고 맙니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쾌락과 즐거움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하신 의도로 마련하신 결혼제도와 가정생활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치 노아처럼 비웃음거리가 되며 조롱거리가 되고 피해를 입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러한 폐해를 묵과하지 아니하십니다. 노아 시대처럼 다시 역사적인 심판이 도래하게 되는 것입니다(13:4b, 19:4-8, 24-25).

둘째로,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돈을 사랑하지 말고”(13:5a);

1)    돈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그것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러하지를 못하고 세상적으로 돈을 더 사랑하고 그것을 하나님 대신 섬기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세상살이를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돈이 더 필요한 것이라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따라서 하나님께서 실천하라고 하는 희생과 헌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조차 자신이 가진 아까운 돈과 재물을 고아와 과부를 구제하고 기업이 없는 레위인을 돕고 이방 나그네를 대접하는데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에도 바쁜 삶인데 어떻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는 일에 자신의 인생을 사용할 것인가? 하고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이 잘못된 것이기에 히브리서는 저자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13:5a)라고 적고 있는 것입니다.

(2)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13:5b);

1)    그렇다고 하여 돈을 미워하거나 재물을 벌어서 생활을 영위하지 말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문제는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는 그러한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의 비극을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의 비유로 알기 쉽게 말씀하십니다(12:16-21).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2)    성도들의 올바른 재물관(財物觀, 재물에 대한 관념)을 다음과 같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13:5b); 하나님이 허락하신 분복에 만족할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많든지 적든지 그 수입에 맞추어서 소비를 하면 됩니다. 더 많이 소비하고 싶어서 수입을 늘리고자 아까운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 그리고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명을 완수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는데 너무 먹고 사는 문제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과 재물은 삶의 수단이지 그것이 결코 영생을 가져다 주는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3)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3:5c);

1)    히브리서의 저자가 신명기 제31장과 여호수아 제1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31:6), “네 평생에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1:5).

2)    원문의 말씀에 대하여 풀이를 해보자면 먼저 신명기의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함께하십니다. 그 결과 모세는 요단 강 동쪽 지역에서 아모리 왕 시혼 및 옥과 전투를 할 때에 승리를 거듭하게 됩니다. 그 승리는 결코 이스라엘 자손들의 무력이 그들보다 강해서가 아닙니다. 오로지 여호와를 의지하고 담대하게 전진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갈 때마다 마련해주신 것입니다. ②둘째, 그와 같은 은혜가 그의 후임자인 여호수아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31:6). ③셋째, 그 말씀 그대로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의 앞길에 요단 강 서편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승리를 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다시 여호수아에게 말씀해 주십니다(1:5).

3)    그와 같은 말씀의 의미가 본문 히브리서의 말씀과 완벽하게 일치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병력이나 병기의 우수성이 아니라고 하는 대목의 지적이 본문과 의미상 연결이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돈과 재물이 넉넉하지 아니하다고 하여 세상을 겁내거나 믿음생활에 있어서 위축이 되지를 말라고 하는 의미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과 주님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물자가 넉넉하고 돈이 풍성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모집하고 마련하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사용하지를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4)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함께하심과 세상을 섭리하시는 그 역사를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굶어 죽지 아니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13:5ab).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더 큰 사역을 원하신다고 하면 복음의 일꾼으로 정진하는 성도에게 더 큰 능력으로 함께하실 것입니다(13:5c). 어차피 세상의 가치와 재물을 배분하시는 권한이 주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셋째로,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6); 마치 로마서 제8장 말미에 있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과 같은 히브리서 저자의 고백이 여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주고 있는 신앙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16:33).

결론적으로, 세상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돈을 주인으로 섬기지 아니하는 자가 온전한 성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과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성도들이 돈과 재물이 없이 세상과 동떨어진 방법으로 그렇게 무모하게 시행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마치 무장도 하지 아니한 채 적군의 진지 앞에서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뜻을 다시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그 의미는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성도들이 세상의 것을 충분하게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악한 영들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과 싸워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시고 주님께서 세상의 재물과 모든 필요한 여건을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도움을 얻기 위하여 천하권세를 가지신 주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맞서야 합니다. 또한 영적인 싸움터로 나가기 위해서는 성도들이 몸을 가볍게 해야 합니다. 세상적인 돈과 재물은 생계를 꾸려갈 정도이면 충분합니다. 그 일을 위하여 너무 많은 인생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서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그 실천의 방법을 찾고 묵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를 얻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예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생애를 더 많이 묵상하시고 성령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