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히브리서 강해 제77강(히12:27-2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6. 08:33

히브리서 강해 제77(12:27-29)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7 12()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대하여(12:27-29);

 

히브리서의 저자가 히브리정경에 정통하다는 사실을 본문의 바로 앞절인 제26절에서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12:26). 그는 선지자 학개의 다음과 같은 기록 가운데 중간부분인 제6절을 절묘하게 원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2:5-7).

사실 학개 선지자의 예언은 두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문장입니다; ①하나는 선민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미래라고 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모든 나라를 정복하여 천하의 보물을 전부 예루살렘성전으로 끌어오는 것으로 일단 해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세적인 선민의 영광을 강조하고 있는 유대교인들이 그러한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②또 하나는 새로운 천지의 창조와 영생의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예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의 오심을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는 선지자 이사야가 벌써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의 수도가 새로이 창조되는 예루살렘 성이며 선민과 성도들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완전한 구원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65:17-25).

히브리서의 저자는 본문에서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세상의 종말과 더불어 이 땅에 임하는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깊은 묵상을 통하여 다음과 같은 세가지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라고 하는 경천동지의 사건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피조세계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다시 새로운 창조물로 변화할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장차 다시 변동할 가능성이 있는 천지에 살게 되는 것만으로는 피조물들이 영생을 얻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12:27).

(2)  둘째, 영원히 지각변동이 없는 영생의 세계가 무엇일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것을 흔들리지 않는 나라”(12:28a)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성도들을 위하여 마련이 되고 있습니다(14:1-3). 그 나라의 수도가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그 성으로 들어가서 큰 대제사장이신 주님과 더불어(4:14-16) 아버지 하나님을 영원히 기쁘게 섬기는 것이 성도들의 소망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피력하고 있습니다(12:26b).

(3)  셋째, 그러한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한 마디로,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12:29)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사도 마태와 의사 누가가 그들의 복음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불 세례와 관련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3:11, 3:16). 성령님을 모시고 성도들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면 그 성품이 거룩하게 변화합니다. 그것이 성화의 단계입니다. 불로 태워버리듯이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과 습관이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그러한 변화가 있게 해달라고 하는 성도의 간구가 있을 때에 발생하게 되는 성화의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12:27);

(1)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을 참으로 오래 지속한 인물로 보입니다. 그 결과 아주 귀중한 깨달음을 얻어서 본문에서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피조된 세계는 진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2:27c). 그 진동 때문에 피조세계는 영원히 존재할 수가 없으며 변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진동에 따른 변동을 자연계에서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생물들이  생노병사(生老病死)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생물들도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그 변동을 극대화하여 기존의 하늘과 땅이 사라지게 하며 새로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한번에 그치지 아니할 수도 있다고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또 한번이라는 말의 의미라고 본문에서 알기 쉽게 풀이를 하고 있습니다(12:27a).

(2)   히브리서 저자의 언급은 천체물리학에서도 중요합니다.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고유한 진동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1)    따라서 만약 생물체가 여러 행성에 살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삶의 주기와 모양이 모두 다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진동수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행성인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에 따라서 상당히 다른 진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가지 유전자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2)    예를 들면,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의 진동과 심해(深海)의 진동이 다르고 땅속의 진동이 또한 다릅니다. 그리고 남극의 진동이 다르고 북극의 진동이 다릅니다. 그러한 차이가 생장의 차이는 물론 생각과 행동의 차이까지 발생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나아가서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진동이 있고 그 범주를 넘어서고 있는 진동들이 있습니다. 미시의 세계와 거시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다양한 진동들이 때로는 묘한 공명을 일으켜서 특정 입자의 운동을 가속합니다. 그 결과 질량을 파괴하여 빛과 열을 생성하기도 합니다.

4)    그리고 극한으로 가속이 되면 입자나 물체가 빛의 속도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러한 차원을 뛰어넘게 하는 공명까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히브리서 저자의 언급을 새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의 세계라고 하는 것도 빛의 속도를 초월하는 차원의 것이며 보이는 세계와 함께 얼마든지 공재(共在)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인식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3)  천지가 완전히 변모하고 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입니다. 반면에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진동하지 아니하시면서 피조물들을 진동시키신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b)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c)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12:27bc). 두가지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1)    첫째, 출애굽기 제19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시는 광경을 모세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19:16-19).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진동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십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강림하실 때에 피조세계가 견디지를 못하고 진동하며 두려워서 떨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의 위엄이며 능력입니다.

2)    둘째, 영생하는 존재가 되자면 무엇보다도 피조물의 진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십니다. 그리고 피조세계의 진동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때에 진동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영생의 부활을 성도들에게 선물하시는 것입니다(12:28a). 그 부활의 몸을 입고서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와 그 오른편 주님의 보좌를 바라보고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바로 성도들이라고 하겠습니다(4:13, 21:26-27).

둘째로,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12:28);

(1)  히브리서의 저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흔들리지 않는 나라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에 입성하게 되면 성도들이 더 이상 생노병사에 시달리지 아니하고 영원한 생명을 기쁨으로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성도들의 미래상이 더 이상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1:12-13).

(2)  그와 같은 미래가 성도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은혜를 선물로 기쁘게 받기 위하여 성도들은 거듭난 인생을 하나님의 자녀답게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 점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2:28b). 그것은 창세기 제2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로마서 제1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사도 바울의 영적인 예배를 염두에 두고서 단어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참고로 참조한 원문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2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12:1). 여기서 경외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자면 남을 용서하고 그 구원을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예배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예배인생을 주님께서 성도들에게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셋째로,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12:29);

(1)  악한 영들은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을 무척 싫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라지와 같은 그들을 추수 때가 되면 모두 뽑아서 태워 버리시기 때문입니다(13:30). 영원히 꺼지지 아니하는 불못도 악한 영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처벌하기 위하여 준비가 되고 있습니다(20:10).

(2)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은 다릅니다(8:1-2). 자신의 육신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죄성(罪性)과 죄의 유혹에 쉽게 이끌리고 있는 것들을 성령의 불로 태워 달라고 간구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3)  그리하면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주님께서 강력하게 역사를 하십니다(3:1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품과 습관은 알곡처럼 살리시고 거역하고 있는 성품과 습관은 쭉정이처럼 태워 버리시는 것입니다(3:17). 그 간구로 말미암아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거듭난 인생이 전개가 됩니다. 그것이 성화(聖化)의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창조주 여호와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피조물들은 자신들이 억제할 수 없는 진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진동으로 말미암아 생장(生長)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세움을 받은 성도들은 다릅니다. 이 땅에서 피조된 육신을 입고서 주님께서 맡기신 지상명령을 수행하고 나면 죽음 다음에 부활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입성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제 아버지 하나님을 뵙는 자리이므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예배를 하게 됩니다. 아무쪼록 그러한 기쁨의 예배를 새 예루살렘 성에서 드릴 때까지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