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강해 제75강(히12:21-2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7월 10일(월)
너희 믿음이 모세의 율법국가, 다윗의 이스라엘 제국,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를 점검해보라는 히브리서 저자의 언급에 대하여(히12:21-23);
본문에 이르기 전에 히브리서의 저자는 간접신앙에서 직접신앙으로 나아가라고 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문장을 기술하고 있습니다(히12:18-20). 이제는 좀더 구체적으로 성도들의 하나님신앙이 어떻게 진보하여야 하는지를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기 쉽게 역사적인 발전의 단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모세의 율법국가에서 다윗의 이스라엘 제국의 시대를 거쳐서 이제는 예수님의 하나님나라를 앙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가지 종류의 나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먼저 그 특징적인 차이를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모세의 율법국가에서는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의 언약에 충실하기만 하면 그들도 현세적인 하나님의 복을 모두 얻어서 누릴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율법국가의 선민들은 세가지로 언약의 내용을 구체화하고 있습니다; ①첫째, 할례를 행합니다. ②둘째,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제례의식과 절기를 지킵니다. ③셋째, 회당에서 안식일을 지키며 율법교육을 실시합니다. 역사적으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완벽하게 위의 세가지를 전부 지킨 적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종교개혁을 통하여 그와 같은 율법적인 하나님신앙을 회복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2) 둘째, 다윗의 이스라엘 제국은 선민들의 영광을 온세상에 크게 떨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땅을 모두 회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창15:18). 동쪽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테스 강의 이서(以西) 지역과 서쪽 애굽의 나일 강 이동(以東) 지역을 다윗이 모두 정복하거나 복속을 시키고 있습니다(삼하8:1-14). 애굽도 다윗대왕의 눈치를 보고 있는 시대가 전개된 것입니다. 주변의 약소국들을 속국으로 거느리고 그들의 조공을 받고 있으므로 선민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의 성취이며 시온의 영광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3) 셋째, 그러나 이스라엘 제국은 오래가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건설한 제국을 그의 아들 솔로몬이 40년간 유지하였을 뿐입니다. 그 다음 르호보암이 왕이 되자 그 다음해 주전 930년경에 남북으로 두 조각이 나고 만 것입니다(왕상12:19-20). 그후 두 나라는 약체화가 계속 진행되다가 우상문화에 크게 물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먼저 망하게 됩니다(왕하17:5-6). 그리고 137년만에 주전 586년에는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왕하25:1-7). 그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다윗의 제국은 재건이 되지를 못하고, 선민 유대인의 사회는 주변의 제국과 열강에 의하여 유린이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 당시에는 강력한 로마제국에 의하여 지배를 받고 있는 형편입니다.
(4) 넷째, 그와 같은 비참한 역사 가운데 선민 유대인들은 여전히 그 옛날 다윗 제국의 재건을 꿈꾸고 있습니다;
1) 자신들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메시아가 나타나셔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해주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른바 ‘정치적 메시아 사상’입니다.
2) 그런데 정작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한 제국을 건설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가능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이름하여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3)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마28:18-20). 그 이유는 히브리정경에 담겨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바로 예수님께서 전파하신 천국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천국복음이 옳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3일만에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도 온세상에 전하라고 하십니다(눅24:44-49).
4) 그렇게 땅끝까지 나아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성에 입성하게 되는 영광이 주어질 것이라고 하는 약속이 나타나고 있습니다(눅22:28-30, 계21:2-8, 24-27). 그러므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추구하고 있는 것은 다윗의 제국의 재건이 아닙니다. 선민만의 영광을 온세상에 떨치고자 하는 시온의 영광이 아닙니다. 만민을 구원하여 천국에서 모두 영생을 누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온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수행하고 성도들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히12:21);
(1)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서 떨고 있습니다(출19:16, 20:18). 산 정상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주의 위엄으로 강림을 하고 계시는데 그 광경이 실로 무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출19:16-19, 20:18-21). 그 음성이 산기슭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같이 전해져 오는데 그 소리를 들을 때에 피조물인 인간들은 모골이 송연합니다. 창조주의 위엄이 가득한 음성이므로 아무리 사람의 음성처럼 들려도 그것은 육신을 가진 인간이 쉽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그 음성을 듣고 있다가는 혼백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습니다.
(2) 따라서 백성들이 살길을 모색합니다. 최고지도자인 모세 혼자 산 정상으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산하여 백성들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출20:18-19, 신5:22-27).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목숨을 보전할 수 있고 안전할 수 있는 묘책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지도자인 모세의 등을 위험한 곳으로 떠다 밀고 있는 처사입니다(요7:3-5). 모세인들 어찌 여호와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두렵지가 않겠습니까?(히12:21) 특히 장로들과 백성들의 잘못 때문에 진노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만 하는 모세는 죽을 지경입니다(출32:9-11, 31-32, 34:7-9). 그와 같은 자신의 심정을 모세가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출3:6), “그리고 내가 전과 같이 40주 40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려서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를 격노하게 하여 크게 죄를 지었음이라. 여호와께서 심히 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두려워 하였노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때에도 내 말을 들으셨고,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내가 그때에도 아론을 위하여 기도하고”(신9:18-20).
(3) 이스라엘 자손들의 이기적인 계책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엄청난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성숙의 기회를 상실하는 방안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 여호와를 멀리하고자 하는 생각입니다. 무당을 내세우듯이 중간자를 내세우고 자신들은 그 뒤에 숨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생의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기회를 버리고 영적 지도자가 전해주는 그 율법에 의존하여 간접신앙을 영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훗날 영적 지도자가 부패하게 되자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이기적이고 현세적인 우상문화에 빠지고 맙니다. 여호와를 직접 만나 영성을 회복하는 종교개혁의 길은 멀어지고 맙니다. 그것이 율법국가의 비극입니다.
둘째로,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히12:22);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히12:22a);
1) 모세 시대에 성막을 짓고 율법생활을 시작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대왕의 시대에 시온의 영광을 중동지역에 크게 떨치게 됩니다. 당시 지역 패권국인 애굽 제국조차 다윗이 건설한 이스라엘 제국의 힘에 눌려서 기를 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2) 여기서 ‘시온 산’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세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①첫째, 시온 산에 있는 다윗의 도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 산은 이스라엘 제국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②둘째, 시온 산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따라서 시온 산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③셋째, 이스라엘 자손들은 선민의 영광이 바로 여호와의 영광이며 그것을 ‘시온의 영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3) 그런데 선민들이 말하고 있는 ‘시온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시온의 영광’은 선민만의 영광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천국복음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시온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나라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하여 이제부터 묘사를 하고자 합니다.
(2)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히12:22b);
1) 시온 산 모리아 언덕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잠시 임재하시는 장소에 불과합니다(출25:21-22, 40:34-35, 왕상9:3). 히브리서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 내의 성소와 지성소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며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이고 그림자일 따름입니다(히9:23-24).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원히 계시는 곳은 어디일까요? 그곳을 히브리서의 저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히12:22ba)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요한이 언급하고 있는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사65:18-19, 계21:2).
2) 히브리서의 저자는 하나님의 도성에는 ‘천만 천사’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모시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히12:22bb). 그 사실을 훗날에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계5:11). 그 정도로 천국에는 천사의 수가 많다고 예수님께서 진작에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12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26:53). 그 천사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까요? 출애굽기 제12장을 참조하면 하룻밤에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을 전부 살해합니다(출12:23, 29-30). 또 히스기야 왕 때에는 하룻밤에 앗수르 군대 18만 5천명을 전멸시킵니다(왕하19:35). 그러므로 천사의 군단이 출동을 한다면 행성이 통째로 사라질 것입니다.
셋째로,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히12:23);
(1)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다가 향년을 맞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게 됩니다.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고전15:22, 빌3:10-12). 그들이 히브리서 저자의 표현을 따르게 되면 여기서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히12:23d)입니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앙망하다가 눈을 감은 믿음의 선진들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히11:13-16).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무덤을 방문하여 모두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요5:24-29).
(2) 위에서 알 수 있듯이 의인의 영들이 두 집단입니다; ①첫째의 집단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에 믿음생활을 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장자들의 모임’(히12:23a)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출애굽 이후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임을 면한 장자들이 모두 여호와의 것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출13:2, 12). 그들을 대신하여 전업으로 여호와를 성막에서 섬긴 자들이 레위인들입니다(민3:12-13).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자신들의 인생이 여호와의 것이라고 믿고서 신앙생활을 영위한 자들이 모두 천국에서 ‘장자들의 모임’에 출석하게 될 것입니다.
(3) ②둘째의 집단은 초대교회 시대부터 믿음생활을 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성도들입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교회에 소속이 될 것입니다(히12:23b). 그곳 교회에서 만민의 심판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게 될 것입니다(히12:23c).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 정도의 묘사만을 하고 있지만 의사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결론적으로, 비록 두렵고 떨리지만 목숨 대신에 인생 가운데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본문에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것이 율법국가도 아니고 세상의 패권을 자랑하는 다윗의 제국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을 누리기 위하여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가 역사적으로 모세 시대에는 시내 산에, 다윗왕조의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히12:21-23). 그러나 히브리서의 저자가 생각하기로는 그것은 모형이며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진짜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시는 그곳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여 들어가신 그 영생의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천국으로 들어가서 성도들이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영생을 누려야만 한다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 천국에 들어가 있는 믿음의 선진들에 대하여 그림을 그리듯이 보여주고 있습니다(히12:22-23).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 땅에서 성도의 사명을 완수하고 기쁘게 천국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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