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후서 강해 제21강(벧후3:11-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26. 22:45

베드로후서 강해 제21(벧후3:11-1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9 25()

 

종말심판과 재림구원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벧후3:11-13)

 

본문에 들어오기 직전에 사도 베드로가 이 세상의 종말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압권입니다. 그리고 나서 본문에 들어서면서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을 영적으로 미리 바라보면서 자신의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지 깊이 생각을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3:11a).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벧후3:11b-13);

(1)  첫째, 이 세상의 종말이 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대비를 철저하게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종이 되어 주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자녀의 거룩한 행실을 온세상에 보여주는 것입니다(벧후3:11b).

(2)  둘째, 하나님의 날 곧 종말심판이 이 세상에 임하게 되면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모든 무생물인 물질들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말 것입니다(벧후3:12); 그와 같은 사도 베드로의 지적은 이사야의 선지서 제65장에 기록되어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를 되돌아보게 합니다(65:17-20). 그것은 단지 현존 세상의 황폐화와 초토화만을 예언하고 있는 소선지서 요엘이나 스바냐의 여호와의 날에 대한 기록보다 훨씬 두렵고 무서운 심판입니다(2:1-11, 1:2-7, 14-18). 훗날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에서 선지자 이사야와 사도 베드로의 예언을 더욱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21:1-8).

(3)  셋째, 비록 이 세상의 멸망이 임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성도들에게는 영생구원의 소망이 더욱 가까워지고 있습니다(벧후3:13). 그 이유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와 더불어 구원받은 성도들의 영원한 처소인 하나님의 나라가 새 예루살렘성으로 하늘에서부터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1-2). 그와 관련하여, 사도 베드로는 본문에 들어오기 전에 이 세상에 대한 종말심판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생물들에 대하여 영생이냐 아니면 영벌이냐를 심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벌써 예언하고 있습니다(벧후3:10).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초림하셔서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선포하시고 만민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도와 제자들을 온세상에  파송하셨는데 이제 그 열매를 거두시기 위한 것입니다.

(4)  참고로, 그와 같은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는 그 옛날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4:5-6). 선지자 엘리야처럼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여 만민이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의 자녀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록 만들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올바른 신앙생활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벧후3:11-13).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경건함으로”(벧후3:11);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벧후3:11a); 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종말이 되면 위와 같이 해체가 되고 만다고 사도 베드로가 다시 한번 말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앞절인 제10절에 있어서 세상의 종말에 관하여 사도 베드로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해봅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종말이 되면 전면적인 불 심판을 내리십니다. 따라서 하늘과 무생물인 물질들이 먼저 해체가 되고 뜨거운 불에 녹아서 사라지게 됩니다(벧후3:10a).

2)    둘째, 그러나 생명체와 그 모집단이 되고 있는 땅은 주님의 재림으로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결정하는 심판의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벧후3:10b). 이 세상에서 지낸 그들의 삶의 내용이 하나도 빠짐없이 드러나게 되고 전부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2)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벧후3:11b);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영벌이 아니라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 전부 영생의 구원에 들어갈 수 있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방법을 이제부터 설명하고자 합니다.

(3)  거룩한 행실경건함으로”(벧후3:11c);

1)    여기서 경건함이라고 하는 것은 성도가 모든 일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결정하고 그 명령을 받아서 실행을 한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주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 그와 같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2)    거룩한 행실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그 자녀인 성도들도 그 행실이 거룩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실생활에 있어서 어떤 것이 세상적인 행실이며 또 어떤 것이 하나님 자녀의 거룩한 행실인지 분별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3)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쉽게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을 성도들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과 일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면 성도의 경건한 삶이라고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매사 성도들이 예수님의 선택과 인생살이를 닮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3:12); 두 부분으로 살펴봅니다;

(1)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라”(벧후3:12a);

1)    이 세상의 종말이 하루속히 임하기를 소망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20세기 후반부터 인류는 지구를 여러 번 태워버릴 수 있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핵 보유국의 어느 권력자가 실수로 잘못 핵 단추를 눌러버리게 되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것이며 서로 핵무기로 보복하게 되어 인류는 모두가 공멸하고 말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주후 1960년대부터 인류의 기도의 제목은 궁극적으로 하나입니다; “핵 강대국의 권력자가 부디 핵 단추를 누르지 아니하도록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내용의 기도 뿐입니다. 지금까지 반세기 이상 창조주 하나님께서 권력자들의 손길을 제어하셨기에 인류가 아직도 살아남아서 하늘을 호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3)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에 사도 베드로가 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는 여호와의 날이 반드시 임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벧후3:12aa). 그 종말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인류는 모두 멸절이 되고 마는 것일까요? 사도 베드로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모든 살아 있는 피조물과 만민의 구원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반드시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간절히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라”(벧후3:12ab)고 말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날에 하늘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3:12b); 주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재림을 하신다고 하더라도 그 심판의 대상이 제한적입니다. 그 대상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가 이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라고 한정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생물들과 그 모집단이 되고 있는 땅은 주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활의 기록이 밝히 주님 앞에 드러나서 영생의 구원이냐 아니면 영벌의 불못이냐가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25:46, 5:29, 21:7-8, 26-27). 그 반면에 하늘과 무생물인 물질들은 모두 불 심판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한꺼번에 해체가 되고 뜨거운 불에 녹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벧후3:12b).  

셋째로,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3);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벧후3:13a);

1)    성도들이 이 세상과 함께 멸망을 당하지 아니하고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주님의 약속이 어디에 적혀 있는 것일까요?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는 이유는 공생애 과정 중에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들은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참고로, 복음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3-14),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4:31),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24:39-40),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25:34-35),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2)  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3b);

1)    사도 베드로는 지금의 하늘과 땅이 종말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여기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나님의 의가 살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을 의미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의 기준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인생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2)    참고로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동체나 그들의 법정에서 결정하고 있는 정의의 구현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은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는 것인데 그와 달리 사람들의 정의는 자기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만민구원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고 유대인들의 선민구원사상은 그들의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다고 느낄수록 성도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박차를 가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멸망 가운데에서도 주님의 재림으로 영생의 구원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모두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