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강해 제20강(벧후3:8-1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9월 24일(주일)
유한한 인간의 시간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시간에 대한 사도 베드로의 설명에 대하여(벧후3:8-10);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간증을 겸하여 복음에 대한 그의 마지막 깨달음을 구술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영생의 하나님께 돌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의미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1) 첫째, 영생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사람이란 마치 하루살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피조물에 불과입니다. 그러나 성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면서 세상의 고난 가운데 끝까지 대속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그 인생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8-30). 주님과 함께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시간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성도의 유한한 시간을 영원한 시간으로 바꾸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2) 둘째, 자연적인 인간의 시간의 흐름이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고 판정하시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1) 예를 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에 기성세대가 멸절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와서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가 없다고 하나님 앞에서 절망을 하고 불평을 했기 때문입니다(민13:25-14:5).
2) 그들은 여호와신앙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가나안 원주민들을 쫓아내어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그 창조의 능력을 전혀 의지하지 아니하고 있는 오만한 인간들의 불신앙입니다.
3) 그것을 보고서 진노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40일 정탐기간을 40년의 광야생활로 바꾸시면서(민14:34) 기성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를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마는 것으로 판결하십니다(민14:28-33). 불신앙의 시간에 대해서는 하루를 일년으로 처벌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그 반대개념도 성립이 됩니다. 곧,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하루는 일년의 시간으로 보상해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를 담아서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영적인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3) 셋째, 사도 베드로는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부끄럽지 아니하게 다시 만나기 위하여 남은 인생을 신실한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로마당국이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탄압하자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신의 몸을 순교의 제물로 내어놓고자 합니다(요21:18-19, 벧후1:13-14). 시몬 베드로는 일구월심(日久月深, 긴 세월 변함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행하고 바라는 것)으로 하나님나라로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생을 누리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눅22:28-30).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고난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건설하며 예수님의 제자를 양성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넷째,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교회와 성도들을 탄압하고 있는 로마제국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처형하고서도 회개할 줄을 모르고 있는 오만한 제국입니다. 그러므로 그 옛날 애굽제국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장 종말심판을 한다고 하여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참으시고 인내하십니다(벧후3:9b).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이방인들을 모두 구원하시고자 대속의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이미 희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로마제국에 대한 종말심판을 미루면서 그 대속의 열매를 이제 성도들의 복음사역을 통하여 거두어야만 하는 것입니다(벧후3:9c).
(5) 다섯째, 사도 베드로는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이 세상에 종말심판이 임하는 때가 생각보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벧후3:9a). 그것도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 알지도 못하고 인식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찾아온다는 것입니다(벧후3:10). 그러므로 그 때와 시기에 대한 사항은 아버지 하나님의 손에 맡겨드리고(행1:7) 성도들은 오로지 남은 인생을 바쳐서 주님께서 맡기신 지상명령을 실천하는데 진력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행1:8, 벧후3:8). 성도가 복음사역에 진력하게 되면 어느 사이엔가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도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미치면 미치리라”(if driven, you reach there)는 말과 같은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사랑하는 자들아”(벧후3:8a);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대상이 먼저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러나 그들만이 아닙니다.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고 있는 사도의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모든 이방인과 불신앙인까지 포함하고 있는 용어입니다.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구원해야 하는 것이 성도들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모든 세상사람들에게 영생의 구원과 관련하여 인생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고자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유한한 삶을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주기를 원하신다는 천국복음의 진수를 전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2)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벧후3:8b); 적어도 다음 세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명제입니다;
1) 첫째,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얼마나 노심초사(勞心焦思,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우는 것) 하시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복음사역에 매진하지 아니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2) 둘째, 영생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인생의 시간이란 하루살이와 같이 보잘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한한 인생을 바쳐서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구원을 얻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3) 셋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간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정탐기간 40일을 광야생활 40년으로 환산하시고 기성세대를 광야에서 죽게 하십니다. 그리고 복음사역에 전심전력하며 고난을 말씀으로 이기는 성도들에게는 영생의 천국에서 상급을 베푸십니다.
(3)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c); 사도 베드로는 인생이란 보잘 것이 없는 유한한 시간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바쳐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성취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을 신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만은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복음사역에 매진하라는 것이 베드로의 마지막 당부입니다.
둘째로,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벧후3:9a); 부활 승천하신 주님께서 재림하신다고 하는 약속은 이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기에 너무나 먼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지구의 종말을 생각하기에 앞서 성도들이 자신의 종말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결코 먼 미래가 아닙니다. 현대인류에게 있어서 최장수를 누린다고 하더라도 120년의 세월이 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백 년 안팎에 불과한 인생살이입니다. 개인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인생의 종말이 바로 세상의 종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 점을 말하고 있는 본문이라고 하겠습니다.
(2)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벧후3:9b); 사도 베드로는 로마당국이 얼마나 나쁜 생각을 가지고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모함과 음모로 로마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실책을 교회와 성도들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교묘하게 면피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사악한 술수를 사용하고 있는 세상의 권력자들에 대하여 심판의 철퇴를 충분히 내리실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노를 참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 한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싶지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3)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c);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종말을 언제까지 미루실까요?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가 될 때까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기왕에 하신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만민이 다 회개의 자리에 나아 오기를 희망하시는 만민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로,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다음과 같이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벧후3:10a); “열 포졸이 도둑 하나를 붙잡지 못한다”고 하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도적이 언제 침입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밀하심과 그 비밀에 대하여 알 수가 없습니다. 언제 이 세상의 종말이 오고 주님께서 재림하시는지는 여전히 하나님의 고유권한에 속하는 비밀사항인 것입니다(행1:7).
(2)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벧후3:10b); 창세기 제1장에 의하면 하늘의 천체는 이 땅의 생물들에게 삶의 주기를 알려주고 있습니다(창1:14-18).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하늘의 천체에서 땅에 미치고 있는 그 우주의 빛에 의하여 생물체의 유전자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늘의 천체들이 종말이 되면 사라지게 됩니다. 더 이상 이 세상의 생물들의 삶의 주기를 관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영생이냐 아니면 영벌이냐를 결정하는 심판의 시간이 시작이 되고 있기에 피조물들의 세대교체와 그들의 역사의 반복을 관장하고 있는 하늘의 천체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3)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벧후3:10c); 살아 있는 피조물이나 그 모집단에 해당하는 땅에 대해서는 심판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무생물에 대해서는 해체의 과정만이 남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 심판에 의하여 그것들이 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4)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d); 땅의 흙은 모든 생물의 모집단입니다(창1:11-12, 24). 흙으로 생성이 되었던 모든 생물들이 삶의 주기를 마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전3:2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땅으로 하여금 모두 토해내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의 계시록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계20:13). 요한복음 제5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
결론적으로, 사도 베드로가 본문에서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장 쉽게 그의 말을 이해하자면, 천년이란 찬란한 제국의 역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장구함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로마제국은 그 강성함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로마제국을 하루아침에 멸망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보시기에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가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모시고 한평생 복음사역자로 살아가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와 같은 운명의 변화가 성도들에게 있게 됩니다. 그러한 사실을 명심하고서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바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신실하게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떳떳하게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순교의 마당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사도 베드로에게서 오히려 놀라운 천국의 소망이 영생에 대한 깨달음으로 본문에서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천국으로 함께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자신들의 인생을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의미 있게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베드로의 충고를 귀담아 들으시고 남은 인생을 복음의 일꾼으로 신실하게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드로후서 강해 제22강(벧후3:14-15a)(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3.01.27 |
---|---|
베드로후서 강해 제21강(벧후3:11-13)(작성자; 손진길 목사) (1) | 2023.01.26 |
베드로후서 강해 제19강(벧후3:6-7)(작성자; 손진길 목사) (1) | 2023.01.26 |
베드로후서 강해 제18강(벧후3:3-5)(작성자; 손진길 목사) (1) | 2023.01.26 |
베드로후서 강해 제17강(벧후3:1-2)(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3.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