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후서 강해 제22강(벧후3:14-15a)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년 9월 26일(화)
오래 참으신 하나님께 보답하는 성도의 삶은 어떠한 것인가?(벧후3:14-15a)
본문에 들어오기 전에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순교(殉敎, 신앙을 지키다가 그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희생되는 것)가 임박하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면서(벧후1:14) 그 어느 때보다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앙망하고 있습니다(벧후3:13b). 그가 순교를 당하게 되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그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그의 평생의 소망이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벧후3:13a).
이제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 영생의 나라에 여러 성도들과 함께 들어가서 주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3:14a). 그리고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는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만민(萬民, 세상의 모든 백성들)을 더 많이 구원하기 위하여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고 싶은 마음까지 꾹 참고 극도로 인내하고 계십니다(벧후3:9, 요3:16).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이 무엇보다도 그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3:15a).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한다면 지금 초대교회 및 성도들을 핍박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멸망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마5:44-45). 그것이 선으로써 악을 이기는 성도의 삶이며(마5:48, 롬12:21) 성도들이 박해와 고난 가운에서도 영적인 평강을 회복하고 누리는 방법입니다(벧후3:14c).
(2) 둘째, 로마당국의 박해로 교회와 성도들이 위기에 봉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고 자신의 성화(聖化, sanctification, 세속적인 성품이 하나님자녀의 거룩한 성품으로 바뀌게 되는 것)에 힘을 쓰는 성도의 삶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열심을 내고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바로 서야만 합니다(벧후3:14b). 그것이 사도 베드로처럼 모든 성도들이 주님의 인도로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벧후3:14a).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벧후3:14a); 여기서 사도 베드로가 ‘사랑하는 자들아’(벧후3:14aa)라고 부르고 있는 대상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 그들에게 베드로는 세상의 종말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불 심판 그리고 주님의 재림과 성도에 대한 영생구원 등에 대하여 벌써 본문에 앞서 상세하게 설명을 한 바가 있습니다(벧후3:7-13). 따라서 여기서는 어떻게 하면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주님과 함께 들어갈 수가 있는지 그 점에 대하여 사도 베드로가 다시 한번 성도들에게 말해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도에서 베드로는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벧후3:14ab)라고 말문을 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b);
1) 첫째, 성도들이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주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과 그 대속의 생애를 묵상하고 실천하는 복음적인 삶을 떠나게 되면 그 어떤 것으로도 영생의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행4:10-12). 그러므로 주님의 종으로 바로 서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방법과 사람들의 인기를 따라가게 되면 영적인 타락을 경험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여기서 사도 베드로가 “주 앞에서(벧후3:14ba)라고 먼저 말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2) 둘째, 사람들이 보기에 결점이 없고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하는 칭찬이 크게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기 대문입니다.
3) 그 반면에 하나님과 주님께서는 성도들의 중심과 그 의도를 먼저 보십니다(삼상16:7). 영이시기에 당연히 성도들의 내면과 그 심령을 먼저 투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주님 보시기에 의미를 지니자면 겉과 속이 일치를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리이며 주님의 칭찬을 얻을 수 있는 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4) 셋째,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겉과 속이 모두 하나님의 진리 위에 설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생전의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을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한 천국복음으로 풀이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하시고 자신을 핍박하여 처형하고 있는 자들까지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십니다(눅23:34).
5) 그러므로 성도들도 온세상에 예수님의 천국복음을 선포하고 자신들을 박해하고 있는 자들까지 용서하면서 그들의 회개와 구원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를 해야만 합니다(마5:44). 그것이 예수님처럼 아버지 하나님 앞에 그 자녀로 설 수가 있는 소위 흠과 점이 없는 온전한 성도의 삶입니다(벧후3:14bb, 마5:45). 그러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고자 결심을 한다면 성령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고 도와 주십니다. 그 결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성도들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목숨에 대한 염려가 모두 사라지면서 영생의 천국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것이 성도가 마음의 평강을 회복하는 방법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시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벧후3:14bc).
둘째로,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a);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벧후3:15aa); 다음 세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문장입니다;
1) 첫째, 이 세상에 대한 종말적인 불 심판을 당장 내리고 싶은 것을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라도 더 많은 피조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요3:16).
2) 둘째,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당장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나를 대속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속죄양이 되셔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마침내 깨닫고 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서 용서함을 받아 이제 성도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3) 셋째, 이제 성도인 자신의 삶은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은 그 사랑의 빚을 갚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세가지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①첫째, 이웃과 박해자를 모두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②둘째, 핍박을 온몸으로 감수하며 그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③셋째, 나아가서 박해자를 긍휼하게 생각하고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먼저 본을 보여주신 제자들의 대속의 삶인 것입니다.
(2)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ab); 피조세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참으로 인내를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마음을 아시고 스스로 십자가 처형의 고난까지 받아들이시고 그 고통을 참으십니다. 그 결과 이제는 성도들을 통하여 온세상에 하나님의 복음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그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가 되고 만민이 복음을 듣고 회개의 마당에 나올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대한 불 심판을 참으실 것입니다(마24:14).
결론적으로, 이 세상의 구원을 온전히 이루기 위하여 오래 참고 인내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성도들이 함부로 제멋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까지 희생제물로 바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스스로 원수를 용서하고 박해자를 미워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오래 참고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고난과 환난이 있더라도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재림하시는 주님을 평강으로 맞이하며 그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온전히 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명심하고서 아무쪼록 온전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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