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베드로후서 강해 제23강(벧후3:15b-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1. 27. 08:00

베드로후서 강해 제23(벧후3:15b-1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7 9 27()

 

어째서 사도 베드로는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 그리고 영생구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설명 이상의 견해를 가지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는가?(벧후3:15b-16)

 

사도 베드로는 자신이 순교의 자리로 나아갈 때가 임박했다고 제1장에서 밝히고 있습니다(벧후1:14). 그리고 이제 그의 구술(口述)을 마무리하기 전에 본문에서 사도 바울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벧후3:15b). 베드로가 사도 바울의 이름을 거명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악한 이 세상을 당장 불로 심판하고 싶지만 그것을 오래 참으시면서 성도들을 세상 끝까지 보내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에 총력을 경주하게 하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베드로가 제3장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더 깊이 알고 싶은 사람은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참조하라는 것입니다(벧후3:15b-16a). 그로 미루어 보아 두가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 주후 64년경 사도 베드로가 구술하고 있는 복음에 관한 내용을 실루아노가 헬라어로 번역하여(벧전5:12) 두 편의 서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벧전1:1-3, 벧후1-4). 그런데 그보다 먼저 사도 바울이 작성한 10여편의 서신서가 이 세상에 나와서 인기리에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읽혀지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도 베드로입니다; “자신은 학문이 짧아서 간략하게 복음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이 더 잘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벧후3:15-16).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더 깊은 내용을 알고 싶은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서신서를 참조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솔직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2)    둘째, 사도 바울이 세상의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하심에 대하여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천국복음의 입장에서 설명을 잘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완전한 설명은 아니라는 사실을 성도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 있습니다(벧후3:16b). 왜냐하면, 세상의 종말의 시기나 하나님나라의 임재의 때와 같은 사항은 아직도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고 있으며 피조물인 사람들에게는 비밀이기 때문입니다(1:7).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설명을 참조할 것이며 그 이상 영적인 신비를 풀려고 시도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벧후3:16).

(2)  둘째로, 어째서 사도 베드로가 그처럼 세상종말과 예수님의 재림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임재 등에 관하여 함부로 억측을 하지 말라고 성도들에게 단단히 주의사항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하여 알아봅니다;

1)    첫째, 종말론을 둘러싸고서 교회 내에 이단들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당국이 초대교회를 탄압하고 성도들을 엄청 박해하고 있기 때문에 일부 성도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로마제국에 당장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무엇을 하시느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일부 교계의 지도자들은 세상의 종말이 임박하였으며 로마제국이 곧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현실을 사도 베드로가 직시하고서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만민구원을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가 될 때까지는 불 심판하시고자 하는 마음을 참고 인내하신다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24:13-14, 3:16, 벧후3:9).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이치에 두루 밝은 사도 바울도 베드로 자신과 같은 견해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벧후3:15).  

2)    둘째, 히브리정경에 밝은 사도 바울이 그의 10여펀의 서신서에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것이 사도 베드로가 보기에 실로 압권입니다. 그러한 사도 바울조차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를 얻기 전에는 함부로 종말의 시기에 대하여 말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사도 바울처럼 조심하지 아니하고 제멋대로 계산하여 종말의 시기를 주장한다면 그것을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벧후3:16c).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3:15b);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벧후3:15ba); 사도 베드로는 에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지낸 사도입니다. 그는 12사도의 수장입니다. 특히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 개척이 될 때에 일등공신이 바로 사도 베드로입니다. 초대교회에서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도 베드로가 과연 바울을 후속사도라고 부르고 사도로서 대접을 하고 있을까요? 사도 베드로는 결코 바울을 사도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여기서 ‘’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벧후3:15ba)라고 달리 친근하게 부르고 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베드로를 할례자의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2:8). 그로 미루어 보아, 베드로의 사도 직분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지만 후속사도로 불리고 있는 바울의 사도 직분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짐작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 받은 지혜대로”(벧후3:15bb);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울에게 특별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자신은 오직 충성심 하나로 생전에 예수님을 스승으로 지근거리(至近距離)에서 모시고 복음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성령님의 임재를 받고서 예루살렘에서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별로 학문이 없는 베드로이지만 행동과 실천에 있어서는 대단히 뛰어납니다. 그와 달리 바울은 히브리정경에 대한 지식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경상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는데 있어서 탁월합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형제 바울에게 주고 있는 하나님의 특별한 지혜의 은사라고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보고 있는 것입니다(벧후3:15bb).

(3)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3:15bc); 하나님의 지혜의 은혜를 흡족하게 받아서 히브리정경에 해박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 정통한 바울이 이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 그리고 최종심판에 대해서는 가급적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이 세상 종말의 시기와 주님의 재림의 때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버지 하나님의 전권이며 사람들이 왈가왈부해서는 되지 않는다고 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1:7, 벧후3:16). 그리고 바울도 그의 서신서에서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벧후3:15bc). 참고로 그에 대한 바울서신의 언급을 다각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살전5:1-2);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견해는 본래 예수님의 말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24:42-44),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24:50),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25:13),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

2)    그와 같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사도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3:10). 그와 동일한 시각에서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위와 같이 적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견해가 사도 베드로의 입장과 동일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말씀을 다른 사도와 제자들에게서 듣고서 깊이 묵상을 한 결과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둘째,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1:7-8); 사도 베드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날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3-14).

4)    셋째,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고전6:14); 성도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주님께서 재림하실 확률보다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서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이할 확률이 훨씬 높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초대교회 시대에 만연했던 임박한 주님의 재림설 또는 하나님의 진노로 로마제국이 당장 멸망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를 하지 아니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한 견해가 사도 베드로의 견해와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 역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벧후3:16a);

1)    사도 베드로의 기억력은 참으로 뛰어납니다. 그는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3 6개월의 공생애를 살면서 복음사역을 함께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천국복음의 내용과 제자들에게 별도로 깊이 있게 가르쳐 주신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에 있어서 사도 베드로의 말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에 있어서 공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2)    지금 60대 후반의 사도인 베드로는 자신이 순교를 당하기 전에 초대교회와 성도들에게 두 편의 서신서를 남기고자 그가 기억하고 또한 깨닫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을 구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들이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 벌써 10여편의 서신서를 작성하여 초대교회에 회람을 시킨 것이 있는데 사도 베드로는 그 내용까지 거의 기억하고 있습니다.

3)    사도 베드로는 생전에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 세상의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 관한 이야기와 사도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내용이 서로 일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간략하게 이 세상의 종말 및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바울의 서신서를 참조하여 보완하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벧후3:16a).

4)    요컨대, 바울이 예수님의 생전의 말씀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서 그것을 히브리정경의 내용과 비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종말론은 물론 주님의 재림과 관련하여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살전5:1-2). 그 점을 여기서 사도 베드로가 확인하면서 바울의 저술에 대하여 권위를 부여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5)    그와 관련하여 사도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종말과 관련하여 바울 이상의 정확한 풀이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고서 그 이상의 지나친 풀이를 삼가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선을 넘어서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사도 베드로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벧후3:16c).

(2)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벧후3:16b);

1)    사람들은 이성적인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why)라고 하는 의문을 가지며 질문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마당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6-8).

2)    선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해주시는 그것이 마치 천국이 이 세상에 임하는 것과 같은 영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을 만약 이방인들의 입장에서 바꾸어 본다면 그것은 이 세상이 종말심판을 받고 영생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때가 언제입니까?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더 이상 그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의 소관이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속하는 사항이기 때문입니다(1:7).

3)    따라서 성도들이 남아 있는 인생 가운데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그것이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이 됩니다. ,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되면 자연히 영생의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답변에 대하여 히브리정경을 가지고 오래 묵상한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 결과 그가 풀이하고 있는 대표적인 종말론이 다음과 같습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살전5:1-2);

4)    한 마디로,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그 내용을 알고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억측을 하지 아니하는 그것이 성도들의 신앙자세임을 명심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러한 사도 바울의 풀이를 사도 베드로가 영리하게도 본문에서 잘 원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6c);

1)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경고하신 내용, 사도 바울이 오랜 말씀의 연구를 통하여 결론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내용, 그리고 사도 베드로가 재차 경고하고 있는 내용은 모두가 억지로 이 세상의 종말의 시기와 주님의 재림의 때를 풀려고 시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욱 그것을 하려고 합니다. 마치 청개구리와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모친의 산소가 홍수로 떠내려가버리는 비극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그와 같이 어리석은 자들이 바로 신앙심이 부족하고 무식한 자들이라고 사도 베드로가 여기서 일갈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피조물인 인간이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고 하거나 감히 하나님의 비밀을 너무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풀어내고자 하면 재앙을 자초하게 된다고 하는 경고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랍비 출신인 사도 바울은 히브리정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와 성도들을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는 로마제국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당장 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사도 베드로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의 이름을 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초대교회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유권해석을 하는데 큰 권위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사도 베드로가 그의 서신을 구술하여 작성하고 있는 주후 60년대 중반에 사도 바울은 벌써 13편의 서신서를 작성하여 로마제국 내에 흩어져 있는 모든 초대교회에 보낸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서신을 받아서 읽어본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참으로 좋은 가르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가 자신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에 뛰어난 사도 바울의 이름을 빌려서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지냈으며 초대교회의 형성에 가장 큰 공로자인 사도 베드로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인간적으로는 굴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베드로는 사도 바울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말씀에 대한 해석이 더욱 뛰어나다고 인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도 베드로의 포용력과 지도력은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였으면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모자람이 드러나는데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을 칭찬하고 그의 복음설명을 참조하라고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새삼 자신을 희생하고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아량과 겸손함이 눈에 선하게 보이고 있는 본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사도 베드로와 같은 겸손함과 아량이 여러 성도님들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