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84강(렘52:28-3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3월 2일(토)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주전 598년과 주전 587년에 유다 왕국을 침범하여 포로로 잡아간 유대인들의 수와 주전 582년에 애굽에서 사령관 느부사라단을 통하여 잡아간 유대인 난민의 수를 예레미야가 그의 선지서 말미에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렘52:28-30)
이스라엘 자손의 수는 주전 15세기 출애굽 당시에 장정만 60만명가량입니다(출12:37). 그것은 20세 이상 남자의 수가 60만명이라는 말입니다. 고대인들의 평균생존연령을 40세 정도로 보고 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남자의 수가 120만명 정도이며 남녀를 모두 합하면 약 240만명이 됩니다.
주전 930년경에 이스라엘제국이 둘로 갈라집니다. 그때 남조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용사인 군인의 수가 18만명입니다(왕상12:21). 장정들 가운데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자를 절반으로 볼 경우 유대인 남자의 수는 72만명입니다. 그리고 남녀를 모두 합한 유다 왕국의 인구는 144만명 정도가 됩니다.
주전 586년 여름에 예루살렘성이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함락이 됨으로써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지상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주전 930년의 유다 왕국의 인구를 144만명 으로 보면 멸망을 당하는 주전 586년 당시의 유대인들의 수를 약 200만명으로 추정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자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100만명 이상이 포로가 되어 끌려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수를 4,60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러한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렇게 달리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가 유다 왕국에서 끌고 간 포로의 수를 역사서인 열왕기하 제24장에서는 최소한 장정이 1만명, 기술자가 1천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24:14-16). 그리고 위에서 추산한대로 주전 586년 유다 왕국을 정복한 느부갓네살 황제가 끌고 간 유대인의 수는 100만명이 넘습니다(렘39:9, 52:15). 그 점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체험적으로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고의로 일년 전에 각각 발생한 바벨론 포로의 수를 본문에 적고 있습니다; “주전 598년에 유대인 포로가 3,023명, 주전 587년에 유대인 포로가 830명이라는 것입니다”(렘52:28-29). 그리고 주전 582년에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를 지휘하여 애굽을 침입합니다. 그때 나일 강 유역에서 유대인 난민들을 역시 사로잡아 갑니다. 그 수가 745명인 것입니다(렘52:30). 그렇게 달리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2) 둘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어째서 대규모 바벨론 포로가 발생하기 일년 전에 유대인들이 사로잡혀서 끌려간 수를 그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유다 왕국의 수도와 지방으로 분리하여 그가 역사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선민들의 여호와신앙의 중심지는 어디까지나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입니다. 더구나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다윗왕조가 예루살렘에 그들의 왕궁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왕국의 역사는 예루살렘성이 살아남느냐? 아니면 함락이 되느냐?에 그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그에 따라 다윗왕조는 강한 적이 쳐들어오면 지방의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오직 난공불락의 성인 예루살렘성만 사수하고자 열심입니다(왕하18:17, 19:34-35, 23:33, 24:10-12, 25:1-4).
2) 실제로,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모두 예루살렘성에 살고 있으므로 다윗왕조는 유다의 정예병들을 동원하여 그 성만을 끝까지 지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생각은 그것이 아닙니다.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성 뿐만 아니라 지방의 성읍에 살고 있는 백성들도 자식과 같이 애지중지하고 계십니다. 그 사실을 선민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왕들과 고관들과 영적지도자들이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렘5:1, 28-31). 따라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창조주 여호와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그의 선지서에서 보여주고자 합니다.
3) 구체적으로, 제31장에서는 각사람의 심령속에 임하게 되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인 임재를 ‘새 언약’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마지막 장인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성이 함락이 되기 전에 가장 먼저 바벨론 포로로 지방에서 끌려간 유대인 백성들의 수를 가슴 아프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렘52:28-29). 그리고 애굽으로 피난한 망국의 백성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쳐들어온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역시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는 그 뼈아픈 대목까지 그 포로의 숫자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렘52:30).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7년에 유다 인이3,023명이요, 느부갓네살의 18째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간 자가 832명이요”(렘52:28-2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7년에 유다 인이3,023명이요”(렘52:28);
1) 느부갓네살이 신바벨론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해는 예레미야의 기록에 따르면, 유다 왕 여호야김 4째해입니다(렘25:1). 유다의 성군(聖君)으로 불리는 요시야가 므깃도 요새에서 해변길로 북상하고 있는 바로 느고의 대군을 막다가 불의의 화살을 맞고 후송 도중에 서거한 때가 역사적으로 주전 609년입니다(왕하23:29). 왕자 살룸이 신하들에 의하여 여호아하스 왕으로 즉위하여 시리아를 점령하고 남하하는 바로 느고의 군대와 전쟁을 합니다(왕하23:30-33, 렘22:11-12). 그러나 패전을 하고 3개월만에 폐위가 되고 맙니다. 그러자 바로 느고는 예루살렘에 친(親) 애굽 괴뢰정권을 세우고 그 왕으로 여호야김을 책봉합니다. 그때가 주전 609년말이거나 608년초가 됩니다. 그에 따라 여호야김 왕 4째해는 주전 605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2) 느부갓네살 황제 제7년이라고 하면 주전 598년경입니다. 황제는 자신의 갈대아 군대 뿐만 아니라 벌써 신하국으로 만든 바 있는 모압과 암몬 그리고 아람의 군대까지 동원하여 유다 왕국의 여호야긴 왕을 압박합니다(왕하24:1-2). 먼저 유다 지방의 성읍을 정벌하면서 포로3,023명을 바벨론으로 끌고 갑니다(렘52:28). 그 다음에 유다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성을 포위하여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여호야긴 왕이 도저히 더 버티지를 못하고 성문을 나와서 황제에게 항복을 합니다. 느부갓네살 황제는 유다 왕국이 다시는 신바벨론제국에 대항을 할 수가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 방법이 장정 1만명 이상, 기술자 1천명, 그리고 막대한 금은보화를 전부 약탈하는 것입니다(왕하24:13-16). 따라서 친(親) 바벨론 괴뢰정권의 왕으로 책봉이 되는 유다 왕 시드기야는 나라 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유다 왕국을 맡게 된 것입니다(왕하24:17). 그때가 주전 597년입니다.
(2) “느부갓네살의 18째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간 자가 832명이요”(렘52:29);
1)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는 때는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수도인 예루살렘성이 함락이 되는 때인데 그 시점은 유대인 달력으로 유다 왕 시드기야 제11년 4월 9일입니다(렘39:2, 52:6-7, 왕하25:2-4). 시드기야 왕이 주전 597년에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 왕으로 책봉이 되었으므로 예루살렘성의 함락은 주전 586년 여름입니다. 그때는 느부갓네살 황제 통치 제19년입니다(렘52:12, 25:1, 8).
2) 그런데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 황제 제18년인 주전 587년말에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성을 에워싸면서(렘37:5-10) 수도권의 유대인 832명을 먼저 사로잡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렘52:29). 그 다음해에 예루살렘성을 함락한 다음에는 수십만명의 유대인들을 체포하여 바벨론으로 압송하게 되는데 어째서 그 전(前)해에 예루살렘성을 출입하는 수도권의 유대인 832명을 먼저 잡아간 사건을 거론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의미는 수도인 예루살렘성에 살고 있는 권력자들과 부자들만 중요한 자들이 아니라고 하시는 여호와의 뜻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느부갓네살의 제23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간 유다 사람이 745명이니, 그 총수가 4,600명이더라”(렘52:30);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느부갓네살의 제23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간 유다 사람이 745명이니”(렘52:30a);
1) 주전 586년에 유다 왕국을 정복한 느부갓네살 황제입니다. 그는 반(反) 바벨론 동맹의 수장 노릇을 한 애굽의 바로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갈대아 군대를 정비하여 4년후인 주전 582년에 애굽을 공격합니다. 그때가 느부갓네살 황제 제23년입니다(렘52:30aa). 원정은 성공적입니다. 나일강 유역 비옥한 땅을 거의 점령하게 됩니다. 애굽의 제26왕조는 비옥한 땅을 빼앗기고 누비아 땅으로 도망하고 맙니다.
2) 당시 애굽에는 망국의 백성인 유대인들이 많이 피신하여 정착하고 있습니다(렘43:5-7, 44:1, 15). 그들 가운데 745명이 갈대아 군대의 사령관인 느부사라단에게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만 것입니다. 그것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난 여호와의 다음과 같은 예언의 말씀이 성취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렘42:15-17).
(2) “그 총수가 4,600명이더라”(렘52:30b);
1)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1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와 같은 처지에서 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가운데 4,600명의 포로의 발생에 대해서 특기하고 있습니다(렘52:30b). 그들 중 상당수는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예루살렘성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게 항복하거나 함락이 되기 일년 전에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루살렘 주민이 아니라 지방 성읍의 백성들입니다.
2) 다윗왕조는 예루살렘성만 지켜내면 유다 왕국이 망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안스럽게 여기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권력자나 부자들만 여호와의 창조물이 아닙니다. 지방의 성읍에 살고 있는 힘없는 백성들도 똑 같은 여호와께서 창조한 인생들입니다. 그러므로 전란의 초기에 가장 먼저 사로잡혀서 적국에서 노예로 살게 되는 그들에게 관심이 크게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디 여호와의 그 마음을 이해하라고 하는 의미에서 본문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3) 또 그 숫자에는 애굽으로 피신한 망국의 백성 유대인들이 현지에서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수까지 들어 있습니다(렘52:30a). 그 의미는 이 세상에서는 안전한 제국이나 외딴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피난처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여호와신앙을 떠나서 안전한 거주지를 찾아서 방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버리고 세상의 탐욕과 정욕을 쫓아 사는 삶을 청산하고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만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칼과 기근을 벗어나 여호와의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결론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성만 잘 지키면 유다 왕국이 보전이 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방의 성읍에 살고 있는 백성들은 적군의 포로가 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도 크게 애통해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은 그것이 아닙니다. 다윗왕조와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의 잘못으로 백성들이 이방 강대국의 포로가 되는 것을 가슴 아파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사로잡혀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있는 지방 성읍의 유대인들의 수를 본문에서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만민을 골고루 아끼시고 사랑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공의의 정신을 생각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피조물을 제 몸같이 사랑하고 그 생명을 살리고자 나서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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