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85강(렘52:31-3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3월 3일(주일)
신바벨론제국의 침략으로 다윗왕조는 끝장이 나지만 바벨론에서 다윗가문은 어떻게 회복이 되고 있으며 그것은 훗날 무엇을 위한 것인가?(렘52:31-34)
이스라엘의 역사서인 열왕기하의 말미와 역대하의 말미의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그 점을 먼저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열왕기하는 제25장 말미에서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 왕 곧 여고냐가 주전 531년에 느부갓네살 황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에윌므로닥 황제에 의하여 감옥에서 풀려나 신바벨론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에서 다윗의 가문을 재건하게 된다는 사실을 특이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25:27-30). 그것이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의 역사는 물론 북조 이스라엘왕국의 역사까지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는 열왕기 상하의 마지막 기록입니다.
(2) 그와 달리 유대인들의 선민의식과 다윗왕조의 정통성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는 역대기 상하의 기록은 역대하 제36장 말미에서 신바벨론제국을 멸망시키고 페르시아제국을 출범시킨 고레스 황제가 주전 536년에 유대인들에게 자유를 주고 원하는 자는 고토(故土)로 돌아가서 예루살렘성전을 재건해도 좋다고 하는 조서를 내려주는 것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대하36:22-23).
그 가운데 선지자 예레미야가 채택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하의 말미가 아니라 열왕기하의 말미의 내용입니다. 그 의미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그 점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첫째로, 다윗왕조가 유다 왕국의 멸망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회복이 되지를 못한다고 하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3차례나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렘22:30, 33:26, 36:30). 그 대신에 비록 다윗의 왕가는 아니지만 다윗의 가문만은 그 명맥을 유지하도록 여호와께서 역사를 섭리하십니다. 따라서 주전 597년에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 왕이 신기하게도 감옥생활 36년이 지나자 37년이 되는 해에 자유의 몸이 되고 자신의 다윗가문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렘52:31-34, 왕하25:27-30). 참고로, 한때 유다의 왕이었던 여호야긴 곧 여고냐의 손자가 훗날 예루살렘 제 2성전의 건설에 앞장을 서게 되는 스룹바벨입니다(대상3:17-19, 스2:2, 3:2, 4:2-3, 6:14-15). 반면에 유다 왕국의 멸망의 책임을 지고서 시드기야 왕과 그의 아들들이 모두 신바벨론의 황제에 의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왕하25:7, 렘52:10-11).
(2) 둘째로, 스룹바벨의 후손 가운데 목수 요셉이 나타납니다(마1:13-16). 그가 의붓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족보에 올리게 됩니다(마1:18-25, 눅2:1-7). 그로 말미암아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하는 선지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가 됩니다(사11:1-12). 그리고 다윗의 줄기에서 한 의로운 가지가 메시아로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이라고 하는 선지서 예레미야의 예언이 또한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렘23:5, 33:15). 그러므로 다윗의 가문을 이어받고 있는 스룹바벨은 두가지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1) 하나는, 예루살렘 제2성전을 앞장서서 짓고 있는 스룹바벨처럼 그의 다림줄을 가지고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새로운 예루살렘성전을 성도들의 심령속에 짓도록 복음사역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슥4:9-10, 요2:18-22). 예컨대, 그것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하고 있는 여호와의 ‘새 언약’의 내용입니다(렘31:31-34).
2) 또 하나는, 다윗의 자손들이 선민의 나라를 회복하는 다윗왕조의 재건이나 정치적인 메시아 사상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하나님나라 새 예루살렘성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이 세상에 교회를 세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목수 요셉의 피를 받은 그의 4명의 아들들, 유대인 마을 아리마대의 촌장이며 다윗의 자손인 요셉, 목수 요셉의 친족인 엠마오의 글로바 등이 그러합니다(마13:55, 눅23:50-54, 24:13-35, 행1:14, 15:13-14, 약1:1, 유1:1).
(3) 셋째로,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대인 포로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2성전을 짓고 다시 선민사회를 형성한다고 하는 역대하 제36장 말미를 선택하지 아니하고 어째서 열왕기하 제25장 말미에 기록이 되어 있는 여호야긴 왕의 석방과 의미심장한 신원회복의 이야기를 그의 선지서 말미에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이 세상에서 한평생 육신의 욕심이라는 죄와 사망의 굴레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이 때가 되면 신원회복의 놀라운 은혜를 여호와로부터 얻으며 왕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하는 ‘새 언약’에 따른 소망과 믿음을 예레미야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기 때문으로 보입니다(렘31:31-34, 눅22:28-30, 롬7:21-8:4).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여고냐의 신원회복은 성도들의 영적인 신원회복을 미리 말해주고 있는 하나의 예표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37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12째달 25째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주었고, 감옥에서 풀어주었더라.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렘52:31-33a);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37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12째달 25째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주었고, 감옥에서 풀어주었더라”(렘52:31);
1) 신바벨론을 중근동의 대제국으로 건설한 대 영웅 느부갓네살 황제가 44년간 오래 통치를 하고 주전 562년에 서거하게 됩니다. 그 뒤를 태자인 에윌므로닥이 잇게 됩니다. 그는 그해 12월 25일이 되자 곧 주전 561년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화해의 제스처를 널리 취하게 됩니다. 그는 여러 종족 대 화해정책의 일환으로 주전 597년부터 무려 37년간이나 제국의 도성인 바벨론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유다 왕 여호야긴을 석방하게 됩니다(렘52:31, 왕하25:27).
2) 여호야긴 왕의 신분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폐위를 당하고 바벨론 포로가 되었으므로 공식적으로는 세자 당시의 이름인 ‘여고냐’입니다(대상3:16-17). 그것은 마치 폐위를 당한 조선의 왕을 ‘연산군’ 또는 ‘광해군’으로 부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분명히 유대인들이 기록한 왕들의 족보에서도 그렇게 ‘여고냐’로 기록이 되고 있지만 구태여 열왕기하 제25장 말미와 선지서 예레미야의 말미인 본문에서는 “유다의 여호야긴 왕”이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렘52:31, 왕하25:27).
3) 그 의미는 영토를 가진 왕국의 회복은 아닐지라도 그를 명목상 ‘유다의 왕’으로 대접을 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의미를 다음과 같이 두가지로 확장해볼 수가 있습니다; ①첫째, 그것을 영적인 의미로 성도들의 신원회복을 위한 하나의 예표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훗날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나를 위한 속죄의 제사라는 사실을 영적으로 깨닫고 진심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하나님 앞에 회개한 성도들에게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가 주어지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명목상 왕같은 제사장의 지위가 주어지는 것과 같습니다(벧전2:9). ②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일컬어 구태여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른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요19:19-22). 유대인들이 바라고 있는 다윗제국을 재건하는 왕이 아니라 만민을 구원하는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4) 본문에서,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주었고”라는 표현은 시편 제110편에서 다음과 같이 이미 사용이 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뭇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길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시110:5-7). 그 옛날 황제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있는 자는 황제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황제의 허락이 있으므로 그 조아린 머리를 감히 그 앞에서 들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를 주시고 그 앞에서 머리를 들게 하십니다(시110:5-7, 마28:18, 롬8:11). 그와 같이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승리하는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천국에서 그 머리를 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눅22:28-30).
(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렘52:32-33a); 뒤로부터 풀이를 하는 것이 이해하기가 쉬운 문장입니다.
1)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조치가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렘52:32-33a); ①첫째, 감옥살이를 끝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수의 복장을 벗고 신원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황제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예복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②둘째, 신원회복을 축하하는 잔치자리가 황궁에서 있게 됩니다. 따라서 여호야긴 왕의 자리는 황자들인 여러 왕들의 자리보다 상석입니다. ③셋째, 그 축하의 자리에서 에윌므로닥 황제가 여호야긴 왕에게 친절하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2) 그와 같은 여호야긴 왕의 신원회복의 절차와 과정을 성도들에게 대입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첫째,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실천함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죄와 사망의 종 노릇을 하고 있는 육신을 벗게 되는 날이 있게 됩니다. ②둘째, 천국에서 입성을 축하하는 잔치가 열리게 됩니다. 그때에는 주님 앞에서 상석에 앉게 되는 영광이 주어집니다. ③셋째, 주님의 위로의 말씀과 축하의 말씀이 있게 됩니다.
둘째로, “그의 평생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렘52:33b-34);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의 평생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렘52:33b);
1) 두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문장입니다; ①하나는, 황제가 베푸는 잔치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②또 하나는, 황제가 평생동안 여호야긴 왕의 행동을 감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바벨론제국을 강성하게 만든 천하의 영웅 느부갓네살 황제가 죽고 말았습니다. 전쟁에 능한 강력한 황제가 사라지고 없으므로 이제는 그에게 망한 나라의 백성들이 서서히 다른 꿈을 꾸게 됩니다.
2) 에윌므로닥이 다음 황제가 되어 통치하고 있는 시대에 제국의 변방에서는 독립을 소망하는 여러 종족이 반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패망한 자신들의 왕국을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긴 왕과 같은 망국의 왕이 그들의 독립운동의 구심적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에윌므로닥 황제는 여호야긴 왕을 석방하여 명목적으로 왕 대접을 해주면서 사실은 비밀감찰을 통하여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렘52:34); 다윗의 가문이 재정적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에윌므로닥 황제가 여호야긴 왕에게 가문을 재건할 수 있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다의 땅을 다시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에서 그래도 귀족의 하나로 살 수 있는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여 준 것입니다(렘52:34). 그렇게 황제의 특혜를 누리고 편하게 살게 되면 변방 유대 땅으로 탈출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윗의 왕가는 주전 586년 유다 왕국의 멸망과 동시에 영원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 이후의 역사에 있어서 다윗의 가문에서 유다의 왕이 탄생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세 차례나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여호와의 말씀이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전 561년에 제국의 수도인 바벨론에서 감옥살이를 하고 있던 여호야긴 왕이 석방이 되고 명목적인 신원회복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왕가는 아니지만 다윗의 가문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열왕기하의 말미와 동일하게 기록이 되고 있는 선지서 예레미야의 마지막 언급입니다.
그 의미는 한마디로, 이 세상의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을 담고 있는 다윗의 왕가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게 되는 다윗의 가문이 세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민사상에 따른 다윗제국의 재건이 아니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새 언약’의 시대가 다윗가문에 등재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이 된다고 하는 하나의 예언적인 표적입니다(요2:18-22).
그러므로 아무쪼록 선지서 예레미야의 결론을 깊이 묵상하시고 복음에 대한 또다른 깨달음을 얻어 자신과 자신의 가문의 삶에 적용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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