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강해 제280강(렘52:7-1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9년 2월 26일(화)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과 함께 어떠한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고 마는가?(렘52:7-11)
다윗왕조 유다 왕국의 멸망의 모습이 그들의 역사서 열왕기하 제25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참으로 비참합니다. 그 사실을 선지자 예레미야는 본문에서 먼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고관들 그리고 왕자들이 어떠한 비극을 맞이하고 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렘52:7-11).
예레미야가 역사서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유다 왕국 멸망의 이야기를 그의 선지서에 두차례나 동시에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실제로 역사 가운데 그대로 성취가 되는 것이기에 그 두려움을 알고서 부디 그의 동족들을 비롯한 세상사람들이 하나같이 여호와신앙인으로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감으로써 영원한 구원을 얻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렘52:1-16, 39:1-10, 왕하25:1-26, 대하36:11-21).
그러므로 여기서는 먼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선포가 된 유다 왕국의 멸망에 관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의 요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역사적인 성취에 대해서는 본문의 구절연구에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선민 유대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여호와의 말씀의 뜻을 어기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끝까지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다윗왕조와 유다 왕국의 말로가 다음과 같이 비참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1) 첫째로, 다윗왕조가 망하고 다시는 재건이 되지 못한다는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수차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 하시니라”(렘22:30),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렘33: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렘36:30). 그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베론제국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면 다시는 다윗의 가문에서 유다의 왕이 탄생하지를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렘25:7-11). 그것은 신바벨론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유다의 왕자들이 모두 살해를 당하고 만다는 사실을 미리 말하고 있습니다(렘22:30, 33:26, 52:10a).
2) 둘째, 다윗왕조가 외세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면 선왕들의 무덤이 파헤쳐지고 그 시신이 힌놈의 골짜기에 던져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여호야김 왕의 경우를 가지고 그와 같은 사실을 예언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렘36:30).
(2) 둘째로, 유다 왕 시드기야의 비참한 말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이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후에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과 백성과 및 이 성읍에서 전염병과 칼과 기근에서 남은 자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칼날로 그들을 치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렘21:7), “이는 그가 예언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 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렘32:3-5), “왕이 바벨론의 왕의 손에 넘겨지리이다”(렘37:17),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의 왕의 고관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렘38:18).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1) 첫째, 시드기야 왕이 도망을 치지만 갈대아 군대에게 체포가 되어 느부갓네살 황제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2) 둘째, 그는 무자비한 처벌을 받은 후에 바벨론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셋째로, 유다 왕국의 고관들과 제사장들과 거짓선지자들의 말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렘5:29-3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유다의 왕 시드기야와 그 고관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세상 모든 나라 가운데 흩어서 그들에게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에게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그들 가운데 보내 그들이 내가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렘24:8-10),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너희 눈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렘29:21), “또 내가 유다의 시드기야 왕과 그의 고관들을 그의 원수의 손과 그의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넘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 성읍에 다시 오게 하리니, 그들이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 내가 유다의 성읍들을 주민이 없어 처참한 황무지가 되게 하리라”(렘34:21-22). 요컨대, 유다의 고관들과 거짓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느부갓네살 황제의 갈대아 군대에 의하여 많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을 통하여 그 깊은 의미와 메시지를 다음과 같이 파악해봅니다;
첫째로,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렘52:7-8);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 성벽이 파괴되매, 모든 군사가 밤중에 그 성에서 나가 두 성벽 사이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렘52:7a); 주전 586년 여름에 예루살렘성이 여호와의 재앙으로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려서 더 이상 유다의 군대가 성을 방어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하고 맙니다. 방어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갈대아 군대가 예루살렘의 바깥 성벽을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유다의 모든 군사들이 예루살렘성을 버리고 밤중에 탈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은밀하게 빠져나가고 있는 코스가 다윗성의 성벽과 예루살렘성의 성벽이 만나고 있는 그곳 왕의 동산입니다. 그곳은 수풀이 우거져 있으며 작은 쪽문이 있어서 어두운 밤중이면 은밀하게 탈출이 가능합니다. 그 장소는 예루살렘성의 동쪽과 남쪽이 만나고 있는 지점입니다. 그곳 비탈을 내려가게 되면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만나고 있는 동남쪽으로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면 사해로 통하는 아라바 계곡 길입니다. 그리고 북상을 하면 여리고로 가는 길입니다.
(2) “갈대아인들이 그 성읍을 에워쌌으므로 그들이 아라바 길로 가더니, 갈대아 군대가 그 왕을 뒤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서”(렘52:7b-8a);
1) 그동안 예루살렘성을 지키던 유다의 군사들이 은밀하게 야음(夜陰)을 틈타 남동쪽 비탈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가 만나는 장소에 모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시드기야 왕과 그의 근위대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성을 공격하기 위하여 그 주변의 성읍에 주둔하고 있는 갈대아 군대에게 그만 유다의 병사들의 움직임이 발각이 됩니다.
2) 유다의 군대는 정신없이 아라바로 가는 길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시드기야 왕과 그의 근위대는 적들의 의표를 찔러 그 반대로 북쪽으로 돌아 여리고로 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적들이 속지를 않습니다.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게 시드기야 왕을 찾아냅니다. 왜냐하면, 많은 유다의 근위병들이 적극 호위하고 있는 그 자가 바로 유다 왕 시드기야이기 때문입니다.
(3) “시드기야를 따라 잡으매,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렘52:8b); 도저히 갈대아 군대의 추격을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아직 여리고가 나타나지도 아니하고 있는데 그 길에서 시드기야 왕의 꼬리가 적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것을 보고서 근위대가 제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 그 광경은 훗날 두가지의 사실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바로 그 길에서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탄생하고 있습니다(눅10:30-36). ②또 하나는, 왕을 잡게 되면 그 부하들은 제 살길을 찾아 도망을 치고 맙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체포를 당하시자 인간적으로 큰소리를 치던 그 제자들이 별수없이 뿔뿔이 흩어진 것과 같습니다(막14:27, 50).
둘째로,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렘52:9);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그들이 왕을 사로잡아 그를 하맛 땅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렘52:9a);
1) 주전 588년부터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는 반(反) 바벨론 동맹에 참여하고 있는 유다 왕국은 물론 그 주변의 여러 왕국들을 일시에 공격하고 있습니다(렘52:4, 39:1, 왕하25:1). 애굽의 바로가 육군과 해군을 동원하여 배후를 공격하자 느부갓네살 황제는 세(勢) 불리를 깨닫고 작전상 일년간 시리아로 후퇴합니다(렘37:5, 11). 따라서 바로가 애굽의 국내문제해결이 급하여 군대를 몰고 돌아가자 다시 재침을 합니다(렘37:7-10, 52:5, 39:2).
2) 역시 두로와 시돈, 모압과 암몬, 에돔과 유다 왕국을 한꺼번에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느부갓네살 황제는 갈대아 군대의 ‘총본영’(總本營)을 하맛 땅에 있는 ‘리블라’(또는 ‘립나’, 왕하25:6)에 두고 있습니다(렘52:9a). 그곳이 페니키아와 요르단 그리고 유다 왕국의 전황을 동시에 꿰뚫어볼 수 있는 요충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리고 부근에서 시드기야 왕을 체포한 갈대아 군대가 그를 압송하여 황제가 있는 ‘리블라’로 끌고 간 것입니다(렘52:9a).
(2) “그가 시드기야를 심문하니라”(렘52:9b); 신바벨론제국의 황제 느부갓네살이 패망한 유다의 왕 시드기야를 직접 심문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친국(親鞫)입니다. 황제가 친히 패전국의 왕을 문초하고 있는 자리이므로 그 고문과 신문(訊問)이 극악합니다(렘52:9b). 그것은 깨끗하게 죽는 것보다 못한 모욕이며 절망적인 자리입니다. 그와 같은 비참한 국면에 시드기야 왕이 처하게 되는 이유는 끝까지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세상적인 힘의 논리에 따라서 국가정책을 결정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광경은 훗날 부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하나의 예표와 같습니다(요5:27-29). 영생이냐 영벌이냐를 판가름하는 그 자리는 시드기야 왕이 당한 그 심문의 자리보다 더욱 준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마10:28, 25:45-46).
셋째로,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렘52:10-11);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앞에서 죽이고”(렘52:10a); 신바벨제국의 황제인 느부갓네살은 다윗왕조 유다 왕국을 지상에서 소멸시키고자 합니다. 그 방법이 다윗의 왕가를 끝장을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왕 시드기야의 아들들이 왕국을 재건하는 부흥운동을 아예 할 수 없도록 그 자리에서 처형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왕가의 혈통이 끊어지는 광경을 시드기야 왕이 지켜보게 됩니다(렘52:10a). 그것은 자신의 죽음보다 더욱 절통한 일입니다. 그와 같은 고통의 날이 여호와의 보응으로 임하게 될 것이라고 진작부터 여호와께서 예언하십니다;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렘33:26). 그와 달리 유다의 공주들은 죽이지 아니하고 미스바에 있는 총독부에서 살도록 황제가 조치하고 있습니다(렘41:10).
(2) “또 리블라에서 유다의 모든 고관을 죽이며”(렘52:10b); 유다 왕국의 신하들은 다수파가 친(親) 애굽이며 바벨론과 전쟁을 하자는 소위 ‘주전파’(主戰派)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성이 함락이 되자 체포가 되어 리블라에서 처형을 당합니다(렘52:10b). 반면에 유다 왕국의 신하 가운데 비록 소수이지만 친(親) 바벨론 파가 있습니다. 그들은 ‘주화파’(主和派)이므로 처형을 면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을 점령한 갈대아 군대가 주화파를 지지하고 있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황명으로 석방조치한 것과 같습니다(렘39:11-14). 그리고 역시 주화파인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느부갓네살 황제에 의하여 유다 총독으로 임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렘39:14, 40:5, 26:24).
(3)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놋사슬로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 왕이 그를 바벨론으로 끌고가서 그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더라”(렘52:11);
1) 시드기야 왕은 참형보다 더 못한 참으로 고통스러운 악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극악한 평생 고문의 방법이 다음과 같습니다(렘52:11); ①첫째, 생으로 두 눈을 뽑히어 이 세상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고 맙니다. ②둘째, 두 눈이 뽑힌 고통을 치유하여 주지 아니한 채 온 몸을 놋으로 만들 사슬로 칭칭 결박합니다. ③셋째, 그 먼 제국의 수도 바벨론까지 끌려가서 평생 감옥살이를 하다가 죽고 맙니다.
2) 참으로 잔인한 느부갓네살 황제의 조치입니다. 그것은 다음 두가지 사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①하나는, 철옹성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수많은 갈대아 군사가 희생이 되었으므로 그 원한을 정치적으로 풀어 주기 위하여 취하고 있는 느부갓네살 황제의 일종의 통치술입니다. ②또 하나는,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우상을 섬기며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왕국을 경영하게 되면 그러한 처참한 종말을 맞이하고 만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가정적으로 엄청난 비극을 당한 욥의 경우보다 유다 왕 시드기야의 경우가 더욱 비참합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왕은 그 왕관의 무게만큼 그 책임이 막중하기 때문에 그가 여호와 앞에 큰 죄악을 범하였을 경우에는 여호와의 징벌이 그만큼 엄중한 것입니다.
특히 창조주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신정국가의 왕과 고관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모범을 백성들에게 보여야만 합니다. 그러하지 못한 경우에는 일벌백계로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징계로 말미암아 그 나라가 망하고 본인들은 참혹한 죽임을 면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명심하고서 아무쪼록 여호와 앞에 똑바로 서서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전파의 역사적인 사명을 끝까지 실천하시는 성도님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살롬!
(예루살렘성과 그 주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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