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수의 7일 기록19(손진길 소설)
7. 제6일의 기록
2022년 9월 29일 목요일 아침에 쌍둥이 형 고현수의 메시지가 고범수의 핸드폰으로 예약송달이 되고 있다. 고범수는 자신이 미국을 방문한 기간동안 매 4일마다 전송이 되어오던 형의 메시지가 금번에는 조금 늦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지난번에 고범수가 핸드폰으로 받은 형의 메시지 ‘제5일의 기록’이 미국시간으로 9월 23일 금요일에 예약송달이 되었으므로 본래의 간격 매 4일에 비추어보면 미국시간으로 금번의 메시지는 9월 27일 화요일이 전송되어 오는 것이 맞다. 그런데 미국시간으로 보더라도, 하루가 늦은 9월 28일 수요일이다.
금번의 메시지는 고범수가 미국이 아니고 한국에서 받았다. 그러므로 미국과 한국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하루의 시차를 반영하면 자연히 오늘 9월 29일 목요일이다;
어쨌든 하루가 늦어 이번에는 5일만에 수령한 것이다. ‘어째서 하루가 늦어진 것일까?’…
그 점을 사색하다가 고범수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
(1) 형이 미국 애틀랜타에서 실종이 된 시점이 8월 15일이다. 자신의 운신이 어려워지자 형은 쌍둥이 동생인 나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쉽게 풀이할 수가 없는 메시지를 만들어 4일 간격으로 수차례 그것도 예약제로 나의 핸드폰으로 보낸 것이다.
(2) 그러다가 금번 ‘제6일의 기록’이라는 여섯 번째의 메시지를 만들어 예약제로 전송할 때에는 무엇인가 신상의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하루가 늦어진 것이다. 그 신상의 변화가 무엇일까? 자세한 것은 나중에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만 당장은 다음번의 메시지가 더 늦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가 없다.
천재인 고현수 변호사의 쌍둥이 동생인 고범수의 추론이 상당히 정확하다. 행시 출신으로 3년전에 정부에서 오래 차관보를 지내고 명예퇴직한 고범수 역시 수재이기 때문이다. 그가 예측한대로 마지막 메시지에 속하는 ‘제7일의 기록’이 실제로 그의 핸드폰으로 전송이 되어온 것은 아주 늦게 10월 10일인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가 금방 받은 메시지의 내용이 중요하다. 다행히 그 내용은 아주 알기 쉽게 기술되어 있다. ‘제6일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작성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1) 나는 구약성경이 말하고 있는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들이 자랑하고 있는 다윗왕조의 유다왕국은 역사적으로 주전 586년 신바벨론제국의 갈대아군대에 의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이후 다윗의 왕손이 조상인 다윗처럼 선민의 제국을 재건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이 독특한 ‘메시아사상’과 ‘시오니즘’을 가지고 있다. 신위적인 능력을 가진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 가운데 탄생할 것이며 그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선민의 제국을 재건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Back to Jerusalem)이 ‘시오니즘’의 핵심이다;
(2) 세계 제1차 대전 당시에 시오니즘으로 뭉친 유대인들이 조상들의 땅 가나안에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대영제국에 청원하기 시작한다. 독일과의 유럽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영국으로서는 머리가 좋고 부자인 유대인들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긍정적이다. 특히 폭탄의 질을 높이는데 소용이 되는 순도가 높은 화합물 곧 순수 ‘아세톤’을 만들어낸 유대인 화학자의 기여가 결정적이다. 당시의 영국수상이 호의적이고 구체적으로 외무장관 벨 푸어가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들이 이스라엘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그만 흐지부지되고 만다.
(3) 세계 제2차 대전이 발생하자 다시 한번 유대인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 유럽에서 자신들을 박해하는 나치에 대항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이 미국을 전장에 끌어들인 영국에 적극 협조한 것이다. 그리고 끈기 있게 영국정부와 요인들을 설득한다. 마침내 대영제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땅을 유대인에게 준다. 전후에 영국은 오늘날까지 그것이 굉장히 큰 외교적인 부담을 가지고 추진한 정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은 절반만 맞는 논리이다. 왜냐하면 그 후의 정치 외교적인 부담은 전부 영국의 패권을 이어받은 미국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후에 국제연합의 지지를 얻어 유대인들은 1948년 5월에 조상들의 고토인 팔레스타인에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기적적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4) 그렇다면 19세기말과 20세기에 ‘시오니즘’으로 뭉친 그들 유대인들이 바로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가 아닌가!... 나는 21세기에 한국사람들이 조상들의 땅을 수복하는 인물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양에 머리가 좋은 유대인들이 있다고 하면 동양에는 한민족이 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고대에 사라진 다윗의 제국을 현대에 재건하였다고 하면 우리 한민족도 사라진 선조들의 제국을 오늘날 21세기에 재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일에 일조를 하고자 한다. 설혹 그 때문에 내가 도망자 신세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일을 성사시키고 싶다.
(5) 나는 동지들을 모아 미국의 ‘PAPA’처럼 한민족의 ‘ROKPA’를 만들고자 한다. 파파가 원하는 것을 주는 대신에 우리 락파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고 싶다. 그것은 세가지 보장을 받는 것이다; 첫째, 한민족에 의한 한반도 통일이다. 그 일에 파파의 미국이 협조해야 한다. 둘째, 한민족연방이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보유하는 것을 인정받는 것이다. 셋째, 조상인 고구려와 발해가 보유했던 영토를 한민족이 수복하는 것에 대한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와 같은 메시지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고범수가 인터넷으로 관련자료들을 검색한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유용한 내용의 자료들을 찾아서 그 내용을 읽어보게 된다;
첫째로, 김차식 기자의 글이다. 그 주요내용이 다음과 같다; “세계 제1차 대전 당시 영국의 포탄보다 독일의 포탄이 훨씬 멀리 날아간다. 그 이유가 포탄제조에 사용되는 아세톤의 순도의 차이 때문이다. 그때 유대인 하임 바이츠만의 연구가 주목을 받게 된다. 그가 손쉽게 고순도의 아세톤을 추출하는 방법을 알아낸 화학자이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의 수상 로이드 조지와 외무장관 벨 푸어가 유공자 바이츠만에게 감사의 선물을 주고자 한다. 바이츠만은 조상들의 땅 가나안을 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그 땅에 살고 있는 아랍인과 팔레스틴 원주민을 몰아내는 일이 정치외교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다. 그 대신에 아프리카 우간다의 땅을 제시한다. 그러나 바이츠만은 그것을 거절한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이 얻는 것을 지지한다’는 벨 푸어 선언이 나타나지만 전후에 실현이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바이츠만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지속적으로 영국정부와 유력인사들을 설득한다. 끈질긴 설득의 결과 UN의 지지를 얻어 1948년 5월에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건국이 되는 것이다. 바이츠만이 최초의 대통령이 된다”;
둘째로, 이정권 목사의 글이다. 그 주요내용이 다음과 같다; “19세기말 시오니즘에 호의적이었던 유대인들은 가난한 서민 계층이었기에, 19세기말에 헤르쯜은 재정적 부담과 1차 시오니즘 회의 참가자들의 경비를 사비로 충당했다. 그는 50년 후에 이스라엘 국가 탄생을 예언했는데 그것이 정확히 52년 후인 1948년에 이뤄졌다. 이스라엘에서는 다비드 벤구리온(초대 총리), 하임 바이쯔만(초대 대통령)과 함께 국부로 칭송되고 있다. 테오도르 헤르쯜(Theodor Herzl, 1860–1904)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한 유대인이며, 은행가로 백만장자가 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아버지가 파산할 때에 석유 상인인 대부호의 딸과 결혼한다. 신문 기자 겸 작가로 활동하다가 파리에 특파원으로 가게 되어, 드레퓌스 사건을 목격하고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아무리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유럽인들 속에 동화되어 살아간다 해도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직시하며, 유대인에게도 조국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해결책은 ‘유대국가의 창설 외에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헤르쯜은 1896년 2월, 《유대 국가: 유대인 문제의 현대적 해결 시도》 라는 책을 펴내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고 시오니즘의 정치적 지도자가 된다. 1897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시오니즘 세계대회는 그의 노력의 결실이며 그 대회에서 ‘팔레스타인에 국제법으로 보장되는 유대인의 조국을 건설한다’는 선언이 나왔다”;
셋째로, 신문은 선생의 글이다. 그 주요내용이 다음과 같다; “지금까지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갖고 있던 사람은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Ben-Gurion·1886 ~1973)이다. 그는 13년 5개월 동안 총리로 있었다. 오늘날 이스라엘 텔아비브 국제공항은 '벤구리온 공항'이라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시리아 접경에 있는 골란고원을 점령할 때 동원한 탱크도 '벤구리온 탱크'이다.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는 그의 이름을 딴 '벤구리온 대학'도 있다. 벤구리온은 1886년에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14살 때 벌써 '시오니즘' 운동에 동참한다. 벤구리온은 바르샤바 대학에 다니던 1906년에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다. 그는 동료와 함께 물길을 잇고 땅을 개간했다. 유대인 손으로 유대인이 살아갈 땅을 개척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벤구리온은 1948년 5월 14일 텔아비브에서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고 초대 총리 겸 국방장관으로 헌신한다;
그는 건국 이튿날부터 시작이 된 아랍과의 중동전쟁을 9개월만에 승리로 이끌고 1954년 1월에 총리직을 떠나 남부 네게브 사막에 들어간다. 사막을 개척해야 이스라엘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1955년부터 1963년까지 다시 총리직을 지내고 완전히 은퇴하여 네게브 땅으로 되돌아 간다. 그의 끈질긴 집념과 신념은 오늘날까지 현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그 다음에 고범수는 어떠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쌍둥이 형 고현수는 어떻게 미국을 탈출하여 언제 한국에 돌아오게 되는 것일까? 고현수의 마지막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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