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5강(눅22:47-7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6. 21:33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5(22:47-71)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315()

 

1.    한밤중에 겟네마네 동산으로 예수님 체포조가 은밀하게 올라오고 있는데 그 앞잡이가 가룟 유다임(22:47). 그날 밤 가룟 유다가 수행하고 있는 임무는 무엇인가?(22:48)

(1)  유대교지도자들이 계획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 체포작전의 특징(22:46-47);

1)    ①첫째, 나사렛 예수의 예루살렘성전에서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참여와 지지도가 상당한 것임(20:1). ②둘째, 유월절 기간이므로 국내외에서 몰려든 인파들이 예수님의 복음활동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음(20:19, 11:55-57, 12:12-13, 20-21). ③셋째, 따라서 대중들의 시각에서부터 예수님을 분리하여 은밀하고도 기습적으로 체포하는 것이 체포작전의 특징임.

2)    유대교지도자들이 처음에는 순례객들이 예루살렘에 많이 머물고 있는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을 넘긴 다음에 나사렛 예수의 체포를 감행하려고 했지만(26:3-5) 내부고발자 가룟 유다가 적극 협력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므로 그 계획을 수정하고 있는 것임(26:14-16, 22:1-5). 그렇지만 은밀하고도 신속하게 체포를 함으로써 백성들이 눈치를 채지 못하게 작전을 실행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한 관건임(22:6).

3)    그에 따라 예수님이 습관을 따라 한밤중에 기도를 하고 있는 감람산으로 체포조가 출동하고 있으며(22:46) 그것도 그 은밀한 장소를 알고 있는 가룟 유다가 자진하여 앞장을 서서 안내를 하고 있는 것임(22:47).

4)    그러한 모습을 정확한 기록으로 의사 누가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는 것임;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12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22:46-47).

(2)  그날 밤 가룟 유다가 수행하고 있는 임무(22:48);

1)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22:48); 먼저 배경설명부터 해보면 다움과 같음; ①첫째,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복음사역을 하시는 경우 낮에는 그곳 성전에서 복음사역을 하시지만 저녁이 되면 동쪽 성문으로 나가셔서 감람 산 남쪽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는 베다니의 민박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계심.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대표적인 소비도시로서 물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임.

2)    ②둘째, 낮 동안에는 선민 유대인의 많은 무리가 말씀사역과 치유사역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 일행을 에워싸고 있으며 저녁에는 베다니 민박집 근처에 많은 사람들이 역시 몰려 들고 있는 것임.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못 고치는 질병이나 장애가 없으신 능력자이시기 때문임. ③셋째, 예수님께서 유일하게 극소수의 수행사도들과 함께 은밀하게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고 있는 장소가 밤중에 기도를 하시는 처소인 감람 산 깊은 곳임. 그러므로 체포조가 그쪽으로 한밤중에 찾아올 수밖에 없는 것임.

3)    그런데 문제는 선민 유대사회에서 30세가 되면 누구나 수염을 기르고 있으므로 그 용모가 서로 비슷하다는 것임. 한밤중에 은밀한 곳에서 사도들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용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체포의 성공을 기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 그에 따라 가룟 유다가 맡고 있는 역할은 두가지임; ①하나는, 예수님의 기도의 현장까지 체포팀을 안내하는 것임(22:47). ②또 하나는, 현장에서 누가 예수님인지를 꼭 집어주는 역할마저 가룟 유다가 맡고 있는 것임.

4)    그러한 입장에서 마치 창세기 제3장에서 마귀의 화신인 뱀이 아담부부에게 다가오듯이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그토록 친밀하게 다가 와서 입을 맞추고자 하고 있음(22:48a). 그것은 체포팀에게 그자가 바로 나사렛 예수임을 알려주고 있는 교묘한 신호라고 하겠음. 그 음모를 이미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음;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22:48b).

 

2.    예수님의 사도들 가운데 2자루의 검이 있다고 한다면 어느 사도들이 휴대하고 있는가?(22:38, 49) 그 검을 휘두르고 있는 사도가 누구이며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정당방위를 못하게 하시는가?(22:50-51, 26:52-54)

(1)  예수님을 지키기 위한 사도들의 검 2자루(22:38, 49, 12:1-2);

1)    첫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육신적으로 함께 복음사역을 하는 경우에는 전도여행에 나서는 사도와 제자들이 검을 가지지 아니한 채 간편한 차림으로 여행에 나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심(9:3, 10:4, 22:35).

2)    둘째, 하지만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신 다음에는 달리 말씀을 하심. 여행경비와 옷가지도 충분히 챙기고 가능하면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검도 지니고 가라는 것임(22:36).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유대교에 대한 반대자로 처형이 되고 나면 국내외 유대교 사회에서 예수님의 사도와 제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비우호적으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임(22:37).

3)    셋째, 그 말씀에 따라 당장에 예수님을 지킬 수 있는 사도들의 검이 필요함. 그 검이 2자루인데(22:38) 예수님을 끝까지 수행하게 되는 3인의 수행 사도 곧 베드로와 야고보 형제가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임(22:49-50). 먼저, 베드로가 그 검을 휘두르고 있는 장면을 사도 요한이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음;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18:10).

4)    사도 야고보는 예수님의 신변을 지키는 수행사도의 한 사람이지만 베드로처럼 그 자리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검을 빼어 대항하지를 못하고 있음. 그때부터 사도 야고보는 대장부답지 못한 자신의 처신을 부끄러워한 것으로 보임. 따라서 10여년이 지난 다음에 예루살렘교회를 헤롯 아그립바1세가 탄압을 할 때에 칼로 맞서고 있다고 하겠음. 그 결과 사도 야고보가 칼부림 끝에 중과부적(衆寡不敵, 적은 무리로 큰 무리를 당할 수가 없다는 것)으로 상대방의 칼에 죽임을 당한 것으로 의사 누가에 의하여 기록이 되고 있음(12:1-2).

(2)  베드로의 행동을 제어하시는 예수님의 뜻(22:50-51, 26:52-54, 18:10-11);

1)    그의 주위 사람들이 그 된 일을 보고 여짜오되,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쪽 귀를 떨어뜨린진라. 예수깨서 일러 이르시되,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22:49-51);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음;

2)    ①첫째, 수행사도 3인 가운데 검을 지니고 있는 베드로와 야고보가 예수님께 칼을 빼어 대항을 할까요? 라고 묻고 있음(22:49). ②둘째, 예수님께서 참으라고 대답을 하시기도 전에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벌써 검을 빼어 기습적으로 전임 대제사장 안나스의 종의 귀를 베어버리고 있음(22:50, 18:10, 12-13, 26). ③셋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참으라 하시고 그 떨어진 귀를 주워 종 말고의 귀에 붙이시고 온전히 낫도록 치유해주신 것임(22:51, 18:11).

3)    사도와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성도들에게 우호적이지 아니한 세상에 대하여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검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신데 어째서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유대교지도자들이 보낸 체포조에게 대항하지를 말라고 지시하시는 것일까요? 그 답은 다 선지자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26:56),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18:11)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 있음. 한 마디로, 저항하지 아니하고 순순히 끌려가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길이라고 하는 것임(24:44-48).

 

3.    사도 베드로에게 주시는 충격적인 예수님의 교훈과 치유의 능력은 훗날 어떠한 사건으로 연결이 되며(22:54-62, 18:17, 25-27) 또한 베드로의 저술에 있어서 어떠한 교훈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벧전3:17-18, 4:16)

(1)  베드로가 휘두른 칼에 상처를 입은 말고의 친지들의 증언(22:56-62, 18:17, 26);

1)    유대교의 실세는 전 전임 대제사장인 안나스임(18:12-13a). 그의 사위가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임(18:13b). 안나스는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자신의 종인 말고까지 현지에 급파한 인물임(18:10). 그러므로 체포팀은 예수님을 구인(拘引, 구속하여 끌고 감)하여 안나스의 저택으로 그 밤에 끌고 간 것임(18:12-13).

2)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아니라 안나스가 자신의 종을 예수님 체포를 위하여 파견하고 있으며 또한 안나스 자신이 그 밤에 예수님을 심문한 행위는 전적으로 불법임(18:10, 13, 19-23). 그러므로 안나스가 나중에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예수님을 인도하고 있는 것임(18:24).

3)    그런데 문제는 베드로가 요한의 안내로 안나스의 저택에 들어가서 뜰의 불을 쬐면서 안채의 예수님이 안나스의 심문을 받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는 동안에 그 집의 종들이 베드로의 인상착의를 알아보고 있다는 것임. 그 이유는 그 집의 남종들 가운데 말고와 함께 그날 밤에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출동한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임. 그들은 3차례에 걸쳐서 베드로의 용모를 알아보고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22:56-60, 18:17, 25, 26).

4)    베드로는 그 자리를 모면하고자 2차례 부인하고 있으며(26:59-72) 3번째에는 아예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그 집을 도망치듯이 벗어나고 있는 것임(26:74-75, 22:62). 베드로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서 스승이신 예수님을 저주하고서 그 집을 빠져나오고자 애를 쓰고 있을 때에 새벽 닭이 울고 있음(22:60). 그리고 안채에서 안나스의 심문을 받고 계시던 예수님께서 고개를 바깥으로 돌려서 베드로를 응시하고 계심(22:61). 그 광경을 보고서 베드로는 모골이 송연하여 바깥으로 도망쳐 나와 예수님의 예언을 생각하면서 목을 놓아 엉엉 울고 있는 것임(22:34, 61-62).

(2)  네로 황제의 교회탄압에 대하여 성도들에게 인내할 것을 권면하고 있는 베드로(벧전2:12, 3:17-18, 벧후3:9);

1)    로마의 제5대 황제인 네로가 주후 647월 로마시내에서 대화재가 발생하자 그 책임을 신흥 기독교인들의 소행이라고 전가(轉嫁)시키고 있음. 그 때문에 악화된 민심을 등에 업고서 네로 황제가 초대교회에 대한 핍박과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를 실시한 것임.

2)    그렇게 터무니 없는 억울한 모함을 받게 된 성도들 가운데에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로마에 대항하는 한편 네로를 처단하고자 하는 결사항쟁의 움직임이 나타하고 있음. 그때 초대교회의 지도자인 사도 베드로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성도들에게 선한 인내와 믿음의 열매를 강조하고 있는 것임.

3)    참고로, 그와 같은 내용이 그의 유언과 같은 구술서신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음;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3:17-18),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4)    요컨대, 그 옛날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처럼 초대교회의 성도들도 로마황제를 미워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대속의 희생의 제물로 바치라는 것임. 그리하면 이방인의 제국 로마마저 악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도 베드로의 예언의 말씀임. 그렇게 자신을 순교의 제물로 바친 베드로이기에 300년이 지나지 아니하여 로마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이 되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것임.

 

4.    그날 밤 예수님 체포조의 구성원들이 어떠하며(22:52) 그들이 예수님을 체포할 수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22:53)

(1)  그날 밤 예수님 체포조의 구성원들이 어떠한가?(22:52)

1)    예수께서 그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왔느냐?”(22:52); 여기서 엿볼 수 있는 예수님 긴급 체포조의 구성원이 다음과 같음; ①첫째, 대제사장들임. ②둘째, 성전의 경비대장들임. ③셋째, 장로들임. ④넷째, 검과 몽치와 같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 그들의 수하들임. 조금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음;

2)    첫째, 대제사장들은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와 전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를 말하고 있음(18:13). 현직 대제사장인 가야바는 산헤드린 대공회를 소집하고 그 의장이 되고 있으므로 그의 행보는 공식적인 것으로 볼 수 있음(11:49-51).  하지만 전 전직 대제사장에 불과한 안나스는 그것이 아님. 그가 체포조를 끌고 왔으며 현직 대제사장에 앞서 먼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끌고가서 심문한 것은 명백하게 불법이라고 하겠음(18:12-13, 19).

3)    둘째, 성전의 경비대장들은 대제사장이나 산헤드린 대공회의 소속이 아니고 로마총독부의 소속임. 로마총독은 4명의 천부장을 두고 있는데 평소에는 1명의 천부장으로 하여금 그 부하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주둔하도록 하고 있음. 그 천부장은 2-3명의 백부장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성전의 경비를 맡도록 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런데 성전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산헤드린 대공회와 로마인 백부장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돈독한 것임. 따라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요청에 의하여 백부장들이 수하를 이끌고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에 참여하고 있는 것임.

4)    셋째, 장로들은 사두개인의 대표로서 산헤드린 대공회원이 되고 있는 자들임. 그들은 대제사장의 지지세력이라고 하겠음.

5)    넷째, 무장한 수하들은 예루살렘성전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로마의 백부장들이 끌고 온 부하들 그리고 유대교의 실세인 안나스가 개인적으로 끌고 온 집안의 종들로 구성이 되어 있음. 그들이 무장을 하고서 상관들과 주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임.  

(2)  그들이 예수님을 체포할 수 있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22:53)

1)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 하시더라”(22:53); 다음과 같이 풀이를 해보고자 함;

2)    첫째, 이 세상이 완전하게 어두움과 죽음의 영들에게 사로잡힌 적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당하신 그 3일 동안일 것임. 그렇다면 생명의 하나님께서는 어째서 그 영적으로 절대 암흑의 3일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3)    죄와 사망의 권세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는 인류는 그 대속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의 죽음이라는 희생이 없이는 도저히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임. 따라서 모든 인류의 죄와 사망의 짐을 지시고 예수님께서 완전한 대속의 죽음으로 들어가시는 그 절차가 반드시 이 세상에서 역사 가운데 현실적으로 실현이 되어야만 하는 것임.

4)    둘째, 그와 같은 의미에서 인간의 죄와 사망을 지배하고 있는 어두운 악한 영들이(8:2) 대속의 제물인 예수님을 체포하고 정죄하며 처형하게 되는 금요일을 포함하여 그를 음부의 세계에 완전히 가두어 버리는 3일간의 암흑이 이제 역사적으로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임(22:53). 3일의 기간이야 말로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죽음의 기간임(6:4). 따라서 그러한 사실을 예수님께서 정확하게 본문 제53절에서 지적하고 계신다고 하겠음.

 

5.    의사 누가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사도 베드로의 예수님 부인사건은 어째서 4복음서에 두루 기록이 되고 있는가?(22:54-62, 26:57-58, 14:53-54, 66-72, 18:12-18, 25-27)

(1)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굳게 맹세한(22:33) 자신의 약속을 어기고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베드로가 어떻게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있는가?(22:54-62, 26:57-58, 14:53-54, 18:12-18, 25-27)

1)    사람마다 자신의 가장 깊숙한 치부를 가리고 싶어함. 그것은 시몬 베드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임. 그러나 베드로의 장점은 대장부답게 그 치부를 드러내고 철저하게 회개를 하고 있다는 것임.

2)    그 증거로써 베드로는 사도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한 중죄인(重罪人, 죄가 무거운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을 눈물로 회개한 것임. 그러므로 복음서의 4저자는 한결같이 시몬 베드로가 어떻게 안나스의 저택의 뜰에 들어가서 그 종들의 추궁에 자신은 예수님의 일행이 아니라고 3번이나 부인을 했는지 그 내밀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는 것임(22:54-62, 26:57-58, 14:53-54, 18:12-18, 25-27).

3)    만약 그날 밤의 일을 시몬 베드로가 숨기겠다고 작심을 했다고 하면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도 요한의 협조를 얻어서 영원히 비밀로 묻어버릴 수도 있었을 것임(18:15-16). 요한이 그 사실을 떠벌리지 아니했을 것이며 주님께서도 부활하신 다음에 그러한 베드로의 비리를 폭로하실 성품이 전혀 아니신 것임(20:19-21).

4)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지 아니함. 자신이 얼마나 맹세를 저버리고 제 살길만을 도모하였는지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를 헌신짝같이 저버렸는지를 뼈아프게 후회를 하고 있음. 그 결과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그리고 주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는 제자들의 모임에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또한 회개를 한 바가 있다고 하겠음.  

(2)  철저한 회개를 한 사도 베드로가 목자의 임명을 먼저 받고(21:15-19), 초대교회 건설에 앞장을 서다(1:15-26, 2:14-42);

1)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앞장서서 회개를 하고 있는 시몬 베드로의 대장부다운 모습이 인상적임. 그래서 그런지 부활하신 주님께서 갈릴리 호수로 사도들을 찾아오셔서 시몬 베드로에게 제일 먼저 목자 발령을 내고 계시는 것임(21:15-19).

2)    주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아니하고 예수님의 승천 다음에 성도들이 모인 예루살렘의 기도모임에서 사도 베드로는 가룟 유다 대신에 새로운 사도를 세우는 일에 앞장을 서고 있음(1:15-26).

3)    특히 오순절날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120명의 성도들에게 일제히 임재하여 120개의 각각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 행하심에 대하여 증언하기를 시작하자(2:1-11) 사도 베드로는 히브리어로 그 내용을 설명한 것임(2:14-22).  

4)    그날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3천명의 선민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회개를 하고 기독교로 개종함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최초로 교회공동체가 성립이 된 것임(2:23-42).

(3)  베드로를 돌이켜 사도와 제자들을 굳게 하는 리더로 세우시는 주님의 뜻은 무엇인가?(22:31-32)

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2)    가룟 유다 다음에 사탄이 시몬 베드로를 유혹하여 쓰러뜨리고자 한 것은 예수님을 처형하고 나면 12사도들이 복음사역을 계승하게 되는데 그 일을 철저하기 와해하기 위한 것임(22:31).

3)    그렇지만 시몬 베드로를 실족하게 하는데 있어서 사탄은 성공하지를 못함.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의 리더로 시몬 베드로를 세워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초대교회의 역사가 발생할 수 있도록 사전에 조치를 취하시고 계시기 때문임.

4)    그 방법이 바로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도 불구하고 시몬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하도록 여호와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보내셔서 그의 믿음을 붙들어 달라고 간구하신 것임(22:32). 그 결과 초대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사도 베드로가 철저한 회개에 앞장을 섰으며 다른 사도와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복음사역을 하는 여호와의 종의 모범을 보이게 된 것임.   

 

6.    전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가 예수님을 체포하여 자신의 저택에서 심문하며 부하들을 시켜서 희롱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째서 불법행위인가?(22:54, 63-65, 18:12-13, 19-24)

(1)  비선실세(秘線實勢, 숨어 있는 권력의 장악자)인 안나스가 예수님 체포와 심문에 앞장을 서고 있음;

1)    첫째, 겟네마네 동산으로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하여 출동한 체포조의 지도자 가운데 전 전임 대제사장인 안나스의 이름이 들어 있음. 따라서 그 표현이 의사 누가에 의하여 대제사장들”(22:52)이라고 복수로 기록이 되고 있음.

2)    둘째, 무장을 하고서 예수님 체포조에 참여하고 있는 수하들 가운데 안나스 집의 하인들이 상당수 들어 있음. 그 가운데 한 사람 말고의 귀를 시몬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 떨어뜨린 바가 있기에 그날 밤 안나스의 저택의 뜰에서 많은 하인들이 베드로의 인상착의를 보고서 예수님과 한패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임(22:56, 58-59, 18:26).

3)    셋째, 예수님을 체포하였으면 현임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정식 심문을 하고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의결을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인데 그것을 무시하고 있음. 유대교의 막후실세인 안나스가 자신의 저택으로 예수를 구인하여 멋대로 먼저 심문하고 있는 것임(18:12-13, 19-24). 그리고 자신의 종들을 시켜서 예수님을 모욕하고 구타까지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임; “지키는 사람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며,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이 외에도 많은 말로 욕하더라”(22:63-65).

4)    넷째,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민의 대속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피조물인 인간들이 유대교리와 교권을 내세워서 함부로 체포하고 취조를 한다고 하는 것도 죄스러운 일인데 하물며 제도적인 권한도 없는 비선실세가 제멋대로 체포하고 구인하며 심문까지 자행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통탄할 노릇인 것임. 그것은 불법세력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저질러진 불법행위라고 하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하겠음.

(2)  안나스에게 휘둘리고 있는 대제사장 가야바와 산헤드린 대공회에 대하여;

1)    예수님 공생애 당시에는 현임 대제사장이 가야바이지만 그는 전 전임자인 장인 안나스의 비호를 받아서 유대교를 장악하고 있음. 그러므로 예수님을 체포하는데 있어서도 장인 안나스를 대동하고 그 집의 종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임.

2)    그러한 당시의 유대교의 현실을 복음서의 저자들은 하나같이 대제사장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하고 있음(26:3, 47, 14:1, 10, 22:2, 4, 52, 18:3). 그것은 가야바가 단일 대제사장인 당시의 제도적인 특징에 비추어 보게 되면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게 하고 있는 표현인 것임.

3)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그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당시에는 수제사장제도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것임. 그러나 그것은 공정한 법제도의 운영을 강조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입장에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힘의 논리라고 하겠음. 어디까지나 불법은 불법인 것임.

 

7.    날이 새자 마자 비상 산헤드린 대공회가 열리고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전격적으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는가?(22:66-71, 26:57-68)

(1)  날이 새자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어디로 끌어들이고 있는가?(22:66)

1)    날이 새매 백성의 장로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모여서 예수를 그 공회로 끌어들여”(22:66); 정식 예루살렘 대공회는 성전의 뜰과 행각의 일부에서 열리고 있음. 그 수가 70여명에 불과하므로 충분히 성전 내에서 개최가 가능한 것임. 그러므로 유월절 다음날 새벽 일찍 다른 백성들이 성전에 들어오기 전에 예수님을 성전의 뜰로 데리고 가서 산헤드린 대공회를 개최할 수가 있는 것임.

2)    그런데 마태복음 제26장과 마가복음 제14장의 내용을 참조하면 그것이 아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간 시몬 베드로가 그곳 안채에서 열리고 있는 산헤드린 대공회의 모습을 엿보고 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기 때문임; 예수를 잡은 자들이 그를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니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모여 있더라.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26:57-59),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14:53-55).

3)    만약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예루살렘성전의 뜰에서 산헤드린 대공회를 정식으로 열어서 논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저택에 산헤드린 대공회원들을 불러 들여서 약식으로 처리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논쟁거리가 됨. 왜냐하면, 백성들과 완전히 격리를 시켜 놓고서 장소도 변경하여 소위 날치기로 예수님을 단죄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임.

(2)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정죄하고 있는가?(22:67-71, 26:63-66)

1)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이거든 우리에게 말하라. 대답하시되,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 하시니, 다 이르되,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대답하시되, 너희들이 내가 그라고 말하고 있느니라. 그들이 이르되, 어찌 더 증거를 요구하리요? 우리가 친히 그 입에서 들었노라 하더라”(22:67-71); 한 마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하는 그 사실이 유대교리에 비추어 단죄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판결인 것임.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음;

2)    첫째, 메시아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해야만 한다고 유대교인들이 믿고 있는데 그러한 뜻이 전혀 없는 나사렛 예수인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리스도냐?고 묻고 있는 심문에 대하여 나사렛 예수가 그렇지가 않다고 명확하게 답변하지 아니하고 있으니(22:67-68) 그것이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일종의 혹세무민이라는 것임.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의 메시아 사상을 부정하고 있는 자칭 그리스도 예수를 단죄하는 것이 옳다는 논리인 것임.

3)    둘째, 예수님이 스스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스스로 참칭하고 있는 것임(22:69-70). 유대교리에 비추어 보면, 명백하게 신성모독죄임. 왜냐하면,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6:4) 그 아들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임. 그러므로 그러한 혹세무민은 사형으로 다스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논지인 것임.

4)    셋째, 마태복음 제26장을 참조하면 그날 새벽에 비상 소집된 산헤드린 대공회의 판결은 다음과 같은 것임;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 모독하는 말을 들었도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26:64-66). 결국,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완전히 사형에 해당하는 유대교 해당분자로 예수님이 정죄가 되고 만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