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4강(눅22:24-4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년 3월 8일(목)
1.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그들과 이 땅에서 육신적으로 가지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데 어째서 사도들은 그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누가 크냐고 하는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는가?(눅22:24)
(1)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 담겨 있는 두가지 의미에 대하여(눅22:14-16);
1) 예수님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 담겨 있는 의미는 다음 두가지임; ①하나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기 전에 사도들과 함께 이 유월절 만찬자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는 말씀임(눅22:14-15). ②또 하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 유월절 음식을 함께 먹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임(눅22:16).
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하시는 그 고난의 시간이 임박하였기 때문에 사도들에게 다음 두가지를 명심하게 해주고 싶으신 것임; ①첫째, 예수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시는 그 대속의 희생의 의미를 사도들에게 깊이 새겨 주시고자 하심. ②둘째, 예수님처럼 사도들도 복음사역을 하면서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먹고 마실 수가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하시는 것임. 그러한 의미를 담아 그 자리에서 성찬의 의식을 제정하고 계시는 것임(눅22:17-20).
3) 그런데 사도들의 생각과 이해는 전혀 다름.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다윗의 제국의 재건으로 생각하고 있음. 그리고 예수님에게 임박한 고난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를 물리치는 엄청난 이방인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하겠음.
4)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이라고 하는 대속의 시나리오는 비록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공생애를 통하여 3차례나 예언을 해준 바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혀 깊이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임(사6:9-13, 48:5-7, 막8:31, 9:31, 10:33-34). 그것은 만민을 구원하여 영생의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계획이며 구원의 지혜이기 때문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만큼이나 피조물인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상상하기도 힘든 것이라고 하겠음(사65:17-18, 벧후3:12-13, 계21:1-2, 21-27).
(2)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도들이 선민 이스라엘 제국의 재건으로 생각하고 있기에 그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눅22:24)
1) “또 그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눅22:24); 의사 누가는 사도들 사이에 누가 크냐?고 하는 자리다툼이 발생하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장소라고 적고 있음. 그렇지만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내용을 참조하면 그 구체적인 이야기가 조금 다른 것임.
2) 마태복음 제20장에서는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스라엘 제국이 건설이 되면 자신의 두 아들에게 가장 높은 자리를 하나씩 달라고 간청하고 있어 다른 사도들의 미움을 받고 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음(마20:20-24). 그것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발생하고 있는 사건임(마20:17).
3) 마가복음 제10장에서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직접 예수님께 그러한 영광을 얻기를 원했다고 적고 있음(막10:35-37).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도들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냈다고 기록하고 있음(막10:41). 그것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역시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임(막10:32).
4) 그와 같은 공관복음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음; ①첫째, 사도들과 그 부모들이 언제 메시아인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 이스라엘의 제국을 건설하시는지 매우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임. ②둘째, 그 시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으므로 사도들과 그 부모들은 더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하여 애를 태우고 있다는 것임. ③셋째, 그러한 움직임이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는 기간에 발생하여 마지막 유월절 만찬의 자리에까지 계속이 되고 있다는 것임. ④넷째, 사도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전혀 그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임.
2.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이 세상에서 어려운 이유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눅22:25-27)
(1) 이 세상의 재화와 권력을 나누어 주는 경우에 대하여(눅22:25);
1)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눅22:25); 예수님께서는 봉건사회의 군신(君臣, 임금과 신하) 관계가 어떻게 성립이 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것임. 그 본질이 다음과 같음;
2) ①첫째, 주군(主君, 자신의 주인인 임금)이 가신(家臣, 집안의 개인적인 신하)들과 함께 군사력으로 적을 쳐부수고 많은 영토를 얻게 되면 논공행상(論功行賞, 공로를 평가하고 상을 나누어 주는 것)을 시작하게 됨. ②둘째, 큰 공을 세운 가신에게는 큰 영지를 하사하고 적은 공을 세운 가신에게는 적은 봉토를 하사하게 됨. ③셋째, 주군으로부터 봉토와 귀족의 작위를 받게 되면 자신의 영지를 다스리며 사병을 양성함.
3) 주군이 자신의 가신인 신하들에게 토지와 귀족의 작위를 주고 세습하게 하는 것은 신하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영광이며 은혜인 것임. 왜냐하면, 고대사회나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에서 모든 땅과 신민들은 모두 왕의 것이기 때문임. 자신의 것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으므로 그것이 왕의 은혜라고 하는 것임.
4) ④넷째, 전쟁이 발생하게 되면 주군인 왕의 명령으로 귀족들은 자신들의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여하며 평소에는 주군의 토지를 나누어 경작하고 정해진 세금을 바치는 것임. 그것은 주군인 왕의 은혜에 대하여 신하들이 그 반대급부를 충성심으로 바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 따라서 봉건사회는 ‘은급(恩給, 은혜와 그 반대급부인 충성)의 관계’로 세워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음.
(2) 하나님 자녀의 영광과 신분을 얻고자 하는 경우에는 그 삶의 방법이 세상의 것을 얻고자 하는 경우와 어떻게 달라지는가?(눅22:26-27)
1)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하나님나라에서) 다스리는 자는 (이 세상에서)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6-27); 한 마디로, 하나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자가 되는 자는(눅22:29-30)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 작은 자를 섬기는 자로 살아간 자라야 한다는 말씀임(눅22:28, 마25:40). 그와 같은 예수님의 역설적인 말씀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내포되어 있음;
2) 첫째, 세상임금은 가신들에게 이 세상의 땅과 귀족의 신분을 그 공로에 따라 은혜로 먼저 나누어 주면서 충성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그것이 아님. 먼저 회개하는 자들에게 대속의 은혜를 주시고 남은 인생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되는 영광을 주신다고 하는 일종의 약속을 주시는 것임.
3) 둘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며 영원한 기업을 얻자면 남은 인생 가운데 자신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종의 인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임. 그 종의 모습이 바로 예수님께서 모범을 보이신 그 섬기는 자의 대속의 모습인 것임(사52:13-53:12).
4) 셋째,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통하여 원수를 용서하며 섬기는 자의 삶으로 일관하셨으며(마5:44-48) 마침내 대속의 삶을 선택하신 것임(눅22:42). 그와 같은 역설적인 종의 삶의 모습이 위의 본문(눅22:26-27)에 묘사가 되고 있는 것임.
3. 세상적인 온갖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고 예수님처럼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섬기는 자세로 살아가게 되면 훗날 하나님나라에서 어떠한 상급을 받게 되는가?(눅22:28-30)
(1) 예수님께서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서 사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하시는 그 상급과 영광은 어느 정도의 것인가?(눅22:29-30)
1)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눅22:29-30);
2) 민수기의 내용을 참조하게 되면, ①첫째,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여 12지파별로 장정의 수를 계산하고 독자적인 군대를 조성하도록 조치하심(민1:1-3). ②둘째, 12지파 각 종족과 가문이 상의를 하여 군사령관을 결정하도록 지시하심(민1:4). 그때부터 12사령관들이 이스라엘 60만 대군을 지파별로 나누어서 자신들의 군대로 훈련을 시키고 군사작전을 실시하며 군을 지휘하게 됨(민2:3-32). ③셋째, 여호와를 섬기는 신정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모세는 그 12명의 사령관들과 연석회의를 통하여 이스라엘 대군을 통수하고 있음(민1:4, 17-18).
3) 그와 같은 민수기의 모형이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등장을 하고 있음; ①첫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나라의 통치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하심. ②둘째, 주님께서는 12사도들에게 12지파의 백성들을 나누어서 다스리도록 하심. ③셋째, 주님께서 12사도들과 함께 한 상에서 먹고 마시면서 연석회의를 통하여 일사분란하게 하나님나라에서 이스라엘 12지파를 통치하신다는 것임.
4)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스라엘 12지파를 나누어서 다스리게 되는 12사도의 영광이란 실로 대단한 것임. 그것을 사도 바울은 그의 로마서 제8장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를 하고 있음;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16-18).
(2) 피조물이 상상도 할 수가 없는 그 영광을 하나님나라에서 얻자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눅22:28)
1)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눅22:28); 두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구절임; ①하나는 엄청난 하나님나라의 영광과 상속을 얻자면 이 세상에서 자신의 목숨과 생애를 주님처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바쳐야만 된다는 것임. ②또 하나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얻게 될 하나님 자녀의 영광과 기업을 미리 영적으로 보고 생명의 말씀으로 깨닫게 된 자는 이 세상 남은 인생을 여호와의 종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아낌없이 살아가게 된다는 것임.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을 뒤따라가는 제자의 삶이며 주님처럼 이 세상의 온갖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는 성도의 길인 것임(눅4:1-13).
2) 그와 같이 해석이 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러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음. 왜냐하면, 12사도들이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온전히 따라가지를 못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말기 때문임;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하게 되고 다른 사도들도 모두 도망을 치고 있기 때문임”(눅22:60-62, 막14:50).
3) 그러므로 죽음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와 제자들을 다시 불러모아 40일간 재교육을 시키시면서 부디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하심의 은혜를 얻어서 복음사역에 나서라고 신신당부를 하시는 것임;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8-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구체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이 사도 바울이 성령님 및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세계선교에 나서고 있는 것임;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지라”(행16:6-7).
4) 결국, 성도들이 말씀충만과 성령충만으로 주님의 모범을 따라 올바른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임. 그것이 바로 시험을 이기는 삶이며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고 하겠음.
4. 가룟 유다를 유혹한 사탄이 이제는 누구를 유혹하고자 하는가? 그리고 시험에 빠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눅22:31-32, 34)
(1) 가룟 유다를 유혹한 사탄이 이제는 누구를 유혹하고자 하는가?(눅22:31)
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눅22:31); 가룟 유다를 자신의 편으로 삼게 된 사탄은(눅22:3-6) 이제 시몬 베드로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임(눅22:31). 어째서 그러한 공작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2) 첫째, 시몬 베드로가 12사도 가운데 나이도 많지만 그 행동력과 결단력 그리고 포용력이 뛰어난 인물임. 그러므로 12사도의 수장이 되고 있음. 그에 따라 사탄은 시몬 베드로를 유혹할 수만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세력을 분쇄할 수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임.
3) 둘째, 3년 6개월에 걸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의 과정에 관하여 사탄은 면밀하게 관찰을 하고 있음. 그 결과 재물욕이 강하며 장차 선지자로서 출세하고자 하는 세상적인 큰 야망을 지니고 있는 가룟 유다를 포섭하는데 성공을 한 것임.
4) 셋째, 가룟 유다가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나사렛 예수의 사상이 유대교리에 어긋나며 이단성향이 있다고 내부고발을 하게 되면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예수를 정죄하고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서 처형할 수가 있을 것임. 그렇다면 다음 수순은 예수를 추종하고 있는 11사도들을 와해시키는 것인데 그 공작을 사탄은 시몬 베드로의 배신을 통해서 성사시키고자 하는 것임.
(2) 시험에 빠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눅22:34)
1)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3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눅22:34);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를 하시다가 한밤중에 긴급체포가 되시고 유대교실력자들에게 끌려가서 문초를 당하게 되면 크게 실망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버린다고 하는 예언의 말씀인 것임.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2) 첫째, 사도 베드로가 원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께서 원하시고 계시는 것이 서로 다른 것임. 12사도들이 공통적으로 소원하고 있는 것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영광스러운 다윗의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는 것임.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그것이 아닌 것임.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들을 전부 용서해줄 수 있는 속죄의 산 제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바친다고 하는 것임.
3) 둘째, 시몬 베드로의 경우에는 지난 3년 6개월 동안 가정도 돌보지 못하고 갈릴리의 어부로서 경제적인 활동도 하지 못한 채 오로지 예수님의 제자로 공생애를 살아 왔는데 그 결과가 스승의 죽음으로 막이 내린다고 하니 너무나 허망한 것임.
4) 셋째,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시게 되면 사도들은 모두 선지자로서 그 나라의 동량이 될 것이라고 하는 청운의 꿈을 지니고 출사를 한 것인데 그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있으니 그 배신감과 절망이 대단한 것임. 이제는 12사도들이 예수님께 계속 충성을 바칠 이유와 목적이 모두 사라지고 마는 것임.
5.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11명의 사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오늘날 그것은 성도들에게 어째서 필요한 것인가?(눅22:32-34)
(1) 어째서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11명의 사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가?(눅22:32)
1)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22:32);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계속해야만 하는 중차대한 책무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임. 그러므로 사탄이 다른 사도들을 유혹하여 쓰러뜨리지 못하도록 그리고 예수님께 배신감을 느끼고 떠나간 사도들과 제자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임.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음;
2) 첫째,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한밤중에 긴급 체포하고 이단으로 정죄한 후 로마총독의 도움을 받아 십자가 처형을 하는 것은 사탄의 역할이지만 그것은 역시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큰 계획과 뜻을 알지 못한 자충수(自充手, 스스로 죽거나 멸망하게 되는 잘못된 수)가 되고 있음.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천국복음을 전파한 후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희생한다고 하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놀라운 승리이기 때문임. 그렇게 패배로 보이는 그것이 오히려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영생의 구원의 은혜를 입게 해주는 유일한 구원의 방책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사탄이 깜빡한 것임.
3) 둘째, 십자가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 되고 있음. 따라서 사도와 제자들에게는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해야만 하는 새로운 사명이 부여가 되는 것임(눅24:48-49, 마28:18-20, 행1:8). 그러한 사명이 남아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사탄의 유혹에 넘겨줄 수가 없는 것임.
4) 셋째, 예수님의 체포와 처형과정을 지켜본 사도와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임. 그렇지만 그들을 다시 불러 모아 새로운 사명을 부여해 주어야만 함. 그에 따라 예수님께서는 3일만에 급하게 부활하시고 그러한 의미에서 스승을 부인하며 떠나고 있는 사도와 제자들을 다시 불러 모으시는 것임(요21:1-19). 그 일을 위하여 사전에 예수님께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시고 계신다고 하겠음(눅22:32).
(2) 오늘날 성도들을 위하여 그러한 주님의 기도가 성령님 안에서 계속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눅22:32-34)
1)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3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눅22:33-34); 예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생사를 같이하겠다고 하는 시몬 베드로의 각오가 대단함. 그러나 육신이 약하여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 그날 밤 예수님을 3번 부인하게 되는 고통을 맛보고 마는 것임(눅22:60-62).
2) 그러한 육신적인 어려움이 모든 성도들의 복음사역에 있어서도 항상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방인 사도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이 웅변적으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음;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
3) 따라서, 육신적으로 약한 모든 성도들을 영적으로 강하게 만들어 온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일꾼으로 세우기 위하여 주님의 기도는 오늘도 계속이 되고 있다고 하겠음. 그러한 주님의 기도가 성도들에게 임재하신 성령님 안에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타나며 지금도 성도들을 말씀충만과 성령충만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겠음.
6. 더 이상 육신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복음사역을 하지 못하게 되는 사도들이 장차 영적으로 주님과 어떻게 동행하면서 복음사역을 하게 되는가?(눅22:35-38)
(1)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중 12사도들과 70인의 제자들을 전도지역으로 파송하시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계시는가?(눅9:1-6, 10:1-11)
1) 갈릴리 지역에서는 12사도들을 전도팀장으로 삼아 제자들과 함께 여러 마을로 파송하신 것으로 보임(눅9:1-6), 그리고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70인의 제자들을 2명씩 35개조로 편성하여 동시에 더 많은 마을로 파송하신 것임(눅10:1-11).
2) 두 경우 모두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사도와 제자들의 독자적인 전도여행이므로 예수님께서 두가지 조치를 친히 취해 주심; ①하나는 지극히 간편한 차림으로 전도여행의 대상지역으로 떠나더라도 현지에서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강력하게 기도를 하고 계시는 것임.
3) ②또 하나는 그 지역의 중앙에 예수님께서 자리를 잡고 계시므로 수시연락이 가능하며 또한 사도와 제자들이 전도여행을 끝낸 다음에는 전도지역의 주민들을 모두 예수님의 대규모 군중집회에 참석시킬 수가 있는 것임. 그렇게 되면 사도나 제자들이 치유하지 못한 백성들을 예수님께서 직접 치유해 주시는 기회가 있게 되는 것임(눅9:40).
(2)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서는 어떠한 조치를 취해 주시는가?(눅22:35-38)
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육신을 벗어버리고 나면 그때에는 육신적인 사제(師弟, 스승과 제자)관계가 아니라 영적인 주종관계만이 남게 될 것임. 따라서 스승이 제자를 챙겨주던 그 섬세함이 상당히 사라지게 됨.
2) 그에 따라 지극히 간편한 차림이 아니라 꽤 준비를 하여 복음사역에 임하라고 하시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음;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배낭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그들이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눅22:35-38);
3) 풀이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음; ①첫째, 예수님의 체포와 정죄 그리고 처형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제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세상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임.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호의적이던 분위기가 바뀌어 사도와 제자들의 복음사역을 불법자와 같은 종류로 취급하는 부당하고도 악의적인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임.
4) ②둘째, 그러한 호의적이지 못한 환경 가운데서 복음사역을 해야만 하는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제 지극히 간편한 차림과 준비가 아니라 단단히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것임. ③셋째, 그 준비물로서 돈을 보관하는 전대, 의복과 생필품을 지고 다니는 배낭, 위급한 경우 자신을 지키는 검 등을 최소한 지니고서 전도 및 선교여행에 나서라고 하는 것임.
5) ④넷째, 예수님 공생애 당시 사도와 제자들의 전도 및 선교여행에 있어서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었듯이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함께하시겠지만 그래도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아니한 환경임을 알고서 단단히 준비를 하고 전도여행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것임.
7. 감람 산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모습은 얼마나 처절한 것인가?(눅22:39-44) 반면에 예수님의 고충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도들의 기도의 모습은 얼마나 안이한 것인가?(눅22:40, 45-46)
(1) 감람 산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의 모습은 어떠한가?(눅22:39-44)
1)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이 따라 갔더니,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22:39-44); 예수님은 사도와 제자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를 하는지 그 모범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신 것임;
2) 첫째, 습관을 따라 감람산과 같은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임(눅22:39, 41).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는 성전에서 큰 소리로 그렇게 외치는 기도가 아닌 것임(눅18:10-12).
3) 둘째, 먼저 기도하는 내용은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는 것임(눅22:40).
4) 셋째, 기도의 주 내용은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는 간구라는 것임(눅22:42). 성도가 자신의 인간적인 뜻을 굽히고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뜻을 받아 들인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땀이 핏방울같이 떨어지는 힘든 기도의 작업인 것임(눅22:44). 그리고 그 조율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고 있음.
5) 넷째, 육신을 가진 인간이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 세상에서 실천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임. 따라서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영적인 도우심을 얻어야 기도를 마무리할 수가 있는 것임(눅22:43). 참고로, 여기서 천사의 도우심이라고 하는 것이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라고 하겠음.
(2) 예수님의 고충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도들의 기도의 모습은 어떠한가?(눅22:40, 45-46)
1) “그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눅22:40),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눅22:45-46);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의 모범을 올바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요인을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음;
2) 첫째, 유혹에 빠지기 쉽다는 것임(눅22:40). 그 유혹은 지극히 이기적인 육신의 성향 때문임. 당장 스승이신 예수님에게 긴급체포와 처형이 다가오고 있지만 그것이 사도들 자신의 고충이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인 예수님처럼 그렇게 간절하게 피땀을 흘려가면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로 매어 달리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
3) 둘째, 스승이신 예수님과 헤어지게 된다는 그 슬픔을 잊을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소개가 되고 있음. 그것은 잠이 들게 되면 만사를 잊게 된다고 하는 것임(눅22:45). 여기서 잠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진통제나 마취제와 같은 일시적인 효과는 분명히 지니고 있다고 하겠음.
4) 셋째, 시험을 치루어야만 하는 학생이 만사를 잊어버리고자 잠을 많이 자고 있다고 한다면 그 시험에서는 불합격을 하고 말 것임. 그와 같은 의미에서 잠속으로 피신을 하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영적으로 깨어서 간절하게 기도를 하라는 것임(눅22:46). 사도와 제자들에게 그러한 영적인 성숙함이 앞으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기 위하여 더욱 요청이 된다고 하겠음(눅24:44-49, 마28:18-20).
'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6강(눅23:1-25)(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8 |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5강(눅22:47-71)(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6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3강(눅22:1-23)(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5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2강(눅21:1-38)(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4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1강(눅20:27-47)(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