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1강(눅20:27-4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4. 00:11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1(20:27-47)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215()

 

1.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차이가 무엇이며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20:27-33)

(1)  부활사상에 대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에 대하여;

1)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의 차이 가운데 부활을 믿느냐 아니냐 하는 사항이 들어있다고 하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자가 의사 누가임. 그 대목에 대한 기록이 그가 기록하고 있는 본문 누가복음 제20장과 사도행전 제23장에 들어 있음. 먼저 누가복음 제20장의 기록은 그 내용과 의미가 심히 간단함;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20:27).

2)    그런데 사도행전 제23장의 내용과 그 의미는 간단하지가 아니함;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어지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떠들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니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냐?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인을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내로 들어가라 하니라.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의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23:7-11).

3)    적어도 다음과 같은 몇가지의 이슈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것임; ①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공부하고 그것만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선지서와 성문서에 주로 기록이 되어 있는 부활사상, 하나님의 영과 천사의 역사 등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가 없는 자들임.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히브리정경 전체를 믿고 또한 히브리전승까지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부활, 천사, 영에 대한 상식이 풍부함.

4)    ②바리새인들은 사도 바울이 부활과 영에 대한 간증을 하자 그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사두개인들과 다투기를 시작하고 있음. 그것은 사도 바울의 간증내용 가운데 자신들이 변호할 부분이 들어 있기 때문임.

(2)  과거 랍비 사울이었던 사도 바울이 깨닫고 있는 새로운 부활사상에 대하여;

1)    그런데 사실은 사도 바울이 영적으로 깨닫고 있는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내주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주님의 역사는 바리새인들이 알고 있는 부활사상이나 영적인 체험과는 엄청 다른 것임. 바리새인들은 욥기 제19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과 같이 죽은 다음 하나님을 만나는 부활을 믿고 있음(19:23-27). 그리고 그들은 히브리정경과 전승 등에 나타나고 있는 천사들과 영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함. 그것은 그들의 학문적인 성과의 일부인 것임.

2)    그에 비해서 과거 랍비 사울이었던 사도 바울의 생각과 영적인 경험은 구체적으로 바리새인들의 것과 확연하게 다른 것임;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환상 가운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영적으로 나타나심을 통하여 신관(神觀, view of God)이 달라진 사람임.

3)    따라서 사도 바울은 다음 세가지를 믿고 있음; ①첫째, 그는 자신에게 임재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형체를 지니고 있는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임(9:3-19, 22:6-21). ②둘째, 그가 이방인 사도로서 살아가는 일정 가운데 성령님의 임재와 주님의 임재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임(16:6-7). ③셋째, 주님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자신의 부활과 영생구원의 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의 진리로서 정확하게 믿고 있는 것임(3:8-16).

4)    그와 같은 사도 바울의 믿음은 사도 요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임;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님의 증거하심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기 때문에 부활과 영생이 하나님의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임(14:16-20, 16:13-16).

(3)  태생에서부터 차이가 나고 있는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1)    주전 142년 마카비 독립운동의 결과 유일하게 살아남은 제사장 맛다디아의 차남인 시몬이 하스모니안 왕조를 시작함. 그와 그의 아들인 요한 힐카누스1세 등이 대를 이어가면서 왕과 대제사장의 직분을 겸하게 되자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

2)    솔로몬 대왕 이후 사독의 자손들만이 대제사장의 직분을 승계하여 왔는데(왕상1:7-8, 2:26-27, 4:2) 마카비 가문은 사독의 후손이 아닌 것임. 따라서 사두개인들이 하스모니안 왕가의 대제사장 직분을 반대하고 분리가 된 것임. 그들은 외세와 결탁을 하더라도 사독의 후손들이 대제사장의 자리를 맡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음.

3)    그러한 사두개인들의 정략적인 처신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이 불만을 가지고 오로지 히브리정경과 전승만을 공부하여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게 됨. 그것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들의 태생적인 차이인 것임.

(4)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질문하고 있는 내용(20:27-33);

1)    7형제가 있는데 장자가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이 없이 죽게 되자 그 동생들이 형수와 합방하여 아들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주는 수혼(嫂婚) 제도에 따랐다는 것임(25:5-10, 20:28-30). 그런데 불행하게도 7형제가 모두 아들을 생산하지 못하고 차례대로 일찍 죽고 말았다는 것임. 그렇다면 그 여자는 부활한 다음에 누구의 아내가 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질문임(20:28-33).

2)    모세에 의하여 신명기 제25장에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는 수혼제도는 본래 고대 부족사회에서 가문을 보전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이 되고 있는 결혼제도임. 특히 출애굽한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여 그것을 12지파가 분배하고 또한 각 지파의 종족과 가문이 재분배를 하여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그 본래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대대로 보전하는 것이 평화를 유지하는 필수조건이 되고 있음. 따라서 50년에 한번씩 기업을 무르는 희년의 제도까지 실시를 하고 있는 것임(25:8-13, 23-28).

3)    고대 부족사회의 관습이 반영되어 있는 율법은 그 가문의 토지를 그 가문에 영원히 소유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남자들에게만 상속권을 주고 있음. 따라서 며느리가 아들이 없이 과부가 되면 토지 소유에서 제외가 되어 먹고 살 방도가 없어짐. 동시에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일찍 죽게 된 남자는 자신의 토지를 상속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지게 됨. 그 두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수혼제도인 것임. 시동생들이 형수와 합방을 하여 아들을 생산하게 되면 그 아들이 죽은 형의 대를 잇고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보유하게 되는 것임. 그러한 풍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창세기 제38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이야기임(38:6-11).

4)    그런데 문제는 동생들이 그 형의 재산이 탐이 나서 아들을 만들어 주지 아니하고자 하는 경우임(38:9-10). 그때를 대비하여 율법에서는 기업 무르기를 싫어하는 자의 불명예에 대하여 그 수치스러운 절차까지 마련하고 있는 것임(25:7-10). 그와 같은 기업 무르는 율법의 절차와 희년(禧年)의 제도가 이스라엘 사회의 전통이 되고 있는데 그 사실을 룻기에서도 불 수가 있으며(4:1-17) 여기 누가복음 제20장 본문에서도 엿볼 수가 있는 것임(20:28-33).

 

2.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부활하여 영생의 몸을 입게 되면 이 세상에서의 결혼관계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된다고 답변하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20:33-36)

(1)  성도가 부활하여 영생의 몸을 입게 되면 이 세상에서의 결혼관계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는가?(20:33-35)

1)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20:34-35);

2)    예수님께서는 현세와 내세의 가장 큰 차이가 결혼제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심. 이 땅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자녀를 생산함으로써 혈통을 이어가도록 되어 있지만 부활한 다음에는 그러한 육신적인 혈통에 묶여서 사는 삶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임.

3)    그러므로 당연히 부활한 다음에는 이 땅에서 지속하고 있던 결혼제도와 혈연관계가 모두 사라지고 만다는 것임.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밝히고 계시는 것임;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8:19-21).

4)    사도 요한도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고 있음;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1-13).

(2)  그 이유는 무엇인가?(20:36)

1)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20:36);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입고 있는 육신이 아니라 부활 때에 새로이 입게 되는 육신은 다른 것이라는 의미임. 그 새로운 육신의 의미가 다음과 같다고 할 것임;

2)    첫째, 이 세상의 육신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썩어지는 것이지만 부활 때에 가지게 되는 육신은 영원히 죽지 아니하는 영생의 몸이라는 것임(20:36a). 그 점을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음;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15:42-44). 신령한 몸 그것은 천사와 동등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임(20:36b).

3)    둘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인류의 역사상 처음으로 그 영생의 몸을 입고서 승천을 하시고 계심;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24:50-51). 그것이 영적인 몸이며 영생을 누리기에 합당한 몸이기에 그대로 승천이 가능한 것임. 그러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육신을 그대로 입고 있었던 선지자 엘리야의 경우에는 불말이 날뛰는 가운데 회오리 바람을 타고서 겨우 승천을 하고 있는 것임(왕하2:11).

4)    셋째, 결혼은 육신의 몸을 입고서 한시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이 자녀생산을 통하여 대를 이어 가기 위한 수단인 것임. 그런데 천국에서는 부활을 통하여 영생의 몸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20:36c) 그러한 육신적인 결혼이나 대물림의 제도가 있을 리가 없다고 하는 것임(20:34-35).

 

3.    예수님께서는 호렙 산에서 자신의 정체를 설명하신 여호와의 명제가 무엇이며 그 의미가 무엇이라고 풀이해 주시는가?(20:37-38)

(1)  호렙 산에서 자신의 정체를 설명하신 여호와의 명제가 무엇인가?(20:37)

1)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20:37). 출애굽기의 내용이 다음과 같음;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3:6). 출애굽기 제3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모세의 글에 대한 해석이 다음과 같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리고 예수님에 의하여 달리 나타나고 있음;

2)    첫째, 사두개인들은 아브라함 언약의 계승이 이삭, 야곱의 순서로 대물림이 되어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르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음. 따라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하는 그 언약에 의거하여 가나안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임.

3)    둘째, 바리새인들은 선지서와 성문서에 나타나고 있는 부활과 천사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존재에 비추어서 출애굽기의 말씀을 이해하고 있음. 따라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모두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 있다는 것임.

4)    셋째, 예수님의 말씀은 그와 다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영적인 삶이 우선이며 결코 육신적인 관계에 묶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임. 그러한 영적인 삶이 부활을 통하여 영생의 몸을 입고서 천국에서 영원히 지속이 된다고 하는 것임.

(2)  그 의미가 무엇인가?(20:38)

1)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20:38);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육신적인 삶에 묶여 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한시적인 육신의 삶을 벗어나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영생하시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임. 조금 분설을 해보면 다음과 같음;

2)    첫째, 영생의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시는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영생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임.

3)    둘째, 육신이 죽게 되면 그 묶임을 벗고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게 된다는 것임.

4)    셋째, 예수님처럼 승천하여 천국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영원히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임.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육신적인 관계와 결혼관계가 더 이상 부활한 다음에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임.

 

4.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를 하고 있는데 그 이유 두가지가 무엇인가?(20:27, 39-40, 23:6-9)

(1)  바리새인들의 부활사상을 예수님이 지지해주시기 때문임;

1)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20:39); 서기관이란 산헤드린 대 공회에 참석하여 율법을 해석하여 판결을 하는 율법학자를 말하고 있음. 그들이 판결문을 작성하고 서류를 정리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 왕정시대와 비슷하게 여전히 서기관으로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러한 고귀한 신분의 서기관이 예수님의 답변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 그 편을 들고 있는 것임.

2)    그렇지만 서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바리새인들의 부활사상에 갇혀 있어 다음과 같은 이해의 한계를 지니고서 예수님의 말씀을 겉으로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임; ①첫째, 이 세상의 끝에는 모든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임. ②둘째, 선민 유대인들은 할례와 율법 그리고 성전에서의 속죄의 제사를 드리면서 살아온 의인들이기 때문에 모두 영생의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임. ③셋째, 그러한 부활과 심판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사두개인들에게 예수님이 속 시원하게 반박을 하셨으니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쏙 든다는 것임.

3)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깜빡하고 있는 중요한 두가지 사실이 다음과 같음; ①첫째, 부활은 세상의 종말이 되어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성령님의 임재와 내주 역사로 말미암아 살아 생전에도 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씀임.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종말론적인 부활사상을 믿고 있는 베다니의 마르다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지금 너 앞에 서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라고 강조하고 계시는 것임(11:23-26).

4)    ②둘째, 바리새인들은 율법선생으로서 백성들에게 받고 있는 존경,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율법에 대한 최종적인 유권해석을 하고 있다는 그 막강한 종교적인 권한, 그리고 가장 모범적인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스스로 의인이라고 믿고 있음. 그 때문에 대속의 십자가를 쳐다보고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고서 구주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는 그 길에서 한없이 멀어지고 만 것임. 그것이 사람들 앞에서만 종교생활을 잘하고 있는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바리새인들의 비극인 것임.

(2)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부활이론으로 잘 대응하시기 때문임;

1)    (사두개인, 20:27)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20:40);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의 답변과 그 설명에 대하여 전혀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예수님이 인용하고 있는 구절이 바로 모세오경에 적혀 있는 정확한 내용이기 때문임. 그 점이 사두개인들에게는 족쇄가 되고 있으며 바리새인들에게는 통쾌한 한판승의 장면이 되고 있는 것임.

2)    모세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라고 여호와의 정체를 밝히고 있는데 그것을 나사렛 예수가 영생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계시니 그들이 모두 여호와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풀이를 하고 있는 것임(20:37-38).

3)    산헤드린 대 공회의 율법학자인 서기관들도 예수님의 말씀과 그 풀이가 옳다고 지지를 선언하고 있는 그 자리에서 사두개인들이 그렇지가 않다고 반박을 하는 것은 히브리정경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되고 말 것임. 따라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마는 것임(20:40).

 

5.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이 어떠하며 이 대목에서 그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20:41-44)

(1)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20:41-44);

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여호와)께서 내 주(그리스도)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20:41-44);

2)    예수님이 인용하고 계시는 시편 제110편의 다윗의 시가가 다음과 같음;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110:1).

3)    선민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는 줄 믿고 있음. 그들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한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11:1-2)라는 구절을 해석함에 있어서 이새의 줄기가 바로 다윗이며 메시아는 다윗의 왕손일 수밖에 없다고 이해를 하고 있는 것임.

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심. 그리스도는 다윗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의 주인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오른 쪽에 좌정하신 주님이시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임(20:44).

(2)  그러한 예수님의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가?

1)    선민 유대인들은 두가지 사상에 젖어 있음; ①하나는 선민사상임. ②또 하나는 메시아사상임. 그 가운데 선민사상은 이 세상은 모두 멸망을 당하겠지만 선민 유대인들만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는 것임.

2)    메시아사상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세상에 메시아가 오시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한다는 것임. 그렇게 주변의 이방인들과 그들의 나라를 속국으로 다스리며 조공을 받게 되는 다윗의 제국이 그 옛날 예루살렘 곧 시온의 영광을 다시 이 세상에 떨치게 된다는 것임. 그 시온의 영광이 바로 여호와의 영광이라고 선민 유대인들이 여기고 있는 것임. 

3)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그것이 아님. 선민 유대인들이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하나님의 복을 자신들만 현세적인 제국의 영광으로 누리겠다고 획책하는 것은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가 되고 있는 불신앙이라고 보시는 것임. 따라서 그리스도는 선민과 이방인을 차별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서 구원을 얻어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자신을 대속의 제물로 바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임(3:13-17).

4)    그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다시 한번 강조하고 계시는 것임(20:41-44).

 

6.    사두개인들과의 의견 차이 때문에 서기관들이 잠시 예수님의 편을 들고 있지만 나중에 그들이 예수님을 해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20:45-47)

(1)  서기관들의 행태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20:45-47);

1)    선민 유대인들은 가나안 땅만 아니라 중동과 지중해 연안에 흩어져서 살고 있음. 그 이유는 주전 586년에 다윗왕조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제국에 의하여 망하자 제국은 그들 유대인들을 이방 땅으로 끌고 가버렸기 때문임(왕하25:7, 11, 21, 1:3-4, 1:2). 유대인들 가운데 1할 정도가 페르시아 초대 황제인 고레스의 선심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음(1:1-2:65). 나머지는 페르시아 제국의 땅에서 자유민으로 계속 살게 된 것임. 그후 헬라 시대, 로마시대를 살아오면서 유대인 교민들의 수가 늘 본토에 살고 있는 유대인보다 많았던 것임.

2)    그러므로 예루살렘 제2성전에서 매년 거행이 되고 있는 유월절 행사와 초막절 행사는 선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것임. 국내외에 수천 개 존재하고 있는 회당의 랍비들이 절기때마다 예루살렘 성전에 함께 모여서 율법에 대한 새로운 경향에 대하여 논의를 하고 율법학자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더 배워서 자신들의 회당으로 돌아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종교교육을 시켜야 하기 때문임(2:41-47, 2:5-12).

3)    그렇게 민족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자들이 랍비들이며 그들이 존경하는 스승들이 산헤드린 대 공회원인 율법학자 곧 서기관들임. 그러므로 서기관들은 그 자부심이 대단하며 백성들로부터 극도의 존경을 받는데 굉장히 익숙한 것임.

4)    그러한 풍토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는지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20:45-47).

(2)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해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1)    사두개인들의 악의적인 부활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출애굽기의 내용을 가지고 슬기롭게 답변을 하시자 부활을 인정하고 있는 서기관을 비롯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지지하고 있음. 그렇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함.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신앙생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굉장히 비판적이시기 때문임(23).

2)    따라서 얼마 지나지 아니하면 바리새인들이 유대교리에 비추어서 예수님이 여호와 모독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정죄할 것임을 예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바리새인의 누룩이 자신의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퍼지게 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하여 위와 같이 주의사항을 단단히 주시는 것임.

3)    서기관을 비롯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게 되는 것은 정치적인 입장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중요한 두가지 차이점이 있기 때문임; ①첫째, 바리새인들은 선민사상에 의거하여 히브리정경과 전승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음. 그와 반대로 예수님께서는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 모두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구원하기를 원하신다고 주장하고 계시는 것임.

4)    ②둘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들의 제국을 현실적으로 재건하여 주는 다윗의 후계자를 메시아로 기다리고 있음.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치유하시며 백성들에게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고 섬기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임(5:43-48). 그 결과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함께 복락을 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

 

7.    서기관들이 믿고 있는 부활과 영생은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과 어떠한 차이가 나고 있는 것인가?(20:27, 39, 11:21-27)

(1)  마르다를 통하여 엿볼 수 있는 서기관들의 부활관(1:21-27, 20:27, 39);

1)    예수님께서 베다니를 방문하여 오빠 나사로의 초상을 치르고 있는 마르다에게 부활을 믿으라고 말했을 때에 마르다가 세상 끝 날에 오빠 나사로가 부활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믿고 있다고 답변하고 있음(11:23-24). 그것은 바리새인들로부터 배운 부활에 관한 지식임.

2)    그 내용이 세상의 종말과 그 후에 이루어지는 죽은 자의 부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므로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되면 영적으로 이미 부활의 은혜를 누릴 수가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26).

(2)  예수님에게서 엿볼 수 있는 부활관(20:25-26);

1)    살아 생전에 맛볼 수 있는 영적인 부활의 은혜를 마르다가 온전히 믿지를 못하자 예수님께서는 무덤 속에 들어간지 4일이 되고 있는 죽은 나사로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려서 나오게 하는 기적을 그 집에서 보여주시고 계심(11:39-44).

2)    그것은 단지 죽은 자의 육체적인 부활에 불과하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부활의 은혜를 베풀 수가 있다고 하는 그 능력을 믿으라고 하는 것임. 나사로의 부활은 그  정도의 참고자료로 사용이 되고 있음.

3)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성도가 죽은 다음에 맞이할 수 있는 진짜배기 영생의 부활인 것임.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다음에 아버지 하나님의 부활의 영의 도우심을 받아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것임(24:5-10, 8:11).

 

8.    부활과 영생이 먼 훗날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서기관을 위시한 바리새인들이 이 세상에서 어떠한 것들을 추구하고 있는가?(20:45-47)

(1)  부활과 영생이 먼 훗날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서기관을 위시한 바리새인들이 지니고 있는 현세주의;

1)    죽은 다음에 세상의 종말과 더불어 무덤 속에서 부활의 역사가 모두에게 있을 것으로 바리새인들이 믿고 있음.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영적인 삶이나 부활의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그러한 생각과 결심이 전혀 없는 것임.

2)    따라서 서기관을 비롯한 바리새인들은 남은 인생 가운데 백성들에게 히브리정경과 전승을 잘 연구하여 가르치고 그것으로 존경과 영적 권위에 대한 인정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임.

3)    그리고 자신들이 선민사상과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으로 잘 정리하여 체계화하고 있는 유대교리를 목숨을 걸고 사수하고자 하는 것임. 그러므로 자신들이 신봉하고 있는 유대교리와 다른 내용을 설파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는 적개심을 드러내고 기회가 되면 제거를 하고자 하는 것임.

(2)  서기관들이 현세적인 영광을 어떻게 잘못 추구하고 있는가?(20:45-47)

1)    첫째, 유대인들의 회당(會堂, synagogue)에서 서기관들과 랍비들이 안식일에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풀이하여 가르치고 있는 그들이 회당에서 제일 상석(上席)을 차지하고 있는 것임(20:46b).

2)    둘째, 평일에 엄숙하고도 경건하게 보이는 긴옷을 입고서 백성들이 모여 있는 시장에 나가고 있음. 그 모습의 경건함과 엄숙함 때문에 백성들은 랍비들에게 존경을 표시하며 문안의 인사를 드리기에 여념이 없는 것임(20:46a). 그것을 서기관들과 랍비들이 은근히 즐기고 있다는 것임.

3)    셋째, 동네 잔치가 있게 되면 그 상석을 서로 차지하고자 랍비들이 경쟁을 하고 있음(20:46c). 그것은 별로 좋은 모습이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진작에 지적하신 바가 있음(14:7-11).

4)    넷째, 바리새인들이 성전에서 외식적으로 길게 큰 소리로 자기 자랑을 겸하여 기도하는 모습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벌써 바리새인과 세리와의 비유’(18:9-14)에서 날카롭게 지적하신 바가 있음(20:47b).

5)    다섯째, 바리새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잘못 해석하여 예루살렘성전의 미문에 13개의 나팔모양의 연보궤를 두고서 과부들의 생계비까지 교활하게 끌어 모으고 있다는 것임(21:1-4, 20:47a).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심;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