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9강(눅19:28-4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1. 22:06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9(19:28-4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2 1()

 

1.    벳바게 마을에서 나귀를 많이 키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며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나귀 새끼를 빌리기를 원하시는가?(19:28-30)

(1)  벳바게 마을에서 나귀를 많이 키우고 있는 이유(19:28-30);

1)    고대 유대사회에서는 나귀를 이용하여 짐을 운반하고 있음. 특히 여리고에서 많은 물량이 예루살렘으로 오는 경우 감람산의 동쪽과 남쪽 기슭을 지나게 되는데 동쪽 기슭에는 벳바게 마을이 있으며 남쪽 기슭에는 베다니 마을이 위치하고 있음(19:29).

2)    예루살렘은 해발 780m 고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순례객들이 많이 찾고 있어 물가가 비싼 대표적인 소비도시임. 따라서 농산물과 생필품을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음. 그에 따라 여리고를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엄청난 물량이 사람들과 함께 들어오고 있음(19:28).

3)    많은 물량이 감람산을 지나서 높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전산과 감람산 사이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를 타고서 북상하여 예루살렘성의 동문에 해당하는 사자문으로 입성을 하는 것이 순로(順路, 순조로운 길)가 되고 있음.

4)    따라서 상인들은 가난한 자들의 마을또는 무화과나무의 마을이라고 불리고 있는 베다니에서 숙식을 하면서 인근에서 더 많은 나귀를 구하여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음. 왜냐하면, 예루살렘 고지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짐을 더 많은 나귀에 나누어 실어야만 하기 때문임. 그에 따라 베다니의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있는 벳바게 마을에서 많은 나귀를 키우면서 그것을 상인들에게 빌려주고 있는 것으로 보임(19:30).

(2)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나귀 새끼를 빌리기를 원하시는가?(19:28-30)

1)    예루살렘에는 유대교의 총본산인 성전이 있으며 또한 산헤드린 대 공회가 자리를 잡고 있음. 선민 유대인들이 비록 로마의 치하에서 살고 있지만 로마황제로부터 유대교의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음. 따라서 산헤드린 대 공회는 유대교의 최고재판소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

2)    이제 예수님께서는 3년 이상의 공생애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고자 하심(19:28). 백성들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예의 주시를 하고 있음(7:10-13).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전하고 계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라고 하는 천국복음과 유대교지도자들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선민구원사상 및 이스라엘 제국의 재건이라고 하는 메시아사상이 서로 충돌을 하고 있기 때문임.

3)    조금 풀이를 해보자면, 유대교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선민 유대인들을 현세적으로 구원하여 주시기를 원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메시아를 보내셔서 히스기야 왕 때처럼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시고(왕하19:34-35)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신다는 것임(삼하8:1-15). 그와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10:13-16, 11:29-32, 13:28-30, 17:18-19, 22:28-30, 24:44-49).

4)    그러므로 군마를 타고서 칼을 들고 외세와 싸우시는 모습이 아니라 어린 나귀를 타고서 이 세상 모든 민족 사이에 화평과 구원의 하나님 메시지를 선포하고자 하시는 것임(19:29-30). 그와 같은 메시아의 예루살렘 입성이 있을 것임을 그 옛날 선지자 스가랴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고 있는 것임;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9:9).

 

2.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믿고서 2명의 제자를 벳바게로 파송하시면서 단지 주께서 쓰시겠다고 나귀 주인에게 말하고서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시는가?(19:31-35)

(1)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하신 내용을 현실적으로 모두 이루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능력을 익히 알고 계시는 예수님(24:44-48);

1)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의 능력으로 선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기를 원하고 계심.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먼저 보내어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를 모두 살려서 그들에게 영생의 구원을 주고자 하시는 것임.

2)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심;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6:38-40).

3)    예수님께서는 그와 같은 사실이 이미 선지자들에 의하여 히브리정경에 정확하게 예언이 되어 있으며 그 모든 예언이 자신의 복음사역과 대속의 십자가의 희생 그리고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된다는 것임(24:44-47).

4)    아울러 그러한 하나님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종들에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지원과 도움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이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사역을 하라는 것임(28:18-20, 24:48-49, 1:8). 그와 같이 복음의 일꾼으로 한평생 살아가게 되면 천국에서 영생과 영광을 얻게 된다는 것임(22:28-30, 14:1-3).

(2)  아버지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도우심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 주시는 예수님(9:1-6, 10:1-9, 22:10-13);

1)    만일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말하기를 주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19:31-35);

2)    마치 하나의 암호와 같음;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대답하면 그 나귀 새끼를 빌릴 수가 있다는 것임. 그것은 자신이 맡겨 놓은 물건을 찾아서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고 있는 것임. 그와 같이 만물을 주장할 수 있는 능력자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이시라고 하겠음.

3)    복음사역자를 이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우선하여 그 사역을 성취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보호와 지원을 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다음의 여러 대목에서 생생하게 엿볼 수가 있음;

4)    첫째, 갈릴리 일대에 12명의 사도들을 파송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들어가는 동네에서 그들에게 숙식을 제공할 집들이 이미 마련이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를 말고 들어가서 신세를 지면서 끝까지 복음사역을 잘 하라고 격려의 말씀을 하고 계심(9:1-6).

5)    둘째, 사마리아 지역에 70인의 제자들을 35개조로 복음사역을 위하여 파송하실 때에도 동일한 메시지가 예수님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전달이 되고 있음(10:1-9). 실제로 그들이 그와 같은 방법으로 복음사역을 성공리에 마무리를 하였다고 예수님께 놀라운 결과보고까지 하고 있음(10:17-20).

6)    셋째, 유월절 만찬장소를 구하는 대목에 있어서도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집으로 들어가서 내가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그 집의 큰 다락방을 만찬 장소로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심(22:7-12). 실제로 그와 같은 기적과 같은 일이 발생을 하고 있음(22:13).

7)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과 조치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복음사역을 위하여 세밀한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꾼들을 보살피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음.  

 

3.    그 나귀 새끼는 처음으로 사람을 태우고 있으므로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그 나귀에 태우고 어느 쪽 문으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려고 길을 잡고 있는가?(19:35-37)

(1)  처음으로 사람을 태우고 기드론 골짜기를 올라가고 있는 나귀 새끼의 어려움(19:35-37);

1)    감람산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벳바게 마을에서 어린 나귀를 빌려와서 예수님께서는 그 나귀를 타시고 감람산 내리막길을 내려가 기드론 골짜기를 통과하신 것으로 보임(19:37).

2)    그런데 기드론 골짜기는 북상을 할수록 가파른 언덕길임. 그러므로 사람을 처음 싣고서 그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는 나귀 새끼는 힘이 많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이 됨.

3)    그러나 사람을 처음 태운 어린 나귀는 묵묵히 그 경사지를 올라간 것임. 그리고 마침내 그 목적지인 예루살렘 동쪽 문인 사자문으로 들어선 것으로 보임. 그것은 마치 주님을 모시고 온 세상 복음사역의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있는 신실한 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하겠음.

(2)  나귀 새끼를 도와주는 사도들의 배려(19:35-36);

1)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가실 때에 그들이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19:35-36);

2)    겉으로 보면,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나귀 새끼에게 자신들의 겉옷으로 안장을 만들고 또한 땅에 깔고 있는 것으로 보임.

3)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것은 나귀새끼를 보호하고 있는 것임. 두꺼운 겉옷을 안장처럼 깔았기에 그 어린 나귀는 등이 덜 아픈 것임. 그리고 자갈이 많은 기드론 골짜기에 겉옷을 깔았기에 걸음을 떼기가 더 편한 것임.

4)    결국 제자들이 나귀가 안정적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스승이신 예수님을 편히 모실 수가 있게 된 것임. 그러한 맥락에서 주님께서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신 다음 구절의 의미를 재삼 묵상하게 되는 것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있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4.    제자들이 그렇게 신이 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경하하고 찬양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19:35-38)

(1)  제자들이 신이 나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경축하고 있는 이유(19:35-38);

1)    12사도들을 비롯하여 예수님을 추종하고 있는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고대하고 있음.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의 제국을 재건할 것임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임. 선민 유대인들이 고대하고 있는 메시아의 사명이 바로 그것인 것임.

2)    그와 같은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 예루살렘으로 남하하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사도들 사이에 발생한 분쟁임.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요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도들 사이의 알력과 갈등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10:35-37),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대하여 화를 내거늘”(10:41).

3)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현세적인 선민의 제국을 재건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정확하게 선포하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

4)    한 마디로, 사도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고 찬양하는 이유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를 물리치시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의 영광을 회복하신다고 믿고 있기 때문임(19:37-38).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신 것임; “예루살렘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선민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영생구원의 길을 열어주고자 하시는 것임”(24:44-49).

(2)  제자들이 선창하고 백성들이 후창을 하고 있는 메시아 찬양의 내용이 무엇인가?(19:38)

1)    이미 감람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19:37-38);

2)    첫째로, “제자의 온 무리”(19:37)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예수님을 추종하고 있는 많은 무리들이 사도들의 뒤를 따라 기드론 골짜기로 함께 행진을 하고 있다는 것임.

3)    둘째로, 12사도들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나귀의 안장으로 사용하고(19:35) 나머지는 기드론 골짜기 자갈 길에 깔고 있지만 그것이 12벌에 불과함. 그에 비해서 기드론 골짜기는 2km에 이르고 있음. 그러므로 많은 제자들과 예수님을 추종하는 백성들이 전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예수님의 나귀가 지나가는 길에 깔고 있다는 것임(19:36)

4)    셋째로,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복음사역을 하시면서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그 능력은 참으로 놀라운 것임. 그 옛날 엘리야나 엘리사와 같은 큰 선지자의 수준을 진작에 뛰어넘고 있는 능력임. 따라서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이야 말로  여호와께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해방과 구원을 베풀기 위하여 보내어 주신 능력자 메시아라고 믿고 있는 것임(19:37). 따라서 위와 같은 찬양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하겠음(19:38);

5)    첫째,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19:38a);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시고 선민의 제국을 건설하실 왕이시기에 이제 선민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왕으로 영접한다는 것임(19:19).

6)    둘째,하늘에는 평화(19:38b); 선민의 제국이 재건되어 시온의 영광을 온세상에 나타내는 그것이 바로 하늘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평화의 선물을 올려드리는 것이라는 의미임.

7)    셋째,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19:38c); 사도들과 제자들 그리고 백성들이 여기서는 예수님을 선민 유대인들의 해방자이며 구원자로 여기고서 예루살렘성으로 영접하고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 그들은 선민의 영광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임.

 

5.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는 바리새인의 요구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거부의사를 밝히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19:39-40)

(1)  바리새인들은 어째서 예수님께 제자들을 책망하라고 요청하고 있는가?(19:39)

1)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19:39);

2)    바리새인들의 생각으로는 대중들을 선동하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입을 틀어막게 되면 그 소동이 잠잠해질 것으로 보고 있음. 따라서 선창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조용하게 하고서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법 어른스럽게 예수님께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임.

3)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유대교의 경전에 밝으며 율법선생으로 행세를 하고 있기에 갈릴리 산골출신인 나사렛 예수 정도야 유대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성에 들어오게 되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아니할 수 없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임.

4)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인 세력과 유대교의 조직적인 권위에만 의존하고 있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사고방식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세상적인 권세로 억누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님.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것이며 창조적인 것이기 때문임.

(2)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거부의사를 밝히시는가?(19:40)

1)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19:40); 사람과 돌을 대조하고 있는 문장임. 그것은 다음과 같이 대비를 할 수가 있다고 하겠음;

2)    첫째, 사람은 생물이지만 돌은 무생물임. 살아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마주 비교할 수는 없는 것임. 그렇지만 창조주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있다는 것임. 모세에게 지팡이로 뱀을 만들게 하고 그 다음에는 그 뱀의 꼬리를 잡아 지팡이로 환원하게 하시는 여호와이심(4:3-4, 7:10, 12).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살아 있는 값어치를 못하게 되면 돌맹이보다도 못하다고 하는 꾸중을 듣게 되는 것임.  

3)    둘째, 사람은 하나님의 말을 알아 듣는 존재이지만 돌은 그러하지가 못한 존재임. 선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여호와를 섬기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함. 그러나 실제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고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님. 그러므로 세례 요한이 다음과 같이 그들에게 회개를 종용하고 있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3:9).

4)    셋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러하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음.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 산 앞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제멋대로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인 사실이 있음. 그때 여호와께서는 격노하시며 다음과 같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바가 있음;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32:9-10);

5)    요컨대,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는 그러한 백성은 필요가 없으며 모세의 자손만으로 충분하게 선민을 다시 만드실 수가 있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심. 그와 같이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저버리고 있으므로 이제는 그들이 돌과 같이 여기고 있는 이방인들을 사용하여 온세상을 구원하는 복음사역을 하실 수도 있다는 주님의 말씀이신 것임.

 

6.    예루살렘성을 보시고 우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평화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기에 어떠한 비극을 장차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시는가?(19:41-44)

(1)  여호와께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원하시는 일을 무엇인가?

1)    예수님께서 요나의 사례를 원용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일을 정확하게 말씀하심;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11:29);

2)    첫째, 갈릴리 가드헤벨의 선지자 요나처럼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땅으로 들어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는 것임.

3)    둘째, 여호와의 지상명령을 반대하고 있는 선민들은 요나처럼 큰 물고기의 뱃속에 들어가서라도 3일만에 회개를 하라는 것임.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3일만의 부활을 보고서 큰 회개를 하라는 것임.

4)    셋째, 이방 땅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게 되면 그들이 크게 회개를 하고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놀라운 미래가 전개된다는 것임.

(2)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일을 선민 유대인들이 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1)    첫째, 선지자 요나처럼 선민만의 구원사상에 빠져서 이방인들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면 안되는 것으로 그 생각이 그만 굳어져 있는 것임(1:3). 그것은 사도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전에 크게 고민하는 사실에서도 역력하게 볼 수가 있는 것임(10:10-23).

2)    둘째, 선민 유대인들이 현세적인 축복사상에 빠져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메시아가 오셔서 그 능력으로 외세인 이방인들을 전부 몰아내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사고하는 것임. 그러므로 그러한 일을 수행하지 아니하는 메시아는 그들에게 필요하지가 않다는 것임. 여호와를 시험하다가 그들이 큰 시험에 빠지게 되고 만 것임(17:7).

3)    셋째, 출애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분명히 애굽인들에게는 장자의 죽음을 내리시고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구원을 주신 것임(12:21-23, 29-30).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여호와이시며 이방인들에게는 죽음과 멸망을 주시고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해방과 구원을 주신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임.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며(5:44)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말씀하고 계시기에(8:10-13) 그 말씀을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는 것임.

(3)  선민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처형하게 되면 어떠한 비극을 경험하게 되는가?(19:41-44)

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은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19:41-44);

2)    첫째, 이 세상의 진정한 평화는 선민들의 집단 이기적인 제국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하여 함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서 다같이 영생을 누리는 것임.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평화의 나라 천국에 함께 들어가는 방법이 되는 것임.

3)    둘째, 선민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원수로 여기고 그 멸망을 여호와께 간구하였기에 그 소원이 역사적으로 이루어지지를 못하게 되는 것임. 더구나 불행하게도 여호와께서 진정 원하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배척하고 처형하게 된다는 것임.

4)    셋째, 그 결과 선민 유대인들이 당하게 되는 비극이 엄청난 것임. 그 일을 미리 예견하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의 최후의 모습을 보시고 그토록 눈물을 흘리시고 우신 것임(19:41-44). 실제로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주후 70년에 유대 땅의 반란을 진압하는 로마군대에 의하여 110만명의 유대인들이 살해되고 예루살렘성이 완파가 되며 선민들이 모두 유대 땅에서 쫓겨나는 비극을 당하게 된 것임.  

 

7.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성전청결사건을 일으키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19:45-46) 예수님께서 날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치시자 유대교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처하고자 하는가?(19:47-48)

(1)  예루살렘 성전에서 청결사건을 일으키시는 예수님(19:45-46);

1)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19:45-46);

2)    첫째, 성막의 지성소에 여호와께서 임재를 하시듯이(25:8-9, 22, 40:34-35) 솔로몬 대왕이 지어서 봉헌한 예루살렘 성전에도 지성소가 있으며 그곳에 여호와께서 임재하시고 계심(왕상9:3). 또한 제2성전에도 지성소가 있으며 그곳에도 여호와께서 임재하여 계시는 것임(6:16-18, 1:9-11).

3)    둘째, 성전의 뜰에는 선민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그 가장자리에 들어와서 여호와께 기도를 드릴 수가 있음.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란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씀하신 것임(56:7, 19:46).

4)    셋째, 그러한 사실을 묵살하고서 유대교지도자들이 헤롯 왕가가 제2성전을 증축하는데 지원하기 위하여 성전의 뜰 가운데 이방인들의 뜰을 할애하여 제물장사꾼과 환전장사꾼들에게 임대를 해주고 있음. 그리고 그 돈을 거두어 함부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것임(19:46, 7:11).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거룩한 분노로 장사치들을 내쫓고 계신 것임(19:45).

(2)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고 날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강론하시자 예수님을 둘러싸고 어떠한 움직임이 발생하고 있는가?(19:47-48)

1)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19:47-48);

2)    첫째,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강론을 하시자 많은 유대인 백성들이 귀를 기울여서 듣고 있음(19:48).

3)    둘째, 그러나 유대교지도자들의 태도는 일반 백성과 전혀 다름. 그들은 예수님의 천국복음의 말씀이 자신들의 유대교리와 맞지 아니하므로 일일이 거슬리는 것임. 따라서 예수를 처치하려고 모의를 해보지만 일반 백성들이 예수를 큰 선지자로 여기고 그 말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으므로 함부로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임.

4)    따라서 유대교지도자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인 장로들과 랍비들이 함께 모여서 예수를 이단으로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전격적으로 체포하고 정죄한 후에 로마총독의 힘을 빌려서 로마의 반역자로 만들어 십자가에 처형할 방법과 그 적절한 때를 구체적으로 모색하고자 하는 것임(11:47-53, 57). 훗날 그 일에 조력하게 되는 자가 내부고발자인 가룟 유다인 것임(22:4-6).

 

(여리고와 예루살렘의 위치)

(기드론 골짜기와 예루살렘 성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