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0강(눅20:1-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2. 22:44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0(20:1-2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28()

 

1.    예루살렘 성전에서 천국복음을 선민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을 산헤드린 대 공회의 3대 구성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방문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20:1-2)

(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천국복음을 백성들에게 가르치시고 있는데 그 장소가 어디이며 산헤드린 대 공회는 필요할 때 어디에서 개최가 되고 있는가?(20:1)

1)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성전은 헤롯의 성전이라고 불리고 있음. 왜냐하면, 헤롯의 왕가가 주전 20년부터 제2성전을 증축하고 있기 때문임. 주전 516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의 지도로 건축이 된 제2성전은 솔로몬 시대의 성전의 규모와 비교할 때 그 4분의 1정도로 작은 것이었음(6:13-18).

2)    따라서 이두매 출신인 헤롯 왕가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그 규모를 본래의 크기로 넓히고자 증축사업을 시행한 것임(2:20).

3)    성전 안에는 기존 성막의 구조에서 볼 수 있는 회막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음. 그리고 그 남북으로는 이방인의 뜰이 있고 그 주변에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불리는 회랑이 있음.

4)    그 회랑에서 예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치신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음(20:1). 그리고 산헤드린 대 공회는 이방인의 뜰이 넓기 때문에 그곳에서 전체회의를 가진 것으로 학자들이 보고 있음. 다만 절기 때에는 많은 백성들이 성전을 출입하고 있으므로 그 기간 동안에는 그 뜰에서 대 공회를 개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서 백성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위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는데 그 질문의 정당성과 그들의 의도는 무엇인가?(20:2)

1)    로마황제가 유대교의 자치권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산헤드린 대 공회는 명실공히 유대교리에 따른 재판과 치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 따라서 자신들이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함부로 히브리정경에 실려 있는 여호와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사찰하고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음.

2)    특히 예수님께서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계시는 천국의 복음은 전통적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율법교육과 상당히 다른 내용임.

3)    백성들에게 율법교육을 시키고 있는 랍비들은 산헤드린 대 공회에 율법학자 또는 서기관으로 봉사하고 있는 바리새인 큰 스승 아래에서 배운 사람들이므로 그들 사이에서는 하나님말씀의 해석에 대한 일반적인 두가지 원칙이 정해져 있음; ①하나는 선민구원사상임. ②또 하나는 메시아사상인데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는 현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선민의 영광을 온세상에 떨친다고 하는 것임.

4)    그렇게 선민사상과 시오니즘을 지니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이 볼 때에 나사렛 예수가 전파하고 있는 천국복음은 이방인 구원은 물론 천국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자고 하는 내용임. 그러므로 산헤드린 대 공회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장로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그러한 이상한 교리를 백성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누가 권위를 부여해준 것인지 밝히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임(20:2).

 

2.    백성들이 선지자로 여기고 있는 세례 요한의 권위가 어디에서 비롯되고 있는지 먼저 답을 해보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지혜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20:3-8)

(1)  하나님말씀의 진리성은 어떻게 입증이 되고 있는가?

1)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성을 입증하는데 있어서는 두가지의 어려움이 있음; ①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으며 영적인 것이기에 원칙적으로 인간들이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진리성을 모두 드러내지를 못한다고 하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음. 따라서 하나님말씀의 진리성은 여호와께서 스스로 성령님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내시는 것임. 그런데 사람들이 영적인 성령님의 역사를 십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입증이 여전히 어려운 것임.

2)    ②둘째,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역사를 섭리하시면서 자신의 진리를 입증하실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음. 그 이유는 많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이 옳다고 지지를 할 때까지 그 설득의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는 것임.

3)    그러한 두가지 어려움을 잘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다가와서 예수님이 전파하고 있는 천국복음의 진리성에 대하여 누가 그러한 교리의 전파를 하라고 그 권위를 부여하여 주셨는지 밝히라고 강압을 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참으로 빠져나오기 힘든 올무에 해당한다고 하겠음.

(2)  예수님께서 선지자인 세례 요한의 권위를 빌려서 답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1)    예수님의 지혜가 번쩍이고 있음. 그것은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그러한 위기를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안배하심인 것임. 왜냐하면, 주후 28년 가을에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고자 작심하시고서 먼저 세례 요한을 방문하신 것임(3:1). 그 자리에서 느닷없이 자신에게 회개의 물세례를 달라고 요구하신 것임.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임을 짐작하고 있는 세례 요한은 그럴 수가 없다고 거절하고 있음(3:11-14).

2)    그때 예수님의 말씀이 다음과 같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3:15-17).

3)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권위임을 세상사람들이 이해하기까지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임. 그러므로 백성들이 선지자로 이미 알고 있는 세례 요한으로부터 예수님께서 물세례를 받으심으로써 그 선지자의 권위에 의지하여 복음사역을 하는 것이 세상적으로 순리라는 것임. 그것이 세상적인 정의의 개념에도 민감하신 예수님의 사후대비인 것임.

4)    하나님의 지혜로 벌써 그러한 대비를 갖추고 계시기에 예수님의 반응이 다음과 같은 것임;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나? 사람으로부터냐?”(20:3-4).

(3)  예수님의 반격에 유대교지도자들은 어떠한 난관에 봉착하게 되며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무엇인가?(20:5-8)

1)    세례 요한이 공식적으로 말라기 선지자 이후 처음으로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에 나타난 여호와의 선지자라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유대교지도자들은 모두가 동의를 하고 있음. 그 이유는 두가지라고 하겠음; ①하나는 장차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에 메시아가 오신다고 하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임(3:3-17). 그것은 유대교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메시아사상과 같은 것임. ②또 하나는 메시아가 오시는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스스로 외세인 헤롯 왕가의 잘못을 대담하게 질책하다가 참수형을 당하였기 때문임(3:18-20, 14:9-12). 한 마디로, 세례 요한은 외세를 몰아내기 위하여 저항운동을 전개하다가 목숨을 잃어버린 선지자이기에 선민 유대인들이 존경하고 있는 인물임.

2)    그러므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하여 유대교지도자들이 숙의를 거듭하고 있음. 두가지 선택의 방안이 모두 외통수이기 때문임. ①첫째, 만약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대로 답을 한다면 세례 요한이 물세례를 주고 메시아라고 백성들에게 소개를 한 바 있는 나사렛 예수 자신의 말을 어째서 믿지 아니하는가?라고 질책을 할 것만 같은 것임(20:5, 1:29-34). ②둘째, 반대로 세례 요한이 선지지가 아니라고 답을 한다면 이미 요한이 선지자임을 확신하고 있는 유다의 백성들로부터 반발이 극심할 것이기 때문임(20:6).

3)    드디어 궁여지책(窮餘之策, 당장 곤궁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계책을 말함)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고 있음;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20:7). 그에 대하여 마치 기다리고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즉답이 다음과 같음;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0:8).

 

3.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어떠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지를 백성들에게 간접적으로 가르쳐 주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내용과 그 의미가 무엇이며(20:9-18),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포도원을 세를 주고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고 종들만 보내게 되면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가?(20:9-12)

(1)  포도원 농부의 비유의 내용(20:9-15a);

1)    유대교지도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께 그 권위의 출처에 대하여 시비를 걸어오자(20:1-8)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시는 형식으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가르치신 것임(20:9-18).

2)    그 내용은 ①첫째, 포도원을 만든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나가서 오랜 세월 돌아오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20:9). ②둘째, 수확의 때가 되어 포도원 소출의 얼마를 받기 위하여 종을 보냈더니 농부들이 세를 바치지 않기 위하여 그 종을 몹시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 보냈다는 것임(20:10). ③셋째, 포도원 주인이 3번까지 종을 파견했지만 결과가 같다는 것임(20:11-12).

3)    ④넷째, 마침내 주인이 상속자인 아들을 농부들에게 보낸 것임(20:13). 그러나 농부들이 그 포도원을 영원히 가로채기 위하여 상속자인 아들을 내쫓고 살해한 것임(20:14-15a).

(2)  포도원주인의 아들을 살해한 농부들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20:15b-18);

1)    그러한 비유의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주인의 향후 심판에 관하여 선민 유대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20:15b-16a).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의 의견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음;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20:16b).

2)    선민 유대인들은 그러한 비극적인 결말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 그러나 유대교지도자들의 선동에 의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선택은 달라질 것임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예언하심;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20:17-18).

3)    그 의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선민 유대인들의 음모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처형을 당하시게 되면 그것이 오히려 향후 심판과 구원의 시금석이 되며 하나님나라 건설의 주춧돌이 된다고 하는 것임.

4)    그에 따라 ①첫째, 그 충격적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희생을 보고서 자신의 잘못을 확실하게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자는 지금까지 죄인된 삶이 깨어지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임(20:18a). ②둘째, 그러한 회개와 변화된 삶에 동참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를 살해한 책임을 물어서 자신과 그들의 나라가 전부 멸망의 심판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임(20:18b).

5)    참고로,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20:17)는 말씀은 선민들이 대속자인 메시아를 배척함으로 말미암아 천국복음이 이방인들을 구원하는 초석이 된다고 하는 의미인데 그러한 예언은 시편 제118편 제22절에 이미 적혀 있는 내용인 것임.

(3)  포도원 주인이 오래 돌아오지 아니하고 종들만 보내게 되면 선민사회에서는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가?(20:9-12);

1)    여기서 포도원 주인은 창조주이심. 그리고 포도원을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맡기신 이유는 그 소출을 받기 위한 것임(5:7, 15:1-8). 따라서 선민 유대인들은 창조주께서 원하시는 공의의 정신을 실천해야만 하는 것임(19:4-6). 그것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임(19:6).

2)    제사장은 자신을 위해서는 일주일간의 위임제사를 속죄의 제사로 드림(29:19, 37). 그 이후에는 백성들의 속죄와 화목을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게 됨. 그러한 제사장들이 나라를 이루고 있는 것이 제사장나라임. 따라서 제사장의 나라는 세상의 모든 백성들의 속죄와 화목을 위하여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주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임.

3)    또한 거룩한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는 선지자를 말하고 있음. 그 모범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임(12:1-5, 17:1). 아브라함은 이방 땅에서 한결같이 여호와의 선지자로 살아간 것임(20:7, 23:6).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영광을 증거한 자가 아브라함임(20:17-18, 21:22). 그리고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린 자임(18:23-32).

4)    그런데 포도원의 농부와 같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브라함처럼 여호와의 종으로 살아가지를 아니하고 있음.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소출을 바치고 있지를 아니한 것임. 그 반대로 여호와의 뜻을 전하고 있는 선지자들을 해치고 있다는 것임.

(4)  이방인들의 사회에 있어서는 어떠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가?

1)    중요한 사실은 선민 이스라엘의 사회만 그러한 것이 아님. 세상의 다른 족속들은 아예 창조주가 이 세상에 아니 계시는 것으로 간주하고서 제멋대로 자신들이 세상의 주인으로 행세를 하면서 무신론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임.

2)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시지 아니하시게 되면 이 세상에서 발생하게 되는 엄청난 사건인 것임. , 무신론자들이 그 목소리를 높이며 세상사람들이 이기적이고도 현세적인 복만을 추구하면서 기어코 약육강식의 짐승과 같은 사회를 만들고 만다는 것임.

 

4.    포도원 주인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들을 그 포도원의 농부들에게 보내고 있는 이유 및 농부들의 대처방안이 시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20:13-16)

(1)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아들을 그 포도원의 농부들에게 보내고 있는 이유(20:12-13);

1)    다시 3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20:12-13);

2)    종과 아들은 중요한 차이가 두가지 있음; ①하나는 종은 상속권이 없지만 아들은 상속권이 있다는 것임(20:14, 8:17). 따라서 그 포도원의 장래의 주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임. ②또 하나는 종은 영원히 주인의 집에 거하는 것이 아니지만 아들은 영원히 함께 살 수가 있다는 것임(8:35).

3)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이 자신의 아들을 포도원 농부들에게 보낸 뜻은 ①첫째, 장차 그 포도원을 상속하는 그 아들에게 협력하여 농부들이 계속 그 포도원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해주고자 하는 것임. ②둘째, 그동안 주인이 보낸 종들을 믿지 못하여 소출을 바치는 것을 거절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포도원의 차기 주인이 되는 아들이 왔으므로 믿고서 소출을 바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임.

(2)  포도원의 상속자를 농부들이 처치하고자 하는 이유(20:13-15);

1)    그와 같은 포도원 주인의 선한 뜻이 탐욕스러운 농부들에 의하여 정면으로 배척을 당하게 됨.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묘사가 되고 있음;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20:14-15a).

2)    포도원의 농부들은 세가지 중요한 착각을 하고 있음; ①첫째, 포도원 주인은 멀리 타국에 가서 자신의 포도원에 돌아올 수가 없는 운명이 되고 있다는 것임. ②둘째, 그러므로 소출을 받기 위하여 종들이나 보내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는데 그치고 있다는 것임. ③셋째, 아들까지 죽여버리고 나면 더 이상 이 세상에 파견할 자가 없다고 하는 것임.

3)    그러나 그러한 포도원 농부들의 관념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가정임. 왜냐하면, 포도원 주인은 언제라도 자신의 포도원으로 돌아올 수가 있으며 잘못을 범한 농부들을 처벌할 수가 있기 때문임(20:15b-16).

(3)  포도원 주인에게 세를 내지 아니하고 있는 농부들은 누구이며 포도원 상속자를 처형한 결과 어떠한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가?(20:16)

1)    예수님께서 선민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는 현세적인 탐욕에 눈이 어두워 여호와의 뜻을 저버리고 유대교의 종교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자들이 맞이하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임(20:16).

2)    그러므로 포도원 주인은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으며 포도원은 선민 이스라엘의 나라 또는 그들의 사회이며(5:7) 그 농부들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것임.

3)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선민만의 구원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에 젖어서 그러한 복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져다 줄 정치적인 메시아만을 고대하고 있음. 따라서 나사렛 예수가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여 주면 자신들의 메시아로 인정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는 말씀임.

4)    반대로, 나사렛 예수가 끝까지 자신들의 요구를 물리치고 원수를 용서하며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고자 한다면(5:43-48) 유대교에 심각한 해를 끼치고 있는 이단으로 정죄하고 처형할 생각이라는 것임. 실제로 예수님이 유대교지도자들의 요청을 거절하게 되자 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처단하고 마는 만용을 저지르게 되는 것임.

5)    그 결과 선민 유대인들의 사회가 40년도 지나지 아니하여 풍지박산이 나고 마는 것임. 주후 70년에 로마황제에 대하여 반란을 도모하다가 대규모 로마 정예병의 내침으로 유대인 110만명이 살해를 당하고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가 되며 선민들이 그들의 땅에서 전부 쫓겨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는 것임(19:41-44). 

 

5.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 선례는 장차 선민과 이방인들에게 어떠한 심판과 구원의 기준으로 역사하게 된다는 말인가?(20:17-18)

(1)  자신들의 선민사상과 메시아사상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성취하려는 예수 그리스도를 해치게 되는 선민 유대인들의 비극에 대하여(20:16);

1)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배척하고 그를 처단하게 되는 선민 유대인들이 장차 경험하게 되는 엄청난 심판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음.

2)    그들의 유대교는 다음과 같은 관념 위에 세워져 있는 것임; ①첫째,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만이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창조주 여호와를 모르고 하나님으로 섬기지도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 ②둘째,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문화와 제도를 그들에게 주셨다는 것임;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주심, 성막과 성물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고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심, 할례제도를 주셔서 이방인들과 육체적으로도 구별이 될 수 있도록 하심, 안식일을 주시고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심 등이 그러한 것임.

3)    그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민 유대인들을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이방인들은 역사적으로 멸망을 당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임.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지만 여호와께서는 역사적으로 메시아를 보내셔서 그 일을 실천하신다는 것임.

4)    그런데 메시아로 불리고 있는 나사렛 예수가 전혀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지 아니하고 있음. 도리어 선민구원사상과 현세적인 메시아사상을 부인하고 원수를 용서하며 이방인까지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영생을 누려야만 한다고 역설하고 있는 것임. 그것은 유대교의 기반을 허물고 있는 위험한 범죄행위임. 따라서 유대교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예수님을 처단하고 마는 것임. 

6)    그 결과 선민 유대인 사회에 장차 발생하게 되는 비극은 전술한 바와 같음; “주후 70년에 로마황제에 대하여 반란을 도모하다가 대규모 로마 정예병의 내침으로 유대인 110만명이 살해를 당하고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가 되며 선민들이 그들의 땅에서 전부 쫓겨나게 되는 엄청난 비극을 경험하게 되는 것임”(19:41-44). 

(2)  그것은 선민 유대인들만의 사상적인 비극인가 아니면 이 세상 모든 족속들에게 적용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인가?(20:17-18)

1)    선민 유대인들의 비극은 그들에게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님. 동일한 범죄를 행하고 있는 모든 민족들에게 임하게 되는 비극이 될 것임(25:29). 그 이유는 모든 국가와 민족들이 하나같이 선민사상과 현세적인 축복사상을 이기적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임.

2)    예를 들면, 중국 중원의 황제사상, 일본의 천황사상, 한국인의 천손(天孫)사상, 아메리카의 세계패권사상, 과거 영국의 대영제국 사상, 독일의 게르만 우월사상 등이 모두 그러한 것들임.

3)    요컨대, 자기나라나 자기 민족들만 현세적인 구원과 영광을 누리기 위하여 다른 민족들을 압제하거나 종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유대교적인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음. 따라서 그들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심판도 동일할 수밖에 없는 것임.  

 

6.    머리가 좋은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처형을 로마총독부에 떠넘기고자 어떠한 계략을 꾸미고 있는가?(20:19-22)

(1)  머리가 좋은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처형을 로마총독부에 떠넘기고자 꾸미고 있는 계략(20:19-22);

1)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20:19-22);

2)    예수님 당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인 랍비 가운데 그 명망이 높으며 학식이 뛰어난 자가 산헤드린 대 공회에 출석하여 종교재판에 있어서 유권해석을 하며 재판서류를 정리하게 되는데 그들이 서기관들임. 그러므로 그들은 히브리정경에 밝으며 학문도 상당한 자들임. , 총명하고 영리한 자들임. 그리고 당시 대제사장은 가야바인데 그는 교활하면서도 정치적으로 머리가 영민한 자임(11:49-50). 가야바의 장인이며 전전임 대제사장을 지낸 안나스는 유대교의 실세이며 권력자임(18:13). 따라서 그들이 합세하여 지혜를 모아 예수님을 처단하려고 하는 것임.

3)    세상적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는 그들이기에 선민 유대인 백성들의 상당수가 지지하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자기들의 손으로 무리하게 처단하는 것보다는 로마총독의 통치권력을 이용하여 처형하고자 음모를 꾸미게 됨(20:19-20). 그 내용이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하고 선민 유대인들을 그렇게 선동하고 있다고 모함을 하는 것임(19:12).

4)    그들이 그렇게까지 무리를 하면서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유대교지도자들인 자신들을 겨냥하여 말씀하신 것인 줄 눈치를 챘기 때문임(20:19).  따라서 그러한 음흉한 계책을 꾸미고 정탐꾼들을 보내어 예수님을 칭찬하면서 은근히 로마의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옳지 않은 것인지 가르침을 달라고 질문하도록 만들고 있음(20:20-22).

(2)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외세인 로마제국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치고자 하시지 아니하시는가?

1)    예수님께서는 어째서 외세인 로마제국이나 이두매 출신인 헤롯 왕가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리치지 아니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교지도자들의 의문사항임. 하지만 그 대답은 실로 간단한 것임. 왜냐하면, 집단 이기적인 선민사상이나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현세적인 이익을 극단적으로 얻고자 하는 장치 곧 현세적인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메시아사상은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기 때문임.

2)    선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하여 주변의 이방인들을 종으로 삼아 패권을 행사하는 것이나 로마사람들이 120개 이상의 족속들을 속국으로 삼아 조공을 받으며 군정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나 그 모양새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임. 결국은 피지배족속이 다시 지배족속이 될 뿐 역사적인 패권의 행사와 가혹한 탄압은 되풀이 되는 것에 불과한 것임.

3)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고자 하시는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역사를 섭리하고자 하시며 결코 그 방향에 어긋나는 선민우월사상이나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에 동조를 할 수가 없는 것임.

4)    그와 같은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사상임. 따라서 선민과 이방인 모두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천국복음으로 전파하고자 하시며 그들 모두를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것임. 그 일을 위하여 자신을 예루살렘에서 대속의 희생의 제물로 바칠 각오까지 하고 계시는 것임(18:31-34).  

 

7.    그 간사한 속셈을 이미 간파하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질문과 현명한 답변)을 하고 계시는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0:25)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20:23-26)

(1)  유대교지도자들의 간사한 속셈을 이미 간파하신 예수님의 답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0:25)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20:23-26);

1)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20:23-26);

2)    첫째, 당시 속국들은 로마황제에게 조공을 돈으로 바치고 있는데 그것은 세관에서 거두고 있는 관세를 모아서 그것을 로마의 은화로 바치고 있는 것임.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로마의 은화 데나리온으로 관세를 모아서 로마의 황제인 가이사에게 바치고 있는 것은 세속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것임. 그와 같은 세속적인 일에 대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관여를 하거나 변개를 꾀하고자 아니하시는 이유는 실익이 전혀 없기 때문임. 왜냐하면, 로마의 패권의 행사에 대하여 그것을 뒤집고 이스라엘 제국을 건설하여 선민들에게 큰 혜택을 주어 보아야 그들 역시 동일하게 주변국의 조공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임(왕상4:21). 다윗과 솔로몬 때에도 그러하였으니 그러한 역사가 반복이 될 따름이라는 것임.

3)    둘째, 여호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세속적인 패권의 문제나 조공의 문제가 아닌 것임. 세상적인 돈과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 옛날 아브라함처럼 이방인의 땅으로 나아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가는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임.

(2)  그 말씀은 성도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이 되는 것인가?

1)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삶의 모범을 정확하게 자신의 공생애와 대속의 십자가 죽음으로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있음(24:44-49).

2)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하여 자신의 남은 인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임(28:18-20, 1:8).

3)    좀더 쉽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삶의 방식인 것임; “이방인의 죄를 속하며 구원을 베풀고자 하는 제사장으로서의 삶과 거룩한 중보자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인데 그것을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는 산 제사 곧 영적인 예배라고 말하고 있는 것임”(12:1-2).

 

 

(헤롯의 성전의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