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6강(눅23:1-25)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년 3월 22일(목)
1.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총독인 빌라도에게 끌고 간 명목상 이유와 진짜 이유는 각각 무엇인가?(눅23:1-2)
(1)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총독에게 끌고가서 고발하는 내용에 대한 검토(눅23:1-2);
1)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눅23:1-2); 유대교지도자들이 로마총독에게 예수님을 끌고가서 고발하는 이유가 두가지로 나타나고 있음;
2) 첫째, 로마 황제인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지 말라고 유대인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임(눅23:2a). 그것은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로마제국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자 하는 불순한 주장이며 일종의 민족 독립운동이므로 유대 땅을 통치하고 있는 로마총독이 사전에 이를 다스려야만 한다는 것임.
3) 둘째, 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인 로마를 몰아내고 선민 유대인의 국가를 재건하는 메시아이며 선민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임(눅23:2b). 그것은 로마황제에 대한 명백한 반역이므로 나사렛 예수를 처단하는 것이 옳다는 것임.
(2) 예수님을 로마총독에게 넘긴 진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글(요18:28-31);
1) “그들이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발하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 하니”(요18:28-31); 사도 요한은 제4복음서를 저술하면서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총독인 빌라도에게 끌고 간 진짜 이유를 위와 같이 정확하게 밝히고 있음. 정리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이유임;
2) 첫째, 로마황제가 변방의 속국의 백성에 불과한 유대인들에게 선심을 쓰고 있음.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원하고 있는 유대교에 대한 종교적 자치권을 허용한 것임. 따라서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성전에는 산헤드린 대공회가 있으며 로마총독이 임명한 대제사장이 대공회의 수장이 되어 유대교의 최종 재판권을 행사하고 있음.
3) 둘째, 종교적인 자치권에 불과하므로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반 유대교 사상의 전파자라고 나사렛 예수를 정죄한다고 하더라도 실정법적으로는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이 그들에게 없는 것임(요18:31). 속국의 백성에 대한 사법적인 재판과 처형권은 여전히 로마황제가 파견한 현지 군정의 최고 책임자인 로마총독에게 속하고 있기 때문임.
4) 셋째, 나사렛 예수를 속히 처형하기를 원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안식일을 하루 앞둔 금요일 아침에 예수님을 끌고서 로마총독인 빌라도를 방문하고 있음. 금일 빌라도에 의하여 빨리 나사렛 예수의 처형이 확정이 되어야 유대교지도자들은 내일 안식일에 로마총독을 재차 방문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고 성전예배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임. 그러한 의미를, “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18:28)는 문장에서도 엿볼 수가 있다고 하겠음. 즉, 나사렛 예수에 대한 걱정을 접고 그들은 안심을 하고 느긋하게 금요일 무교절 식사를 즐기려고 하는 것임.
5) 그렇지만 유대교지도자들은 그러한 내심을 가급적 드러내지 아니하고 있으며 어디까지나 겉으로 명목적으로는 나사렛 예수가 로마제국에 대한 반역을 도모하고 있으므로 그를 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임(눅23:1-2).
2. 빌라도의 질문이 무엇이며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답변해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째서 예수님이 죄가 없다고 단정하고 있는가?(눅23:3-4) 그리고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분쟁에 휘말리지 아니하려고 하는 빌라도가 선택하고 있는 정치적인 해법은 무엇인가?(눅23:5-7)
(1) 별로 성의가 없는 빌라도의 예수님 심문 그리고 그가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고 있는 이유(눅23:3-4);
1)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눅23:3-4);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고 있으며 예수님은 로마총독에게 너의 말이 옳다고 답변하심. 그러한 예수님의 답변내용은 유대교지도자들의 고발내용에 따르게 되면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로마제국을 유대 땅에서 몰아내어 선민 유대인들의 국가를 재건하고자 하는 유대인들의 새로운 왕의 반역의 외침인 것임(눅23:3).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예수는 죄가 없다고 말하고 있음. 그 이유가 궁금한 것임. 그 이유는 실로 간단하다고 하겠음. 왜냐하면, 로마총독의 임무가 다음과 같기 때문임;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예루살렘과 유대 땅과 사마리아를 직접 군정으로 통치하며 평소에 유대교의 지도자들은 물론 선지자들의 활동 그리고 헤롯 왕가의 분봉 왕들의 움직임마저 첩자를 파견하여 내사하고 있음. 그는 그렇게 수집된 정보를 분석하여 얻은 결론을 가지고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로마황제에게 정세에 관한 보고까지 올리고 있음. 그러므로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에 대한 조사까지 벌써 여러 번 시행하였으며 그 정보를 정확하게 분석하여 그가 로마제국에 대한 위협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음”. 구체적으로, 나사렛 예수에 관하여 로마총독 빌라도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가 있음;
3) 첫째, 유대교지도자들은 선민사상과 외세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몰아내는 정치적 메시아사상을 지니고 있지만 나사렛 예수는 전혀 그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임. 예수는 선민 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풀이를 하고 있으며 함께 구원을 받아 영생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자신이 주장하고 있는 천국복음의 내용이라고 선포하고 있는 자인 것임.
4) 둘째, 최근에 나사렛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눅20:25)고 주장하고 있음. 따라서 그러한 평화공존사상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인물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한다면 로마제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위험도 느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빌라도의 판단인 것임.
(2)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분쟁에 휘말리고 싶지 아니한 빌라도가 선택하고 있는 정치적인 해법(눅23:5-7);
1)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눅23:5-7);
2) 유대교지도자들은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나사렛 예수를 처형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눈치를 채고 있음. 따라서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님을 처형해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를 계속하고 있음. 빌라도는 자신이 내사하여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전혀 다른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에 대하여 그들이 예수를 무고하고 있다고 말하지를 못하고 있음. 그렇게 되면 평소에 유대교지도자들과 선지자들의 동향까지 빌라도가 은밀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되기 때문임.
3) 그래서 빌라도는 이 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을 하고 있는데 마침 유대교지도자들의 주장 가운데 묘책이 발견이 되고 있음. 그것은 예수가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유대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선동하고 있다는 것임(눅23:5). 잠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나사렛은 갈릴리의 산골 마을이며 그곳 출신의 선지자가 바로 예수인 것임(눅2:39-40, 4:16). 그러므로 그의 고향과 활동의 중심지가 행정적으로 갈릴리 분봉 왕의 지역에 속하고 있는 것임.
4) 마침 유월절과 무교절 기간이라 개종한 이두매 왕가인 헤롯의 분봉 왕 안디바가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음(눅23:7). 그러므로 나사렛 예수의 신병을 갈릴리의 분봉 왕에게 인도하고 그의 판결에 따라 처형하는 것이 좋다는 것임. 그리하면 빌라도는 그 사건에서 손을 떼게 되는 유익이 있는 것임. 그렇게 판단한 빌라도는 즉시 예수가 갈릴리 나사렛 사람이냐고 유대교지도자들에게 묻고서 그 대답에 따라 갈릴리의 분봉 왕에게 그의 신병을 인도하고 마는 것임(눅23:6-7). 참으로 교활하며 영리한 로마총독 빌라도임.
3. 유월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헤롯 안디바가 자신에게 이첩이 된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으며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인가?(눅23:7-9) 그리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고발을 들은 갈릴리 분봉 왕은 어째서 예수님을 희롱하고 로마총독에게 되돌려 보내고 마는가?(눅23:10-12)
(1) 유월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던 헤롯 안디바가 자신에게 이첩이 된 예수님을 어떻게 대했으며 예수님의 반응은 무엇인가?(눅23:7-9)
1)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눅23:7-9);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음;
2) 첫째,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는 평소에 나사렛 예수를 직접 만나 보기를 원한 인물임. 그 이유는 자신이 처형한 선지자 세례 요한이 나사렛 예수로 되살아났다고 하는 소리가 때로 들려왔기 때문임(눅9:7). 그러므로 예수가 세례 요한처럼 자신을 반대하고 있는 인물인지 아닌지 그 점을 직접 파악하고 싶었던 것임(눅9:9, 23:8a).
3) 둘째, 갈릴리 서부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헤롯 안디바는 로마황제의 위임을 받아 그 지역을 통치하고 있으므로 백성들을 재판하고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고 있음. 따라서 그가 몇 년 전에는 세례 요한까지 참수를 한 적이 있는 것임(막6:27-28). 만약 나사렛 예수가 세례 요한처럼 헤롯 안디바 자신을 비판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이 기회에 조사를 하여 처단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님.
4) 셋째, 헤롯 안디바가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으나 예수님은 전혀 아무 말도 하시지 아니하심(눅23:9).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헤롯 왕가를 해치려고 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이 되고 있는 것임;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눅23:8b-9). 그에 따라 헤롯 안디바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기가 싫어서 나사렛 예수를 로마총독인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내고자 내심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임(눅23:11b).
(2)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고발을 들은 갈릴리 분봉 왕은 어째서 예수님을 희롱하고 로마총독에게 되돌려 보내고 마는가?(눅23:10-12)
1)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23:10-12);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구절임;
2) 첫째, 유대교지도자 가운데 이론적으로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헤롯 안디바에게 나사렛 예수가 세례 요한처럼 헤롯 왕가를 비판하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이두매 왕가를 유대 땅에서 몰아내고자 획책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강변한 것으로 보임. 그러나 헤롯 안디바는 나사렛 예수에게서 전혀 그러한 움직임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임.
3) 둘째, 나사렛 예수를 로마총독에게 되돌려 보내고자 결심하고 있지만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의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으므로 그 점을 전혀 무시할 수도 없음. 따라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나사렛 예수를 멸시하고 희롱하도록 하여 로마총독에게 되돌려 보내고 있는 것임.
4) 셋째, 그렇게 정치적인 부담을 지지 아니하면서 유대인들의 환심만 사고자 하는 매우 얄팍한 술수에 있어서는 빌라도나 헤롯 안디바가 비슷하다고 하는 측면에서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23:12)라는 문장을 의사 누가가 적고 있는 것으로 보임.
4. 빌라도는 헤롯 분봉 왕이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죄를 찾지 못하였고 자신도 그러하므로 단지 때려서 방면하고자 한다고 선포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눅23:13-16)
(1) 헤롯 안디바가 나사렛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하는 사실의 의미(눅23:13-15);
1)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리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심문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그가 행한 일에는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눅23:13-16); 다음과 같은 빌라도의 판결의 근거를 말해주고 있음;
2) 첫째, 유대교지도자들이 나사렛 예수를 로마황제에 대하여 반란을 도모하고 있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발을 하여 왔으나 로마총독인 빌라도 자신이 심문하고 조사한 바로는 그러한 증거가 전혀 발견이 되지를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눅23:14).
3) 둘째, 혹시 갈릴리 지역에서 나사렛 예수가 그러한 일을 행한 적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헤롯 안디바에게 그 신병을 인도하여 심문하고 조사하게 하였으나 그 역시 아무런 의심 가는 행적이 없다고 판결하여 예수를 빌라도 자신에게 되돌려 보내 왔다는 것임(눅23:15).
4) 셋째, 그에 따라 빌라도는 무혐의로 예수를 방면하고자 한다고 유대교지도자들과 산헤드린 대공회의 관리들에게 통보를 하고 있는 것임(눅23:13, 16).
(2) 유대교 내부의 알력에 휘말리지 아니하려고 하는 빌라도의 책략(눅23:16);
1)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눅23:16)고 하는 판결은 상식과 법리(法理, 법의 원칙과 이치)에 맞지 아니하는 것임. 그 이유는 무죄한 자이면 그대로 방면하는 것이 옳지 구타를 한 다음에 풀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
2) 무혐의로 즉각 방면하는 것이 옳지만 나사렛 예수에 대한 유대교지도자들의 반감과 거부감이 너무나 심하기 때문에 빌라도라고 하더라도 강심장으로 예수를 그냥 풀어 주기에는 정치적인 부담이 큰 것임.
3) 따라서 유대교지도자들의 환심도 살 겸 부당한 가혹행위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빌라도 자신이 책임을 지고서 군사들에게 나사렛 예수를 실컷 때린 다음에 방면을 시켜주라고 지시를 내리고자 하는 것임. 빌라도는 유대교지도자들에게 그 정도로 당신들을 대신하여 나사렛 예수에게 분풀이를 해줄 터이니 그만 정치적인 타협을 하자고 정중하게 손을 내밀고 있는 것임.
4) 계속 유대교 내부의 알력과 갈등 문제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면 로마총독인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만 곤란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빌라도임. 그러므로 그 정도 선에서 빨리 손을 떼려고 하고 있는 것임.
5. 명절을 당하면 한 사람을 방면하는 관례를 적용하여(눅23:17, 마27:15) 민란 살인자 바라바와 나사렛 예수 가운데 한 사람을 방면하고자 하는 로마총독 빌라도가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데 그의 본래 생각과 유대인들의 의외의 선택은 무엇인가?(눅23:18-21)
(1) 빌라도의 타협안을 끝까지 받아 들이지 아니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눅23:18, 20-21);
1) “무리가 일제히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그들에게 말하되, 그들은 소리 질러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눅23:18-23); 죄가 없는 나사렛 예수에게 태형을 가한 다음에 방면하겠다고 빌라도가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안을 유대교지도자들이 전혀 받아 들이지를 아니하고 있음. 그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늘 금요일에 로마총독을 밀어붙여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만들겠다고 작심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하겠음;
2) 첫째, 예수의 최측근인 가룟 유다가 내부고발자가 되어 예수를 체포하도록 도와준 이번 기회가 실로 절묘한 것임. 다시는 그러한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아니할 것이므로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번에 반드시 예수를 처단해야만 하는 것임.
3) 둘째, 하나님의 능력을 너무나 자주 행하고 있는 예수야말로 유대교에 있어서 최대의 적이며 가장 두려운 존재임. 그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보여 주고 있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나 치유의 능력 그리고 죽은 자를 되살려내는 능력은 히브리정경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아니한 큰 선지자의 능력임. 그러한 나사렛 예수를 이번에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참으로 어렵게 유대교의 반대자로 정죄하고 로마총독에게 반역자로 몰아세우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반드시 끝장을 보아야만 하는 것임.
4) 셋째, 만약 예수가 무혐의로 로마총독부에서 방면이 된다고 하면 유대교의 분열은 가속화가 되고 말 것임. 선민사상과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에 근거하고 있는 유대교의 사상체계가 나사렛 예수가 주장하고 있는 만민구원과 영생 구원이라고 하는 천국복음에 의하여 무너질 가능성이 농후한 것임. 그렇게 선민의 종교인 유대교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나사렛 예수를 절대로 그냥 풀어줄 수가 없는 것임. 따라서 유대교지도자들이 백성들을 동원하여 그날 사력을 다하여 빌라도를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것임(눅23:18-23).
(2) 난관에 봉착한 빌라도가 마지막으로 동원하고 있는 무리수가 무엇인가?(눅23:17, 19)
1) 눅23:17절에는 아무 글자도 없다고 적혀져 있지만 어떤 사본에서는 “명절을 당하면 반드시 한 사람을 놓아 주더라”(눅23:17)고 하는 문장이 들어 있다고도 전해지고 있음.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마태복음 제27장에 다음과 같은 상세한 내용이 적혀져 있기 때문임;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더라”(마27:15-18).
2) 로마총독인 빌라도는 한가지 묘책을 동원하고 있음. 그것은 전례에 따라 마침 무교절 기간 중이므로 한 사람의 죄수를 사면시켜 주고자 하는데 나사렛 예수를 그 대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임. 반드시 유대교지도자들이 받아 들이지 아니하면 안되도록 만들기 위하여 로마에 반역한 반란의 괴수로 현재 수감 중에 있는 바라바를 나사렛 예수 대신에 석방시켜 달라고 요구할 것인가를 보고자 하는 것임.
3) 만약 유대교지도자들과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한 반란죄로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에는 그들 모두가 로마의 유대 지배에 대하여 반감을 지니고 있으며 언젠가는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임.
4) 그러한 엄청난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도저히 바라바를 석방해 달라고 요구하지를 못하고 자연히 나사렛 예수를 풀어 달라고 요구할 것이라고 빌라도가 지레 짐작하고서 쾌재를 부르면서 과감하게 제안을 하고 있는 것임(마27:15-18, 눅23:17-23). 그러나 그것이 자가당착이며 자신이 놓은 덫에 자신이 걸리게 되는 위기를 빌라도에게 초래하고 마는 것임.
6. 바라바를 방면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목 박아 달라고 외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과 그들이 동원한 유대교인들에게 빌라도가 3번이나 예수님을 때려서 방면하겠다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며 빌라도는 어째서 자신의 생각대로 판결하지를 못하게 되는가?(눅23:22-23, 요19:12)
(1) 빌라도가 3번이나 예수님을 때려서 방면하겠다고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눅23:16, 20, 22)
1) 로마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다가 체포가 되어 옥중생활을 하고 있는 바라바를 사면하여 풀어 주는 것은 로마총독에게 엄청난 정치적인 부담감을 주게 되는 처사임. 감히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인물을 로마총독이 독단으로 특별사면을 해준다고 하면 그것은 로마황제에 대한 불충이 되고 마는 것임.
2) 따라서 빌라도는 바라바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를 특별 사면하여 주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있음. 두 차례나 바라바가 아니라 나사렛 예수를 때려서 방면하겠다고 외쳤으나 유대교지도자들과 그들이 동원한 유대인들은 요지부동인 것임.
3) 결국 3번째로 똑 같은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있는 로마총독인 빌라도임(눅23:16, 20, 22). 그러나 빌라도는 불행하게도 자신의 의견대로 관철할 수가 없는 처지에 빠져들고 마는 것임(눅23:23).
(2) 빌라도는 어째서 자신의 생각대로 판결하지를 못하게 되는가?(눅23:22-23, 요19:12)
1) “빌라도가 세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하니,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23:22-25);
2) 빌라도가 어째서 자신의 생각대로 판결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빌라도는 본래 로마의 장군이며 소아시아 본도 땅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본디오 빌라도’라고 하는 전쟁영웅의 칭호까지 받고 있는 자임. 그러한 무골(武骨, 무인의 뼈대)인 빌라도가 유대교지도자들과 그들이 동원한 어용 유대인들에게 의하여 무릎을 꿇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3) 제4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사도 요한이 그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고 하겠음;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6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요19:12-16). 두가지 이유를 말해주고 있음;
4) 첫째, 만약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는 나사렛 예수를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무죄 석방한다고 하면 빌라도 역시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을 도모하고 있는 자라고 유대교지도자들이 로마로 가서 황제에게 고하겠다고 하는 위협이 나타나고 있는 것임. 실제로, 주후 6년경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아켈라오가 선민 유대인들에게 강압적인 통치를 하자 유대교지도자들이 로마로 황제를 찾아가서 상소함으로 말미암아 헤롯 아켈라오가 파면이 되고 로마로 압송이 되고 만 전례가 있음. 그만큼 로마황제는 변방의 속국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그 책임을 로마총독이나 속국의 왕에게 먼저 묻고 있는 것이 현실일 것임.
5) 둘째, 만약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해준다면 빌라도에게 유리하게 모든 일을 마무리해주겠다고 유대교지도자들이 사전에 약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따라서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요19:14-16)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총독인 빌라도와 유대교지도자들이 나사렛 예수는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합창하면서 로마황제에 대하여 반란을 도모하고 있으므로 십자가처형을 하는 것이라고 입을 맞추고 있는 것임. 그것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도록 이제 막후조율을 끝냈다고 하는 것이며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은 정치의 한마당이라고 하겠음.
7.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유대교지도자들과 유대교인들의 요구대로 예수님에게 십자가 처형을 결정하면서 그 판결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전가하고 있으며 바라바를 풀어 달라고 유대인들이 선택한 결과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가 되고 마는가?(눅23:24-25, 마27:22-26, 요19:11)
(1) 로마총독의 판결에 의하여 로마제국이 당장 망하는 것이 아님(마27:24-26, 요19:11);
1)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 주니라”(마27:24-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였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19:11)고 사도 요한이 그의 복음서에서 적고 있는데 예수님의 그 말씀의 뜻은 로마총독에게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예수님을 넘겨준 유대교지도자들의 죄가 더 크다고 하는 것임.
2) 그에 따라 예수님을 처형한 죄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당장 유대교지도자들과 선민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묻고 계신 것임. 실제로 주후 32년 4월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38년 후인 주후 70년에 로마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초토화가 되고 만 것임.
3) 로마제국에서는 주후 324년에 동서로마를 재통일한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번영을 누리게 되지만 어이가 없게도 주후 476년에 고트족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이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임. 로마제국을 하나님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도구로 사용하시지만 예수님을 처형한 그 죄에서 결코 완전히 자유스럽지 아니하여 강력한 세상제국인 로마가 400여년 후에 멸망을 당하고 마는 것임.
(2) 유대교인들이 예수님의 만민구원 및 영생구원사상을 배척하고 로마제국에 무력으로 항쟁하는 바라바의 노선을 추종한 결과 맞이하게 되고 마는 비극에 대하여(눅23:23-25, 마27:21-26);
1)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 주니라”(마27:21-26);
2) 마태복음 제27장의 내용을 의사 누가는 다음과 같이 더욱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음; “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 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23:23-25);
3) 선민 유대인들이 유대교지도자들의 말을 들고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대신에 로마에 대하여 반란을 도모한 바라바를 석방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임.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민란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유대인들의 말을 따라 판결을 하고 있음. 그 결과 바라바의 노선을 추종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은 30여년 후에 반란을 도모하다가 마침내 주후 70년에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황폐화가 되고 온 세상을 떠도는 유민이 되고 만 것임.
4) 구체적으로, 전쟁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주후 70년 로마군대의 진군으로 유대인들의 반란이 진압되는 과정에서 선민들 110만명이 살해를 당했으며, 예루살렘성과 성전은 비참하게 파괴가 되고 불탔으며, 주민들은 전부 그 땅에 살지를 못하고 중동과 지중해에 흩어져서 살게 되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고 함. 그들의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재건이 된 것은 주후 1948년 5월인 것임.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1,878년 동안이나 나라가 없는 백성으로 온 세상을 떠돌고 있었다고 하겠음.
'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8강(눅24:1-27)(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9 |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7강(눅23:26-56)(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8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5강(눅22:47-71)(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6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4강(눅22:24-46)(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6 |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3강(눅22:1-23)(작성자; 손진길 목사) (0) | 2022.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