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7강(눅23:26-5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8. 8. 13:04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7(23:26-56)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329()

 

1.    로마총독의 예루살렘 관정인 브라이도리온에서 로마병사들이 서쪽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님을 끌고가는 동안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의 운명의 변화는 어떠한가?(15:16-22, 23:26-27, 11:20, 13:1, 16:13)

(1)  로마총독의 예루살렘 관정인 브라이도리온에서 로마병사들이 서쪽 골고다 언덕까지 예수님을 끌고가는 동안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23:26-32, 15:16-22)

1)    첫째, 로마총독의 예루살렘 관저가 있으며 로마군대의 주둔병영이 있는 곳이 브라이도리온인데 그곳은 예루살렘성전의 바깥 북쪽임(15:16). 그곳에서부터 예루살렘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골고다 처형장까지는 약 1.5km의 거리라고 함. 그 거리를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서 걸어가신 것임(15:21-22).

2)    참고로, 로마총독은 본래 대부분의 군대와 함께 약간 북쪽인 해변도시 가이샤라에 주둔하고 있으므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리고 있는 로마의 총독부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있음. 해변도시인 가이사랴는 이태리 반도에 있는 제국의 수도 로마와 항해가 쉬운 곳임. 그러므로 평소에는 예루살렘에 적은 군대만 주둔시키고 있는데 명절 때가 되면 예루살렘에 몰려드는 엄청난 순례객들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고자 로마총독이 더 많은 군사를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브라이도리온 내의 총독관저에 머물고 있는 것임(15:16).

3)    둘째, 밤새 수 차례의 심문을 받고 채찍을 맞은 결과 예수님의 몸이 많이 지쳐 있음. 따라서 십자가의 길을 다 가지 못하여 여러 번 쓰러지신 것임. 그에 따라 로마병정들은 구경을 나온 백성들 가운데 검은 빛의 피부를 가진 힘이 세어 보이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서 뒤를 따라오게 한 것임. 그 자가 바로 오늘날의 리비아 또는 튀니지 곧 구레네에서 온 순례객인 시몬임(23:26, 15:21).

4)    셋째,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 처형장으로 자신들의 십자가를 지고서 걸어가고 있는 죄수가 2사람이 있음(23:32). 그리고 그 행렬의 뒤를 따라오면서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 애통해하고 있음(23:27). 참고로, 십자가 아래까지 따라온 그 여인들의 정체에 대하여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음;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19:25).

(2)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구레네 사람 시몬과 그 가족의 운명의 변화는 어떠한가?(15:16-22, 23:26-27, 11:20, 13:1, 16:13)

1)    의사 누가가 복음서를 저술하기 위하여 예루살렘교회와 시리아 안디옥교회 등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하여 조사를 한 것으로 보임. 누가는 본문에서는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23:26)고만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음. 그러나 역시 의사 누가가 저술한 사도행전에서는 그것이 아님. 시몬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추적하고 있는 것임;

2)    첫째, 시리아 안디옥교회의 설립에 구레네 사람 시몬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임. 그 점을 시사해주고 있는 의사 누가의 기록이 다음과 같음; “그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르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11:19-21), “안디옥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13:1).

3)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일 때문에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임. 그에 따라 그들은 복음을 받아 들이고 아예 예루살렘교회의 건설에 참여한 것으로 보임. 몇 년 후 스데반에 대한 박해가 발생하자 성도들과 함께 시리아의 안디옥으로 옮겨가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헬라어로 그곳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안디옥교회를 세운 것으로 보임. 그러자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안디옥교회를 담임하도록 바나바를 파견하였으며 바나바는 성경선생으로 다소에 가서 바울을 초청해온 것으로 기록이 되고 있음(11:22-26). 그때 독신으로 시리아의 안디옥교회에서 봉사하게 된 랍비 사울이 장로인 시몬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한 것으로 보임. 따라서 이방인 사도로서 세계선교를 하게 된 랍비 사울은 훗날 그의 로마서를 저술하면서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16:13)고 적고 있는 것임.

4)    참고로 사도 베드로 및 사도 바울과 두루 친했던 젊은 마가가 그의 복음서에서 구레네 사람 시몬의 두 아들의 실명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는 것임;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15:21-22). 한 마디로, 예수님이 지고가신 그 십자가를 영적으로 함께 지고서 그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되면 구레네 사람 시몬의 가족이 복음의 일꾼으로 바뀌게 되는 그와 같은 놀라운 은혜가 오늘날에도 개인과 가정에 임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임.

 

2.    울면서 골고다로 따라오고 있는 여인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23:27-31)

(1)  울면서 골고다로 따라오고 있는 여인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인가?(23:27-28)

1)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3:27-28);

2)    골고다 십자가 처형장으로 이동을 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자들의 수가 상당히 많다고 의사 누가가 적고 있음. 그 가운데 특히 자신들의 가슴을 치면서 슬피 울고 있는 여성들이 많이 있음을 밝히고 있음. 그리고 그들 여인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과 미래의 예언이 상당히 의미심장한 것임. 따라서 항목을 달리하여 하나씩 살펴보고자 함.

(2)  예수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가?(23:29-31)

1)   첫째,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23:29); 골고다로 향하시는 예수님께서 걱정하시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서 그의 눈앞에 보이고 있는 백성들의 자녀들의 세대이며 미래의 인류들이 겪게 될  엄청난 종말의 고통이라고 말씀하심. 그러므로 그러한 두려운 미래에 자신의 혈육을 남기지 아니하는 자들이 차라리 행복하다는 것임(22:22).  

2)   둘째,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23:30); 세상을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차라리 세상이 망하고 자신도 죽었으면 좋겠다고 한탄을 할 것이라는 말씀임.

3)    셋째,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23:31);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그들의 사회가 악하여 자신들의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절망하여 차라리 종말을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고 저주를 하고 있는데 장차 하나님의 영적인 돌보심이 사라지고 구원의 말씀의 샘마저 말라버리게 되면 그 비참함이 어떠할 것인지를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임.

4)    참고로, 과학문명이 찬란하게 꽃을 피우고 있으며 지구촌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이지만 현대인들은 다가오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음. 그 이유는 영적으로 마치 마른나무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임. 따라서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이 핵무기를 사용하여 인류의 멸망을 재촉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지고 있는 것임. 그와 같은 세상을 미리 예견하시는 주님께서는 여인들에게 그것을 위하여 울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하게 중보의 기도를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임.  

 

3.    두 행악자와 함께 골고다 십자가에 못이 박히시는 예수님께서 로마병정과 행악자 그리고 유대교인들을 위하여 어떠한 중보의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시는가?(23:32-34)

(1)  두 행악자의 정체가 무엇인가?(23:32-33)

1)    십자가 처형의 방법은 인류가 고안한 처형 가운데 가장 잔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음. 그것은 지중해 무역을 석권하고 있던 페니키아인들이 빈번한 선상반란을 예방하기 위하여 반란자의 수괴를 높은 돛에 매달고서 항해한 데서 비롯되고 있는 것임.

2)    역시 지중해 국가인 로마가 제국을 운영할 때에 그 십자가 처형방법을 도입하여 사용을 하였지만 너무나 끔찍한 처형방법이기 때문에 로마시민에 대해서는 그 적용을 면제하고 오직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자와 주인을 죽인 노예에 대해서만 십자가 처형을 사용한 것임.

3)    유대인이면서 십자가에 처형이 되고 있는 예수님이나 두 사람의 행악자는 모두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자의 죄명으로 처형이 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반란을 도모하다가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에 여기서 행악자로 불리고 있지만 사실 그 두 사람은 열심당원이며 무장 독립투사들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임(23:32-33).  

(2)  두 행악자와 십자가에 못을 박고 있는 로마병정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중보의 기도를 드리시고 계시는가?(23:34)

1)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23:32); 다음과 같은 의미가 들어 있는 예수님의 중보기도의 내용임;

2)    첫째, 고의가 아니고 과실에 해당이 되므로 부디 예수님 자신의 대속의 제사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범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기도인 것임. 과실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2)고 말씀하시는 것임. 참고로 민수기 제15장에서는 같은 의미로 부지중’(15:27-29)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임.

3)    둘째, 예수님의 중보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두가지로 생각을 할 수가 있음; ①하나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로마병정들로 한정하여 볼 수가 있음(23:33). 그것은 좁은 의미로 그 대상을 보고 있는 것임. ②또 하나는, 자신들의 고정관념인 선민사상과 정치적인 메시아사상 때문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전혀 깨닫지를 못하고서 예수님을 비방하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임(23:35). 그 가운데 행악자 중의 한사람도 들어 있는 것임(23:39).

4)    셋째, 예수님의 중보의 기도는 그 당시 골고다 언덕에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만 적용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님. 그 이유는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천국복음으로 전파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이기에 그 효과가 온세상에 그리고 종말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들에게 미치고 있는 것임. 따라서 오늘날 지구촌의 모든 현대인들에게도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의 은혜와 더불어 그 중보의 기도가 효력을 미치고 있다고 할 것임. 

 

4.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 십자가 희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비방하고 있는가?(23:35-39, 12:10)

(1)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과 예수님의 구원의 의미를 어째서 알지 못하고 있는가?(12:10)

1)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가 있음;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12:10); 간단하게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음;

2)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으로 태어나서 제자들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 초라하기가 그지없어 종교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무시를 당하고 있는 것임. 실제로 예수님의 전도여행의 모습이 그러한 것임. 전국 방방곡곡을 제자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의 병과 장애를 고쳐주면서 겨우 숙식을 해결하고 있음(11:12-14).

3)    둘째, 예수님께서는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 창조주 여호와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천국복음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그것이 전통적인 유대교의 히브리정경 해석과는 영 다른 것임. 따라서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으며 많은 유대교인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임.

4)    셋째, 예수님께서 그토록 강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의 역사라고 하는 것도 사람들의 눈에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지는 것이 아님. 그러므로 당장 눈에 보이는 급박한 생계문제와 사회적인 문제의 해결이 우선이지 그러한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이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그것이 종말심판을 당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시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고 하겠음.

(2)  유대인 백성들과 로마군인들 그리고 행악자 한 사람의 예수님에 대한 비방이 어떠한가?(23:35-39)

1)    첫째,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23:35); 선민 유대인들과 유대교지도자들은 선민사상과 정치적인 메시아사상을 지니고 있음. 메시아가 나타나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여 외세를 쫓아내고 마치 다윗대왕처럼 선민의 제국을 재건한다는 것임. 그러한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데 자칭 그리스도 구원자라고 나타난 나사렛 예수는 로마군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이 박히고 있으니 실로 가관이라는 것임. 따라서 자기 자신이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스스로 구원하라고 조롱하고 있는 것임.

2)    둘째,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23:36-37); 로마군인들은 나사렛 예수가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하면서 로마황제에게 반역한 자라고 믿고 있음(23:2, 19:12). 따라서 자기 자신 하나도 구원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왕이냐고 희롱하고 있는 것임.

3)    셋째,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23:38-39); 예수님과 함께 골고다에서 십자가 형에 처해지고 있는 자들은 로마제국에 반란을 도모한 자들임.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께 만약 그리스도가 맞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자리에서 너 자신과 우리들을 모두 구원해보라고 비방하고 있는 것임.

 

5.    두 사람의 행악자 가운데 회개한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원하고 있기에 어떠한 은혜를 그 자리에서 얻고 있는가?(23:40-43)

(1)  먼저 예수님을 비방하고 있는 한 사람의 행악자의 잘못된 메시아사상이 어떠한 것이며 이를 바로 잡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노력은 무엇인가?(23:34, 39)

1)    한 사람의 행악자는 그 중요한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비방하는 자리에 서고 있음;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23:39).

2)    그는 그리스도를 정치적인 메시아로 인식하고 있음. 그러므로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선민 이스라엘의 제국을 재건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는 것임. 그에 따라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한 자신과 같은 자를 해방시켜주고 구원해 주어야만 하는 것임. 그런데 자칭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그러한 정치적인 메시아로서의 행동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그 행악자는 매우 섭섭하게 여기면서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채 여기서 그 책임추궁을 하고 있는 것임(23:39).

3)    예수님은 현세적이면서도 정치적인 메시아 사상을 선민만의 구원사상에 의거하여 여전히 추구하고 있는 그 행악자에 대하여 안타깝게 여기고 있으며 그 죄악과 잘못을 용서해주기 위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임;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

4)    선민만을 구원하고 선민의 제국을 이 세상에 재건하여 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두 구원하여 하나님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해주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그 행악자가 전혀 모르고 있으므로 그러한 중보의 기도를 마지막까지 하고 계시는 예수님이심. 십자가를 지시는 그 자리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부디 부지중에 잘못을 범하고 있는 자들에 대하여 정상참작을 하여 달라고 기도를 드리시고 있는 것임.

(2)  다른 한 사람의 행악자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고백하고 있기에 어떠한 은혜를 그 자리에서 얻고 있는가?(23:40-43)

1)    다른 한 사람의 행악자는 예수님이 그렇게 무장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임. 그 대신에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현세적인 죄와 사망의 질곡에서부터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영생을 누리게 하고자 하시는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임.

2)    따라서 그 사람은 자신들의 노선이 남을 해치는 범죄자의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 노선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심을 받고자 하고 있음. 따라서 그 사람의 말이 다음과 같은 것임;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23:40-42).

3)    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구원이 그 사람에게 있을 것임을 다음과 같이 확인해주시는 것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3). 여기서 특이하게 사용이 되고 있는 낙원’(樂園, paradise)이라고 하는 용어는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과 같은 의미가 아닌 것임. 참고로, 카톨릭에서는 낙원을 일종의 연옥’(煉獄, 지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가기 위하여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장소)’으로 보기도 하는 것임.

4)    그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비밀이라고 하겠음. 그렇지만 한가지 조심스럽게 유추를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있는데 그것은 태초의 낙원이라고 볼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의 일인 것임; “에덴동산에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금기의 나무 열매인 선악과와 생명과가 있음. 하나님의 허락을 얻지 아니하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아담부부가 실락원으로 쫓겨나고 있음(3:1-24). 그 이유는 선악과를 따먹고나서 생명과까지 따먹게 되면 죄 가운데서 영생하게 되는 가장 저주스러운 인생이 되고 말기 때문임(3:22).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훗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아담부부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대속의 은혜를 먼저 베푸신 다음에(8:1-2) 하나님의 나라에서 생명과를 주어 먹게 함으로써 의인으로서 영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신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임”(22:28-30, 3:20-21, 21:6-7, 22:1-2).

 

6.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이 박히신 예수님께서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에 운명을 하시게 되는데 정오부터 어떠한 현상이 오후 3시까지 십자가 주위와 예루살렘에서 발생을 하고 있는가?(23:44-48)

(1)  예수님께서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이 박히시고 6시간이 지난 오후 3시에 운명을 하시게 됨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첫째로, 가장 먼저 세상에 나온 마가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이 유대인 시간으로 3(오늘날의 오전 9)라고 적고 있음; “해가 제3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15:25). 그리고 제6(오늘날의 정오)가 되어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오늘날의 오후 3)까지 계속하더니 제9시에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음(15:33-37);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15:34).

2)    둘째로, 마가복음을 증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을 기록하고 있지 아니함(27:33-37). 그렇지만 제6시부터 제9시까지 어둠이 온 땅에 있었고 제9쯤에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셨다고 마가복음과 꼭 같이 기술하고 있음(27:45-50).

3)    참고로, 마태복음의 특이한 기록 2가지가 다음과 같음; ①하나는 예수님께서 운명을 하시자 마자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졌으며 무덤 속의 성도들의 몸이 많이 부활하고 지진이 발생한 사실인 것임(27:51-54). ②또 하나는 그러한 놀라운 일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과 로마군대의 백부장이 심히 두려워하면서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을 했다는 것임(27:54-56).

4)    셋째로, 누가복음에서도 마태복음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언제 못이 박히셨는지 그 시간을 기록하고 있지 아니함(23:33). 그리고 제6시부터 제9시까지 어둠이 계속 임하고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가 찢어지며 모인 무리들과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고 인정한 대목 등이 마태복음의 기록과 흡사한 것임(23:44-47).

5)    그렇지만 의사 누가는 독점적으로 다음 4가지를 기록하고 있음; ①첫째, 골고다로 끌려가고 있는 예수님을 슬퍼하면서 따라 오고 있는 사람들과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시면서 몇 가지 예언을 하신 것임(23:27-31). ②둘째,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고 있는 병정들과 비방하는 무리들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임(23:34-39);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 ③셋째, 회개하는 행악자를 위하여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고 말씀하셨다는 것임. ④넷째, 운명하실 때에 큰 소리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임.

6)    넷째로, 요한복음에서는 로마총독인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한 시간이 제6(오늘날의 정오)라고 기록하고 있을 뿐(19:14-16) 그 운명의 시간도 적고 있지를 아니하고 있음(19:28-30). 그 대신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음; ①첫째, 막내 사도인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셨다는 것임;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19:26),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19:27). ②둘째, “다 이루었다”(10:30) 말씀하시고 운명을 하셨다는 것임. ③셋째, 안식일에는 시신을 나무에 매달아 둘 수가 없으므로 그 몸을 내렸을 때에 이미 운명한 상태였다는 것임(19:31). 그래서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병정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는데 그때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임(32-34).

(2)  그날 정오부터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인가?(23:44-48)

1)    첫째, 6(오늘날의 정오)부터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9(오늘날의 오후 3)까지 계속이 되고 있는 것임(23:44).

2)    둘째, 성소의 휘장이 둘로 찢어 진 것임(23:45).

3)    셋째, 예수님께서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고 크게 소리를 치시고 운명하신 것임(23:46).

4)    넷째, 백부장이 그러한 일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고 고백을 했다는 것임(23:47).

5)    다섯째, 구경하러 모인 무리들이 애통해 하면서 돌아가고 예수님의 친지들과 특히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이 멀리 서서 이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는 것임(23:48-49).

 

7.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인들이 멀찍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의 시신이 어떻게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고 누구에 의하여 장례가 되고 있는가?(23:49-54, 19:30-42)

(1)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인들이 멀찍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의 시신이 어떻게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는가?(19:31-37)

1)    예수님이 운명하시고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그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되는 연유와 그 과정에 대해서는 사도 요한의 기록이 독보적임. 따라서 그 기록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음(19:31-37);

2)    첫째,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금요일임. 그 다음날 토요일은 안식일이며 특히 무교절 기간이기 때문에 저주 받은 나무 위에 사람을 매달아 놓을 수가 없는 것임(19:31, 21:23, 3:13). 따라서 금요일 오후에 십자가에서 죄인들의 몸을 끄집어 내리고 도망을 칠 수 없도록 그 다리뼈를 꺾어버리는 것이 상례임(19:32).

3)    둘째, 예수님의 몸을 로마병정들이 십자가에서 내리고 그 다리의 뼈를 꺾고자 했더니 이미 운명을 하신 것을 확인하게 되었기에 다리뼈를 꺾지 아니했다는 것임(19:33). 그것을 사도 요한은 유월절 어린양의 다리뼈는 여호와께 제물로 바쳐진 것이기에 꺾지 아니하는 것이 전통인데(12:46, 9:12)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의 경우에도(1:29) 그러하다는 것임. 곧 그 다리뼈가 꺾이지 아니한다는 다윗의 예언이(34:20)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취가 된 것임을 사도 요한이 기술하고 있는 것임(19:35-36).

4)    셋째, 이미 예수님이 운명하셨지만 그래도 혹시 되살아날 수도 있으므로 로마병정이 확인사살을 하고 있음. 그 방법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버리는 것임. 그 결과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고 사도 요한이 기록으로 남기고 있음(19:34). 그 역시 선지자 스가랴가 벌써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한 대목임(12:10). 스가랴와 마찬가지로 선지자 이사야 역시 예수님을 찌른 자도 또 찔리게 한 자도 모두 우리들의 허물과 죄 때문이라고 보고 있는 것임(53:5).

(2)  예수님은 누구에 의하여 장례가 되고 있는가?(23:49-54, 19:30-42)

1)    예수님의 장례를 집전한 자가 아리마대 요셉이라고 하는 사실을 모든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기록하고 있음(27:57-61, 15:42-47, 23:50-56, 19:38-42).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 대공회원이면서 예수님의 숨은 제자라고 소개가 되고 있음. 그에 관한 기록은 예수님의 장례와 관련하여 복음서에서만 나타나고 있어 다른 내용은 알 수가 없음.

2)    그렇지만 아리마대라고 하는 마을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나아가서 바로 서편으로 통로길을 이용하여 해변으로 진행할 때에 그 도중 약 32km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중요한 요충지이며 교통의 중심지임. 따라서 애굽이나 북방에서 해변길을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옮기고 있는 중간지점이 되고 있음. 그 때문에 아리마대는 역참이 발달하고 상인들이 쉬어 가는 숙박업이 많아서 상당히 부유한 마을임. 그 마을은 유다 지파의 유력한 가문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여 의사 누가는 특히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라고 그 촌장인 아리마대 요셉에 대하여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임(23:51). 그러므로 요셉은 유대인 부자들이 살고 있는 아리마대의 대표자로서 산헤드린 대공회원이 된 사람으로 불 수가 있음.

3)    예수님의 의붓 아버지인 목수 요셉이 다윗의 왕손임. 그러므로 아리마대의 유력인사인 요셉과는 평소에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임, 그 때문에 아리마대 요셉은 비록 그 자신이 유대교의 지도자이지만 목수 요셉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으며 그를 메시아로 믿고 있는 것으로 보임(23:50-51). 오랜 세월 은인자중하고 있던 그가 예수님이 돌아가시자 대담하게도 산헤드린 대공회의 눈치를 보지 아니하고 로마총독을 찾아가서 그 허락을 얻어 예수님의 시신을 거두고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있음. 특히 자신의 소유인 인근 부자의 새 무덤에 그 시신을 안치하고 있는 것임(23:50-54). 그것은 이사야 예언의 성취로 보임(53:9).

4)    역시 산헤드린 대공회원이며 아리마대 요셉의 친구인 니고데모가 그 장례에 함께 했다는 기록은 니고데모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도 요한의 복음서에 나타나고 있음(19:39, 3:1-10). 공관복음에 그 기록이 빠져 있기에 나중에 사도 요한이 자신의 복음서에 추가한 것으로 보임.

 

8.    십자가 상의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이 어떠하며 그 가운데 말씀하신 7마디의 의미가 무엇이며(27:46, 23:43, 46, 19:26-27, 28, 30) 또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선지서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는가?(23:50-56, 19:38-42, 12:46, 53:9)

(1)  십자가 상의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은 어떠한 것인가?

1)    십자가 처형이 가장 참기 어려운 극도의 고통을 준다고 하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생물학적인 이유 때문임; ①첫째, 십자 나무에 사람을 매다는데 그 방법이 두 팔을 벌리게 하고 양쪽 손목에 각각 대못을 박는 한편 두 다리를 포개고 그 발목에 큰 대못 하나를 박아서 온몸의 체중을 그 대못 하나에 의지하게 하는 것임. 그렇게 되면 온몸이 아래로 쳐지면서 가슴이 횡경막에 맞닿아서 숨쉬기가 어려워지게 됨. 그저 죽지 못해서 겨우 헐떡이고 있을 뿐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든 것임.

2)    ②둘째, 체중을 이기지 못하게 되므로 양팔의 대못에 박힌 손목의 상처가 점점 벌어지면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게 됨. 발목에서도 마찬가지임. 그러므로 서서히 피가 빠져 나가면서 결국 일주일 내에 피부족으로 죽게 되는 것임. ③셋째, 손목과 발목의 힘줄과 신경이 끊어지면서 온몸의 체중에 그 뼈에 의지하여 걸쳐져 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십자가에 무거운 빨래를 널어 놓은 것과 같음.

3)    한 마디로, 온몸의 신경과 세포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니 독한 진통제가 없으면 결코 견딜 수가 없는 고통임. 게다가 숨이 막혀서 비명조차 토해 낼 수가 없으니 그것은 짐승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고 하겠음. 따라서 로마시민에 대해서는 황제에 대한 반란의 주모자가 아니면 결코 십자가처형에 처하지 아니한 것임.

(2)  그 십자가 처형의 고통 가운데 말씀하신 7마디의 의미가 무엇인가?(27:46, 23:43, 46, 19:26-27, 28, 30)

1)    그와 같은 극도의 고통 가운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겨 놓으신 귀중한 말씀이 다음과 같은 7가지임; 첫째로, 누가복음에 적혀 있는 십자가상의 7언은 다음과 같음; ①첫째,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23:34). 그것은 부지중에 범죄한 죄인을 위한 중보의 기도임. ②둘째,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23:43). 회개한 죄인에 대한 구원의 약속임. ③셋째,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23:46). 이 세상에서의 복음사역을 마치고 무사히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간다는 것임.

2)    둘째로, 요한복음에 기록된 십자가상의 7언이 다음과 같음; ①첫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19:26). 모친 마리아에게 이제는 조카인 사도 요한을 양아들로 삼고서 노후를 의탁하시라는 것임. 그리고, “보라 네 어머니라”(19:27). 어머니 마리아의 노후를 사도 요한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한다는 것임. ②둘째, “내가 목 마르다”(19:28). 십자가에 못 박힌 육신의 고통에 대한 가장 진솔한 고백임. ③셋째, “다 이루었다”(10:30). 대속의 십자가 제사가 이제 끝났다는 것임.

3)    셋째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공히 기록이 되어 있는 십자가상의 7언은 다음과 같은 것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아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15:34, 27:46). 모든 백성들의 죄짐을 지고 있는 속죄양 예수님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죽음의 골짜기로 내보내시고 계시기에 그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것임.

(3)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선지서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가 되고 있는가?(23:50-56, 19:38-42, 12:46, 53:9)

1)    첫째, 짐승과 같은 제물의 취급을 받아 메시아가 이 세상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시지만 그 무덤은 부자의 무덤과 같이 장사를 치르게 된다고 하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가 되고 있음(53:9). 그 일을 위하여 아리마대의 부자이며 산헤드린 대공회원인 요셉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하여 성대하게 장례를 치르고 그 시신을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부자의 새 무덤에 안치하고 있는 것임(23:53).

2)    둘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이 되신 날이 금요일이므로 다음날인 토요일 안식일에는 저주스러운 나무에 사람을 계속 매달아 둘 수가 없다는 사실을 율법학자인 아리마대 요셉이 잘 알고 있음(21:23). 따라서 일찌감치 로마총독을 찾아가서 예수님의 뒷처리를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임(23:52). 빌라도는 선민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갈등에 계속 휘말리는 것이 싫어서(27:24) 예수의 시신을 얼른 공회원인 요셉에게 주어버리고 싶은 것임. 따라서 아리마대 요셉은 참으로 쉽게 예수님의 시신을 인수하게 된 것임.

3)    셋째, 막상 십자가에서 오후 3시경 예수님을 끌어내리고 보니 이미 운명하신 것임. 따라서 도주의 염려가 전혀 없기에 그 다리뼈를 분지르지 아니하고 그 대신에 로마병정이 옆구리에 창을 찔러서 확인사살을 한 것임. 그것은 유월절 어린양에 대한 예언과(12:46, 9:12) 다윗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임(34:20, 19:36-37).

4)    넷째, 무엇보다도 유대교지도자에 속하고 있는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 모습을 드러내어 예수님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루어 주었다고 하는 사실이 중요함. 그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의 성취를 위하여 대속의 십자가를 지셨기에 그 깊은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뜻을 짐작하게 된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더 이상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지 아니하고 떨쳐 일어난 것임.

5)    그렇게 두 사람의 뒤를 이어서 회개와 결단의 마당으로 나오게 된 성도들에게 오순절 성령의 강림과 임재가 있게 되자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임(2:1-47). 물론 그들에게 3일 후에 부활하시는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앞길을 인도해주시는 것임(24:1-49, 1:1-8). 요컨대 그것이 기독교의 살아 있는 역사의 시작이며 그 출발점에 영광스럽게도 산헤드린 대공회원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출현하고 있다고 하겠음.   

 

(십자가의 길 1.5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