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9강(눅24:28-53)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8년 4월 12일(목)
1. 글로바 부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맞아 들이고 함께 식사를 나누게 되자 어떠한 은혜가 그들에게 임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 옛날 헤브론에 머물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발생한 어떤 일과 닮아 있는가?(눅24:28-32, 창18:1-10)
(1) 글로바 부자(父子, 아버지와 아들)는 어째서 그 나그네를 엠마오 자신의 집으로 모셔 들이고 있는가?
1)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같이 하시니,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눅24:28-29);
2) 첫째, 글로바와 그 아들인 시므온은 고향 엠마오가 가까워지자 부활하신 예수님인 줄 모르고 그 나그네를 강권하여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하고 있음. 그 나그네가 날은 어두운데 엠마오를 지나쳐서 계속 길을 가고자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임. 그것은 나그네를 대접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보임(신10:19, 마25:35).
3) 둘째, 글로바 부자는 그 나그네가 들려주고 있는 이야기가 의미심장하여 자신들의 집으로 초대하여 더 자세하게 들어보고 싶어한 것임(눅24:25-27). 그러므로 강권하여 집으로 맞아 들이고 있는 것임.
4) 셋째, 그와 같은 글로바 부자의 마음은 그 옛날 현신하신 여호와와 두 천사를 자신의 집으로 맞아들여서 잘 대접하던 아브라함의 마음과 닮아 있는 것임(창18:1-8).
(2) 함께 식사를 할 때에 발생하고 있는 일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눅24:30-32)
1)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글로바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눅24:30-32);
2) 첫째, 함께 음식을 나누고 있다는 것임; 부활하신 예수님은 죽음에서 되살아난 사람들과는 다른 두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음; ①하나는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신 것임. 그러므로 다시는 향년과 죽음이 없으며 그 영생의 몸으로 승천을 하시는 것임(눅24:50-52). ②또 하나는 그 영생의 몸으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수가 있다는 것임(눅24:30, 43, 요21:13). 그렇지만 포도주는 천국잔치에서 마시고자 아껴 두시고 있음(눅22:18).
3) 둘째, 축사를 하고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다는 것임; 육적인 양식만 나누시는 것이 아니라 그 식사를 통하여 하늘의 양식을 함께 나누기를 원하심. 따라서 그 식사의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영적인 양식으로 얻게 되는 귀한 자리가 되도록 먼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를 하시는 것임.
4) 셋째, 글로바 부자가 영적으로 눈이 밝아지자 놀라운 일이 발생하고 있음; “육신적인 존재로 보였던 그 나그네가 사라지고 그 대신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풀이하여 주신 말씀이 뜨거운 감동으로 그들에게 살아 남아 있는 것임”(눅24:31-32). 그 의미를 풀이해보면 다음과 같음; 예수님을 육신적으로만 알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육신적인 예수님만 보이고 있음. 그러나 영생의 몸을 입고 죽음에서 부활하시고 이제는 나의 주님이 되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인정하는 성도들에게는 ①첫째, 영적으로 ②둘째, 말씀의 생명력으로 ③셋째, 성령님의 감동으로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것임.
2. 여호와 하나님의 현신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경우와 달리 부활하신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자기도 모르게 대접하게 된 글로바의 경우에는 어떠한 은혜가 더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나타나고 있는 그들의 다음 행보는 무엇인가?(눅24:30-33)
(1) 여호와 하나님의 현신을 대접한 아브라함의 경우와 달리 부활하신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자기도 모르게 대접하게 된 글로바의 경우에는 어떠한 은혜가 더해지고 있는가?(눅24:30-32, 창18:8-10, 20-32)
1) 사람의 모습으로 현신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두 천사를 아브라함이 자신의 장막에 맞아 들여서 극진하게 대접을 한 결과 세가지 축복을 얻게 됨; ①첫째, 아내 사라를 통하여 내년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된다는 것임(창18:10, 14). ②둘째, 장조카 롯의 가족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성을 심판하고 멸망시킬 것이라는 계획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미리 알려주신 것임(창18:20-21). ③셋째, 롯의 가족과 그 성의 주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이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부디 용서하여 달라고 간청하자 그 중보의 기도를 여호와께서 들어 주신 것임(창18:23-32).
2)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그 정체를 알지 못하고 나그네로 대접한 글로바 부자에게는 다음과 같이 더 놀라운 은혜가 임하고 있음; ①첫째, 주님께서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하나님께 축사를 하시고 그 떡을 나누어 주신 것임(눅24:30). 그것은 성찬식의 은혜가 가장 먼저 글로바의 부자에게 임하고 있는 것임(눅22:17-20). ②둘째, 그 떡을 받아 먹는 순간 부활하신 주님을 밝히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고 있는 것임(눅24:31). ③셋째, 말씀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주님께서는 사라지시지만 그 말씀의 생명력이 감동으로 남아 뜨거운 깨달음과 결단으로 나타나는 것임(눅24:32-33).
(2) 그 결과 글로바 부자는 어떠한 행보에 나서고 있는가?(눅24:32-33)
1)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11제자 및 그들과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눅24:32-33);
2) 첫째, 주님께서 자신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 성경말씀을 풀이하여 글로바 부자에게 가르쳐준 것이 그냥 말씀과 예언에 대한 풀이로 끝나지 아니하고 있음. 실제로 역사 가운데 그 예언의 말씀이 성취가 된 것이라고 하는 확신이 마음속에서 뜨거운 깨달음과 감동으로 밀려오고 있는 것임(눅24:32).
3) 둘째,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셨으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제 시작하실 것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자 글로바 부자는 더 이상 고향집 엠마오에 체류하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임(눅24:33a).
4) 셋째,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예수님의 부활소식이 더욱 확실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11사도와 제자들에게 합류를 하고 있음(눅24:33b). 이제는 함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온세상을 구원하는 복음사역에 나서야만 하는 것임.
3. 글로바 부자가 엠마오 집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11사도 및 제자들에게 그 일을 전하게 됨으로써 그들에게 장차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눅24:33-36)
(1) 사도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모여 있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탄생(눅24:33-35);
1) “곧 그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11제자 및 그들과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눅24:33-35);
2) 첫째, 예수님의 체포과정을 통하여 사도들과 제자들이 흩어진 것으로 보이지만(막14:50) 사도 마태와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그것이 아님. 그들은 멀찍이 예수님의 골고다 행을 따르면서 추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임(마26:58, 요18:15). 특히 사도 요한은 십자가 아래까지 접근하였으므로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의 노후를 떠맡게 된 사실까지 기록하고 있는 것임(요19:25-27).
3) 둘째, 의사 누가는 특히 그의 복음서 제24장에서 안식일 다음날에도 사도와 제자들이 흩어지지 아니하고 예루살렘에서 방을 구하여 함께 모여 있다가 예수님의 무덤을 방문한 여인들로부터 부활의 소식을 듣게 된 것으로 기록을 하고 있음(눅24:9-12). 글로바와 그의 아들인 시므온이 그들과 함께 있다가 고향 엠마오로 돌아간 것으로 보임(눅24:13-24).
4) 셋째, 글로바 부자는 우연히 나그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를 엠마오 집에 초청하여 함께 떡을 떼는 중에 영적으로 눈이 밝아져서 그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됨(눅24:27-32). 따라서 뜨거운 마음으로 그 기쁜 부활의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달하고자 사도와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달려간 것임(눅24:33).
5) 넷째, 사도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자 기다리고 있는 그 예루살렘 공동체에 글로바 부자가 주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합세함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예수님의 무덤을 답사한 사도 베드로의 증언과 더불어 부활에의 확신이 그들에게 강력하게 생겨나고 있는 것임(눅24:34-35). 그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의 신앙은 공동체의 믿음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임.
(2) 그들에게 장차 어떠한 일이 발생하게 되는가?(눅24:36-53)
1) 첫째,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서 이제는 주님을 직접 만나기를 원하고 있는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실제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방문을 하시는 것임(눅24:36).
2) 둘째, 예수님이 천사가 되어 영으로 임하시는 줄 알고서 사도와 제자들이 놀라워하자(눅24:37)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사실을 정확하게 보여주시고 있음(눅24:38-39). 살과 뼈로 되어 있는 손과 발을 그들에게 보여주시고 또한 함께 식사도 하신 것임(눅24:40-43).
3) 그와 같이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속하는 일인 것임. 왜냐하면, 그것이 영생의 몸이기에 그대로 40일 후에 감람산에서 승천을 하시기 때문임(눅24:50-52).
4) 셋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사도들과 제자들의 공동체를 방문하여 그들을 40일간 하나님의 복음으로 재교육을 시키셨는데 그 내용이 의사 누가에 의하여 누가복음 제24장과 사도행전 제1장에 적혀져 있음(눅24:44-49, 행1:3-5).
5) 특히 그 가운데에는 그들이 예수님의 승천을 보게 되면 흩어지지 말고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합심하여 기도하면서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강림하여 임재하시기를 기다리라고 하는 당부가 들어 있음(눅24:49-53). 왜냐하면, 성령님의 능력이 임해야 세상 끝까지 복음전파가 가능해지기 때문임(행1:8).
4.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는 사도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어떤 방법으로 증명하시는가?(눅24:36-43)
(1)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을 어떤 방법으로 증명하시는가?(눅24:36-43)
1)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눅24:36-43);
2) 첫째, 마음속 평강의 회복으로 증명하심;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유대교지도자들에 의하여 밤중에 체포를 당하시고 로마총독에 의하여 십자가에 처형이 되자 사도들과 제자들은 불안해진 것임. 자신들에게도 체포와 처형이 닥치지나 않을까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한편 그동안 메시아로 믿고 따라다녔던 예수님께서 죽고 말았으니 이제는 만사가 끝났다고 하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임. 그러한 사도와 제자들의 모임에 예수님께서 무덤속에서 부활하셨다는 믿기 어려운 기적과 같은 소식이 전해진 것임. 긴가민가하여 함께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 그 공동체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마음속 평강의 회복으로 자신의 부활사건을 증명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서 자신의 평안을 회복하는 것임.
3) 둘째, 살과 뼈가 있는 영생의 육신을 입으신 독특한 부활임을 증명하심; 베다니의 나사로는 죽은지 나흘만에 예수님에 의하여 되살아 나온 인물임(요11:39-44). 그러나 나사로는 다시 향년이 되자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것임. 그 이유는 유한한 인간의 육신으로 무덤에서 되살아나온 것이기 때문임.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전혀 다른 것임. 유일하게 영생의 몸을 입고서 부활하셨기에(눅24:39-41) 그 몸 그대로 이 땅에서 다시는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을 하시는 것임(눅24:50-53).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이므로 사도 바울도 그것을 얻고 싶어서 믿음의 길을 달려가고 있다는 것임(빌3:10-14).
4) 셋째, 함께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부활을 증명하심; 예수님의 공생애의 특징은 사도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복음사역을 함께하신 것임. 부활하신 다음에도 생전의 그 공생애의 모습이 재현이 되고 있음.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받아서 사도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임(눅24:42-43).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의 부활은 사도와 제자들에게도 하나의 신앙적인 소망으로 다가오고 있음.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공생애를 통하여 복음사역을 한다면 그와 같은 영생의 몸을 입게 되는 부활에 참여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임(요14:1-3, 눅22:28-30, 고전15:22-23).
(2) 사도와 제자들에 대한 부활하신 예수님의 재교육의 내용은 무엇인가?(눅24:44-49)
1)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4-4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서 승천하실 때까지 40일 동안(행1:3-5) 11사도와 제자들에게 천국복음에 대하여 재교육을 하셨는데 그 내용이 위의 구절과 같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임;
2) 첫째, 히브리정경의 예언이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성취가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치심(눅24:44); 그것이 성경내용의 핵심인 것임. 그러므로 그 사실을 깨닫는 자는 성경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는 것임(눅24:45).
3) 둘째,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과 3일만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구원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임(눅24:46-47); 예수님처럼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 하나님자녀로서 영생의 구원을 누리는 방법이 되는 것임.
4) 셋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기 위하여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임(눅24:48-49, 행1:4-5);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하심이 함께할 때에 사도와 제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얻어서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수가 있다는 것임(행1:8).
5. 하나님의 영이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강림하여 임재하지 아니하게 되면 어째서 천국복음의 증거자로서의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게 되는가?(눅24:49, 행1:4-8, 롬8:2)
(1) 공생애를 통해서 살펴본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믿음의 차이;
1)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막14:34-39).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의 믿음의 차이가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대목임;
2) 첫째, 역시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자로서 복음사역을 하시고 계시는 예수님이시기에 사람의 몸으로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는 것은 진실로 피하고 싶은 극악한 처형의 방법인 것임.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자신의 육신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범위 내에서 대속의 제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매일같이 기도하신 것으로 보임(눅22:39).
3) 둘째, 그러나 막상 체포의 순간이 다가오는 그날 밤의 기도의 시간에 받은 응답 역시 십자가의 처형 외에는 달리 대속의 방법이 없다는 것임.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고 순종하시는 것으로 기도를 마치신 것임(막14:36, 눅22:42).
4) 셋째, 예수님께서 극심한 고민 가운데 평강을 얻기 위하여 제자들에게 합심기도를 부탁하고 있지만 하루 종일 복음사역에 시달린 그들은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끝까지 깨어서 예수님의 부탁을 실천할 수가 없는 것임. 그만큼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에게 져서 실패를 경험하고 있는 제자들인 것임(막14:37-38).
5) 넷째, 어떻게 하면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줄 수가 있는가? 하는 방법론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것임. 그것이 바로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인 것임.
(2) 그 차이를 극복하게 해주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함;
1)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24:45-4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가 있게 되면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능력이 성도들에게 임하게 된다고 말씀하심;
2) 첫째, 성령님께서는 성도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말씀을 깨닫도록 도와 주신다는 것임(눅24:44-45);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던 글로바 부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길을 가시면서 성경말씀을 풀이하시고 자신의 부활을 증거해 주심(눅24:25-27). 떡을 떼어 주실 때에 그 사실을 영적으로 글로바 부자가 깨닫게 되자 예수님께서는 사라지심(눅24:30-32). 그와 같은 사건의 의미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영적으로 역사하여 히브리정경의 말씀을 가지고 메시아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깨닫도록 성도들에게 역사를 하신다는 것임. 그와 같은 일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에는 성령님에 의하여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말씀이 요한복음에 기록이 되고 있는 것임(요14:26, 16:13-15).
3) 둘째,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사실을 믿도록 도와 주시는 것임(눅24:46); 생전의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살아가면서 복음사역을 한 사도와 제자들이 사라지고 나면 교회의 성도들은 모두 자신의 눈으로 생전에 예수님을 보지도 못하고 그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의 현장도 목격하지 못한 자들인 것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게 되는 것은 순전히 영적인 성령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임. 일찍이 사도 도마에게 그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9).
4) 셋째, 예수님께서 지신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역사가 온 세상에서 발생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신다는 것임(눅24:47-48); 그러므로 성령님을 모시고 함께 복음사역을 하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그 전도와 선교의 현장에서 많은 백성들이 회개하는 풍성한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임(행1:8, 2:36-47).
6. 예수님께서 승천하시자 그 명령에 따라서 11사도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전과 다락방에서 어떠한 일을 준비하고 있는가?(눅24:50-53, 행1:12-15, 고전15:4-8)
(1) 스승이 승천하는 광경을 바라보게 되면 어떠한 은혜가 임하게 되는가?(왕하2:7-14)
1) 엘리야 선지자의 시대는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 있어서 종교적인 암흑기임. 왜냐하면, 바알 신을 섬기는 대제사장 옛바알이 시돈의 왕인데 그의 딸이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의 아내가 되어 있어 온 백성들이 바알 신을 섬기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임(왕상16:30-33). 큰 능력을 행하였지만 개인적으로 선지자 엘리야는 왕비 이세벨이 군사를 보내어 그를 체포하고자 할 때에 두려워서 도망을 치게 됨(왕상19:1-3). 북조 이스라엘 왕국 내에서는 그를 숨겨주고자 하는 친지가 없어서 그는 여호와신앙이 그나마 살아 있는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의 땅으로 피신하게 됨.
2) 네게브 지역 브엘세바에 이르게 된 엘리야는 기진맥진하여 여호와께 죽기를 소원하게 됨(왕상19:3-4).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그에게 먹고 마실 것을 제공하고 호렙 산까지 인도함(왕상19:5-8). 그곳에서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서 엘리야는 세가지 사명을 맡아 북진을 하게 됨(왕상19:12-18). 첫번째 사명이 엘리사를 제자로 거두어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라는 것임(왕상19:16).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음(왕상19:19-21).
3) 엘리사가 스승 엘리야를 대신하여 북조 이스라엘 왕국에서 선지자의 일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매우 큼. 따라서 그는 승천하기 위하여 요단 강으로 향하시는 스승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를 하고 있음; “스승님의 능력보다 두배의 능력이 주어지지 아니하면 자신은 영적으로 캄캄한 이스라엘 왕국에서 선지자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임”(왕하2:9 의역). 그때 엘리야의 답변이 다음과 같음;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왕하2:10). 요컨대 스승 엘리야가 그 육신의 몸으로 회오리 바람 가운데 불수레를 타고서 승천하는 광경을 엘리사가 목격하게 되면 성령님의 역사가 그에게 갑절이나 임하게 된다는 것임. 실제로 그러한 성령님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임하고 있는 것임(왕하2:8, 14).
4) 마찬가지의 역사가 베다니 앞 감람 산에서 발생을 하고 있음(눅24:50). 사도들과 제자들이 40일 전에 무덤에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경험했으며(행1:3) 또한 감람 산에서 예수님께서 영생의 몸을 입으신 채 선지자 엘리야의 때와는 달리 회오리 바람과 불수레의 도움도 필요 없이 그대로 승천하시는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된 것임(눅24:51). 그러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그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겁날 것이 없게 됨(요16:33, 롬8:37-39). 왜냐하면, 남은 인생 가운데 복음사역을 하다가 죽게 되면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여 스승님처럼 승천하여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임.
(2) 11사도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돌아가서 성전과 다락방에서 어떠한 일을 준비하고 있는가?(눅24:50-53, 행1:12-15, 고전15:4-8)
1) 그와 같은 부활의 믿음과 승천의 소망이 현실화가 될 수 있도록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자 하나님이 영이 강림하여 성도들에게 개인적으로 임재하여 내주 역사하시는 시대가 그해 주후 32년 오순절부터 시작이 되고 있음(행2:1-12).
2) 그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성령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를 하라고 마지막으로 두 차례나 당부를 하심(눅24:49, 행1:8). 따라서 감람 산에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본 성도들은 함께 모여서 기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고 있음(눅24:50-53).
3) 그들의 수가 약 500명 정도라고 사도 바울이 밝히고 있음(고전15:6). 그만한 성도를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예루살렘에서는 성전이므로 그곳에 모여서 매일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성령님께서 강림하여 임재하시기를 합심기도한 것임(눅24:52-53).
4) 그러나 열흘이 지나지 아니하여 그 수가 120명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장소를 마가의 다락방으로 옮긴 것으로 보임(행1:15). 그곳에서 오순절 날에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의 역사가 120명의 성도들에게 있게 된 것임(행2:1-4). 그것이 이른바 초대 예루살렘교회의 시작이라고 하겠음(행2:3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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