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6강(눅4:1-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7. 11. 19:06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6(4:1-3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터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7 8 10()

 

1.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하시기 위하여 공생애를 준비하시는데 그 첫번째와 두번째의 준비는 무엇인가?(4:1-2)

(1)  첫번째 준비는 선지자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신 것임(4:1);

1)    물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회개의 의미임. 그 결과 의인으로 간주가 된 예수님에게 성령님께서 비둘기의 형체로 강림하시고 임재를 하시는 것임(3:21-22a).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하시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지기 시작하는 것임(3:22b, 1:8).

2)    그 근본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회개의 물세례를 받으실 필요성이 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물세례를 받으시고 그 다음에 기도를 하시자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당시의 백성들과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풀이가 됨. 따라서 그 의미를 한번 다음과 같이 파악해보고자 함;

3)    다만 한가지 미리 전제를 해두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의 경우에는 회개의 물세례를 받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늘이 열리는 그러한 일련의 사건과 하나님의 능력이 주어지고 있지만 죄인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님. 물세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가 필요하다고 하겠음. 따라서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물세례를 받으신 것을 성도들이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를 하고서 물세례를 받은 경우로 간주하고서 그 다음에 발생하는 일로 위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고자 하는 것임;

4)    ①첫째, 예수님께서 구태여 선지자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시고 계심(3:13-15). 그 물세례는 회개를 하셨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있는 것임(3:3). ②둘째, (대속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를 하고 물세례를 받은 성도이므로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과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된다는 것임. 그 사실을 증거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에게 발생하고 있는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인 것임(3:21-22a).

5)    ③셋째,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가 이루어짐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고 있음. 그 사실을 증거해주고 있는 것이 하늘로부터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는 것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3:22b). ④넷째, 사도 바울의 설명에 따르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아 창조주 여호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있게 되었다는 것임(8:15). 따라서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음사역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임(1:8).

(2)  두번째 준비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임(4:2);

1)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자가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이 되었으니 그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만 하는 것임. 그것이 성도의 거듭난 삶이며 영적인 삶인 것임.

2)    구체적으로, 어떠한 공생애를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임. 그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40일간의 금식기도와 그 직후에 받으시는 마귀의 3가지 시험이라고 할 수 있음(4:1-2).

 

2.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기 위하여 40일간 금식을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4:1-4)

(1)  극한상황에서 시험을 받게 하는 이유(4:1-2);

1)    사람이 물만 마시고 식사를 하지 아니하는 경우 며칠간 생존할 수 있을 것인지 그 한계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예수님의 40일간의 금식으로 보임(4:1-2). 참고로, 40일간의 금식이면 충분하다는 의미이므로 구태여 예수님보다 더 장기간의 금식을 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단이 됨. 그것은 잘못하면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더 낫다고 과시하는 교만이 되고 마는 것임.

2)    그렇게 예수님께서 스스로 극단적인 한계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가신 이유는 사람이 먹고 사는 인생살이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임.

3)    그것이 무엇인지 벌써 모세가 신명기 제30장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19-20); 그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선택을 어떤 극한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옳게 하라는 것임.

4)    따라서 그 옳은 선택의 모습을 친히 보여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40일간 금식을 하신 후에 성령님에 이끌리어 시험장소인 광야로 가시고 있음(4:1). 그곳에서는 수천년 전부터 사람을 유혹하고 시험한 경험이 매우 풍부한 마귀가 시험관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임(3:1-5, 1:9-12, 2:4-7, 4:2, 12:9, 20:2).

(2)  굶주림과 관련한 마귀의 시험과 예수님의 답변(4:3-4);

1)    40일간 금식하신 후 극도의 시장기를 느끼고 계시는 예수님에게 마귀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당장 먹을 것을 구하라고 권하고 있음(4:3). 그것은 예수님을 위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백성들의 영혼을 구원해야만 하는 그 하나님의 능력으로 떡을 바꾸어 먹으라고 하는 무서운 흉계인 것임.

2)    하나님의 능력으로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깊은 말씀의 묵상과 현실적인 문제의 성찰을 요구하고 있는 질문임. 그렇지만 정답은 다음과 같음; “하나님의 아들에게 주시는 창조주 여호와의 특별한 능력은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영혼의 구원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임. 100년 안팎의 인생을 살다가 그 목숨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한시적인 육신을 살리고 편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 그것을 위해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벌써 풍성한 자연의 혜택을 주신 바가 있음. 그렇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사람들이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지나친 소유욕과 지배욕으로 말미암아 그 충분한 식량을 골고루 분배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근본적인 문제해결의 방안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계속 연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양심을 바로 고치는 것임. 그것은 모두가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회개함으로써 남은 인생을 달리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임. 구체적으로, 성도들이 피조물의 생명을 돌보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의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고 이웃사랑을 하나님사랑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변화시키는 것임. 그것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삼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주고 있는 까닭인 것임”(5:44-45, 12:30-31, 6:15).

3)    그와 같은 취지에서 예수님의 답변이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음;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4:4). 참고로 그 말씀은 신명기 제8장의 말씀을 원용한 것인데 전체 내용이 다음과 같은 것임;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헤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8:3-4).

4)    참고삼아 풀이를 해보자면, 먹이고 입히시는 분이 네가 아니고 아버지 하나님이심을 알고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전심전력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리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하겠음.  

 

3.    마귀의 두번째 시험의 내용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4:5-8)

(1)  마태복음에서는 3번째의 시험인데 그것을 의사 누가가 2번째로 격상시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4:8-10, 4:5-8)

1)    의사 누가의 생각으로는 그 시험의 내용이 더 중요하기 때문임.

2)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시험이 먹고 사는 문제이며(4:3) 그 다음이 세상과 타협하여 하나님의 일을 쉽게 해치우고자 하는 유혹이라고 의사 누가가 보고 있는 것임(4:6-7).

3)    하나님을 종처럼 부리고 자신의 위세를 드높이고자 하는 유혹을 의사 누가는 마지막 세번째의 시험이라고 보고 있는데(4:9) 사도 마태의 경우에는 그것이 두번째에 해당하는 더 큰 유혹이라고 말하고 있음(4:6).

4)    그런데 현실적으로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비록 마귀와 타협하고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큰 권세를 차지하여 제 뜻대로 한번 교권을 휘둘러보고자 시도하고 있음.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제멋대로 처리하며 큰 종이라고 자처하고 또한 그렇게 불리고 있는 세태를 흔히 볼 수가 있으므로 의사 누가의 견해에 수긍이 가는 것임.

(2)  마귀가 천하의 권세를 예수님께 줄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이 원인무효임을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4:6-7)

1)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4:6-7);

2)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천하의 권세를 주신 일이 없으신 것임. 그러므로 마귀가 천하 권세를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러한 주장을 믿고서 계약을 하는 경우에는 그것은 원인무효가 되는 것임.

3)    천하의 권세는 여전히 창조주이신 여호와께서 장악하고 계시는 것이므로 훗날 예수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을 때에 그 권세를 그리스도에게 위임해주시는 것임. 그와 같은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계심;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28:18-19).

4)    또한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에게 주신다는 사실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22:28-30).

(3)  성도들에게 주고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4:7-8)

1)    첫째, 아담부부가 탐욕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말씀을 저버렸기 때문에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를 하고 있음.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음. 그 내용은 영생의 하나님과 동거하며 동행하고 있던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죄를 범한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임. 그 죄성이 육신을 통하여 유전이 되고 있으므로 아담의 후손들이 여전히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서 살고 있는 것임.

2)    둘째,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던 천사장 루시엘과 그의 부하인 천사들이 반역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차지하려고 하다가 이 땅으로 내어 쫓기게 됨. 그들은 죄와 사망의 법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마치 여호와로부터 죄와 사망의 권세를 얻어서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속이면서 영적으로 사람들을 해치고 악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 그들이 바로 악한 영들이며 마귀와 그 부하들인 귀신들임.

3)    셋째, 사람들을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막 시작하시려고 할 때에 마귀는 예수님마저 속이려고 나서고 있음. 그 내용은 자신에게 절만 한번 하면 천하 권세를 줄 수가 있다는 것임(4:7).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간단하게 온 천하에 복음사역을 할 수 있는 편리성이 있다는 것임.

4)    넷째, 예수님께서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물리치심;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8, 6:13).  그 이유는 두가지임; ①하나는 천하의 권세는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것이지 마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임. ②또 하나는, 영혼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악한 영들을 쫓아내고 인간을 영적으로 살리자고 하는 것이지 마귀의 세력과 타협하거나 악한 영을 섬기자고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임.

 

4.    마귀의 3번째 시험의 내용과 그 의미는 무엇인가?(4:9-12)

(1)  세번째 시험의 내용;

1)    예루살렘성전의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서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여 안전하게 착지를 시켜 달라고 하라는 것임(4:9-11). 그리하면 성전에 머물고 있는 많은 유대교지도자들과 선민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라는 사실을 금방 믿고 순종하게 될 것이라는 것임. 그렇게 되면 복음사역이 얼마나 쉽겠느냐는 유혹임.

2)    그와 같은 내용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발췌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임;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91:11-12) 하였느니라”(4:10-11).

3)    마귀가 함부로 인용하고 있는 말씀의 뜻은 그러한 것이 아님. 전혀 상황이 다른 것임; “여호와 하나님께 피난하는 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그렇게 보호해 주신다는 의미임”(91:11-12). 그런데 그것을 마귀는 예수님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하여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면 하나님께서 무조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신다고 하는 의미로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임.

4)    그렇게 말씀을 상황과 문맥에 맞게 원용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르게 의도적으로 발췌하여 함부로 사용을 하게 되면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이 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

5)    이에 예수님께서는 단칼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4:12). 그 말씀은 맛사의 교훈(17:7) 일깨워주고 있는 대목임(6:16 인용임).

(2)  그 시험의 의미;

1)    첫째, 여호와신앙과 우상문화는 전혀 다른 것임. 가장 근본적인 차이가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기며 종으로 부리지 아니한다는 것임. 그러므로 자신에게 희생과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주인이신 여호와의 뜻을 따라야만 하는 것임.

2)    그와 반대로 우상문화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이유가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여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임. 따라서 우상을 섬기는 척 하지만 사실은 그 우상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종인 것임. 그에 따라 이익이 되면 우상을 섬기고 손해가 되면 바로 버려버리는 것임.

3)    둘째, 마귀는 예수님께 아버지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라고 종용하고 있는 것임. 자신의 복음사역을 쉽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손을 종처럼 빌려서 자신을 안전하게 착지를 시켜 달라고 하는 것임. 그렇다면 그 광경을 보게 되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종처럼 부리고 있는 예수님을 높이고 찬양할 것임. 그것은 또다른 사탄의 탄생인 것임.

4)    셋째,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혼 구원의 복음사역을 하는 성도들은 그 목적에 걸맞게 그 수단도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서 벗어나서는 안되는 것임. 자신의 뜻과 방법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만 하는 것임. 아무리 사람의 방법이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아니한 것이라면, 곧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하면 사용을 해서는 안되는 것임.

5)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릴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시는 분이 유일하게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임. 사람은 시공간에 갇혀 있는 존재이므로 자신과 자신의 주변만 살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임. 따라서 타 집단에 대해서는 해로운 결과가 초래될 수가 있다고 하겠음.

 

5.    마귀가 일단 시험을 마치고 물러가 휴전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4:13)

(1)  마귀가 잠정적인 휴전을 하고 있는 이유;

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4:12)는 예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 제17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 맛사와 므리바의 사건을 염두에 두시고 하신 말씀임.

2)    그 말씀의 뜻은 여호와를 더 이상 시험하는 것을 용인하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의 사람과 다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는 말씀임. 따라서 마귀가 그 말을 듣고서도 계속 시험을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비진리로 계속 예수님과 다툰다고 하면 그때에는 여호와의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임.

3)    그에 따라 일단 마귀는 시험을 잠정적으로 끝내고서 현명하게 꼬리를 빼고 있음;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4:13).

4)    다른 한편으로 그 말의 뜻은 사탄이 할 수 있는 시험의 종류가 이상 3가지에 모두 집약이 되고 있다는 것임. 그러므로 ①하나님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우선을 두는 것, ②마귀와 타협하여 하나님의 일을 쉽게 처리하려는 것, ③하나님을 자신의 종처럼 부리려고 하는 교만 등 세가지의 큰 잘못을 범하지 않으면 마귀의 시험을 물리칠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음.

(2)  대리자를 내세운 마귀의 끈질긴 시험이 계속되고 있음;

1)    얼마동안 떠나니라”(4:13)고 하는 말은 일시적인 휴전을 의미하고 있음. 따라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전략으로 마귀의 시험이 다시 시작이 될 것임.

2)    그 새로운 전략이란 마귀가 직접 시험관으로 나서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내세운다는 것임. 그러한 맥락에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줄기차게 감시하고 방해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임.

3)    특히 유대교리에 대한 유권해석과 백성들에 대한 율법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집요하게 예수님을 괴롭히는 것을 복음서가 기록하고 있는 것임.

 

6.    마귀의 시험을 모두 물리치시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갈릴리에서 어떻게 시작하고 계시는가?(4:14-15)

(1)  홈 그라운드인 갈릴리에서의 복음사역의 잇점;

1)    의사 누가의 기록과 사도 요한의 기록이 다소 차이가 있음; ①첫째, 사도 요한은 선지자 요한으로부터 물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제자들을 모으신 다음에(1:40-51) 첫해 유월절을 예루살렘성전에서 지내시기 위하여 남하를 하셨다고 적고 있음(2:12-14).

2)    ②둘째, 그와 달리 의사 누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방문하지 아니하시고 갈릴리에서 줄곧 복음사역을 하신 것으로 적고 있는 것임(4-8).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남행을 한 것은 누가복음 제9장에 가서야 비로서 기록하고 있는 것임;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9:51-52).

3)    위와 같이 의사 누가가 예수님의 갈릴리에서의 활발한 복음사역에 중점을 두고서 기술하고 있는 이유는 그 지역이 예수님의 홈 그라운드이기 때문임. 그리고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은 이미 이사야의 예언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임;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1-2).

4)    예루살렘에서 멀리 북쪽으로 떨어져 있는 변방 갈릴리 지역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음. 그러므로 예수님은 평소 친지들을 중심으로 하여 제자들을 모집하기도 편했으며 많은 백성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치유사역을 마음껏 할 수도 있었던 것임.

5)    특히 40일 금식도 하시고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도 거뜬하게 물리치셨으므로(4:1-13) 성령 충만하게 갈릴리 홈 그라운드로 돌아가셔서 활기차게 복음사역을 하신 것임;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4:14).

(2)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신다는 의미;

1)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4:15); 유대교인들이 안식일에 모여서 매주 예배를 드리고 히브리정경을 공부하고 있는 회당(會堂, synagogue)에 가셔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풀이하여 가르치신 것임.

2)    그 결과 백성들의 반응이 뜨거웠으며 칭송이 많았다고 의사 누가가 적고 있음(4:15).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본래 히브리정경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본뜻을 드러내신 것이기 때문에 유대교인들이 그 말씀의 선포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임.

3)    따라서 예수님의 갈릴리 지역에서의 복음사역은 유대교의 선지자로서의 말씀선포와 치유사역이라고 그렇게 선민 유대인들에게 이해가 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음.

4)    유대교의 지도자인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대 공회원들에 의하여 유대교리를 어긴 죄로 예수님께서 정죄가 되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실 때까지는 그렇게 유대교의 선지자 또는 메시아로 칭송을 받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임.

 

7.    예수님의 홈 그라운드가 갈릴리인데 어째서 유독 고향인 나사렛의 회당에서는 칭송도 받지를 못하시고 놀라운 기적도 베풀지를 못하고 계시는가?(4:16-30)

(1)  나사렛 회당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

1)    고향인 나사렛에 들리신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가셔서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낭독하심(4:16-19). 그리고 말씀선포를 하셨는데 그 내용이 고향사람들의 귀에 거슬리고 있음.

2)    쫓기는 선지자 엘리야를 숨겨둔 사람들은 고향의 친지들이 아니고 생판 모르는 변방의 과부였다는 등의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고향사람들이 반감을 가지게 됨(4:25-26, 28).

3)    따라서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회당에서 쫓아내고 아예 동네 바깥으로 몰아내어버린 것임(4:28-30).

(2)  그 사건이 주고 있는 교훈;

1)    첫째, 예수님께서는 고향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이미 알고 계심. 그것은 선민 유대인이라고 하면 누구나 고대하고 있는 선지자 특히 메시아에 대한 바람인 것임. 구체적으로 다윗의 후계자로 오시는 강력한 선지자인 메시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그 옛날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자임. 따라서 메시아를 통하여 선민 유대인들의 위상은 다시 높아지고 주변국의 백성들은 모두 선민을 우러러보고 섬기는 그러한 패권시대를 다윗 대왕 때처럼 다시 한번 실현시켜 달라고 하는 것임.

2)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다르신 것임. 선민과 이방인을 구별하지 아니하시고 모두 구원하시기를 원하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이며 자신은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임. 그러므로 선민 유대인들의 생각이나 고향사람들의 바램에는 전혀 동의를 할 수가 없는 것임.

3)    둘째, 그러한 속사정을 구구하게 설명하지 아니하시고 엘리야 시대에 타락한 이스라엘 10지파보다는 하나님께서 차라리 북쪽의 이방인들을 먼저 구원하시고자 하셨다는 사실을 은근히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것임. 그로 말미암아 고향에서 쫓겨나는 곤욕을 치르시고 있음.

4)    그와 같은 현상이 나중에 예루살렘에서도 재현이 됨.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을 위시한 산헤드린 대 공회원들로부터 정죄가 되시고 그들의 로비로 로마총독에 의하여 십자가 처형이 결정이 되고 마는 것임.

5)    셋째,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다윗의 혈손인 목수 요셉의 장남으로만 인식하고 있음(13:54-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얻게 되었다면 당연히 고향사람들을 먼저 돌아보고 선민 유대인들의 독립과 영광을 떨치기 위하여 그 능력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임. 그와 같은 기대가 어그러지고 예수님의 메시지에 의하여 철저하게 배신을 당하고 있기에 그를 용납하지 못하고 고향에서 쫓아내어버린 것임(4:28-30).

 

8.    나사렛 고향사람들은 어째서 예수님의 신성을 보지를 못하고 인성과 육신적인 정체만을 주시하고 있는가?(4:22)

(1)  나사렛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1)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4:22); 예수님의 정체에 대하여 단지 인간적으로 그리고 육신적으로만 알고 있음. 따라서 예수님의 정체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며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하는 사실을 조금도 믿고 받아들이지를 못하고 있는 것임. 그저 예수님의 말씀과 정경의 풀이가 예사 랍비의 수준이 아니라고 하면서 놀랍게 여기고 있는 정도임.

2)    그 말의 의미를 사도 마태가 더 정확하게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음;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의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13:54-58).

(2)  그러한 인간적인 인식이 어째서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가?

1)    하나님의 능력은 선지자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이 세상에 발현이 되고 있음. 그런데 그 전제조건이 죄 사함이나 치유의 은혜를 얻기를 원하는 자가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의 뜻이 그 선지자나 그리스도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믿는 것임.

2)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고향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믿음이 발견이 되지 아니하고 있음. 그들은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얻게 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고 생각만 하고 있을 뿐 예수님을 구세주나 구원주로는 조금도 인정을 해주지 아니하고 있는 것임.

3)    그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고향을 발전시키고 선민 유대인들의 소원풀이나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것임. 그런데 그것은 만민구원과 영혼구원 그리고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뜻과는 전혀 맞지가 않는 것임.

4)    따라서 그들의 만남은 불협화음만을 낳게 되고 서로가 갈등을 하다가 헤어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임. 그에 따라 예수님의 동생들이 형과 화해하게 되는 것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가 되고 있는 것임(7:5, 1:14).

 

9.    예수님이 전해주시는 이사야의 예언 및 엘리야 시대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 그리고 엘리사 시대 나아만 장군의 치유 이야기를 듣자 고향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4:17-30)

(1)  예수님이 읽으신 이사야의 예언에 대하여(4:16-21, 23-24);

1)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읽으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이 다음과 같음;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4:18-19).

2)    그것은 만민구원의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시면 온 세상에 영혼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임(61:1-2). 그런데 그 말씀의 뜻을 선민 유대인들은 물론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고 있음. 그저 자기들의 고향에서 수백 년 만에 반갑게도 선지자 예수가 나타났으니 이제 선민의 영광을 나사렛에서부터 떨치게 되는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을 뿐임.

3)    그러한 딱한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고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그들에게 뜻풀이를 시작하심(4:23-24). 여기서 그 속담의 뜻은 ①첫째, 의사는 자신의 병을 먼저 고치고 ②둘째, 가족의 병을 고치며 ③ 셋째, 친지와 고향사람들의 병을 먼저 고쳐주는 혜택을 베풀 때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유익이 있는 것이지 ④넷째, 먼 이웃이나 타국의 이방인들을 고쳐주는 의사라면 별로 자신들에게 유익이 없다고 사고하는 방식임”.

4)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한 고향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창조주 하나님의 만민구원의 뜻과 정면으로 충돌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임. 그 이야기를 듣고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하는 고향사람들임.

(2)  예수님의 사렙다 과부의 이야기와 그 의미(4:24-26);

1)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3 6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4:25-26);

2)    참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 말씀의 정확한 뜻을 충분히 알아 듣도록 설명해주기를 원하고 계시는 말씀의 화신인 예수 그리스도이심. 그래서 정성을 다하여 엘리야 시대의 이야기를 위와 같이 하고 계심. 그런데 그것은 고향사람들의 화를 돋우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는 것임.

3)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백성들은 우상문화에 깊이 빠져서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 한 사람을 흉년 가운데 돌보아 주지를 아니하고 있다는 것임.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엘리야에게 이방지역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한 사람의 과부에게 몸을 의탁하도록 조치하신 것임(왕상17:7-9). 그 조치를 말미암아 그 과부의 집에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밀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를 아니하는 기적이 임하고 있는 것임(왕상17:14-16).

(3)  예수님의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와 그 의미(4:27);

1)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4:27);

2)    예수님께서는 눈치와 코치도 없이 똑 같은 취지의 말씀을 또 다른 역사서의 기록을 가지고 설명을 해주시고 계심. 그러한 지극정성은 오히려 고향사람들에게 배신감만 더 심어주고 있는 것임. 참고로 예수님이 인용하신 예화는 열왕기하 제5장에 기록이 되어 있음.

(4)  고향사람들의 반응과 예수님의 태도(4:28-30);

1)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4:28-30);

2)    얼마나 고향사람들은 화가 났는지 예수님을 회당 바깥으로 쫓아내는데 그치고 있지를 아니하고 있음. 아예 동구 밖까지 끌고가서 낭떠러지에서 떨어뜨려버리고자 하는 것임(4:29).

3)    그러나 그것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만 살인을 저지르고자 하는 것임. 그와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발휘하시고 계심. 따라서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유유히 동네를 떠나고 계시는 것임(4:30).

4)    참고로, 그 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고향 나사렛에 살고 있는 친동생들과도 소원(疎遠, 사이가 멀어짐)한 사이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