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강(눅2:1-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7. 8. 23:43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3(2:1-24)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7 7 20()

 

1.    로마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속국의 백성들에게 일제히 호적을 정리하라고 칙령을 내렸는데 시리아 총독인 구레뇨는 언제 그 명령을 시행하고 있는가?(2:1-3)

(1)  아우구스투스의 통치기간과 그의 호적정리 칙령;

1)    로마의 독재관이 된 시저는 황제가 되고자 함. 그러나 원로원의 견제로 주전 44년에 암살을 당하게 됨. 그의 상속자는 그가 사전에 작성해둔 유언장에 의하여 누나의 외손자인 옥타비아누스가 됨.

2)    급격하게 신분이 상승이 된 옥타비아누스는 놀랍게도 민심을 얻어서 정적들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는 한편 로마를 확장시켰음. 그 공로로 주전 27년에 원로원으로부터 황제에 해당하는 칭호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를 얻고 주후 14년까지 무려 41년간 로마제국을 통치하게 됨.

3)    아우구스투스의 업적은 대단함. 그는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하여 군사용 도로를 많이 닦았으며 정치제도와 행정체계를 잘 정비하게 됨. 그 가운데 매 5년마다 인구 센서스를 시행한다는 계획이 들어 있음. 그 첫번째 조치가 주전 5년경 호적정리를 위한 칙령이라고 하겠음. 의사 누가가 그 사실을 적고 있음;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2:1).

(2)  헤롯 왕가가 아니라 시리아의 로마총독인 구레뇨가 호적정리를 명령하고 있는 이유;

1)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헤롯대왕이 로마의 실권자 및 초대 황제의 위임으로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을 모두 통치하고 있음. 그렇지만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총독으로부터 군사적인 지원을 받아서 선민 유대인들을 다스리고 있는 실정임.

2)    로마황제는 변방에 여러 속국을 두고 있으며 속국을 다스리는 왕가를 인정하고 있으면서도 이웃에 로마군대를 대규모로 주둔을 시켜서 로마총독으로 하여금  속국을 다스리는 왕가들을 견제하게 한 것임.

3)    그 좋은 예가 시리아 지역 전체를 다스리고 있는 로마총독임. 그는 로마군단을 거느리고 있으며 군사력으로 시리아와 그 서편의 팔레스틴 지역을 모두 장악하고 있는 것임. 따라서 주후 6년 헤롯 아켈라오를 폐위시키는 일, 주후 36년 예루살렘 총독인 빌라도를 해임하는 일 등이 모두 황명을 받은 시리아총독에 의하여 진행이 되는 것임.

4)    그러므로 제국의 여러 속국에 내리고 있는 아우구스투스의 호적정리 칙령에 대하여 그 행정적인 절차를 마련하여 관할지역에 일률적으로 하달하고 있는 자가 당시 시리아총독인 구례뇨라고 하겠음;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2:2). 그 시기는 의사 누가의 기록에 따르게 되면 주전 2년경 헤롯 아켈라오의 통치기간인데(3:1, 23) 또한 사도 마태의 기록에 의하면 헤롯 대왕의 통치 마지막 해인 주전 4년이 되고 있음(2:1, 15).

5)    참고로, 구레뇨는 두 차례나 시리아 주둔 로마총독을 지낸 것으로 볼 수 있음; ③첫째 임기는 주전 12년부터 10년간이고 둘째 임기는 주후 6년부터로 보임. 그러므로 첫번째 임기 동안에 인구조사를 하기 위하여 칙령에 따라 호적을 정리하라고 명령을 시달했으며, ②두번째 임기가 시작되었을 때에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 아켈라오를 황제의 명령으로 면직시키고 시리아로 압송한 것으로 보임.

 

2.    다윗의 후손인 목수 요셉은 만삭인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고향 베들레헴까지 길을 나서고 있는데 그곳에서 어떠한 일을 만나고 있는가?(2:3-7)

(1)  의사 누가가 호적정리사건을 중시하고 있는 이유;

1)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그것이 아니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음. 그는 예수님이 단지 다윗의 자손인 목수 요셉의 호적에 장남으로 등재가 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임.

2)    그와 같은 입장에서 목수 요셉이 만삭이 된 아내 마리아를 데리고 자신의 호적을 정리하기 위하여 선조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중요한 것임(2:3-5).

3)    그들 부부가 베들레헴에 들렀을 때에 예수가 태어났으므로(2:6-7) 그곳에서 8일만에 할례를 주고 목수 요셉의 호적에 맏아들로 등재를 한 것으로 보임(2:21).

(2)  전국에서 몰려든 보아스의 후손들과 베들레헴 현지의 사정;

1)    다윗의 아버지가 이새이며 이새의 아버지가 오벳이고 오벳의 아버지가 보아스인데(4:13-17) 보아스의 고향이 바로 베들레헴임(1:22, 2:4).

2)    이새의 막내아들이 다윗 대왕이며 그 자손이 번창하였음. 따라서 일시에 전국에서 보아스의 후손들이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있으므로 숙박할 방을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임.

3)    그에 따라 어쩔 수가 없이 목수 요셉이 아내 마리아와 함께 마구간에서 일박을 하고 있는 동안에 아기 예수가 태어났음. 따라서 아기 예수는 강보에 싸여서 구유에 누워 있는 것임(2:6-7).

4)    당시의 베들레헴은 그 남쪽의 에델망대와 더불어 유명한 지역임. 왜냐하면, 베들레헴의 8km 북쪽에 예루살렘성전이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제물로 사용하는 양들을 베들레헴 남쪽 교외의 넓은 들판에서 키우고 있었기 때문임. 그곳 남쪽 목축지의 중심지가 바로 창세기 제35장에 등장하고 있는 에델 망대(35:21-22). 따라서 에델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 양떼들을 머물게 할 수 있는 마구간이 베들레헴에 많았음. 그로 말미암아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는 가축의 냄새가 많이 나고 있음. 그러한 장소에 아기 예수가 구유에 누워있다는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며 영적인 의미가 풍성한 것임(2:5-9).

 

3.    목수 요셉이 고향 베들레헴을 방문하여 호적을 정리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2:7, 21, 13:55, 21:9)

(1)  본의 아니게 다윗의 후손으로 불리게 되는 예수 그리스도;

1)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에 따르면, 메시아는 이새의 줄기에서탄생하지만(11:1) 그 근본은 이새의 뿌리가 되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심(11:10). 그러므로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새의 막내 아들인 다윗 왕의 후손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박약한 것임.

2)    그렇지만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예수님의 탄생에 즈음하여 로마황제의 칙령과 시리아총독의 행정명령에 따라 가나안 땅에서 호적정리 사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조상들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있는 목수 요셉이 마리아가 낳은 아들을 자신의 장남으로 차제에 등재를 하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법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등재가 된 것임.

3)    다만 다윗의 혈통이 아님. 예수님은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기 때문임. 그는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님이 임재를 하시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잉태가 된 것이기에 그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이심(1:35). 그것은 이새의 뿌리인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과 부합하고 있음(11:10, 3:32, 38).

4)    그리고 호적상으로는 다윗의 후손인 목수 요셉의 장자로 등재가 되고 있으므로 법적으로 말하자면 이새의 줄기인 다윗의 후손이 맞는 것임. 그렇게 기묘하게도 이사야의 예언이 맞아 들어가고 있음(11:1).

(2)  진짜 목수 요셉의 친아들인 남동생들과의 알력관계;

1)    그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7:1-5).

2)    예수님의 제자이면서 이종동생으로 보이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과 그 친동생들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음. 따라서 위와 같이 기술하고 있음. 친동생들이 예수님을 불신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추정할 수가 있음;

3)    첫째, 맏형인 예수는 남동생들이 보기에 아버지 목수 요셉의 혈통이 아님. 따라서 생물학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이 될 수가 없는 인물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민 유대인들이 형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진짜 다윗의 후손인 동생들의 심기가 불편한 것임.

4)    둘째, 형 예수는 30살이 되기 전까지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에 나사렛에서 목수 일을 하여 집안의 생계를 도맡았음. 그러나 만 30세가 되자 모든 일을 바로 밑의 동생인 야고보에게 맡기고 공생애를 나선 인물임(3:23). 그러므로 남동생 4사람 곧,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은 맏형인 예수를 야속하게 생각하고 있음(13:55).

5)    셋째, 형 예수의 복음사역의 현장을 방문했다가 홀대를 당한 경험이 있음;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8:19-21).

6)    그러했던 그들이 형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고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주님으로 섬기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임; “그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동생인 장로)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고전15:7),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1:14).

 

4.    베들레헴 남쪽 근교지역에서 천사가 양치기들에게 구주의 탄생을 전해주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2:8-14)

(1)  목자의 상징성(49:24, 3:1, 10:11, 21:15);

1)    창세기에서부터 목자의 상징적인 의미가 드러나고 있음;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49:24).

2)    그 의미를 풀이해보자면,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들 요셉을 통하여 연이은 흉년으로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하기 위하여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고 또한 많은 주변국의 백성들까지 흉년 가운데 그 목숨을 구원하는 목자로 사용하고 계신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고서 목자장이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

3)    그와 같은 맥락에서 출애굽기 제3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해방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기 위하여 그들을 인도하는 목자로 모세를 호렙 산으로 부르고 계시는 것임(3:1-12).

4)    그러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구원의 목자가 아기 예수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고 있는 것임.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목자라는 사실을 말씀하심;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10:11). 그리고 부활하신 다음에는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들을 자신을 대신하여 성도들을 섬기라고 목자로 발령하심(21:15-18).

(2)  에델 망대의 슬픔이 있는 땅에 찾아오는 희망의 메시지(2:8, 35:20-22);

1)    그와 같은 맥락에서 누구보다도 베들레헴 남쪽 근교에서 양떼를 치고 있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천사가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2:8-11).

2)    그런데 베들레헴 남쪽 근교의 큰 양치기 현장은 별다른 의미를 두가지 지니고 있음; ①하나는 예루살렘에서 제물로 사용할 양들을 그곳에서 많이 목축을 하고 있다는 것임. 그 중심되는 망대가 서있는 장소가 바로 에델. ②또 하나는 그 옛날 야곱시대에 그곳에서 빌하와 르우벤의 통간사건이 발생하여 야곱에게 평생 마음속 고통을 주었다는 것임(35:20-22).

3)    에델에서 밤을 새워가면서 양을 돌보고 있는 목자들이 때가 되면 그 양들 가운데 좋은 것을 골라 베들레헴을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진행을 함. 그때에는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시는 그곳 마구간에서 양들과 함께 밤을 지새게 되는 것임. 그렇게 가축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곳에서 밤을 지새어본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는 에델의 목자들에게 그들의 고난을 이해하고 구원하는 이른바 체휼(體恤)의 구세주가 태어나신다고 하는 소식이 복음이며 그 복음이 가장 먼저 그들 목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임. 그러므로 그들은 너무 반가워서 급히 현지를 방문하고 아기 구주를 영접하고자 하는 것임(2:12-17).

4)    그 옛날 족장인 야곱은 애처 라헬을 베들레헴 북쪽 교외에 장사를 지내고(35:19-20) 베들레헴을 지나쳐 그 남쪽 교외지역인 에델에 망대를 세우고 여러 날 목축을 하고 있음(35:21). 그때 은밀하게 첩보 하나를 접하게 됨. 그것은 약관(弱冠, 스무살)의 장남인 르우벤이 부친의 첩인 빌하와 내통을 하고 급기야는 간통까지 하고 있다는 것임(35:22). 그 이유는 빌하가 그 동안 자신의 뒷배가 되어 준 안방마님 라헬이 갑자기 죽고 나자(30:3, 35:19) 이제는 차기 족장감인 장자 르우벤과 내통을 하고 그 약조를 굳건히 하기 위하여 몸을 섞은 것으로 보임.

5)    한편 장남 르우벤의 입장에서는 부친 야곱의 아들이 모두 12명임. 그 가운데 아버지 야곱은 애처 라헬의 소생인 요셉을 총애하고 있음(37:3). 그러므로 누가 후계자가 될지 모르는 상황임. 그에 따라 자신이 확실하게 차기 족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르우벤은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고 하겠음. 그 일환으로 르우벤은 서모인 빌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임. 그리고 그들의 동맹을 확실하게 하고자 그와 같은 패륜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이 됨. 따라서 야곱은 장남인 르우벤을 결코 자신의 후계자로 삼지 아니했으며 그 이유를 죽기 전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음;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당당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49:3-4).

6)    아담부부의 장남인 카인이 범죄한 것이나 야곱의 장남인 르우벤이 범죄한 것이나 모두 인간의 죄악이 무엇인가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임. 따라서 야곱이 평생 속앓이를 하고 있는 그 고통을 위로해주고 그 영혼의 평강을 회복해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그것도 현장 가장 가까이 베들레헴에서 구주 예수님이 탄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임.  

 

5.    아기 예수를 목자들이 예방한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가?(2:13-20, 10:11, 21:15, 49:24, 50:20)

(1)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사실을 가장 먼저 온 세상에 전하는 사명;

1)    천사들이 아기 예수의 탄생소식을 전하고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은 필요한 최소의 인원만을 남기고 서둘러 구주가 태어나신 베들레헴 현장으로 찾아가고 있음(2:13-19). 그들은 하나님께는 영광,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평화”(2:14 의역)를 가지고 오는 구주를 예방하고 그 사실을 온 세상에 빨리 전하고 싶은 것임(2:20).

2)    양치는 목자들을 통하여 구주의 탄생소식을 온 세상에 가장 먼저 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의사 누가는 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 그 이유는 창세기와 출애굽기에 등장하고 있는 믿음의 열조들이 전부 양을 치는 목자들이기 때문임. 그들은 이 세상에서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양을 지키고 돌보는 자로 살아가며 또한 그렇게 이방 땅에서 신실하게 하나님의 선지자로 살아간 인물들임(12:4-5, 13:2, 20:7).

3)    참고로, 그들 믿음의 열조들이 믿음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소망했는지에 관해서는 히브리서의 저자가 잘 설명을 하고 있음. 그들 목자들은 하늘을 우러러 마치 아브라함처럼 밤하늘의 뭇별들을 바라보고서(15:5-6) 그들의 영혼이 훗날 영생의 천성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히브리서의 저자가 믿음의 장(, chapter)인 히브리서 제11장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임(11:13-16).

4)    현실적으로 목자들은 방목을 하고 있으므로 양떼를 몰고서 초지를 찾아 여러 곳을 떠돌고 있음(33:17, 37:12-17, 3:1). 따라서 그들은 소식의 전파력이 강한 직업을 가진 자들임, 그와 같은 특징이 구주의 탄생소식을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여러 곳으로 전파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하겠음.

(2)  전파와 목양의 의미;

1)    훗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사도와 제자들에게 지상명령을 주심. 그 내용이 두가지임; ①하나는 복음의 전파임. ②또 하나는 목양의 사명임.

2)    첫째, 복음의 전파는 다음과 같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2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3)    둘째, 목양의 사명은 다음과 같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내 양을 치라 하시고”(21:16).

 

6.    아기의 이름을 천사가 전한 그대로 예수라고 정하며 할례를 행하고 있는데 그것은 세례 요한의 경우와 비교할 때 어떠한 것인가?(2:21, 1:31, 59-63)

(1)  잉태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름들;

1)    의사 누가는 복음의 근원이 어떻게 되는지에 주안점을 두고서 그의 복음서를 기록하고 있음(1:3). 그러므로 세례 요한과 구주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여호와의 명령으로 천사들이 그들의 부모들에게 알려준 사건을 중시하고 있음(1:13-17, 30-33).

2)    그 의미는 복음의 근원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임. 그와 같은 의사 누가의 입장은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에서 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드러나고 있음;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3:38).

3)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그 뜻을 세우시고 천사를 통하여 당사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심. 그리고 그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피조세계에서 정한 때에 성취가 되고 있는 것임. 그와 같은 의미에서 아직 잉태가 되기도 전에 하늘에서는 아기의 이름을 먼저 지어서 그 부모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임. 누가복음 제1장을 보면,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이 그러한 경우임(1:13, 31).

4)    유사한 경우가 이미 창세기에서도 선을 보이고 있음. 대표적으로 이스마엘과 이삭의 경우가 그러함. 그런데 하갈의 아들인 이스마엘의 경우에는 이미 임신한지 여러 달이 된 후에 그 이름을 이스마엘’(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로 하라고 천사의 전갈이 나타나고 있음(16:4, 11). 한편 이삭의 경우에는 아직 잉태를 하기도 전에 그 이름을 이삭’(웃음)으로 하라고 하나님께서 직접 아브라함을 방문하여 말씀해주시는 것임(17:19).

(2)  부모를 치료하고 회춘시켜서 태어난 세례 요한의 경우와 하나님께서 처녀의 모태만을 활용한 메시아의 탄생의 차이;

1)    세례 요한의 경우는 창세기에 기록이 되어 있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은 나이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되는 경우와 동일함; ①첫째, 세례 요한의 부모인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모두 늙은 나이임(1:7b). 그리고 엘리사벳은 잉태를 못하는 불임여성임(1:7a). ②둘째, 창세기의 아브라함과 사라도 마찬가지임. 노인들이며 사라가 평생 불임여성인 것임(11:30, 17:17, 18:11).

2)    그러므로 아들을 낳게 해주시겠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서 사라는 장막 뒤에서 속으로 비웃었던 것임(18:12). 그것이 일년 후에는 이삭을 낳고서 기쁨의 웃음으로 바뀌고 있음(21:6). 그러한 의미에서 이삭의 이름의 뜻이 웃음. 그것은 하나님을 비웃던 인간이 이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서(18:14, 21:1-2) 기쁨의 웃음을 가지게 된다는 믿음의 성숙을 의미하고 있는 것임(21:6-7).

3)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경우는 그러한 불임의 치유와 회춘의 의미가 아님. 그것은 역사적으로 전례가 전혀 없는 유일무이한 새로운 창조를 말하고 있는 것임. 왜냐하면, 처녀의 몸에 성령이 임재를 하시고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이 아기를 잉태하고 태어나도록 한 것이기 때문임.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1:35) 동시에 완전한 여자의 후손으로 불리고 있는 것임(3:15).

4)    또한 사람의 아들인 인자’(人子, son of man)로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마치시고 부활 승천하여 다시 하나님의 아들의 보좌로 돌아가시게 됨으로써 성도들에게도 그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완전한 구원의 길이 마련이 되고 있음. 그것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과 대속의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이라는 구체적인 역사가 이 세상에 주고 있는 가장 강력하고 유일한 구원의 메시지인 것임.

 

7.    장자를 레위인으로 대신하지 아니하고 구태여 여호와의 것으로 바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2:22-23, 1:32-33, 13:2, 3:45)

(1)  예수가 그리스도로 태어난 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그의 부모;

1)    목수 요셉이 아기 예수를 자신의 장남으로 호적에 올렸기 때문에 그를 여호와의 것으로 바치지 아니하고 레위인에게 속전만 내면 되는 것임(13:2, 3:45).

2)    그러나 목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아기 예수를 여호와의 것으로 바치는 절차를 예루살렘성전을 찾아가서 일부러 밟고 있음(2:22-23). 그 의미는 예수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임(1:18-25).

3)    모친 마리아도 그것을 알고서 아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바치고자 함(1:31-35). 특히 며칠 전에 베들레헴 남쪽의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보려고 찾아와서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의 결심을 더 확고하게 해주고 있는 것임;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1),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2:19).

(2)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는 의미;

1)    예수님은 자신의 아버지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므로 창조주의 뜻을 따라서 구주로 살아가야만 한다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하게 깨닫기를 시작하고 있음.

2)    그러한 깨달음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세가지임; ①첫째, 레위인 친척들이 많이 간직하고 있는 히브리정경 두루마리들임. 그것을 빌려서 엄청 읽고서 그 뜻을 새기고 있는 것임. ②둘째, 말씀의 뜻을 생각하면서 영적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를 하는 기도의 시간을 습관적으로 가지고 있음(22:39). ③셋째, 안식일에는 회당예배를 드리서 그곳에서 히브리정경을 가르치고 있는 랍비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임.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절기 때에 예루살렘성전을 방문하게 되면 그곳에서 율법학자인 서기관들과 히브리정경에 있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나누는 것임(2:46-51).  

3)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성도들도 자신의 영적인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상명령을 실천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임(21:7). 그러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정체성과 그 사명을 감당하는 일생을 성도들이 깊이 묵상을 해야만 함(22:28-30).

 

8.    갈릴리 사람 목수 요셉의 가정이 매우 가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은 어떠한가?(2:24, 15:9)

(1)  비둘기를 제물로 드리는 경우;

1)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 비둘기 한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2:24). 그것은 피를 흘린 산모를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제물임.

2)    가장 가난한 자의 제물이 바로 비둘기임; “그 여인이 어린 양을 바치기에 힘이 미치지 못하면 산비둘기 2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2마리를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죄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12:8).

(2)  아브라함에게서 엿볼 수 있는 5종류의 제물들;

1)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3년된 암소 3년된 암염소 3년된 숫양산비둘기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15:9).

2)    5종류나 제물의 종류를 나열하고 있는 이유는 그 모든 것들이 속죄의 제물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임. 그러므로 자신의 재력에 비추어서 그 가운데 선택을 하여 제물로 바치면 되는 것임.

3)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부자인 족장이므로 그 5가지의 제물을 모두 바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는 목수 요셉의 가정과 같이 가난한 자들도 있으므로 그 경우에는 비둘기가 그 제물이 되고 있음.

4)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자신들의 능력에 맞게 제물을 바칠 수 있는 길을 마련하고 계시는 것임. 그것이 피조물 모두를 자식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의 모습이라고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