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강의 골자(손진길 목사)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강(눅1:39-8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7. 8. 01:34

누가복음 강의 골자 제2(1:39-8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강의일; 주후 2017 7 13()

 

1.    마리아의 집과 엘리사벳의 집은 얼마나 가까운 것으로 보이는가?(1:39-40)

(1)  갈릴리 산골마을에 숨어서 살게 된 다윗왕조의 후손과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들;

1)    본래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은 벧엘을 포함하지 아니한 그 이남지역임.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헤브론 등이 그 중심도시임. 그리고 남쪽 벧엘에서부터 북쪽 단까지 이르는 지역은 그 옛날 북조 이스라엘 왕국의 고토가 되는 것임. 그 중심지는 세겜과 사마리아라고 하겠음.

2)    그런데 주전 586년에 남조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이 신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망하고 왕족과 귀족들이 모두 적국으로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됨. 그들이 주전 539년에 신바벨론 제국이 바사 왕국과 메대 왕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자 천하를 재통일한 페르시아 고레스 황제의 호의로 고향 땅으로 되돌아 오게 됨(1:1-4).

3)    2성전을 건축한 다윗왕가의 후손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가문의 후손 예수아는 그 옛날 다윗왕조의 유다 왕국을 재건하지를 못하고 말았음. 그 이유는 주전 4세기 후반부터 그들의 땅이 외세에 의하여 계속 지배를 당하고 또한 평범한 제사장 가문에서 나타난 하스모니안 왕가가 득세를 하였기 때문임.

4)    따라서 다윗왕가의 후손과 대제사장 아론의 후손들은 외세와 하스모니안 왕가의 탄압을 피하여 오랜 세월 은둔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임. 그 가운데 가장 멀리 북쪽 갈릴리 산골마을에 피신을 하고 있는 집안이 다윗의 직계인 목수 요셉의 집안과 아론의 직계로서 아비야 반열에 속한 집안임(1:5, 26-27, 39-40).

(2)  아비야 반열의 마을과 나사렛과의 관계;

1)    아론의 자손들이 유대교에서는 제사장이 될 수 있는데 그 수가 세월이 갈수록 자꾸만 많아지고 있음. 따라서 아론의 살아남은 두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의 후손들이 나중에 24반차(班次,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서열이나 차례를 말함)를 이루게 됨(대상24:3-5). 엘르아살의 후손이 16개의 반차를, 이다말의 후손이 8개의 반차를 차지하고 있는 것임(대상24:4).

2)    1년이 52주이므로 24개의 반차가 서로 돌아가면서 상반기에 한 주(, week)씩 예루살렘성전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맡고, 후반기에도 또 한 주씩 봉사를 하게 됨. 그러면 4주가 남게 되는데 그때에는 3절기에 해당이 되므로 전국에서 아론의 집안 사람들이 총동원이 되는 것임.

3)    본래 레위인들은 전국에 흩어져서 48개 성읍을 배정받아 살고 있음(21:41). 따라서 이웃한 2개의 성읍이 하나의 반차를 이루고 있음.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의 아버지인 제사장 사가랴가 소속이 되어 있는 아비야 반열의 경우에는 갈릴리의 산골마을인 야비아와 가드헤벨이 같은 반차가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아래에 첨부한 지도를 참조하시기 바람).

4)    나사렛과 가드헤벨은 가까운 인근마을임(아래에 첨부한 지도 참조 요망). 그 사이에 야비아가 위치하고 있으므로 나사렛에 살고 있는 처녀 마리아가(1:26-27)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 친족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아니한 것으로 보임(1:39-40). 지근거리에 살고 있는 아론의 후손들이며 특히 마리아는 연상인 엘리사벳과 굉장히 친한 것으로 보임. 따라서 무려 3개월이나 그 집에서 묵게 되는 것임(1:56).

 

2.    세례 요한과 마리아와 엘리사벳에게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이제는 그 사이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고 있다는 사실에서 무엇을 알 수가 있는가?(1:15, 35, 41)

(1)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재하시는 성령님;

1)    소위 in의 성령님곧 성도들의 속사람속에 그리고 심령속에 내주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엿볼 수가 있음.

2)    이는 그(세례 요한)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1:15); 세례 요한이 모태에 잉태가 될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된다는 예언임.

3)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령이 네(처녀 마리아)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1:35); 성령 하나님께서 처녀 마리아에게 임재하여 내주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리스도가 잉태가 된다는 설명임.

4)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1:41-42); 성령의 임재와 충만함을 받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예언을 하고 있음.

(2)  성도들 사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

1)    이른바 among의 성령님을 말하고 있음. 이는 성도들 사이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존재를 말함.

2)    마리아가 친족인 엘리사벳을 방문하자 엘리사벳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여 기쁨과 예언이 터져나오고 있음(1:39-42). 그 이유는 엘리사벳의 복중에 있는 세례 요한에게 이미 성령님이 임재하여 계시며 처녀 마리아에게도 그리스도를 잉태하기 위하여 성령님께서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임.

3)    그러므로 세례 요한, 마리아, 그리고 엘리사벳 사이에서 성령님께서 일시에 역사하시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놀라운 예배가 발생하고 있는 것임(1:43-45).

 

3.    마리아에게서 메시아가 태어난다는 사실을 엘리사벳이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1:42-45)

(1)  마리아가 벌써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음(1:42);

1)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처녀 마리아)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예수 그리스도)도 복이 있도다”(1:41b-42);

2)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에 처녀 마리아에게 성령님이 임재하여 벌써 메시아가 잉태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이를 찬양하고 있는 것임.

3)    사람의 오장육부를 투시하고 있는 X-ray’보다도 더 정확한 것이 사람들의 속사람과 심령까지 투시하고 있는 성령 하나님의 감찰이심을 여기서 알 수가 있다고 하겠음(4:12-13).

(2)  자신의 복중에서 자라고 있는 6개월이 된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있음(1:44);

1)    보라 네(마리아의) 문안하는 소리가 내(엘리사벳의) 귀에 들릴 때에 아이(세례 요한)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1:44);

2)    모태에서 6개월이 된 세례 요한이 벌써 그리스도가 처녀 마리아에게 잉태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서 크게 기뻐하여 뛰놀고 있음.

3)    그 이유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가 되고 있기 때문임;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인에게 복이 있도다”(1:45);

4)    위의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처녀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시점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받아 들이고 그녀의 믿음을 고백한 그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음;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1:38).

 

4.    마리아의 찬가의 내용은 무엇인가?(1:46-55)

(1)  첫째,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신 구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1:46-49);

1)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1:46-49);

2)    첫째, 마리아는 하나님을 자신의 구주라고 부르고 있음. 그 이유는 마리아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는 것임. 마리아는 아론의 후손이지만 아들이 아니라 딸이기 때문에 제사장이 될 수가 없는 신분임. 그리고 상속권도 없음. 그것이 종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비천한 것임.

3)    둘째, 그와 같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힘이 없는 마리아의 처지를 돌보시듯이 구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비천한 자를 돌아보신다는 것임. 그 증거가 구주 하나님이 권력자의 집안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 자신과 같은 비천한 자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잉태가 되고 있다는 것임.

4)    셋째, 약혼한 처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 율법사회에서 맞아 죽게 되어 있음(20:10). 그러므로 그 죽음을 두려워해야 하는 처녀 마리아가 이같이 구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강력하신 보호하심과 돌보심이라고 하겠음.

(2)  둘째,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체제 변혁의 동인이 되고 있음을 말함(1:50-52);

1)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1:50-52);

2)    첫째, 구주 하나님의 역사가 비천한 자를 돌아보시고 높이시는 긍휼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것이 이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음.

3)    둘째, 특히 기득권에 취하여 비천한 자들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있는 교만한 사회의 체제를 변혁시키는 것이 구주 하나님의 뜻이라고 천명하고 있음.

4)    셋째, 그와 같은 구주 하나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이라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도와 제자들에 의하여 대대로 계속이 된다고 하는 예언인 것임.

(3)  셋째, 생존의 위기에서 구해주시는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음(1:53);

1)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1:53);

2)    구주 하나님의 역사 곧 복음의 역사는 가장 먼저 생존의 위기에서 헤매고 있는 사회의 가장 비천한 자들에게 있게 된다는 것임. 그들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구해주고 대접해주는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임.

3)    훗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좋은 이웃 사마리아 인의 비유와 소자의 비유로 거듭 확인이 되고 있음(10:33-37, 25:40).

(4)  넷째, 선민 이스라엘을 도우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임을 찬양하고 있음(1:54-55);

1)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1:54-55);

2)    여기서 이스라엘은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을 말하고 있음. 그러나 아브라함과 그 자손은 선민을 포함하는 이방인들을 말하고 있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두가지임;

3)    첫째, 아브라함의 아들은 약속의 아들인 적장자 이삭 외에도 7명이 더 있음. 애굽 여인 하갈의 소생이며 서장자인 이스마엘이 있으며(16:16) 후처 그두라의 소생인 아들이 6명이나 더 있음(25:1-4). 이스마엘은 가나안을 떠나 시나이 반도의 바란광야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음. 그리고 그두라의 6아들은 가나안의 동쪽으로 분가하여 떠나가고 있음. 그들이 모두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님. 왜냐하면 욥기에서 볼 수 있듯이 셈족의 하나님신앙이 일부 살아 남아 있기 때문임.

4)    둘째, 그러므로 이삭의 쌍둥이 아들 가운데 에서를 배제하고 오로지 야곱의 자손들만이 하나님신앙을 파수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편협한 선민중심주의 사고방식이라고 하겠음. 그와 같은 편파성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만민구원의 복음적인 견해가 마리아의 구주 하나님 찬양을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며 더구나 그것이 구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의 영원한 방향성이라고 천명하고 있는 것이 더욱 놀라운 것임.

 

5.    마리아가 엘리사벳의 집에서 3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는 대목에서 짐작이 되는 내용 두가지는 무엇인가?(1:56)

(1)  첫째,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알 수가 있음;

1)    현대사회도 그러하지만 그 옛날 먹을 것이 부족한 고대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오래 친척을 그냥 먹여주고 재워줄 수가 있을까요?

2)    그 실마리가 야곱의 일대기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이 되고 있음;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29:14-15). 아무런 계약없이 함께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의 최대치가 한달임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임.

3)    그런데 처녀 마리아의 경우에는 친족 엘리사벳의 집에서 무려 3달을 신세를 지고 있음(1:56). 그것은 그 두사람이 얼마나 서로 아끼며 마치 모녀지간과 같이 가까운 사이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음.

(2)  둘째, 마리아의 거취문제가 3달만에 해결이 된 것으로 보임;

1)    처녀인 마리아가 친족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을 했을 때에 이미 잉태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음(1:41-42). 그것은 굉장히 기쁜 일이지만 동시에 위험한 것임. 처녀가 그것도 약혼한 여자가 약혼자와의 정상적인 합방이 없이 아기를 가지게 되면 간음한 여인으로 간주가 되어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임(20:10).

2)    그러므로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구주를 잉태하게 된 친족 마리아를 살리기 위하여 남편 사가랴와 함께 백방으로 노력을 한 것으로 보임. 마리아의 약혼자인 목수 요셉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그녀를 정식으로 아내로 맞이하라고 종용한 것으로 보임.

3)    다윗의 후손인 목수 요셉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말을 듣고서 그 해답을 하나님으로부터 듣기까지 3개월의 시간이 흘러간 것으로 보임(1:18-25). 따라서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을 나서자 은밀하게 친정집에서 옷가지를 챙긴 후에 곧바로 남편이 되는 목수 요셉의 집으로 들어간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음(1:56).

 

6.    세례 요한이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고 그 작명(作名, 이름을 지음)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1:57-64)

(1)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자 이웃과 친족들에게 알림(1:57-58);

1)    늙은 여인 엘리사벳은 불임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예언대로 아들을 임신하게 되자 그 일이 완전히 이루어질 때까지 숨어서 지내고 있음(1:24-25).

2)    그러나 막상 아들을 순산하게 되자 너무나 기뻐서 이웃과 친족들에게 득남의 소식을 전한 것으로 보임(1:57). 그 소식을 듣고서 친지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생각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음(1:58).

(2)  할례일에 작명을 하고자 함(1:59-62);

1)    율법에 따라 태어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함(17:12, 1:59a). 그 자리에서 친지들은 아기의 이름을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정하고자 의견을 모음(1:59b).

2)    그러나 엘리사벳이 반대를 하고 있음. ‘요한이라고 이름을 짓겠다는 것임(1:60). 사전에 남편 사가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발생한 일을 서판에 글자로 써서 아내인 엘리사벳에게 알려준 것으로 보임. 따라서 엘리사벳은 천사의 예언 곧 요한이라고 아기의 이름을 정하라고 한 것을 명심하고 있는 것임(1:13, 63).

3)    그러나 친지들은 아론의 제사장 가문에 요한이라고 작명을 한 경우가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가장(家長)인 제사장 사가랴의 의견을 듣자고 중론을 모으고 있음(1:61-62).

(3)  사가랴가 요한이라고 작명을 하자 발생한 일(1:63-64);

1)    제사장 사가랴는 서판에 아기의 이름자를 요한이라고 적고 있음(1:63). 그것은 천사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작명을 따르고 있는 것임(1:13).

2)    그러자 그 자리에서 벙어리 사가랴가 다시 혀가 풀리고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임(1:64a). 그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음(1:64b).

3)    제사장 사가랴는 천사가 전해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상식에 근거하여 의심했기 때문에 그 예언이 이루어지는 때까지 한시적으로 벙어리 신세가 된 것임(1:20). 그러나 이제 그 일이 이루어지고 또한 사가랴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작명하여 주신 요한으로 결정하게 되자 즉시 벙어리 신세를 면하고 있는 것임.  

 

7.    늙은 제사장 사가랴가 아들을 얻고 또한 벙어리 신세를 면하는 것을 보고서 유다 산골의 사람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1:64-66)

(1)  먼저 두려워하게 됨(1:65);

1)    예루살렘 성전에서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제사장 사가랴를 보고서 고향사람들이 놀라고 있음. 그 이유는 성전에서 놀라운 하나님의 환상을 본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임(1:22).

2)    당시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고 돌아온 아비야 반차의 동료들이 여럿이었기에 그 소문은 인근에 퍼진 것임(1:5).

3)    그런데 이제 늘그막에 사가랴가 아들을 얻고서 8일만에 할례식을 행하는 자리에서 벙어리 신세를 면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임(1:64). 그 모습을 지켜본 친지들이나 그 소문을 듣게 된 이웃들이 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됨(1:65).

(2)  아이의 장래를 지켜보고자 함(1:66);

1)    제사장 사가랴가 요한이라고 이름을 지은 그 아이가 장차 어떠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인지에 친지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음(1:66a).

2)    그 이유는 자라날수록 눈에 띄게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충만해지고 있기 때문임(1:66b). 그것은 그냥 제사장의 뒤를 잇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오래간만에 그 옛날 말로만 듣던 선지자의 탄생을 보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임.

3)    공식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의 구약의 역사에 있어서 마지막 선지자는 주전 400년경의 말라기임(1:1). 이제 주후 1세기에 접어들어 있으므로 무려 400여년 만에 하나님의 선지자로 세례 요한이 변방 갈릴리 산골마을에서 성장을 하고 있는 것임.

 

8.    제사장 사가랴가 성령이 충만하여 무엇을 예언하고 있는가?(1:67-79)

(1)  첫째,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1:67-71);

1)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거룩한 백성을 돌보시고 속량하신다는 것임(1:67-68).

2)    선지자의 예언과 같이 메시아가 오시면 외세를 물리치시고 다윗왕조를 다시 일으키시며 선민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것임(1:69-71).

3)    그와 같은 제사장 사가랴의 예언은 한 마디로,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소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임.

(2)  둘째,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음(1:72-75);

1)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신 맹세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원수의 손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임(1:72b-74).

2)    그와 같은 구원의 은혜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는 이유는 ①첫째, 하나님께서 출애굽 당시처럼 세상의 노예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이며(2:23-25, 1:72a) ②둘째, 백성들이 거룩하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을 가까이서 섬길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 때문인 것임(1:75).

(3)  셋째, 선지자 세례 요한이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것을 예언하고 있음(1:76-79);

1)    첫째, 요한이 자라서 구주 하나님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가 될 것이라는 예언임(1:76).

2)    둘째, 주의 백성에게 죄 사함의 구원의 시대가 메시아로 말미암아 오고 있음을 알릴 것임(1:77).

3)    셋째, 하나님의 긍휼이 이 세상에 널리 임하고 만민들이 죄와 사망의 어둠에서 벗어나 구원의 평강의 길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임(1:78-79).

 

9.    세례 요한이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가?(1:80)

(1)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1:80a);

1)    자신의 사명에 대한 영적인 확신과 마음의 결심이 확고하게 되고 있다는 것임(1:80a). 그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그 인도하심에 의한 것임(1:15-16).  

2)    그와 같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깨달음은 아버지 사가랴가 전해주고 있는 자신의 탄생에 대한 천사의 예언의 말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임(1:14-17).

3)    특히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4:5-6, 1:17) 세례 요한은 히브리정경을 많이 공부하고 자신이 메시아의 길을 어떻게 인도하는 선지자가 되어야만 하는지 오래 묵상한 것으로 보임.

(2)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1:80b);

1)    첫째, 나실인의 삶을 말하고 있음(1:15).

2)    둘째, 금욕주의자의 고행의 삶을 말하고 있음(3:4, 1:80b).

3)    그러한 빈들에서의 삶은 에세네 파의 전통을 따른 것으로 보임. 어쨌든 ascetic life’를 영위하기 위하여 사막이나 깊은 숲 또는 동굴이나 외딴 섬에서 홀로 명상을 하고 고행을 하는 것이 진리를 깨닫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임.

4)    그것은 불교나 도교 또는 힌두교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훗날 기독교에서도 white martyr고행과 수도승의 전통으로 나타나고 있음.

 

(야비아와 가드헤벨의 위치)

 

(나사렛과 인근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