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요한복음 강해 제154강(요19:23-2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5. 15. 14:06

요한복음 강해 제154(19:23-2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3818(주일새벽)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19:23-24)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거의 발가벗겨진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벗겨서 로마의 병사들이 서로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19:23). 유월절은 사월 중순경입니다. 아직 봄 날씨가 차갑습니다. 그런데 옷이 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린 것입니다.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지켜주지 아니하며 극도의 수치와 고통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것이 십자가의 형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재산마저 로마의 병정들이 나누고 있습니다.

참고로, 유대인 사회에서 겉옷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낮의 더위와 밤의 추위를 겉옷이 모두 막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속옷도 비쌉니다. 그러므로 로마병사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예수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마지막 소유물을 선민인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인 로마병사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은 마치 만민구원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파해주는 것과 같습니다(11:11-12). 그렇게 예수님은 자신을 인정해주지도 아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이방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곧 하나님에 관한 모든 지식과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까지 나누어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안위만을 도모하고 있으며 로마의 병정들은 그 옷을 나누어가지려고 바쁠 따름입니다(19:23-24). 여기서, “그들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19:24)라고 하는 대목은 다윗 왕의 시편구절입니다(22:18). 10년이상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닌 다윗입니다. 그는 언제 잡혀서 처형을 당할지 모르는 운명입니다. 만약 처형을 당하게 되면, 무엇보다도 옷이 발가벗겨질 것입니다. 그 옷을 원수들이 나누어가지고 자신은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두려움과 위험 속에서 날과 밤을 지새워온 다윗입니다. 그와 같은 다윗의 심정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심정입니다. 그러한 두려움을 예수님이 발가벗겨진 채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도 요한의 절묘한 묘사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19:25-27)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자들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정확한 표현입니다. 열두 사도 가운데에는 사도 요한이 유일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친지인 여자분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어머니, 이모, 숙모로 보이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하고 있는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가 그들입니다(19:25). 그러한 측면에서 남자제자들만을 열두 사도라고 부르는 것은 공평하지가 못합니다. 그들 여자분들이 오히려 더 사도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의 후일을 부탁하고 있습니다(19:26). 그 부탁을 요한은 기꺼이 수락합니다; 그 때부터 사도 요한이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9:27).

예수님은 친동생이 많습니다. 남자 형제만 하더라도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 등 네 명입니다(6:3). 그들 네 명은 모두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이전에는 형을 메시아로 믿지를 아니했습니다(7:5). 그래서 십자가 처형장에도 따라오지를 아니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봉양의 의무는 남동생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이 옳습니다; “내 어머니의 앞날을 부탁한다고 내 친동생들에게 전해다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그와 같은 부탁을 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어머니의 장래를 자신의 제자인 요한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바로 요한의 어머니라고 정의해주고 있습니다(19:26-27).

그와 같은 예수님의 인식은 이미 공관복음에서 선을 보이고 있습니다;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2-35). 더 깊은 내용을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대조해보면,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뜻과 새로운 영적 공동체의 탄생원리에 충실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가 됩니다. 그들의 공동체가 교회입니다. 성도들은 한 가족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한마음 한 뜻으로 끝까지 수행을 해나가는 것입니다(13:13-17, 34-35, 28: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