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88.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3. 04:45

88.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

 

(1)   사도 바울의 세계선교 루트를 따라가보면 그 출발지가 시리아의 안디옥이고 중간 거점도시가 에베소, 빌립보, 고린도이며 그 목적지는 로마이다. 여기에 사도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 섬까지 합하면 소위 안디옥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사도 바울이 일년이상씩 머물면서 직접 말씀을 상세하게 가르친 도시는 안디옥-에베소-고린도-로마이다(11:26, 13:1, 18:11, 19:8-10, 28:30-31). 여기에서 출발지인 안디옥을 제외시키면 세 도시가 남게된다. 그런데 그 나머지 세 도시에서 사도 바울과 깊은 인연을 맺고있는 하나의 부부 선교팀이 있다. 그들이 바로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이다(18:2, 18). 2차 선교여행 도중 고린도에서 사도 바울이 아굴라를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였다(18:2). 그런데 그 곳에서 일년 육개월간 함께 지내면서 선교하는 사이에 브리스길라(또는 브리스가, 16:3, 고전16:19, 딤후4:19)가 남편보다 신앙이 더 좋다는 사실이 인정되어서 선교팀내 서열이 아내가 앞서게 되었다(18:18). 그래서 일반적으로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로 더 자주 불리고 있다. 그 같은 서열적 의미의 이름 배열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 자가 의사 누가이다. 이것은 누가의 예리한 관찰력과 통찰력덕택이라고 하겠다(13:2, 4, 9, 43, 14:14).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는 사도 바울에게 세 가지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첫째는,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자생적인 기독교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18:2, 1:8). 이로써 바울은 자신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선교하고 계셨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1:7). 그 둘째는, 성경말씀의 많은 부분이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다. 그들의 영향으로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 부부사랑과 기독교적 윤리에 대하여 많이 언급하게 되었다(5:22-28). 그 셋째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이 세계선교의 주역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유대인 교포들이 살고 있는 곳이 복음전파의 거점이었다(18:4, 고전16:19). 그리고 그들의 직업이 훌륭한 선교방법이었다(18:3).

(2)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는 헬라파 유대인들이다. 남편인 아굴라가 소아시아 본도태생이며 아내 브리스길라는 로마태생이다. 그들은 로마에서 천막제조업으로 잘 살고 있었다(18:2). 당시 로마가 세계에서 가장 번창한 수도였으므로 천막의 수요가 가장 컸던 것이다. 꽤 돈을 벌었던 그들은 유대인 로마회당에서도 유력한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AD30 6월경 예루살렘에서 유월절과 오순절을 지내고 로마로 돌아온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2:5) 그들은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오순절날 예루살렘에서 선지자 나사렛 예수의 제자들이 모두 성령을 받았다는 것이다. 왕이나 제사장 혹은 선지자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성령을 평범한 그들이, 그것도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일시에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외치고 다닌다는 것이다; 십자가 처형된 예수가 삼 일만에 부활했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인 그 분을 유대교인들이 못박아 죽였으므로 그 죄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회개하고 그 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 분의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가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고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2:14-40요약). 그 결과 삼천 명이나 그 날 그 자리에서 예수를 구주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날부터 로마 회당에서는 보수 유대교인들과 기독교로 개종하는 개혁파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생겨났다. 내부 결속력이 강한 유대인 디아스포라 사회에서 분열이 나타난 것이다.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는 기독교편에 섰다. 왜냐 하면, 사도들로부터 전해들었다는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하여 히브리 성경을 다시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사야 예언서 등이 메시아 이야기를 이미 상세하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를 시끄럽게했던 유대인 회당내 소동과 싸움은 끝내 유대인 모두를 로마시내에서 추방하는 황제의 명령으로 끝장이 나고 말았다. 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AD41-54)가 취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그들 부부는 그리스의 큰 항구 도시 고린도에 와서 자리잡고서 다시 텐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3)   그들 부부가 고린도에 온 사도 바울을 처음 만난 곳은 그들의 사업장에서 였다. 바울 역시 천막만드는 기술자였으므로 그들의 사업장에 일하러 찾아온 것이었다(18:2-3). 그런데 바울의 목적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천막도 제조하면서 틈틈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동료들과 손님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이를 눈여겨본 그들 부부가 바울과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울은 뛸듯이 기뻐했다. 로마교회의 소식을 듣게된 것이다. 나이 많은 글라우디오 황제가 물러나게 되면 추방령이 풀리고 로마로 다시 유대인들이 들어가 살 수 있을 것같았다. 그 때가 되면 자신도 새로 결성되는 로마교회를 방문하고 싶었다(19:21).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도 사도 바울을 만난 것이 기뻤다. 그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연구결과를 직접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울이 고린도에 일년 육개월간 머무는 동안에 그들은 밤낮 붙어지냈다(18:11). 그들 부부의 신앙은 쑥쑥 자랐다. AD51년경 세네카의 형제인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이 되자 그 이듬해(18:12) 바울이 고린도를 떠났다. 바울이 소아시아로 돌아갈 때 그들 부부도 동행했다. 이제부터는 사도 바울의 선교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예정이었다. 그들은 바울의 가장 든든한 동역자이자 친구이며 사업적 파트너가 된 것이었다(18:18-19, 16:3-4).

(4)   바울은 제자 디모데와 아굴라 부부에게 에베소교회를 맡기고서 예루살렘교회 출신인 실라와 함께 가이사랴로 떠났다(18:19-23). 그 때 아굴라 부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기독교인 아볼로를 만났다(18:24-26). 아볼로는 세례 요한의 가르침만을 가지고서도 히브리 성경을 새롭게 해석하고 있었다. 요한이 증거한 메시아 예수가 이미 이사야 등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 있는 메시아이며 그가 건설하는 나라가 이 땅에 오고 있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에베소 회당에 모인 유대인들이 아볼로의 깊이있는 예언서 지식과 해박한 헬라 철학적 사고전개에 탄복하고 있었다(18:24-25). 그런데 아굴라 부부는 아볼로에게 있어서 무엇이 부족한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바울에게서 그들이 배운 바 부활의 신앙과 성령의 역사가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 부부는 그들이 배운 바를 아볼로에게 전해 주었다(18:26). 그리고 아볼로가 그리스로 떠날 때 그를 고린도교회에 소개해 주었다(18:27-28). 3차 선교여행에 나선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다시 들렀다(19:1). 그 곳에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다시 2 3개월간 바울과 함께 지냈다(19:8-10). 대단한 행운이었다. 거의 4년 가까운 세월을 사도 바울과 더불어 말씀 공부를 한 셈이었다. 바울에게 있어서도 아굴라 부부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들을 만남으로 바울이 로마의 사정을 알게 되었고 훗 날 로마교회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19:21, 1:13).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교여행에 부부팀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 갈등하고 동시에 화해하는 방법을 배울 때 그리고 자녀를 낳아 내리사랑을 할 때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은혜였던 것이다. 바울은 아굴라 부부의 사랑의 관계에서 관찰한 바를 말씀으로 깨달아 그의 서신서에 남겼다(5:22-28). 그리고 바울은 이들 부부를 통하여 남편보다 아내가 더 신앙심이 깊고 선교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여집사 뵈뵈 등 여러 여자 성도들을 훈련시켜서 세계 선교에 주인공으로 만들어 나갔다(16:1, 6, 13, 15). 이와 같이 바울의 선교 방법에 큰 영향을 미친 부부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