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실라
(1) AD 30년경 예루살렘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을 때 그 리더는 열두 사도와 예수의 친동생인 야고보를 위시한 여러 장로들이었다. 그런데 20년의 세월이 흐르자 새로운 리더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실라였다(행15:22).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던 헬라파 유대인이었다(행16:29, 37). 그래서 예루살렘교회가 AD 50년경 총회의 의결사항을 안디옥, 수리아, 길리기아 등 이방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게 전달하고자 했을 때 그 대표팀의 일원으로 선발되었다(행15:23-27). 실라는 또다른 대표 바사바 유다와 함께 먼저 안디옥으로 갔다. 마침 예루살렘총회에 참석했다가 안디옥교회로 되돌아가는 사도 바울 및 바나바와 동행한 것이었다. 그 곳에서 공식일정을 끝내고서(행15:30-31) 그들은 안디옥교인들에게 성경말씀도 풀이해주고 여러가지 배려깊은 권면과 격려도 해주었다(행15:32). 그들의 선지자다운 말씀의 깊이와 리더다운 태도가 사도 바울의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두 사람의 의사를 타진했다. 곧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날 계획인데 그 동참여부를 물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일단 예루살렘교회로 돌아가서 그 곳 사정을 알아본 후 답변하겠다고 했다(행15:33). 그 때 예루살렘교회에서는 바사바 유다를 예루살렘교회에 머물게 하고 실라만 안디옥으로 다시 보냈다. 실라가 바울의 선교팀과 함께 수리아, 길리기아로 가서 공식적으로 통보활동을 마무리하도록 조치한 것이었다. 바울의 제2차 선교여행의 계획은 당초 제1차 선교지였던 구브로 섬, 소아시아, 길리기아 등지를 차례로 재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리아에 들르는 것이었다(행15:36). 그런데 요한이라고 하는 마가의 합류 문제를 두고서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의견이 갈라졌다. 그 결과 바나바는 달랑 그의 생질 마가를 데리고 그들의 고향인 구브로 섬으로 먼저 떠나버렸다(행15:39). 이에 따라 사도 바울은 기타 팀원들과 함께 육로로 수리아, 길리기아, 그리고 소아시아로 향하게 되었다. 그 때 실라는 의사 누가와 함께 바울팀에 합류하게 되었다(행15:40-41). 사도행전의 저자인 의사 누가는 자신의 이름을 자신의 글에서 끝까지 드러내지 아니했다. 그렇지만 누가가 그 팀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라는 거듭되는 용어속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행16:10).
(2) 실라는 바울 덕택에 그의 공식적인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수리아, 길리기아의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루살렘총회의 의결사항을 설명해주자 그들 이방교회들은 하나같이 환영했다(행16:4). 이방인들에게 유대교식 의무사항을 강제하지 아니하는 총회의 개방정책은 이방 교회성장에 큰 보탬이 되었다(행16:5). 실라는 자신의 공식일정이 모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예루살렘 본교회로 돌아가지 아니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살았던 로마제국의 헬라식 문화가 정겹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마케도니아인의 환상을 보고서 빌립보로 향하는 사도 바울의 수정된 제2차 선교여행에 그대로 끝까지 동참했다(행16:9-12). 실라는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단 둘이서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행16:24-25)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교인들에게 쫓기기도 했다(행17:5-9). 그렇지만 선교에 열매가 있었으며 보람이 컸다. 아직 나이가 젊어 디모데와 함께(행16:1-3, 17:14) 사도 바울의 수발을 드는 입장이지만 선교에 대해서 배우는 바가 적지 아니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유대교인들의 체포위험을 피하여 아덴으로 떠나간 후 실라는 디모데와 함께 뵈뢰아에 남아서 교인들을 대신 돌보기도 했다(행17:13-15). 실라는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에 내려가서 사도 바울을 도왔다. 그 곳에서 1년6개월간 고린도교회를 섬기면서 사도 바울에게서 말씀을 배웠다(행18:5-11, 고후1:19). 이듬해 AD 52년경 로마의 제4대 황제인 글라우디오(AD41-54)의 통치말기에 그리스 아가야에 새 총독 갈리오가 부임하자(갈리오는 철학자 세네카의 형제인데 AD51년7월에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했음) 유대교인들이 다시 바울일행을 고소했다(행18:12-17). 이에 바울일행은 에베소로 물러났다(행18:19-21). 에베소에서 제2차 선교팀은 해단식을 가졌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으로 돌아갔으며(행18:22) 실라는 공식업무 수행결과를 보고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갔다. 기타 팀원들과 고린도에서 새로 합세한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 그냥 남은 것으로 보인다(행18:26, 19:1).
(3) 실라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AD51년경 고린도에서부터 어느듯 그의 로마식 이름 “실루아노”로 불리고 있었다(살전1:1, 바울 최초의 서신서). AD56년경 바울이 제3차 선교여행 도중 마케도냐에서 고린도후서를 기록할 때에도 벌써 2년전에 헤어진 실라의 이름을 여전히 “실루아노”로 부르고 있다(고후1:29). 실라보다는 이제는 “실루아노”가 되어버린 예루살렘교회의 헬라파 유대인이며 선교 일꾼인 그를 베드로가 그의 선교여행에 동참시켰다. 실라는 사도 베드로를 도와서 마가와 함께 터어키 여러 지역에 선교했다(벧전1:1). 그리고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까지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가 베드로의 편지를 대필했는데 그 편지가 로마에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벧전5:12, “바벨론”으로 불린 당시의 로마). 당시 로마 옥중에 있었던 사도 바울은 베드로를 따라다녔던 마가를 그의 곁으로 불러들였다(딤후4:11). 그렇지만 실라에 대한 언급이 더이상 없는 것으로 보아 그후 실라는 예루살렘 본교회로 다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바사바 요셉이나(행1:23) 바사바 유다(행15:22) 등 본토 유대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헬라파 유대인 지도자들의 수를 실라가 귀환하여 예루살렘에서 보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라는 AD70년 예루살렘교회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 곳에서 끝까지 세계선교를 뒷받침하는 초대교회의 개방정책을 수호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과 사도 베드로를 도와서 그들의 선교여행을 뒤에서 적극 보좌했던 젊은 선교일꾼이 실라였다. 그가 있었기에 그들 원로들은 안심하고 선교현장에서 일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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