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만난 신구약의 인물들(손진길 작성)

89. 루디아(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4. 13. 22:22

89. 루디아

 

(1)   루디아가 사도 바울을 처음 만난 곳은 빌립보의 강가였다. 그 날은 안식일이라 그녀가 같은 유대인 디아스포라 여인들과 함께 강가에서 기도하고 있던 중에 그들을 찾아온 바울을 만난 것이었다(16:13-14). 바울은 선지자들이 예언하고 있었던 메시아가 이미 이 땅에 왔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루디아는 장사꾼이라 로마 제국내 여러 지방의 소식에 밝았다. 그녀는 벌써부터 소아시아 에베소까지 진출해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선교내용에 대하여 듣고 있었다. 루디아는 마침 마케도니아 지방에 사도 바울이 찾아 왔으므로 평소 그녀가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들을 많이 질문했다. 바울은 그녀보다 히브리 성경에 훨씬 정통해 있었다. 메시아와 부활 그리고 영생의 문제, 나아가서 구원의 새로운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바울의 대답은 확신에 차있었고 막힘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는 중에 루디아의 마음속에 구원의 확신이 찾아오고 있었다(16:14b). 그녀는 큰 장삿꾼답게 결단이 빠랐다. 그녀는 바울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식구들과 함께 바로 그 곳 강가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바울을 자기집으로 안내하여 유숙시키고 몇주간 동안 복음의 말씀을 더 들었다(16:15). 어느 안식일날 바울과 실라가 강가로 기도하러 나갔다가 문제를 일으켰다.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그 주인의 승락도 받지 아니한 채 그만 그 귀신을 쫓아내어버린 사건이었다(16:16-18). 여종의 점술로 돈을 벌고 있었던 그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관가에 고발했다. 로마 사람의 풍속을 어지럽히는 종교를 퍼뜨리고 있다는 고발내용이었다(16:19-21). 그들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루디아는 집에서 심히 염려했다.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그날 밤에 빌립보 지방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16:25-26). 이에 놀란 간수는 바울과 실라를 석방해주고 자신과 집안이 모두 세례를 받게 되었다(16:30-33). 바울과 실라가 무사히 루디아의 집에 돌아왔다. 그동안 믿게된 여러 형제들이 있어 서로 반가와했다(16:40). 바울일행의 석방조건은 조용히 더이상 문제를 일으키지말고 빌립보 지역을 떠나는 것이었다(16:39). 그렇게 루디아는 사도 바울과 헤어졌다.

(2)   루디아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마케도니아 빌립보가 아니었다. 그녀의 고향은 소아시아의 작은 도시 두아디라였다(16:14, 2:18). 두아디라는 비록 작은 도시였지만 염색업이 발달한 생산 도시였다. 특히 자주색 염료를 자체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두아디라 사람들은 자주색 옷감을 이웃 나라에 팔아서 큰 이익을 얻고 있었다. 그러자 외국의 돈과 함께 좋지 아니한 것들도 두아디라에 들어왔다. 장사운을 트게 해주고 사업을 날로 번창하게 해준다는 우상문화와 점장이들까지 들어와서 성업중이었다(2:19-20). 루디아의 집은 유대인 디아스포라였다. 그래서 회당에 다니며 경건한 생활을 유지했으며 그와 같은 우상적 기복 신앙에는 눈을 돌리지 아니했다. 루디아는 부모로 부터 두 가지를 물려받았다. 첫째는, 뛰어난 장사수완이었다. 둘째는, 건전한 여호와 신앙이었다. 자주색 옷감장사는 여자들이 나서서 물건을 팔기에 더 적합했다. 왜냐 하면, 로마인 상류 계층은 중동지역 왕실의 고유 색깔인 자주색을 선호했으며 그 옷감을 구입하는 돈줄은 안방마님들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디아는 여자답지 아니하게 진취적이며 당찬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자주색 옷감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고자 했다. 왜냐 하면, 자기 고향에서 생산하는 자주색 옷감이 로마의 것보다 훨씬 싸고 가격 경쟁력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로마에서는 그 귀한 바다 달팽이로 부터 보라색 염료를 채취하고 있어 단가가 비쌌다. 그렇지만 두아디라에서는 흔한 꼭두서니 뿌리로 부터 그 염료를 얻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에 제조 단가가 훨씬 싸게 먹혔던 것이다. 그리고 부자 로마인들은 외국의 왕실에서나 입었던 자주색 옷을 입고서 자신들의 신분을 옷감으로나마 상승시켜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로마의 것보다 질은 약간 떨어지지만 값이 훨씬 저렴했던 두아디라 자주색 옷감을 선호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 잡힌 진출대상 지역이 바로 에게 해를 서로 마주보고 있는 마케도니아, 그것도 유럽의 첫 관문이며 로마식 행정도시였던 빌립보였다. 인구 일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였지만 그 곳에는 로마의 퇴역군인들과 행정관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과감하게 그 곳으로 진출했다. 장사가 생각보다 잘 되었다. 그래서 아예 그 곳에 큰 집을 마련하고 식솔들도 거느렸다.

(3)   루디아의 진취적인 성향은 그녀의 사업 확장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그 지역의 유대교가 매우 답답했다. 도무지 자기 민족만 최고로 생각하는 선민의식에 가득차있는 시오니즘이 세계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로마제국의 시대정신과 어울리고 있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고향인 두아디라나 그녀의 해외상사가 진출해있는 빌립보 지역 모두가 다민족사회였다. 그런데 유다왕국이 망한지 60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그녀의 동족들은 옛날 다윗왕국과 유대교가 최고라는 신념 하나로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그와같은 동족들의 행동이 한편으로는 대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가하여 심히 안타까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우월주의나 폐쇄적인 선민주의를 뛰어넘어 다민족사회에서 함께 공존공영하며 다함께 구원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경쟁력있는 새시대의 유대교는 불가능한 것일까? 전지전능하신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그와 같은 새로운 시대의 종교를 유대교로부터 파생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루디아는 진작부터 히브리 성경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있는 일부 젊은 헬라파 유대인 랍비들의 소문을 언뜻 듣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사업에 바빴으므로 그 자세한 내용을 직접 들은 적이 없었다. 큰 장사꾼답게 세계주의적인 개방적 사고방식을 평소 지니고 있었던 그녀에게 사도 바울일행이 찾아왔다.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루디아가 그녀의 식솔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었던 빌립보 강가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섭리였다. 사도 바울에게 유럽 최초의 회심자 겸 동역자 그리고 후원자를 하나님은 그렇게 만나도록 섭리해주신 것이다(16:14-15). 기도처를 찾아간 바울에게 이미 그곳에서 먼저 기도하고 있었던 루디아가 응답한 것은 말그대로 여호와 이레였다(22:12-14). 요컨대, 하나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이미 움직여 놓으시고 사도 바울을 보내어 그 수확을 얻도록 조치하신 것이다(9:37-38). 하나님이 AD51년경 제2차 선교여행에 나서서 소아시아에만 머물고 있었던 사도 바울을 바다건너 유럽 땅으로 보내신 뜻이 그 첫 관문인 빌립보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라고 하겠다(16:7-10).

(4)   루디아는 자신의 빌립보 큰 집을 개방하여 교회로 사용하도록 했다. 사도 바울과 실라 그리고 의사 누가 등은 그 집에 머물면서 빌립보 지역 전도에 나섰다. 빌립보 성은 20만평(167에이커) 정도의 작은 도시였다. BC 31년경 4년후 초대 로마 황제가 되는 옥타비아누스가 소아시아 드로아 항과 마주보고 있는 마케도니아의 네압볼리 항구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전쟁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네압볼리 항구를 지키고자 서북 산간지역 오십리 쯤에 위치하고 있는 빌립보 성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아예 로마의 퇴역군인들을 그 곳에 살게 했다. 또한 지역행정 중심도시로 삼고서 로마의 행정관료도 파견했다. 그리고 그 도시 시민들에게는 면세 혜택까지 부여했다. 빌립보는 그럴 만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남쪽과 동쪽이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큰 강 강기테스가 흐르고 있었으며 유일한 도로 에그나티아가 그 곳을 지나고 있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면서 도로와 강을 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곳만 틀어 막으면 중동의 세력은 유럽 땅으로 쉽게 건너올 수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황제가 되는 옥타비아누스보다 더 잘 알고 계셨다. 빌립보 성내에서 교회를 개척하면 유럽에서 추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전략이셨다. 그 첫 단추가 루디아의 집에서 끼워졌으므로 그 곳에서는 신위적(神爲的)인 기적이 뒤따랐다. 그동안 남자 유대인 열명이 없어서 회당(synagogue)조차 짓지 못하고 있었던 빌립보에서 남자 성도가 생겨났다(16:40). 점치는 여종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고 빌립보 옥문이 열리는 크기의 강한 지진까지 바울과 실라의 찬양과 기도 도중에 발생했다(16:18, 26). 그 지진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바울과 실라를 비롯하여 모든 갇힌 자들의 매인 것이, 그 단단한 착고가 전부 풀려버렸다(16:24-26). 감옥에서 풀려나온 바울과 실라를 다시 만나게된 루디아는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그 분의 유럽선교의 뜻을 똑똑히 인식하게 되었다. 바울일행을 데살로니가로 떠나보내면서 루디아는 결심했다. 그들을 후원하자. 나에게 장사의 수완을 주시고 큰 돈을 벌게해주신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후원하라는 것인 줄 짐작하게 되었다(4:15-16).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민에게 전하자. 그것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구원의 방법임을 온 세상에 증명해보자. 누가 창조주의 뜻과 능력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와같은 신념과 종교적 확신속에 루디아는 평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