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OBS교재(손진길 작성)

창세기 제34과(손진길 작성)

손진길 2020. 9. 12. 04:51

창세기 제 34 (26:19-33) <OBS1-34>(손진길 작성)

 

[Q1] 블레셋의 땅 그랄에서 가나안 입구 브엘세바까지 이르는 동안 발생한 일은 무엇인가?

- 아브라함은 이삭출생 일년 전인 그의 나이 99세에 헤브론을 떠나 블레셋 땅으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음(18:14, 20:1). 그는 그랄과 브엘세바에 30년 이상 머물렀던 것으로 보임(20:1, 18:14). 아브라함은 그 당시 그랄에서 브엘세바에 이르는 동안 곳곳에 우물을 파서 목축을 하였음(20:15, 21:25). 그러나 그랄 지방의 우물은 모두 불레셋 족속에게 빼앗기고 브엘세바의 우물만 소유권을 인정받았음(21:25-32)

- 이삭은 부친 아브라함이 175세로 죽자 헤브론에 장사 지낸 후 여전히 가나안 남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서 살고 있었음(25:11). 그러나 그 땅에 다시 흉년이 들었으므로 비옥한 애굽 땅으로 가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역시 비옥한 그랄 땅으로 옮겨간 것임(26:1-6).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때와 비교하면 75년이 지난 후임. 세월은 지났지만 그러나 동일한 사건이 발생했음. 그것은 이삭이 그랄 지방에서 과거의 아브라함의 우물을 다시 파서 사용했으나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로 말미암아 우물이 메워지는 봉변을 당한 것임(26:15).

- 힘있는 자들만이 사는 그 위험한 블레셋의 땅에서 우물을 빼앗긴 아비, 우물 메움을 당한 아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천하만민에게 복 주심이 있었기 때문임.  그래도 또 우물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과거 아브라함에 이어서 또 다시 약속의 아들 이삭을 통하여 그 땅에 흘러 넘치고 있는 것임(12:2-3, 21:25, 26:4-5, 19-22, 21:6, 4:10).

 

[Q2] 우물 파는 사나이 이삭은 왜 그랄 평야와 골짜기를 지나 브엘세바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그 여정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 그랄 평야와 그랄 골짜기 그리고 브엘세바 길목에 이르기까지 계속 우물을 파게 된 이삭인데 지역적으로 보아 우물을 파게 된 사연은 각각 다음과 같음;

* 그랄 평야의 우물 ...... 아비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이삭이 사용하였으나 그랄 땅에서 복합영농(농사일과 축산업)의 성공으로 거부가 되자 이삭을 시기한 원주민 때문에 수 차례 우물이 흙으로 매몰되고(26:15) 결국은, 그랄 왕의 명령으로 이주민 이삭이 비옥한 그랄 평야에서 쫓겨나게 됨(26:16).

* 그랄 골짜기의 우물 ......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불레셋 사람들이 메워 놓은 것을 이삭이 다시 파서 사용하다가(26:18,19) 원주민들의 소유권 주장으로(26:20,21) 다시 빼앗기게 됨(두 차례 억울하게 빼앗긴 우물 이름을 “에섹”과 “신나”로 호칭한 이삭의 뜻은 원주민의 과욕과 차별에 무력으로 맞서는 대신 하나님의 판단과 처분에 맡겨 드리는 “다툼의 우물”이라는 뜻임. 그 뜨거운 감자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하여 하나님께 호소하고 맡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새 길, 새 대안이 나타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음).

* 하나님의 대안인 브엘세바 길목의 우물 ...... 아브라함의 우물과 관련이 없는 지역에 새로 우물을 팠으므로 원주민과의 다툼이 사라짐(26:22, “르호봇”으로 호칭함).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아비 아브라함의 그늘 속에 이삭이 안주할 수 없도록 이삭의 거주지를 계속 옮겨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임.

- 이웃과 다툼 없이, 부모의 혜택 없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창조적인 인생, 플러스섬(Plus Sum)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이삭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모습(26:39, 52-54)과 흡사함. 그것은 복의 근원이 되고 그 큰 복을 모든 족속과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것임. 당장 여기서는 믿음의 조상들에게 영주권을 인정해준 블레셋 족속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플러스섬(Plus Sum)인 “우물 얻는 복”을 나누어 가지게 된 것임(12:3).

 

 [Q3] 우물 얻는 복 이외에 블레셋 족속이 얻은 복은 무엇인가?

- 아브라함을 지켜주시는 여호와의 존재를 눈치챔(21:22). 평화공존과 상호불가침의 맹세를 브엘세바에서 행함(21:23,24). 여호와께서 아들 이삭과 함께 계심을 분명히 보았음을 진술한 그랄 왕과 군대장관임(26:28).

- 그러나 역시 상호불가침조약만 맺음(26:29). 요컨대, 여호와의 존재와 역사하심까지 분명히 느끼고 보게 되는 복을 얻은 블레셋의 지도자들이지만 자신의 신으로는 받아들이지는 아니함.

- 아비멜렉과 비골은 단지 여호와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고(26:29) 상관없이 편안히 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 브엘세바(26:23-25,32,33, 21:33)를 떠나 그랄 땅으로 돌아감(26:31, 21:32, 15:16).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삭은 브엘세바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살다가 여호와가 준 땅, 안식처 헤브론까지 올라가서(35:27-29, 23:1,2, 25:7-10) 생을 마감함. 결국, 인생은 브엘세바에서 출발하여 그랄로 가느냐 아니면 헤브론까지 나아가느냐의 두 가지 중 하나의 선택으로 볼 수 있음. 성경은 후자의 인생살이를 의미 있는 인생으로 보고 있음(21:6-8).

 

 [Q4] 브엘세바에서 이삭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26;24)과 그랄에서 일러준 말씀(26:4)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 천하만민, 블레셋 족속이 얻을 복까지 언급된 그랄 땅에서의 하나님의 축복임(26:4). 그러나 이삭 자손의 번성축복만이 언급되고 있는 브엘세바에서의 하나님 말씀임(26:24).

- 그 의미를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의 믿음(26:5)을 따르면 이방인도 아브라함의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그랄 말씀이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지 아니하고 세상적으로만 살겠다고 하면 그 복을 함께 받아서 누리지 못한다는 것임. 따라서 여호와와 상관없이 살려고 브엘세바를 떠나는 아비멜렉 일행에 대한 축복이 생략되고 있음.

 

[Q5] “내종 아브라함을 위하여”(26:24)의 의미는 무엇인가?

-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 그 인생의 가치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심(26:5). 즉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언약과 아브라함의 인생인 것임.

- 그 언약 그대로 신실하게 아브라함의 하나님으로 자자손손 역사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임(26:24, 28:13, 8:11, 12: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