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패권(작성자; 손진길 박사)
9. 성경에 나타나는 유럽과 중동의 패권국 로마제국
주전 63년경이 되면 폼페이우스 장군의 예루살렘 점령에 따라 로마세력이 유대 땅을 지배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시리아 총독이 다스리다가 주전 55년에는 이두매 출신인 안티파터2세가 유다 총독이 된다. 그리고 주전 37년에는 로마제국이 안티파터의 아들인 헤롯을 유다의 왕으로 봉하여 간접통치를 계속하게 된다.
참고로, 이두매인들은 주전 125년에 하스모니안 왕조에 의하여 에돔인들이 정벌을 당할 때에 일부가 유대교로 개종함으로써 유다의 남쪽 국경지대에서 살아남아 있는 세력을 말하고 있다. 주전 125년 하스모니안 왕가는 이두매 출신 안티파터1세를 총독으로 삼아 이두매인을 다스리게 조치하고 있다.
안티파터1세가 주전 70년에 사망하자 그의 아들인 안티파터2세가 총독의 자리를 계승한다. 그는 하스모니안 왕가의 힐카누스2세를 지지하면서 동진하는 로마의 세력에 적극 협조하여 그 공로로 주전 55년에 유다의 총독이 된다. 그가 아들 헤롯을 로마에 보내어 주전 37년에 유다의 왕으로 책봉을 받게 한 것이다;
그때부터 헤롯왕가의 유다 지배가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헤롯대왕이 죽고 나자 주전 4년부터 예루살렘과 유다, 사마리아와 이두매 지역을 그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가 분봉왕이 되어 다스리게 되는데 그가 폭정을 일삼고 있다;
따라서 유다의 종교지도자들이 은밀하게 로마황제에게 아켈라오의 폐위를 적극 청원하고 있다. 마침내 로마황제의 명령으로 헤롯 아켈라오가 주후 6년에 폐위되고 만다.
당시 감독기관인 시리아총독은 아켈라오를 체포하여 로마로 압송하면서 레위인 안나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한다. 그 이유는 신임 유다총독이 예루살렘에 부임하여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리던 땅을 통치할 때까지 유다 사회를 대신 다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대제사장 안나스가 한때 정치적으로 큰 권한을 행사한 경험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안나스는 훗날 현직에서 물러나지만 여전히 산헤드린 대공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그의 사위인 가야바가 대제사장이 되어 있는 시절에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요18:12-14).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곧 유다총독을 파견하여 헤롯 아킬라오가 다스리고 있던 그 땅에 주후 6년부터 41년까지 군정을 실시한다. 그러한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로마제국은 유대인들이 유대교를 믿는 것을 허용했으며 산헤드린 대공회가 유대교의 최고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유대인에게 종교적인 자치권을 허용하고 있다. 주후 70년에 로마군대가 진입하여 유대 땅의 반란을 진압할 때까지 유대인들은 비록 로마의 속국이지만 그러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로마제국에서는 속국의 백성들에게 종교적인 자치권을 허용하는 한편 가능하면 로마의 총독을 보내어 직접 군정을 실시하는 것보다는 그 지역에 영향력이 있는 왕가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간접통치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은 로마제국의 포용성과 개방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로마제국의 특징을 좀더 알아보기 위하여 이제부터 헬라제국 및 페르시아제국과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로, 로마제국은 역사적으로 이태리반도에 있던 작은 도시국가 로마에서 시작이 되고 있다. 당시의 이태리반도는 유럽의 그리스반도 남부와 도서지방에서 발생한 에게 문명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리스반도 북부의 마케도니아와 마찬가지로 문명권 바깥에 자리잡고 있는 변방지역이다;
그러므로 고대 로마 역시 크게 영향력이 없는 변방의 도시국가에 불과하다.
그런데 나중에 마케도니아왕국은 필립2세가 무기를 개량하고 전투기술을 발전시켜 스파르타왕국을 제외한 그리스전역을 삽시간에 정복하고 있다. 그와 달리 고대 로마는 포용과 개방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전쟁을 통하여 서서히 이태리반도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로마는 왕국이 아니라 로마시민의 대표인 원로원이 3명의 집정관을 선출하는 공화정이다;
그러므로 로마시민권이라고 하는 것이 원로원을 구성하고 통치자인 집정관을 간접 선출할 수 있는 대단한 특권이다. 그것은 그리스의 아테네 시민권과 비슷하다.
하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도시국가 아테네는 시민권을 아테네에 살고 있는 시민에게만 인정하고 있어 그 수가 일정하다. 그와 달리 로마에서는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을 로마시민으로 흡수하는 한편 그들을 활용하여 속국의 수를 자꾸만 증가시키고 있다;
더구나 로마군대에서 전공을 크게 세운 자 또는 로마의 세력확장에 공이 있는 자에게도 로마시민권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로마제국에 있어서 엄청난 특권을 누리는 계층이 된다고 하는 의미이므로 시민권을 얻기 위하여 로마에 충성하는 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한 개방과 포용정책을 통하여 로마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둘째로, 3명의 집정관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통하여 정치권력을 제한적으로 보유하고 있던 시대가 장군 출신 시저의 회군으로 말미암아 끝나고 만다. 그러나 로마의 원로들은 시저를 관례에 따라 무장해제하여 원로원으로 불러들인 다음 대담하게 살해한다;
그때부터 로마시민들은 원로원을 불신하고 시저의 후계자 가운데 최고지도자를 삼고자 한다.
주전 44년 시저가 죽고 나자 심복인 안토니우스, 양자인 옥타비아누스가 참여하는 새로운 3인 집정관이 정치적인 권력을 나누고 있지만 사실은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가운데 누가 승자가 되는가 하는 것이 관심사이다. 드디어 주전 30년에 옥타비아누스가 전쟁을 통하여 최종 승자가 되고 3년후에 로마제국의 황제에 해당하는 아우구스투스가 된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투스의 로마제국과 그 옛날 고레스의 페르시아제국은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먼저 공통점은 두개의 제국 모두 개방적인 제국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국민들이 지배 족속이 되고 있다. 그렇지만 피정복민인 속국의 백성들을 평등하게 대하면서 그들 가운데 쓸 만한 인재를 발굴하여 적극 제국의 번영에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로마제국의 경우에는 그 개방성과 포용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로마의 시민권을 타민족이라고 하더라도 제국의 발전에 공로가 있는 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게다가 비록 피정복민이며 노예계급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가진 학문과 철학 그리고 예술이 뛰어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는 자신의 혈통만을 고집하지 아니하고 똑똑한 인물을 양자로 삼아 황위를 넘겨주고 있다. 그에 따라 로마제국은 초기에 국가발전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진 | 이름 | 출생 | 재위 | 계승 | 사망 |
아우구스투스 CAESAR DIVI FILIVS AVGVSTVS |
기원전 63년 9월 23일, 놀라 | 기원전 27년 1월 16일 ~ 14년 8월 19일 | 로마 원로원과의 ‘첫 번째 합의’의 결과로 사실상의 황제가 되다. | 14년 8월 19일 자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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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TIBERIVS CAESAR AVGVSTVS |
기원전 42년 11월 16일, 로마 | 14년 9월 18일 ~ 37년 3월 16일 | 아우구스투스의 부인 리비아 드루실라의 친아들이자, 아우구스투스의 양자. | 37년 3월 16일 자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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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굴라 GAIVS CAESAR AVGVSTVS GERMANICVS |
12년 8월 31일, 이탈리아 안티움 | 37년 3월 18일 ~ 41년 1월 24일 | 티베리우스의 조카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 41년 1월 24일 가장 신임하는 장군에게 암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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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우스 TIBERIVS CLAVDIVS CAESAR AVGVSTVS GERMANICVS |
기원전 10년 8월 1일,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루그두눔 | 41년 1월 25일(26일) ~ 54년 10월 13일 | 티베리우스의 조카, 게르마니쿠스의 동생이자 칼리굴라의 삼촌. 근위대에 의해 황제로 지명되다. | 54년 10월 13일 부인인 소 아그리피나에 의한 독살 가능성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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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 NERO CLAVDIVS CAESAR AVGVSTVS GERMANICVS |
37년 12월 15일, 이탈리아 안티움 | 54년 10월 13일 ~ 68년 6월 9일 | 클라우디우스의 의붓아들이자 양아들. | 68년 6월 9일 원로원에 의해 국가의 적으로 선언된 이후 자살. |
더구나 로마시민은 제국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실용성을 중시하고 있다. 정치적인 권력과 군사적인 권력만 로마인들이 장악하고 기타 분야 곧 학문과 철학 그리고 예술은 그 방면에 출중한 족속이 담당하면서 제국의 발전에 기여하면 된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또한 로마제국은 합리적인 만민평등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것은 특권계층인 로마시민을 제외하고 나면 모든 제국내의 백성들은 로마의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름하여 ‘로마에 의한 세계의 평화’(PAX ROMANA)이다.
특히 주후 324년이 되면 콘스탄틴 황제가 동서로 분열이 되어 있던 로마제국을 통일하게 된다. 그는 로마제국이 하나로 통일이 되고 이제 한사람의 황제가 다스리고 있으므로 종교도 하나의 국교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자 한다;
그와 같은 콘스탄틴 황제의 사상은 로마의 법이 속국의 백성에게 있어서 만민평등법이라는 것을 이제는 종교적으로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마 시민권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법적인 강제가 아니라 당사자의 선택에 의하여 기독교인이 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콘스탄틴 황제는 자신의 곁에 항상 궁중목사를 두고서 한세상 쾌락을 누리며 육신적인 삶을 실컷 살게 된다. 드디어 임종의 자리에서 궁중목사의 기도로 세례를 받고 천국으로 직행하고자 한다. 그것이 로마제국의 진면목이다.
그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면, 신바벨론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 페르시아제국의 고레스 황제와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별로 다르지가 않다. 그들을 한결같이 세속적인 최고권력자인 황제일 따름이다.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섭리에 의하여 그들의 제국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구체적으로 동서로 분리가 된 로마제국에 있어서는 주후 476년에 유목민인 고트족과 반달족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이 먼저 망하고 동로마제국은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다가 주후 1453년에 오스만 터키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동로마제국이 보전하고 있던 희랍정교는 훗날 러시아로 옮겨지게 된다.
성경상의 기록으로 보면 예수님의 성육신과 공생애는 길게 보아 주전 4년경부터 주후 30년 사이이므로 당연히 로마제국시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때에는 헤롯대왕이나 그의 아들 헤롯 아켈라오가 그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갈릴리 서편 산골마을 나사렛에서 성장할 때에는 분봉왕 헤롯 안디바가 그 지역을 다스리고 있다. 그들은 모두 로마황제가 그 지역의 통치권을 위임하였기에 속국을 다스리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 그리고 사마리아 등지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을 때 그곳의 통치자는 로마총독인 빌라도이다. 그는 주후 26년에 총독으로 부임하여 10년간 로마황제를 위하여 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대제사장은 로마총독이 임명한 가야바이다;
참고로, 예수님이 갈릴리를 떠나 북쪽 헬몬산 기슭으로 이동하였을 때에 그곳을 다스리고 있는 분봉왕은 헤롯 빌립이다. 그 지역에서 변화산상의 환상이 발생하고 시몬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게 된다.
훗날 12사도 가운데 최초의 순교자 야고보가 주후 44년경 살해를 당하게 되는데 그때의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의 통치자는 로마황제가 임명한 헤롯 왕가의 인물 헤롯 아그립바1세이다. 그 일로 말미암아 그해 아그립바1세는 죽고 만다(행12:1-2, 23);
또한 이방인 사도인 바울이 주후 59년경 예루살렘에서 체포가 되었을 당시에는 다시 로마총독이 예루살렘과 유대 땅 그리고 사마리아를 통치하고 있다. 그에 따라 사도 바울은 로마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로 이송이 되고 그곳에서 벨릭스 총독의 심문을 받고 있다(행23:31-35, 24:3).
신임 총독 베스도가 부임하자 사도 바울은 이미 자신이 로마시민임을 밝힌 바가 있기에(행22:24-29) 이제는 로마황제의 직접 심문을 받도록 해달라고 청원하고 있다(행25:10-12). 그와 같이 로마 시민권자는 속국의 백성과 다르다. 총독이 아니라 직접 황제에게 재판을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극형에 속하고 있는 십자가 처형도 받지 아니하도록 제도화가 되어 있다. 참고로, 키케로(Cicero)는 "십자가라는 명칭 자체를 로마 시민의 몸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고 로마 시민의 생각과 눈과 귀에 닿지 않도록 하라" 고 쓴 적이 있다고 한다고 한다(Pro Rab. 5).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이기에 로마제국을 자유로이 다니면서 이방인선교를 할 수가 있었다. 특히 로마가 세계정복을 위하여 건설해 놓은 군사용 도로를 이용하고 로마형 대도시를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빠르게 전파할 수가 있게 된다;
그와 같이 로마제국은 기독교의 전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따라서 역사를 섭리하고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서로마제국의 역사를 주후 324년에 기독교를 국교화하기 시작한 후 150년이나 지나서 멸망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 이유는 기독교를 로마세계에 철저하게 뿌리내리고 자라게 하자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비록 게르만에 속하는 고트족이 서로마제국을 멸망시키지만 로마교황청은 보전이 될 수 있도록 역사를 섭리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시리아의 교부들에 의하여 고트족의 왕실이 벌써 기독교를 받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는 기독교의 역사와 깊은 관련성 아래에서 진행이 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요컨대, 신약성경에는 그 옛날 로마제국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는 실마리가 많이 들어 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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