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패권
10. 아시아의 유목민 훈족의 서진과 유럽의 유목민 게르만족의 서로마정벌(작성자; 손진길 박사)
고고학자들이 세계의 고대 4대 문명지역을 주전 3000년경에 시작된 메소포타미아 문명, 주전 2500경에 시작된 이집트 문명, 그리고 주전 2000년경에 시작된 인도의 인더스 문명과 중국의 황하문명이라고 손꼽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황하문명에 있어서는 하나의 특이성이 있다. 그것은 황하의 북쪽과 서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유목민들이 남하를 하고 동진하여 황하의 서쪽에 서서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대 중국의 섬서성에는 장안을 중심으로 하여 유목민들이 왕조를 세우고 이어서 중원을 통일하고 있다.
예를 들면, 주전 221년에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동일하고 진제국을 세웠는데 그것이 유목민의 왕조인 진나라에서 비롯되고 있다. 더구나 진제국이 망하고 새로운 한제국이 중원을 통일하고 있는데 그들 역시 유목민이 지배하고 있던 중국의 서쪽변경에서 시작된 왕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중국을 통일하여 제국을 건설하게 되면 그 다음 수순은 유목민인 훈족의 세력을 국경지대에서 강력하게 막는 것이다. 따라서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한제국은 중원사상을 내세워 훈족을 야만인 흉노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서쪽과 북쪽으로 계속 몰아내고 있다.
그런데 한제국이 멸망하고 소위 ‘5호 16국’ 분열시대가 도래하자 북쪽에서는 유목민의 전성시대가 다시 찾아오고 있다. 만주에서 서진한 유목민 선비족이 황하강 이북에서 여러 유목민 족속을 규합하여 북위를 세우고 주후 386년경 중원으로 남하하면서 그 세력이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북위에서 갈라져 나온 흉노족 곧 서북쪽의 유목민 훈족이 주후 440년경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서진하기를 시작한다. 유목민의 기마대가 무서운 기세로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쳐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당시 유럽의 유목민은 서고트족, 동고트족, 또는 문명파괴자 반달족 등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 여러 종족의 공통점은 대부분이 게르만 족속이다. 그들이 동쪽에서 유럽의 평원으로 밀려오고 있는 훈족의 기마병을 이기지 못하고 로마제국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로마제국에서는 그들을 국경 바깥에 정착하도록 하고 로마제국 안으로는 절대 들어오지 못하도록 군사력으로 막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별로 실효성이 없다. 그 이유는 당시의 로마제국은 유목민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국방을 맡기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거대한 제국을 경영하면서 노예를 사용하는 수많은 장원과 속국 사이의 무역에서 거두고 있는 관세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 로마제국의 지배계급이다.
따라서 지배민족인 로마인들은 향락과 쾌락을 즐기면서 어렵고 힘든 일은 전부 노예들과 타민족에게 맡기고 있다. 로마제국을 완성하기까지 로마인들이 앞장서서 정복전쟁을 수행했으며 로마인들의 로마군대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모른다.
로마병정의 두툼한 양날검의 칼날 아래 얼마나 많은 종족들의 피가 흘렀는지 모른다. 따라서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오늘날까지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무서운 무기는 로마검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용맹무쌍한 로마인의 군인정신은 벌써 사라지고 없다. 그들은 돈으로 주변국에서 용병을 고용하여 제국의 국경을 지키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서로마제국의 수명을 단축하고 만다;
로마의 용병인 게르만족이 국경 바깥에 있는 동족들과 연합하여 로마제국을 손쉽게 정복하고 말기 때문이다. 그것이 주후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이다. 그에 따라 제국의 여러 도시에서는 문명파괴자인 반달족이 철저하게 선진문명을 초토화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가지 참으로 다행스러운 점은 로마제국의 바깥에서 그동안 줄기차게 서진해오고 있던 훈족이 동유럽의 땅을 제법 차지하고서 공격을 멈추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로마제국은 그만큼 축소가 되고 서로마제국의 남은 백성들은 고트족과 반달족의 압제 아래에서 피정복민으로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헬라시대와 로마시대의 찬란한 문명이 파괴가 되고 말았기에 유목민 지배체제 아래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남은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고역이다. 게다가 그들의 영적인 등불이 되어야 하는 기독교마저 이상하게 변질이 되고 있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로마를 정복한 고트족의 왕실이 콘스탄틴 체제 아래에서 이단으로 정죄가 된 바 있는 시리아교회의 선교에 의하여 벌써 기독교인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로마교황청이 역사 가운데 살아남게 된다. 그때부터 로마 교황은 고트족의 왕을 로마황제처럼 모시고 유럽을 경영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목민들이 문명권을 정복하게 되면 그 역사와 선진문명을 파괴하고 농업지역을 온통 목초지로 바꾸어 버리는 초토화작업을 시작한다;
그런데 고트족 왕실이 기독교인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 옛날 창세기의 인물 이삭이 목축업과 농업을 그랄 땅에서 병행하여 100배의 소득을 얻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창26:12-14).
그들은 훗날 13세기 동양의 정복자인 유목민 몽골족과는 달리 농업을 파괴하지 아니하고 단지 농민에게 거주이전의 자유만을 빼앗는데 그치고 있다. 그 이유는 마치 노예처럼 농민들이 죽기 살기로 농사를 지어 그 소출을 유목민 출신인 지배 족속에게 바치라고 하는 것이다;
게르만 족속의 조상이 되고 있는 여러 갈래의 고트족이나 반달족은 더 이상 유목생활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용맹한 병사가 되어 국방을 책임지고 자신들의 왕국을 튼튼하게 지키고 있을 뿐이다. 그 대신에 농노들이 농사를 지어 자신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특히 농노들의 반란을 예방하기 위하여 이중적인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하나는, 로마교황청에서 왕국내의 교구를 세분하여 농노들의 생활을 철저하게 종교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정당한 사유없이 교구를 이탈하는 자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이 철저하게 응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강력한 지방통제수단이 조직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을 왕이나 황제가 은급제도에 의하여 마련하고 있다. 먼저 훈족과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자에게 황제나 왕이 귀족의 작위를 내리고 영주로 임명한다. 그리고 작위의 품계에 비례하는 영토를 떼어서 관리하도록 맡긴다;
위로부터 그와 같은 은혜를 입은 영주는 자신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즉, 국가비상시에 주공의 부름을 받고 자발적으로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마디로, 훗날의 ‘기사도정신’이다;
그와 같은 봉건적인 은급제도와 기사도정신이라는 특징이 게르만 족속이 훗날 신성로마제국을 형성하고 서진하는 적들을 물리치는 10세기 이후까지 오랜 세월 계속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중세시대의 봉건제도 곧 농업소득을 기반으로 하는 농노사회 그리고 은급제도에 기초하고 있는 봉건적인 통치구조가 주후 13세기에 이를 때까지 너무나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찬란했던 고대 헬라인들의 지성적인 문명과 로마인들의 이성적인 문명을 파괴하고 그 대신에 정치적인 권력과 한 통속이 되어 있는 종교권력과 더불어 보수적인 봉건주의 통치체제가 백성들을 끝없이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대를 흔히 ‘중세 암흑시대’(Medieval Dark Ages)라고 표현하고 있다;
끝으로, 주후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주후 1453년 동로마제국의 멸망 때까지 계속이 된 유럽의 중세시대에 대한 자료 가운데 흥미로운 것을 제시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나무위키’ 발췌본이다; 서로마가 붕괴한 뒤 게르만 부족국가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로마법과 자신들의 관습을 결합해서 나름대로의 지배를 확립해갔다. 로마의 은대지 제도와 게르만 부족의 종사제를 결합한 봉건제, 게르만의 계승 관습을 로망스어로 성문화한 살리카법, 로마의 라티푼디움과 게르만의 종사제를 결합한 장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확립되는 건 못해도 10세기 경이고, 게르만 국가들의 관습적 지배는 극히 불안정적이었다. 그렇게 게르만 부족들이 그나마 국가 꼴을 갖추려 시작하자 북방에서는 해양세력인 바이킹이 침공해왔고, 동방에서는 슬라브족과 동양계 마자르족이 쳐들어오고 있다.
둘째로, 역시 ‘나무위키’에서 발췌한 것이다; 그런 중세 초기의 500년은 이민족을 학살 수준으로 때려잡고 보던 카롤루스 대제의 재위기간을 제외하면 혼란이 잦아들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에 암흑시대로 간주된 것이다. 10세기에 오토 대제가 마자르족을 방어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계승 방식을 확립했으며, 바이킹도 11세기 무렵부터 침공이 잦아들어 혼란스러웠던 중세 초기는 막을 내리고, 십자군과 기사와 교회의 시대라고 할 수 있는 중세 (전)성기가 시작된다.
셋째로, 아래는 ‘하늘을 봐’에서 따온 글이다;
(1) 프랑크 왕국의 부상; 8세기 초 서고트족의 스페인은 경기병을 다수 보유한 이슬람 전사들에 의해 무너졌다. 동 시대에 헝가리 평원의 기마 유목민인 마자르족이 서유럽을 자주 침략했다.
1) 732년 프랑크족의 보병 군대는 푸아티에 근처에서 이슬람 기병을 격파하여 이슬람족의 북진을 종식시켰다. 프랑크 왕국의 대제였던 찰스 마텔은 이슬람 기병의 영향을 받아 프랑크족 군대의 일부를 기병으로 양성했다. 기병 양성은 프랑크 왕국의 위대한 왕, 칼 대제의 통치 하에서 이 세기의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프랑크 왕국의 중형 기병은 중세 전쟁의 전형이 된 기사의 기원이 되었다.
2) 칼 대제는 30년 동안 매년 정복 전쟁을 일으켜 프랑크 왕국을 확장했다. 프랑크 왕국의 군대는 보병과 무장 기병으로 구성되었으나, 이 중 기병이 가장 강력한 부대이자 타 부족이 가장 경계하는 부대였다. 기병은 빠르게 이동하며 주로 보병으로 구성된 적을 무자비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 칼 대제의 정복 전략은 적 영토를 습격, 방화, 약탈, 유린하여 경제적 피해를 줌으로써 복종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조직력을 갖춘 적과는 거의 싸우지 않았다.
(2) 바이킹족의 침략; 바이킹족은 상륙한 후 내륙 깊숙이 침략하기 위해 말을 타고 가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보병으로만 싸웠다. 바이킹족의 침략은 8세기 말에 시작하여 11세기에 끝났다.
1) 북서 프랑스의 노르만인이 된 바이킹족의 후예들은 금방 말을 이용하는 데 익숙해졌으며 중세 후반의 가장 유능한 전사 대열에 속했다.
10세기 초, 게르만족은 오토 1세의 통치 하에 바이킹족의 습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아시아계 기마 민족의 습격을 물리치기 위해 기병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2) 10세기 말에는 앵글로색슨족의 영국, 켈트족 영토(아일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럽 지역에서 중형 기병이 군대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3) 암흑시대의 군대; 초기 로마 제국을 침략한 게르만족은 주로 갑옷은 거의 입지 않은 채 투구와 방패만 착용하고 도끼와 칼을 휘두르는 보병이었다. 이들은 우두머리의 지휘 아래 무리를 이루어 싸웠다. 이들은 비록 용감했지만 정식 군사 훈련을 받지 못해 단지 무리를 지어 싸울 뿐이었다.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로마 군대는 수세기 동안 게르만족과의 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사기 하나만으로 싸우는 군대는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군대에 비해 전투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1) 그러나 로마 제국 말기에 로마 군대의 질이 떨어지자 게르만족은 국경을 넘어 들어올 수 있었다. 한편, 고트족은 그 이전에 흑해 북부에 정착했을 당시 말을 다루는 법을 익혔다. 서고트족과 동고트족은 다뉴브강 남쪽의 동로마 제국 및 아시아의 기마 민족과 접촉하면서 기병을 알게 되었고, 그후 동로마 군대는 기마 민족, 파르티아인, 페르시아인과 충돌해 왔기 때문에 기병을 매우 중시하게 되었다.
2) 로마가 멸망한 후 수세기 동안 유럽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전투는 보병 간의 충돌이었다. 그에 비해 색슨족의 침략에 대항하여 영국의 아서왕이 벌인 전투는 예외라고 할 수도 있지만 아서왕의 승리가 기병을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증거는 없다. 아서왕은 50년 동안 영국으로 쳐들어오는 색슨족을 저지했는데, 이는 기병을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단지 군대의 전투력이 높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3) 또 다른 예외는 6세기에 반달족으로부터 북아프리카를 탈환하고 이탈리아를 거의 동로마의 치하로 만든 비잔틴 군대였다. 이 시기에 활약한 비잔틴 군대의 힘은 바로 기병에서 나온 것이었다. 또한, 이민족에게 없었던 월등한 지휘력과 뛰어난 전략적 이해가 비잔틴족을 승리로 이끌었다. 암흑 시대 초기의 수세기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는 군대라고 할 만한 무리가 거의 없었다.
4) 이들은 예전과 같은 전투 집단으로서, 비잔틴이나 아시아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작은 군대일 뿐더러 구사하는 전략 전술도 거의 제한되어 있었다. 주된 군사 활동은 식량, 가축, 무기, 노예 등의 전리품을 얻기 위해 침략하는 것이었고, 호전적인 부족은 적의 식량 생산지를 초토화하여 아사시켰으며 생존자들을 노예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였다.
5) 전투는 주로 도끼와 칼을 휘두르며 백병전을 벌이는 전투 집단간의 충돌이었다. 이들은 로마 군대처럼 정식 군사 훈련을 받은 군대가 아니라 단지 무리 지어 싸울 뿐이었다. 이들은 투구와 방패를 착용하였으며 그 중 일부는 갑옷을 입었다. 가죽 갑옷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대장과 정예 요원들만 체인 갑옷을 입었다.
(4) 암흑시대 후기; 암흑 시대를 거치는 동안 유럽 전역은 많이 붕괴되었으며, 이전에 득세했던 로마 문화는 게르만족의 문화로 대체되었다. 유럽은 500년 동안 침략과 전쟁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그러나 일반 농민들의 생활은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고 새로운 형태이긴 하지만 사회와 문화도 점차 복구되었다. 대략 1000년 경에 유럽인들은 거의 모든 면에서 고대를 능가하는 새로운 중세 문명을 만들어 냈다.
넷째로, 다음은 박승찬 교수의 글이다; “중세는 그 긴 시간만큼 사계절의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예를 들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다양한 이론이 난무했던 그리스도교의 초창기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가 종합한 거대한 사상 체계는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위해 9세기까지 추운 ‘겨울’을 지내야 했다. 일부 학자가 중세의 시작으로 삼는 카를 대제의 문예 부흥(800년께)과 함께 다가온 스콜라 철학의 ‘봄’은 다양한 학문 방법론의 개발을 통해 본격적인 발전을 준비했다. 그 결과 12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을 통해 맞게 된 스콜라 철학의 융성기(13세기)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황금기와 비견될 수 있는 놀라운 사상적인 발전을 이룩했는데, 이는 가장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여름’에 비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발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14세기 들어 시작된 자연재해와 인간이 저지른 무질서들로 말미암아 찬란했던 중세의 전성기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고대하는 ‘가을’로 접어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유럽의 중세시대와 관련하여 반드시 언급하고 싶은 내용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헬라의 문명을 수용한 로마제국의 유럽과 중동에 대한 지배가 강력하였다는 것이다. 그와 달리 서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유목민 게르만족의 지배체제는 미개한 것이며 그 영향력이 약한 것이다.
따라서 서로마제국이 무너지자 여러 민족들이 게르만족의 지배를 벗어나서 독자적인 왕국을 형성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이 주후 6세기부터 진행되고 있는 주요한 유럽사회의 변화이다.
또 하나는, 콘스탄틴 황제가 주후 324년에 로마제국을 통일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하고자 서둘렀지만 공식적으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것은 주후 380년이다. 그만큼 여러가지 다양한 교리와 해석을 통일하여 하나의 공교회인 카톨릭으로 만드는 작업이 힘든 것이다.
게다가 갑자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자 기존 교회의 성도 수에 비하여 10배가 넘는 로마제국의 신민들이 한꺼번에 교인등록을 하고 있다. 카톨릭에서는 그들을 정상적인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한참 벗어나고 있는 천사숭배와 같은 이상한 영성생활이나 사도와 성인 및 그들의 유물과 유적에 대한 우상화 작업 등이 교회에서 성행하고 만다. 거기에 더하여 교황청이 현실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되어 교회의 세속화가 크게 진행이 된다. 그러한 모습이 중세시대의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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