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창세기 강해 제298강(창50:22-2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2. 2. 17. 05:06

창세기 강해 제298(50:22-2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518(주일저녁)

 

요셉의 짧은 향년 110, 그러나 차남 에브라임의 자손 3대까지를 보다(50:22-23)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그의 오경의 마지막 책인 신명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30:20).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들의 생명이며 장수함을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과연 그러할까요? 이제 애굽의 총리로서 살다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는 요셉의 경우를 가지고 한번 따져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요셉은 17세에 운명의 장난으로 이국 땅 애굽에 노예로 팔려온 사람입니다.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는 그곳에서 그는 오로지 조상들의 하나님 만을 의지하고서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가 잡은 줄은 썩은 지푸라기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인간이 잡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생명의 동아줄이었습니다. 생명의 하나님께서 살길을 개척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소위 형통함의 복이었습니다(39:2-3). 요셉은 남은 평생을 오로지 그 길을 따라서 걸어갔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서 걸어가는 요셉의 생애 가운데 많은 생명살림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41:55-57, 45:5-8, 50:20).

둘째로, 요셉은 110세에 향년을 맞이하게 됩니다(50:22-24). 그의 조상들의 향년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짧은 요셉의 일생입니다. 길이로 보면 그것은 결코 장수함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장수함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몇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장수함이 무엇인가를 본문 가운데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요셉은 차남 에브라임의 자손 3대까지를 보게 됩니다(50:23). 그는 고손자까지를 보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 오래 산 사람이 한 집안에서 고손자까지를 보게 됩니다. 동일한 장수함의 복이 요셉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둘째, 요셉은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11명의 형제들의 식솔까지 모두 봉양을 한 사람입니다(47:12). 온 가문을 먹여 살리며 살길을 열어주었으니 그것은 위대한 인생입니다(50:21).

결론적으로, 양적인 길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짧은 인생을 살다 가지만 요셉은 온 가문에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인간의 장수함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주와 지탄 가운데 길게 사는 것보다 짧지만 온 가문과 만백성을 살리고 임종을 맞이하는 것이 역사에 오래 남게 되는 위대한 인생입니다. 일본과의 마지막 전쟁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한민족의 뇌리에 위대한 구국의 영웅으로 오랜 세월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하겠습니다.

 

요셉의 유언, 그 위대한 신앙고백(50:24-26)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창조주가 주신 생명을 이 땅에서 풍성하게 누리며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난 뒤에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이민을 오신 아버지 야곱을 통하여 영생을 믿고서 소망하는 신앙을 물려받고 있습니다. 야곱이 직접 요셉에게 보여준 신앙의 모습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 대하여 애굽의 총리의 아들로 사는 것보다 이스라엘의 가문에 편입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가르침입니다(48:5). 둘째, 세상나라 애굽에서 귀족으로 사는데 만족하지를 말고 출애굽을 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서 살다가 훗날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생의 기업을 얻도록 하라는 것입니다(47:29-31, 48:6).

그와 같은 아버지 이스라엘의 하나님 신앙과 천국에의 소망이 이제 요셉의 유언이 되고 있습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50:24-25). 여기서 요셉은 하나님의 예언 두 가지를 믿고 있습니다; 첫째, 출애굽의 역사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15:13-14, 50:24). 둘째, 그 때가 되면 자신은 비록 해골이 되어서라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것입니다(50:25). 요셉은 그곳에서 조상들과 함께 메시아를 만나서 부활하여 영생을 얻고 싶어합니다(11:16, 26, 5:24-29, 8:56).

그와 같은 믿음의 소망을 유언으로 남긴 채 요셉은 애굽 땅에서 눈을 감습니다. 향년이 110세입니다(50:22, 26a).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서 애굽에서 입관을 하였습니다(50:26b). 그들은 이제 출애굽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기록은 출애굽기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50:26, 1:6-7). 그런데 요셉의 향년 110세는 야곱 일행이 애굽으로 이민한지 71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출애굽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애굽 거주 430년이 끝나는 그 날에 이루어집니다(12:40-41). 그렇지만 출애굽의 주인공이 되는 모세는 당시의 나이가 80세입니다. 출애굽기의 기록은 모세가 태어난 시점부터 상세하게 기술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마지막 기록과 출애굽기의 시작인 모세의 탄생까지는 279년이라는 간격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간격을 메우고 있는 출애굽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1:8). 역사적으로, 요셉을 총리로 기용했던 세누스레타2세의 왕가가 BC 1,782년경에 무너집니다. 그 때는BC 1,805년에 요셉이 죽고 나서 23년의 세월이 흐른 후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분열왕국시대의 제2중간기는 약 200년간 지속이 됩니다. 그 후반기를 지배하는 족속은 동북면에서 침입해온 셈족으로서 힉소스 인들입니다. 그들은 같은 셈족이므로 히브리 인들에 대하여 관대했습니다. 하지만 함족인 애굽의 본토인들이 정권을 되찾게 되고 신 왕국 시대를 열게 되자 상황이 달라집니다. 18왕조의 아흐모세 1세가 BC 1,570년에 천하를 통일하면서 이민족인 셈족 히브리 인들을 탄압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1:8’ 절의 기록은 BC 1,446년 출애굽을 앞둔 124년 전의 기록이라고 하겠습니다. , 이스라엘 자손들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은 124년에 불과한 셈입니다. 그렇게 보면 출애굽기는 창세기 이후 279년의 간격이 아니라 사실은 235년이 지난 후의 상황부터 기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