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35(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의 차남이 남산동 하숙집에서 대신동에 있는 계성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다니고 있다. 그 등교길에는 언덕이 하나 있다. 그 언덕을 넘어서 학교로 간다. 그 언덕에는 산동네 비슷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고들 있다. 그 길을 벗어나서 학교가는 평평한 길로 접어 들면 자주 마주치는 같은 반 친구가 한사람 있다. 그의 이름이 ‘김명용’이다.
손진길은 학교가는 길에 심심하여 그와 짧게나마 대화를 한다. 그런데 한번은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를 그에게서 듣게 된다. 손진길이 먼저 물었다; “명용아, 너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으냐?”. 김명용이 은연중에 대답을 한다; “응, 나는 목사가 될 게야”;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이 너무나 의외라서 더 물어본다; “어째서 명용이 너는 목사가 되고자 하는데? 목사는 생활이 어렵잖아?...”.
김명용이 손진길의 얼굴을 빤히 보면서 대답한다; “나는 고학을 하고 있기에 목사가 되고자 하는 거야. 그게 보람이 있는 일이거든. 그래서 하루는 교목선생님을 찾아보고 상의를 했다, 그랬더니 먼저 서울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다음에 신학대학원을 가서 목사가 되라고 말씀하시더라. 그래야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는 길이 열린다고 말씀하셨어”;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이 묻는다; “바로 신학교로 가지 아니하고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다음에 신학대학원으로 가는 수도 있구나. 나는 바로 신학대학으로 가야 목사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구나. 잘 알겠다, 명용아”. 손진길은 친구 김명용이가 좀 특이한 생각을 하고서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만다.
손진길 자신은 서울공대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살면 된다고 하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진로에 대해서는 일체 생각을 못하고 있다. 따라서 친구 김명용이 선택하고 있는 진로와 장래희망이 그에게는 굉장히 낯선 것이다.
그래서 그저 속으로만 생각해본다; “김명용이가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다음에 신학대학원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니 그러면 영어권에 가서 신학을 더 많이 공부하게 되겠구나. 그러면 목사도 되지만 신학박사가 되겠네. 그는 신학교수가 될지도 몰라…”;
고등학교 1학년에 불과한 손진길이 내심 그렇게 김명용의 장래를 짐작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짐작이 별로 틀리지가 않는다. 세월이 많이 지나자 친구 김명용이는 한국의 유명한 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뛰어난 교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보면 손진길은 자신도 모르게 잠재적으로 기이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혹시 손진길의 꼬마시절에 그 경주의 도인이 그 잠재적인 능력을 혜안으로 미리 본 것이 아닐까?
쉽게 이해를 하자면, 사람에게는 지성과 이성을 뛰어넘는 영성이라고 하는 일종의 직관력과 예지의 능력이 아주 조금은 내재되어 있는 모양이다. 소위 영적인 지혜이며 통찰력인 그것이 엉뚱하게도 고등학생인 손진길의 뇌리속에서 막 자리를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영성이 깃들어 있기에 훗날 손진길의 장래를 전혀 엉뚱하게 이끌어가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고교와 대학시절 손진길은 전혀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1968년 여름방학이 끝나기 1주 전에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교내에서 실시하는 장학생시험을 본다. 담임 황재호 선생이 입학식날 교실에서 언급했던 그대로 특차시험에 합격한 50명의 전액장학생들도 그 시험에서 다시 50등 안에 들어야만 전액장학생이 다시 될 수가 있다;
그러므로 그 경쟁이 참으로 치열하다.
그들 대부분이 경북과 경남의 시골중학교 출신이며 공부하나 잘하여 그 전액장학금을 받고서 수업료가 비싼 사립 명문인 대구의 계성고등학교에 들어온 처지이다. 만약 이번 시험에서 장학금을 놓치게 된다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가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방학 중에 고향으로 가지를 못한다. 오로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만 해야 한다.
잠을 자는 곳은 학교에서 제공하고 있는 기숙사이다. 말이 기숙사이지 거저 허름한 방만 제공해준다. 식사는 시골에서 가지고 온 쌀과 간장으로 밥을 해서 먹거나 아니면 학교식당에서 방학 중에도 싸게 팔고 있는 백반을 패스를 끊어서 사 먹어야 한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한 특별반 친구들이 마침내 그 장학생시험을 본 것이다.
그 결과 며칠후에 성적이 나오는데 손진길이 50등 안에 들어서 전액장학생이 된다. 하지만 평소 그 성적이 10등 내외를 하던 그가 이번에는 23등으로 밀리고 만다. 그러한 일희일비의 결과를 보고서 학교교실을 나서는데 교문 앞에서 부친인 선더말 아재가 기다리고 계신다. ‘어떻게 알고 오신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손진길이 부친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자 선더말 아재가 입을 연다; “길이 네가 방학에도 거의 경주에 못 내려오고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길래 한번 학교로 찾아와 보았다. 마침 대구 경북여객에 볼일도 있고 해서이다. 그래 시험결과는 좋으냐?”. 이미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다 알고 계시는 눈치이다. 하기야 부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경찰관생활을 14년이나 한 베테랑이다. 그것도 정보계장 경력이 많으니 능히 그쯤은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손진길이 부친에게 볼멘소리를 한다; “아버지, 평소에 제가 상대하던 학생들이 아니예요. 이번 장학생시험에 있어서는 모두들 결사적이예요. 그래서 제가 23등으로 그만 석차가 밀리고 말았어요. 그 정도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인 줄을 제가 미처 몰랐어요. 저는 화가 나요. 이제서야 그들의 실체와 실력을 알았으니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하여 다음번에는 ‘베스트 텐’으로 장학생시험을 패스하고 말거예요”.
그 말을 들은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참으로 따뜻하게 말씀한다; “길아, 수고했다. 장하다. 시험은 6개월 후에 또 있다. 그래 네가 열심히 한다면 다음번에는 네 말대로 그렇게 될 것이다. 이번에 네 힘으로 당당하게 전액장학생이 되었다고 하니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더 속이 상한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고 다짐한다;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성적으로는 서울대학교에 안심하고 들어가지를 못한다. 언제나 10등 안에 들어야 확실하게 서울대학교 합격을 보장할 수가 있다”;
“내가 공부하는 목표는 그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형이 서울대에 못 들어갔으니 나는 반드시 들어가고 말겠다. 그것이 나의 인생의 목표이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차남 손진길이 마음속으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그저 차남이 대구의 사립 명문인 계성고등학교에 1차로 합격한 것만으로도 좋았고 또 전액장학금을 받게 되었다고 하니 아들이 장하게 보일 따름이다. 그러한 생각만 하고 있기에 차남 손진길이 서울대학교에 안전하게 합격할 수 있는 성적을 필사적으로 얻으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선더말 아재는 차남 손진길이 공부를 통하여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얼마나 발버둥을 치고 있으며 또한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는 그러한 최고가 되고자 필사적인 각오로 임하고 있는지 그 점을 미처 들여다보지를 못하고 있다;
그것은 경북중학교 입시에서 실패를 경험한 13살짜리 차남에게 2차인 대구중학교 입시에서마저 떨어졌으니 너는 이제 공부가 아니라 일을 해서 먹고살 생각을 하라고 선더말 아재가 모질게 처방한 결과이다.
그것이 차남 손진길에게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다. 선더말 아재는 자신이 벌여 놓은 사업이 바쁜 사람이다. 수십채가 되는 부동산을 혼자서 관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리고 ‘경주수산도매시장’이라는 기업을 경영하고 ‘경주수산제빙냉동냉장’이라고 하는 공장을 운영하기에 참으로 바쁜 것이다. 그러니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다.
2학기가 되자 손진목이 동생 손진길에게 말한다; “길이 네가 남산동에서 하숙을 하고 내가 대명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을 일이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우리가 계성고등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얻어서 생활하고 길이 네가 학교를 다니면 시간이 절약이 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경주 집에 간 김에 그렇게 말씀을 드렸다. 그러니 이사를 하자”.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이 대답한다; “지리적으로는 학교가 있는 서문시장 근처로 가면 등교는 빠르겠지만 자취를 하느라고 식사준비를 해야 되니 오히려 시간을 많이 빼앗기게 될 텐데요?...”. 손진목이 얼른 말한다; “내가 내 밥을 하는 김에 길이 네 밥도 해주면 된다. 그리고 쌀과 반찬은 어차피 내가 매주 경주를 방문하여 집에서 가지고 오니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손진길은 형의 그 말이 미덥지가 못하다. 어쩌다 한번 형 손진목이 자취를 하고 있다는 대명동을 찾아가서 그 방을 들여다보면 별로 밥을 해먹은 것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경주집에서 받아온 돈으로 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 지내는 것 같다. 그러한 성격의 형이 진정한 자취를 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형이 모처럼 제의를 하는 것이니 순순히 따라 주기로 동의한다;
그렇지만 손진길은 내심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점심과 저녁은 학교식당에서 밥을 사 먹으면 된다. 학교식당에서는 모든 학생들을 위하여 점심식사를 팔고 있으며 기숙사 학생들을 위해서는 또 저녁식사를 팔고 있다. 문제는 아침식사인데 그것은 서문시장에 가면 새벽에 장을 준비하는 상인들을 위해서 포장마차가 아침식사를 팔고 있다. 그것을 사 먹으면 된다. 그러니 형의 뜻대로 해주면 되겠다…”.
학교공부와 성적의 향상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는 고등학생 손진길이기에 그러한 결정을 내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1968년 가을에 서문교회가 있는 골목으로 방을 하나 구해서 이사한다. 그런데 자취방을 구하기는 했는데 그것이 문제이다.
대학입시를 준비한다고 하는 형은 자취방에 자주 들어오지를 아니하고 어디에서 지내는지 모른다. 반면에 손진길은 겨울방학이 되어도 고향으로 가지를 못하고 학교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한번은 방이 너무 추워서 연탄불을 지폈더니 방바닥이 갈라져서 그런지 연기가 난다. 틈사이로 연탄가스가 들이 찬다;
그렇게 연탄불을 피워 놓고 잠을 자면 다음날에 일어나지를 못한다. 죽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그 추운 대구에서 손진길은 한겨울에 군불을 떼지 못하고 냉방에서 지내게 된다. 어쩔 도리가 없어서 고향에서 가져온 군용간이침대를 들여놓고 먼저 그 위에 요하고 이불을 이중으로 깐다. 그리고 이불을 두개나 덮고서 체온을 의지하여 잠을 자려고 한다.
그래도 사람의 체온은 한계가 있어서 그런지 벽과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대구의 겨울 한기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그저 잘해야 20분 자고서 계속 잠을 깨게 된다. 덜덜 이불 속에서 떨면서 손진길은 한가지 생각만 한다; “그래도 교도소에서 지내는 것보다는 호강이다. 죄수들은 한겨울 냉방에서 똑바로 누울 공간이 없어서 겨우 옆으로 누워서 칼잠을 잔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래도 침대 위에 똑바로 누워서 자지 않느냐? 그보다는 나은 셈이다”.
그렇지만 자다가 보면 방안의 이, 벼룩, 빈대 등이 사람의 체온을 쫓아서 자꾸만 몰려든다. 이불을 털면서 자주 쫓아 낸다. 하지만 끈질기게 벼룩은 더 높이 점프하여 사람이 자는 침대로 뛰어오르고 빈대는 천장까지 기어 올라가서 손진길이 자고 있는 침대로 공중에서 낙하를 한다;
그것을 보고서 손진길이 생각한다; “빈대와 벼룩도 겨울의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저렇게 머리를 쓰고 있구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이야 오죽할까?”.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으니 오만가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때로는 깊은 생각도 하게 된다.
손진길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한갓 미물도 살아남고자 머리를 쓰고 처절한 경쟁을 하고 있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나는 잠을 줄이고 전적으로 공부에 매어 달려야만 한다. 이제 2년만 고생하면 대학입시이다. 나는 서울대학교에 합격만 하면 된다. 그러면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닐 수가 있다. 아버지도 그것으로 만족하실 것이다”. 그는 죽자고 노력하여 그 결과로 서울대 합격을 얻으려고 한다;
손진길은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새벽 일찍 침대에서 일어난다. 얼른 찬물에 세수를 하고 서문시장으로 나간다. 그 손에는 항상 경주에서 가지고 온 달걀이 하나 들려 있다. 달걀을 포장마차 식당에서 주는 멀건 국에 풀어서 밥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자취방에 와서 양치를 하고서 가방을 챙겨 얼른 학교 도서관으로 간다.
만약 도서관이 아직 문을 열지 아니했으면 그때에는 학교식당으로 간다. 그곳에는 준특별반에 다니고 있는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식당에서 식탁이나 걸상을 모아 놓고 잠을 자고 있다. 그가 문을 열어주면 식당에서 함께 공부를 할 수가 있다.
때로는 그렇게 함께 공부를 하는 친구가 같은 특별반 8반에 한사람이 더 있다. 그의 이름이 ‘채승룡’이다. 그는 충청도 충주에서 대구의 계성고등학교로 진학한 특이한 이력의 친구이다. 그 이유는 그의 누나 두 사람이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취방을 대명동에 얻어 놓고 누나 두사람과 함께 생활을 하는데 그가 일찍 학교 식당으로 오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공부를 하다가 수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채승룡이가 아침식사를 기숙사 학생들과 같이 학교식당에서 하고 있다. 학생과에 이야기를 하면 그러한 편의를 보아준다고 한다. 그래서 손진길도 그 방법을 선택한다. 덕분에 더 이상 서문시장에서 아침밥을 사 먹지 아니하게 된다. 학교식당의 조반이 더 낫기 때문이다.
손진길은 하루 3끼를 모두 학교식당에서 해결할 수가 있게 되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겨서 그것이 좋다. 그는 자신의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공부에만 매어 달리고 그저 공부할 시간을 벌었다고 좋아라 하고 있다. 그렇게 혹독한 고생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별로 키가 자라지를 않는다;
형제들 중에 가장 작은 키가 되고 만다. 그것이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스스로 선택한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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