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36(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10. 16:10

선더말 아재36(작성자; 손진길)

 

1969년 1월에 선더말 아재의 장남인 손진목이 ‘경북대학교’에 지원하여 입시를 치룬다. 이번에도 합격하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처음으로 2차인 ‘영남대학교’ 수학과에 원서를 낸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자존심이 상해서 2차에 응시한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더이상 대학입학을 미룰 수가 없다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2차라도 들어가려고 한다.

그는 영남대학교 수학과에는 넉넉하게 합격한다. 당시의 ‘영남대학교’는 대구에 있던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합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대학교라고 소문이 파다하다. 그래서 그런지 2차이지만 많은 학생들이 지원하여 들어간다. 앞으로 영남대학교가 발전할 가능성을 미리 바라보고서 그들이 입학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경주 교리 최부자 최준이 1947년에 설립한 ‘대구대학’이 ‘영남대학교’의 전신임을 영남대학교의 마크가 다음과 같이 잘 보여주고 있다;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열심히 공부하면서 일요일이 되면 잠시 자취하는 집 앞에 있는 ‘서문교회’의 예배에 참석한다. 가급적 뒷좌석에 앉아서 담임인 ‘이성헌 목사’의 주일설교를 경청한다. 상당히 설교를 잘하시는 중년의 목사이다. 듣기로는 부산에서 고려신학을 하신 분이라고 한다. 그 설교가 들을 만하다;

그렇게 교회의 예배에 출석하는 일을 제외하면 손진길은 언제나 학교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 실로 재미가 없는 스케줄이다. 그러나 어떡하겠는가? 그 옛날 ‘경북중학교’ 입시 때처럼 미역국을 먹지 아니하려고 하면 끈질기게 앞으로 2년 동안 ‘나는 죽었다’ 라고 생각하면서 공부에 매어 달릴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다. 오로지 나 혼자 공부에 매진하여 반드시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고 내 힘으로 일어서야만 한다. 그것이 시골출신인 손진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자력구원의 방안이다. 선비들이 ‘책 속에 길이 있다’, 또는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드러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끈질기게 노력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손진목이 영남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 동생 손진길에게 말한다; “길이 네가 연탄불도 피울 수 없는 방에서 겨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내가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계성학교 앞에 있는 골목에 좋은 방을 구해서 이사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좋은 방을 한번 알아볼 터이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

그 듣던 중에 좋은 말이다. 손진목은 열심히 골목을 뒤지더니 정말 부엌이 딸려 있는 상당히 좋은 자취방을 구했다. 1969년 봄부터는 그 집으로 이사하여 따뜻한 방에서 지낼 수가 있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그 골목에는 같은 반 친구들이 몇 명 하숙을 하고 있다. 한번은 손진길이 그 하숙집에 놀러갔다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부탁한다; “아주머니, 제가 식사비를 드릴 터이니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요?...”. 그 말에 하숙집 아주머니가 즉시 대답한다; “그래, 밥과 국만 한 그릇 더 푸면 되니까 그렇게 해라. 그런데 식사비는 선불이다”.

그때부터 손진길은 마음이 편하다. 아침식사를 그 하숙집에서 잘하고 등교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식당에서 먹는 조반보다는 훨씬 낫다. 그런데 5월말에 월말고사를 치르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 토사와 곽란의 증세가 심하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살이 깊은 생선의 조린 반찬을 맛있게 먹었는데 그것이 식중독이 된 모양이다;

얼굴이 붉어진다. 열이 나고 진땀이 흐른다. 시험을 치르다가 잠시 허락을 얻어 세면대로 가서 찬물에 얼굴의 열을 식혀보지만 그때 뿐이다. 그래서 시험을 감독하고 있는 선생님에게 손진길이 물어본다; “제가 갑자기 식중독으로 병이 나서 시험을 못 볼 지경입니다. 이 경우에는 성적처리가 어떻게 됩니까?”.

그 선생님이 정확하게 말씀한다; “학교의 규칙에 따르면, 지난번 월말고사 성적의 8할을 주도록 되어 있다. 많이 아프면 병원으로 가고 그렇게 성적처리를 하도록 해라”. 그 말을 듣자 손진길이 그 아픈 중에도 고개를 가로로 흔든다; “제가 고열로 정신이 없지만 그래도 시험을 끝까지 보겠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8할 이상의 성적은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감독선생이 손진길의 얼굴을 빤히 본다. 그 이름을 기억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지독한 학생이기 때문이다. 글자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아니할 정도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가운데 그날 끝까지 시험을 치른다. 그 결과 나온 성적이 평소의 90% 정도이다.

그 성적표를 보면서 손진길이 스스로 중얼거린다; “나는 그 10%의 성적차이에 집착하여 정신이 혼미한 중에도 끝까지 시험을 보았구나.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지독한 놈이다. 그렇게 공부하여 서울대학에 들어가서 그 다음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 자문을 해보지만 그 다음에는 대답이 없다.

그렇다, 손진길은 그 다음에는 아무런 목표도 어떠한 계획도 없다. 그렇게 우직하고 순진무구한 악바리가 손진길 자신일 따름이다. 그는 남이 대학에 가니까 따라서 가는 셈이다. 그리고 ‘경북중학교’에 떨어진 충격이 너무 심하여 다시는 입시에서 탈락하지 아니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그는 체력이 약하니 일을 하여 먹고 살 수는 없다. 그러니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서울공대’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반에 있는 절친 ‘채승용’은 다르다. 그는 교내 ‘영어 웅변대회’는 물론 대구시내에 있는 고등학생 영어 웅변대회에도 학교대표로 참여한다. 서울대학에 들어가자면 그렇게 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데 그는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영어공부와 웅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것이 하도 이상하여 하루는 손진길이 채승용에게 물어본다; “승용아, 학교공부가 바쁜데 그렇게 영어 웅변준비만 하고 있으면 어떡하니? 내가 걱정이 다 된다…”. 채승용이 씨익 웃으면서 대답한다; “진길아, 나는 영어를 배우고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미국에 가서 살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야”;

손진길은 의아하여 고개를 갸웃한다. 그의 말이 이해가 잘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승용아, 한국사람이 미국에 가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데 무슨 수로 너는 미국에 간다고 말하니? 나는 잘 이해가 안된다”. 그 말에 채승용이 대답한다; “다 가는 수가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나는 괜찮다…”.

채승용의 말은 사실이다. 1980년대에 손진길이 직장일로 하와이에 갔을 때 우연히 절친 채승용을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서 가까운 ‘한인침례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한 손진길이 천만뜻밖에도 그곳에서 채승용의 부부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한편, 경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1969년 봄과 여름에도 바쁘다. 봄에는 안압지 인근에 살고 있는 누나 손해선의 딸 이문자가 재혼을 하겠다고 하여 그 혼사일에 분주했다. 새로 신랑이 된 사람은 울산의 현대조선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람이 성실해 보인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가 스스로 비용을 들여서 결혼식을 잘 올려준다. 울산으로 시집가서 잘 살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그래야 홀로 늙어가는 누나 손해선이 마음을 놓을 것이다. 조카인 이중희는 여전히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 선더말 아재가 회사일과 개인일로 국민은행 경주지점에 들릴 때마다 이중희가 도와주려고 애를 쓴다. 안 그래도 지점장이 손수석을 엄청 챙기고 있다. 손수석이 그 은행지점에 큰 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해 봄이 지나가기 전에 배반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고현택이 또 회사로 선더말 아재를 찾아온다. 다짜고짜 자신이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여 시작하려고 하니 돈을 좀 꾸어 달라고 한다. 워낙 뚱딴지 같은 말이라 한번 설명을 해보라고 했더니 그 말이 참으로 황당하다.

고현택이 말한다; “아재가 과수원을 제게 주지 아니하여 제가 그것은 포기를 했습니다. 그 대신에 저는 그곳에 집을 많이 지어서 세를 주고자 합니다. 그 넓은 땅을 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게 돈을 빌려 주세요. 제가 목수를 사서 그곳에 집을 짓겠습니다”.

선더말 아재가 반대를 한다; “너는 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구나. 그곳은 ‘보문 저수지’를 멀리서 내려다보고 있는 위치라서 개발제한지역으로 묶여 있다. 그러므로 집을 지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해서는 안되는 것이야”.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보니까 고현택이 선더말 아재의 충고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그는 겁도 없이 나라의 법조차 무시한다. 결국 그 산지에 집을 많이 지어서 사람들에게 제 마음대로 세를 주고 있다. 더구나 과수원마저 이웃사람에게 도지로 주고서 그 돈을 받아 고현택의 가족이 그곳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

한마디로, 그가 제 맘대로 과수원의 주인으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선더말 아재가 모르는 척하고 있다. 그렇게 안하무인인 인간에게 야단을 치게 되면 선더말 아재의 가족들에게 어떠한 행패를 부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간다.

고현택이 마지막으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을 찾아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한 때가 1976년이다. 그는 선더말 아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도 경주에서 사업을 하여 큰돈을 벌어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내남에 큰 교도소가 들어섰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하고 제가 연줄이 닿아 있습니다”;

고현택이 본론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그 끈으로 생선 통조림을 납품하는 길을 뚫었습니다. 부산에 가서 대량으로 생선을 사서 통조림을 만들어 납품하고 어음을 받으면 됩니다. 그러니 돈을 좀 꾸어 주십시오”;

 

 

선더말 아재는 배반 과수원에서 고현택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 부근 마을에서 탐문하여 언제나 파악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과수원에서 일하지 아니하고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사업 건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한 고현택이 선더말 아재 자신에게 넉살 좋게 사업자금을 대달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퇴짜를 놓으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말을 듣고 보니 허무맹랑한 사업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아니하고 맨정신이다. 따라서 얼마가 필요한지를 물어서 빌려준다. 그런 일이 있고 나자 고현택이 그 새로운 사업에 몰두를 하는지 조용하기 이를 데가 없다.  

1969년 여름이 시작되자 일본 오사카에 있는 ‘현동 양반’에게서 급히 연락이 온다. 자신이 일본에 있는 재산을 상당히 정리하였으니 오사카에 와서 일을 좀 도와 달라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는 여름철이 되면 제빙공장일이 바쁘지만 멀리 일본에서 온 연락이므로 급히 그해 여름에 오사카에 들어간다;

오사카 복덕방에서 ‘현동 양반’을 만난다. 그는 사장실 문을 잠그고 은밀하게 말한다; “선더말 아재, 나는 이제 이곳의 재산정리가 거의 끝났어요. 그래서 금년 가을에는 한국에 완전히 들어가려고 작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경주에 살고있는 아들 창익이가 내가 한국에 가지고 오는 돈을 생각하고서 미리 호텔을 하나 사기로 계약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급히 내 돈을 일부 경주로 가지고 가야합니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처음 듣는 말이다. 그렇지만 경주에서 팔려고 나온 매물 가운데 호텔이라고 하면 경주 중심지에 있는 ‘서린호텔’이다. 그래서 물어본다; “혹시 창익이가 경주 ‘서린호텔’을 사려고 계약을 했다고 합니까?”. 현동 양반이 깜짝 놀라면서 되묻는다; “아재가 어떻게 그 호텔 이름을 아세요?”;

손수석이 웃으면서 대답한다; “요 근래 경주에서 팔려고 나온 호텔로서는 ‘서린호텔’이 가장 규모가 큽니다. 창익이는 배포가 큰 사람이라 인수를 하려고 했다고 하면 그 호텔일 것입니다. 그래서 짐작을 해본 것이지요…”. 그 말을 듣자 현동 양반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한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그렇게 비싸지가 않던데요. 오사카에 있는 내 재산이면 충분히 사고도 남지요”.

당시에는 경주에서 가장 큰 호텔이 바로 그 ‘서린’이다. 그것을 인수하고도 돈이 남는다고 하니 현동 양반이 상당한 갑부이다. 그렇게 짐작을 하고서 선더말 아재가 묻는다; “그러면 중도금으로 얼마를 지불하면 됩니까? 몇 년 전에 내게 맡긴 투자금으로 정산을 할까요? 그 돈의 이자까지 합치면 원리금이 상당합니다”.

현동 양반이 고개를 가로 흔들면서 말한다; “아재, 그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할 수 있는 대로 여기의 돈을 경주로 가져가야 합니다. 따라서 전번의 그 돈을 그대로 투자상태로 두고서 제가 드리는 돈을 은밀하게 창익이에게 전해주시면 됩니다. 그 액수가 좀 큰데 괜찮겠어요?...”.

선더말 아재가 웃으면서 대답한다; “물론 현찰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위험부담은 있습니다. 그러나 교포의 돈을 한국에 투자하는 것이니 애국의 차원에서 그 위험을 감수해야지요. 그 액수가 어느 정도입니까?”. 현동 양반이 한마디로 대답한다; “전번에 드린 돈의 두배쯤 됩니다”. 손수석이 알겠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며칠 후 한국의 김포공항에서 짐을 찾은 선더말 아재는 제법 큰 ‘흑백 티비’를 한대 가지고 공항에서 나온다. 그것을 가지고 경주 집에 도착하자 방문을 잠그고 드라이버로 분해를 시작한다. 그 속에서 일본 고액권 다발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 돈을 그 다음날 가방에 넣어서 손창익에게 전달한다. 물론 창익이가 은밀한 방에서 그것을 세어본 다음에 영수증을 써준다.

그 돈으로 손창익은 형제인 손해익과 함께 경주 ‘서린호텔’을 인수하여 운영에 들어간다. 그는 지방신문 기자를 오래 하여서 그런지 참으로 사업수완이 좋다. 그래서 그해 가을에 입국을 한 부친 현동 양반으로부터 칭찬을 많이 듣는다. 그들 아버지와 아들은 경주에서 가장 큰 호텔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자신들이 경주에서 가장 큰 부자인 줄로 안다.

그러나 며칠 후에 선더말 아재의 회사와 공장을 방문하고서는 그 규모를 보고서 깜짝 놀란다. 그래서 현동 양반이 한마디를 한다; “아재, 나는 오사카의 재산을 모두 정리하여 경주에 들어와서 살면 내가 경주에서 가장 큰 부자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재의 회사와 공장을 보니 그것이 아니네요. 내가 아재에게는 졌습니다. 하하하…”.

선더말 아재가 현동 양반에게 말한다; “일본에서 큰 돈을 벌어서 고향에 투자를 한 현동 양반이 더 애국자이지요. 저는 이곳 한국에서 돈을 벌었으니 그보다 의미가 약하지요. 현동 양반, 참으로 장하십니다. 그리고 고향을 위해서 큰일을 하신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마음은 그 옛날 젊은 시절 그 추운 일본의 북해도에서 함께 고생하던 그때와 같이 뜨겁다. 그래서 자신들도 모르게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