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34(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10. 07:03

선더말 아재34(작성자; 손진길)

 

1968년 5월에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계성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느라고 아주 열심이다. 그는 대구시내를 구경할 시간도 없다. 그렇게 경주에서 올라온 ‘촌놈’이 무섭도록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으므로 그의 주위에 그러한 성향의 반친구들이 가까이 다가온다;

그들은 경북과 경남의 중소도시에서 중학교를 나온 시골 출신들이다. 1960년대의 대구는 경북지방에서 독보적으로 큰 도시이다. 당시 한국에서는 대도시의 순서가 서울, 부산, 대구이다. 그러므로 대구사람들은 영남지방에서 부산과 대구만이 도시라는 관념을 은연중에 지니고 있다.

따라서 대구에서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은 경북이나 경남의 중소도시에서 계성고로 들어온 학우들을 별 생각없이 ‘시골 출신’ 또는 ‘촌놈’으로 보고 있다. 특히 계성중에서 3년을 함께 지내고 계성고로 진학한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동질의식을 느끼며 잘 어울리고 있다.

그러니 ‘시골 출신’들은 ‘시골 출신’들끼리 친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그런데 3월과 4월 그리고 5월에 3번의 월말고사가 실시되어 그 성적이 전체 석차와 함께 공개가 되고 소위 ‘베스트 텐’의 명단이 게시판에 크게 전시가 되자 상황이 달라진다. 시골 출신들의 성적이 상위권이기 때문이다. ‘베스트 텐’ 안에 시골 출신이 다수이다.

그로 말미암아 점차 대구와 시골이라고 하는 이분법이 무너진다. 이제는 공부 잘하는 친구와 그렇지 못한 친구로 서서히 판도가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누가 다음달에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되는지 그것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데 가장 1등을 많이 하는 친구는 계성중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계성고에 수석입학한 수재 ‘이근우’이다. 그러나 1학년 동안에 그의 아성을 빼앗는 시골 출신들이 더러 나타나고 있다. 그들의 이름이 ‘김영식’, ‘유창배’, ‘최재호’, ‘김종주’ 등이다.

그러한 춘추전국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이 더욱더 결사적인 각오를 다진다. 분명히 그들은 자신보다 더 공부를 잘하고 머리가 좋은 친구들이다. 그들과 경쟁하여 나의 이름을 흔들리지 아니하는 확고한 ‘베스트 텐’으로 만들자면 어찌해야 하는가?

그 방법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보다 더 오래 공부하고 더 집중적으로 각 과목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리 변칙적인 문제가 출제된다고 하더라도 정답을 찾아낼 수가 있다. 그래서 손진길은 월말고사가 실시되기 일주일 전에 벌써 암기과목을 거의 외워버린다.

그 다음에 그가 잘하지 못하는 과목을 공부한다. 그것이 수학과 물리 그리고 화학 등이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이다. 일주일 전에 이해를 하고 외워버린 암기과목이 시험보기 이틀 전에 다시 살펴보면 상당 부분 잊어버린 상태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이틀 전에 아까운 시간을 쪼개어 암기과목을 공부하고 다시 외운다.

매달 그렇게 월말시험에 대비하면서 손진길은 자신이 이과에 어울리는 학생이 아니라 문과형이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1960년대는 제3공화국이 공업주도형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시대이므로 부친인 선더말 아재는 물론 주변에서 모두들 손진길에게 공대로 진학하여 좋은 직장을 다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손진길은 1학년을 마치고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서 2학년으로 진급을 할 때에 아주 자연스럽게 이과를 선택한다. 그것이 그의 앞날을 매우 어렵게 만들고 만다. 그는 1학년 2학기에 학교에서 실시한 ‘적성검사’ 테스트의 결과를 믿고서 이과로 진급한다. 분명히 ‘이과 특수적성’에 동그라미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학년이 되어 여러 과목을 공부해보니 전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수학2, 물리2, 화학2 등의 이과과목에 있어서는 그저 평범한 점수밖에 얻지를 못한다. 반면에 국어, 고문, 역사, 국사, 사회일반의 여러 과목에 있어서는 그 점수가 엄청난 것이다.

그래서 문과과목에서 획득한 높은 점수로 부족한 이과과목의 성적을 보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과 자연계 학생이므로 이과과목의 비중이 7할이고 문과과목의 비중이 3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의 성적은 ‘베스트 텐’ 안에는 들지만 아무리 그가 이를 악물고 노력해도 졸업할 때까지 문과에서 2사람, 이과에서 2사람을 결국 따라잡지 못한다.

그들의 이름이 ‘이근우’, ‘김영식’, ‘이용희’, ‘유창배’이다. 그 가운데 손진길의 절친인 ‘이용희’는 포항중학교 출신이다. 그가 중학교에서 한때는 성적이 수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3때에 집안문제로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 계성고에 들어와서도 처음에는 두각을 나타내지를 못했다.

하지만 고2 후반부터 무섭게 성적이 향상되어 졸업을 앞두고서는 확고하게 전체 3등, 이과 2등의 자리를 굳힌 입지전적인 학생이다. 손진길은 친구 ‘이용희’를 볼 때마다 대단하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니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다고 마냥 핑계를 댈 일이 아니다. 모지게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공부에 매달린다면 ‘이용희’처럼 ‘서울공대’에서 가장 어렵다는 ‘화공학과’에 너끈하게 합격할 수가 있는 것이다.  

1968년 5월 어느 주말에 손진길의 하숙집에 친형 손진목이 찾아온다. 하숙집의 딸인 손귀주와 손귀남이 반갑게 맞이한다. 언니인 귀주는 손진목과 동갑이며 효성여대에 다니고 있다. 귀남이는 언니보다 2살이 적다. 손진목은 동생에게 시내에 바람을 쐬러 나가자고 말한다.

모처럼 손진길이 형인 손진목과 대구시내 나들이를 한다. 대구역 앞 중심가에 대구백화점과 동성로가 있는데 좋은 음식점이 즐비하다. 형제는 대구의 명물인 ‘따로 국밥’을 시켜서 먹는다;

그리고 그 근처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한편 관람한다. 손진목은 동생이 중국무술영화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서 당시에 유행하고 있는 ‘외팔이 시리즈’ 하나를 보여준다. 

영화를 본 다음에 손진목은 삼덕동 근처 뒷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는 먼 친척 ‘동개 누나’의 공장을 한번 방문해보자고 말한다. 일종의 ‘편물공장’이다. 그 간판에 ‘용이산업’이라고 적혀 있다. ‘동개 누나’가 내남 너븐들 사람이며 그녀의 남편이 그 편물공장을 차려서 운영하고 있다;

          

                             

그 공장에서는 시골출신의 여공들이 일본여성들의 전통의상인 기모노의 천을 편물기계에서 일일이 수공업으로 짜고 있다. 당시에는 한국여성들의 손재주가 빼어나서 그러한 수공업 제품이 일본으로 많이 팔려 나가고 있다. 따라서 그 편물공장이 자꾸만 커지고 있다. 그리고 동개 누나 내외는 대구 중심지 삼덕동에 살림집을 별도로 지니고 있다.

그 다음에 손진목은 동생을 데리고 대명동 부자동네로 간다. 작년에 그가 가르친 학생의 집이 그곳에 있는데 한번 놀러 오라고 그 학생의 모친이 말했다는 것이다. 손진길은 그 대구의 부자집에서 두가지 시설을 처음으로 본다; 하나는, ‘텔레비전’이다. 또 하나는, ‘수세식 양변기’이다.

당시의 흑백텔레비전에서는 ‘구봉서’와 ‘배삼룡’의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그 집 아들이 그것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손진길은 그러한 동영상은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가정집에 그 텔레비전이라고 하는 상자속에서 구봉서와 배삼룡이 코미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참 신기하다;

옆에서 형 손진목이 그 학생의 부친이 미군부대에서 미제 텔레비전을 하나 사서 거실에 설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주에서는 텔레비전을 본 적이 없는데 확실히 대구의 부잣집은 다른 모양이다. 그런데 손진길은 갑자기 배가 아프다. 낮에 식당에서 먹은 음식이 좀 체한 것 같다. 그래서 그 집 화장실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좌식 양변기’를 처음 본다. 그곳에 앉아서는 도저히 불편하여 제대로 용변을 볼 수가 없다. 겨우 아픈 배를 달래고 나름대로 용변을 보고 그곳에 있는 밸브를 당겼다. 그랬더니 ‘쏴아’하고 물이 쏟아져 나와 변기를 씻어낸다. ‘그것 참 깨끗하게 물로 처리를 하는구나...” 대단히 위생적이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날은 문화적인 차이가 ‘촌놈’ 손진길을 연타하고 있는 날이다. 왜냐하면, 형과 함께 하숙집에 도착했더니 갑자기 귀주 누나가 ‘라면’이라고 하는 것을 끓여서 함께 먹자고 권하기 때문이다. 큰 냄비에 한꺼번에 끓여온 닭고기 수프 ‘삼양라면’을 5그릇에 덜어서 5명이 먹도록 나누어 주었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힌다. 생전 처음 먹어본 맛이다. 국물에 ‘닭 기름’이 조르르 떠있다;

지난 달에 형 손진목과 함께 큰 길가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사 먹은 ‘가락우동’보다 훨씬 뛰어난 맛이다. 그래서 손진길이 속으로 생각한다; “이거, 라면이 대규모로 공급이 되면 가락우동을 파는 포장마차가 파리만 날리게 되겠구나. 기름기가 부족한 한국사람이 닭고기 기름 맛을 라면으로 즐기게 되면 라면생산업체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되겠구나!…”.

한편 경주에서는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장남과 차남을 모두 대구에 보내 놓고 자신은 ‘제빙 냉동공장’을 건립하는 일에 연일 매어 달리고 있다. 2년 동안 자신이 가진 재산의 거의 절반을 정리하여 그 공장의 건설비용으로 사용한 결과 비로소 1968년 여름에 공장을 완공하여 첫번째 얼음을 생산한다. 경주와 월성지역으로 큰 얼음덩어리가 널리 팔려 나간다.

당시 1968년에는 경주시내의 부잣집을 중심으로 냉장고가 서서히 보급이 되고 있다. 특히 아들이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오는 경우에는 냉장고를 사온다. 그렇게 냉장고가 가정에 보급이 되어 집안에서 얼음을 만들어 사용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 부자들의 집안이고 대부분의 상인들과 서민들은 얼음을 직접 판매소에서 사서 여름에 사용한다.

그해 여름에 서천내 한사장의 기존 ‘경주제빙공장’과 신축이 된 선더말 아재의 ‘수산제빙공장’이 모두 얼음을 생산해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 정도로 당시의 경제는 활황이다. 그러므로 한여름에 아이스케키와 아이스크림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그때쯤 아이스크림 생산업자가 선더말 아재에게 부탁을 해온다; “저희 아이스크림 공장이 작아서 그러니 손사장의 제빙공장에서 아이스크림을 좀 만들도록 도와주세요”.

선더말 아재는 어차피 자신의 냉동공장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승낙한다. 그 업자는 참으로 좋아하면서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선더말 아재의 제빙공장에서 만든다. 그에 따라 여름방학에 잠시 고향을 방문한 손진길은 집에서 그 업자가 선물한 엄청난 양의 아이스크림을 원없이 맛보게 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냉동공장  2층이 넓다. 그것을 보고서 부산에서 경주로 이사를 온 한사람이 찾아와서 선더말 아재에게 말한다; “제가 부산에서 오뎅을 만들던 사람입니다. 손사장님의 냉동공장 2층이 비어 있는 것을 보니 좋은 생각이 납니다. 거기에 오뎅 만드는 기계를 설치하여 손사장의 수산물도매시장에서 팔다가 남은 생선을 떨이로 사서 오뎅을 만들면 좋겠는데요?...”.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좋은 생각이다. 그러나 본인이 오뎅제조에는 문외한임을 알기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선생님의 생각은 참으로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저는 오뎅제조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생께서 모든 책임을 지시고 오뎅공장을 설치하여 운영해보겠다고 하시면 제가 장소는 얼마든지 제공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그 사람이 정말 좋아한다. 그는 단 한달만에 모든 설비를 갖추고 외상으로 중매인들로부터 팔기가 어려운 생선들을 사들인다. 그리고 밀가루를 어묵하고 버물러 오뎅을 쪄내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6개월이상 그 사람이 재미를 본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증발이 되고 만다. 어떻게 된 일일까?

나중에 알아보니 그 사람이 부산에서 사채를 사용하고서 갚지 아니하고 도망을 친 사람이다. 경주에서 오뎅을 만들어 인근지역은 물론 울산과 영천에까지 공급하자 그만 그의 신분이 탄로가 나고 만다. 자신의 행적이 부산의 사채업자들에게 노출이 된 것만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야간도주를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처음에 오뎅공장을 차릴 때에 선더말 아재의 돈을 제법 많이 빌렸는데 그 빚을 절반도 갚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아예 오뎅제조기계를 그냥 두고서 야반도주를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중매인들로부터 외상으로 생선을 공급 받았기에 거기에도 돈이 물려 있다.

그 오뎅공장의 처리를 두고서 선더말 아재가 고민을 조금 한다. 마침내 손수석이 용단을 내린다. 그래서 하루는 조카뻘인 손진겸을 불러서 말한다; “너는 수산회사에서 일꾼으로 일한지가 제법 되었다. 그래서 중매인들하고도 친한 줄 안다. 내가 너에게 공장 2층의 오뎅공장을 맡기면 너는 중매인들의 생선을 받아서 오뎅을 만들어 팔 수가 있겠느냐? 한번 생각을 해보고 내게 답을 다오. 네 형제들하고도 상의를 해보도록 해라”.

손진겸은 선더말 아재가 일본 북해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 가까운 일가인 ‘손수옥’ 형님의 아들이다. 그는 형이 있고 또한 동생이 여럿이다. 따라서 그 오뎅공장을 맡아서 동생들과 함께 운영하면 전망이 있을 것이다. 손진겸은 숙부 뻘인 선더말 아재의 제안을 동생인 손진락, 손진구 등과 상의한다. 동생들이 모두 찬성이다. 그들 모두는 선더말 아재가 몇 달만 외상으로 오뎅기계와 재료를 대주면 능히 자립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며칠 후에 손진겸이 선더말 아재에게 말한다; “숙부님, 제가 형제들과 상의를 했더니 모두들 찬성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이 당장 오뎅공장을 가동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본이 없습니다. 그러니 오뎅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서 판로를 개척하고 이문을 남길 때까지 뒤를 보아 주십시오. 그러면 흑자를 내서 반드시 숙부님의 돈을 갚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리고 윤서기를 불러서 지시를 한다; “여기 손진겸이 오늘부터 냉동공장 2층의 오뎅공장을 인수하여 가동하기로 했어요. 그러니 그가 오뎅공장을 제대로 작동하여 흑자를 낼 때까지 필요한 자금을 윤서기가 관리하고 있는 내돈에서 지원해주세요. 매월 내게는 그 상황을 보고만 하면 됩니다”.

손수석이 손진겸에게 말한다; “여기 윤서기와 함께 경리실에 가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하고 내 돈을 타서 가도록 하게. 자네 부친을 생각해서라도 한번 잘 운영해서 반드시 흑자기업으로 만들어 보게. 자네가 경주시내에서 성공을 하게 되면 자네 동생들도 그 덕에 모두들 시내에서 살게 될 거야. 그것이 그 옛날 추운 일본 북해도에서 고생한 부친에 대한 자네의 효도야…”.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바램이 헛되지 않는다. 손진겸은 오뎅공장을 동생들하고 함께 경영하여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 오뎅공장을 기반으로 하여 그는 두 동생과 함께 경주시내에서 집을 사고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선더말 아재가 생각한다; “과연 그 아버지에 그 아들들이구나. 장한 일이다…”.

일가 형님인 손수옥도 돈을 벌기 위하여 고향에 처자식을 두고 선더말 아재 손수석과 함께 그 옛날 북해도로 건너가서 많은 어려움을 극복한 인물이다. 그러한 가문의 전통이 그의 아들들에게 계승이 된 것이다.

선더말 아재는 그러한 진취적인 기상과 도전정신이 자신의 가문은 물론 고향의 일가들과 그 자녀들에게 단단하게 뿌리 박히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이 조국의 근대화를 성공시키고 나아가서 외세에 지배를 당하지 아니하는 다부진 대한민국을 만드는 유일한 비결이라고 선더말 아재가 철석같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