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32(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10. 04:46

선더말 아재32(작성자; 손진길)

 

7. 1968년과 1969년에 발생하는 일들;

 

  선더말 아재의 차남 손진길이 대구 삼덕동에 있는 영수학원에서 경북고등학교 입시준비를 한다. 마침 그 학원에서는 겨울방학을 맞이한 입시생들을 위하여 국어와 영어 그리고 수학과목을 단 두 달 만에 마스터할 수 있도록 집중지도반을 운영하고 있다;

 

손진길이 그 학원을 걸어서 다니기가 쉽다. 그 이유는 하숙집 주인의 아들인 손기중이 자신과 같은 중3 졸업반인데 그도 그 학원에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손기중은 대구에 있는 중학교에서 공부를 한 학생이므로 대구의 지리에 밝다. 반면에 손진길은 경주에 있는 문화중학교에서 공부하고 이제서야 대구에 와서 입시학원을 다니게 되었으니 대구의 지리에 있어서는 신출내기이다.

당시 대구에 있는 중학교와 경주에 있는 중학교를 비교하면 학력의 차이가 제법 큰 것 같다. 왜냐하면, 1967년 12월부터 대구 영수학원에서 국영수 3과목을 배우면서 손진길이 체감하고 있는 학업의 차이가 현격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국영수 3과목을 그 학원에서 초빙한 유명강사로부터 직접 수강해보니 다음과 같은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영어과목은 그런대로 따라갈 만하다. 그 이유는 중3 때에 문화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박선생님이 방과 후에 자신의 집에서 경주의 남녀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여 영어과외를 했는데 손진길과 그의 친구들이 거기서 영어참고서를 가지고 영어를 나름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둘째, 수학과목은 손진길이 문화중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그 강의내용이 많이 다르다. 그 이유는 경북대학교의 수학교수라고 하는 분이 영수학원에서 수학과목을 가르치고 있는데 수학문제를 풀이하는 방법이 손진길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 분은 수학문제를 접근하고 풀이하는 원리에 대한 설명을 먼저하고 있다. 그 다음에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하여 그것을 가르쳐 준다.

그 교수의 풀이방법을 사용하면 시간이 엄청 절약된다. 세상에 수학의 원리와 풀이가 그러한 것인가? 손진길은 자기가 다닌 중학교에서는 ‘어째서 그러한 원리와 다양한 풀이방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아니한 것인지?...’ 그것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국어과목을 영수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는 선생은 경북여고의 국어교사라고 한다. 한복을 입고 있는 그 선생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런지 목도리를 꼭 하고 있으며 나이가 중년이다. 그는 중3 교과서를 가지고 가르치면서 언제나 먼저 문장을 나누고 그 다음에 그 의미를 풀이해준다. 그런데 그 해석이 기가 막히게 좋다.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그 강의를 들으면서 눈이 번쩍 뜨인다;

자신이 문화중학교에서 배운 국어교과서에 그러한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어책의 내용을 깊이 있게 다시 이해하게 된 것은 좋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이다.

손진길은 자기도 모르게 다음과 같이 중얼거린다; “내가 모교에서 배운 국어는 정말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하구나... 이제라도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매일같이 이렇게 학교에서 여러가지 과목을 제대로 배운 대구의 중학생들과 경쟁을 하게 되면 그 결과는 참담할 뿐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은가?…”;

더구나 수학문제를 풀이하는데 있어서는 전혀 다른 풀이방법을 이제서야 본 것이다. 그러니 이제 겨우 두 달 공부하여 3년간 대구의 중학교에서 공부한 학생들을 따라간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 1968년 1월을 맞이한다.

중순이 되자 이제는 고교입시를 위한 응시원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손진길은 모교인 경주의 문화중학교를 방문하여 3학년 때의 담임인 윤위한 선생님을 만나 응시원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때 그는 대구의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고자 하는 꿈을 접었다.

그렇게 두 달간 영수학원에서 공부해서는 낙방이 되기 십상이라고 하는 판단이 나름대로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하게 ‘경주고등학교’로 진학하고자 생각하고서 경주로 내려간다. 집에서 부모님에게 자신의 심경과 결심을 말씀드린다. 그랬더니 모친은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부친은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게 판단이 되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손진길은 부친의 이해를 구했으므로 안심하고 모교를 방문하여 담임이었던 윤위한 선생님을 만난다. 그리고 ‘경주고등학교’로 진학하겠으니 원서를 써 달라고 말한다. 그런데 윤 선생님이 잠시 생각을 한 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길아, 너는 반에서 항상 1등만 하지 않았니? 그런데 어째서 ‘경주고등학교’에 그냥 진학하고 말려고 하느냐?”

젊은 윤선생님의 질문이 경주와 대구의 고등학교의 차이를 나름대로 알고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린다.  그래서 손진길이 정직하게 답변한다; “제가 사실은 겨울방학이 되자 대구의 영수학원에 가서 1달반동안 입시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강의를 들어보니 대구에서 가르치는 것과 제가 배운 것의 차이가 너무 컸어요...”.

잠시 숨을 쉬고서 손진길이 이어서 말한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옛날에 경북중학교에 응시하여 낙방을 했기에 이번에는 대구의 ‘경북고등학교’로 진학하기를 원하시고 계세요. 그렇지만 경주와 대구의 학력차이를 알게 된 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어요. 안전하게 ‘경주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는 것으로요…”.

그 말을 듣자 윤선생이 진지하게 말씀한다; “진길아, 대구에는 ‘경북고등학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명문으로 ‘경대사대부고’도 있고 ‘계성고등학교’도 있다. 나는 경주에서 중학을 했지만 대구의 ‘계성고등학교’를 나왔다. 진길이 네 정도의 성적이면 충분히 ‘계성고등학교’에 진학할 수가 있다. 사립이지만 기독교 명문이다. 나는 진길이 네가 그 학교로 진학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손진길이 처음 듣는 이야기이다. 그는 한번도 대구의 ‘경북고등학교’ 외에는 다른 학교로의 진학을 깊이 생각해보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레짐작으로는 대구의 ‘경대사대부고’는 경북고만큼 들어가기가 어려운 학교이다. 그리고 ‘계성고등학교’는 사립 명문인데 그 학비가 엄청나게 비싸다. 어떻게 그렇게 학비가 비싼 귀족학교에 다닐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아예 생각도 못해본 학교이다.

그런데 담임이었던 윤위한 선생님이 그 학비가 비싼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알기로는 윤선생님은 고향이 경주시내가 아니고 시골인 아화이다. 아화에 사시는 부모님이 어떻게 그 비싼 학비를 대준 것일까? 그 집안이 아화에서 상당히 부자인 모양이다. 손진길은 그러한 생각만 하고 있다.

그때 윤선생이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진길이 너는 내가 너의 부친에게 허락을 받아 준다면 그 계성고등학교에 다닐 생각이 있느냐?”. 손진길이 대답한다; “저희 아버지가 그 비싼 학교에 저를 보내 주겠어요? 그리고 저는 아버지에게 그러한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윤위한 선생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한다; “진길이 너희 아버지는 엄청 부자인 것으로 내가 알고 있다. 그 정도 지출이야 얼마든지 해줄 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너는 별 걱정을 다하고 있구나. 내가 허락을 받아 줄 터이니 조금만 앉아서 기다려라”. 말이 끝나자 마자 전화를 건다. 그리고 참으로 빨리 그 허락을 받아낸다.

윤선생은 무엇이 좋은 지 빙그레 웃으면서 말씀한다; “봐라. 내 말이 맞지. 진길이 네 아버지가 합격만 한다면 학비를 대어 주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계성고등학교에 원서를 내자꾸나…”;

그것으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의 차남인 손진길의 운명이 또 한번 바뀌게 된다.

그는 ‘미션 스쿨인 문화중학교’에 이상하게 입학하여 졸업을 한 것이다. 이제는 또 ‘미션 스쿨인 대구 계성고등학교’에 응시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마치 무엇에 이끌린 삶인 것만 같다. 둘 다 손진길 자신이 먼저 선택한 것이 아니다;

중학교는 부친에 의하여, 고등학교는 윤위한 담임선생에 의하여 선택이 되어진 것이다.

그들도 어째서 그러한 길로 손진길을 인도했는지 정확하게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을 손발로 사용하여 손진길의 인생을 그렇게 인도해간 운명의 신이 따로 계시기 때문이다. 손진길은 먼 훗날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때쯤 선더말 아재의 장남인 손진목이 서울에 있는 ‘고려대학교’에 응시를 한다. 작년 대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서울대학교’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이번에는 대구에서 재수를 하였으므로 조금 안전하게 지원을 한 것이 ‘고려대학교’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1월말에 나타난 결과는 불합격이다. 그러자 그는 삼수를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2차인 대학으로 진학을 하지 아니하려고 한다.

손진목이 2월초에 대구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 동생 손진길이 ‘계성고등학교’에서 입학시험을 치루게 된다. 그는 동생을 응원하기 위하여 하루 종일 계성고등학교 시험장 바깥에서 여러 학부형들과 함께 지낸다;

 그런데 첫 시간 국어시험을 치루고 나온 동생이 시험지를 준다. 그 시험지에는 사지선택의 문항에 학생이 선택한 흔적이 남아 있다. 별도의 답안지에 적어 내었기에 원본선택이 문제지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한시간이 지나지 아니하여 유명학원에서 정답지를 만들어 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국어강사들을 총동원하여 가장 빠른 시간내에 정답지를 만든 것이다. 여러 학부형들이 각자 자녀들의 시험지를 가지고 그 정답지와 맞추어 보기에 분주하다.

그 결과 손진목은 동생의 답안지에서 단 하나의 문제만 틀린 것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라며 기뻐한다. 그래서 다음 번 수학시험을 치르고 나온 손진길에게 말한다; “길아, 네가 국어시험을 참 잘 보았더라. 주위에 한 문제만 틀린 시험지를 가지고 있는 학부형이 없다. 이대로 나가면 수석입학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자 손진길이 침착하게 말한다; “나는 국어는 잘하지만 수학이나 영어는 잘 못해요. 그러니 그 정도로 성적이 좋지는 못할 거예요”. 손진길의 예상대로 입학성적이 그러하다. 다른 과목에서는 여러 문제가 틀리고 만다. 그래서 합격여부가 관심사가 된다.

마침 하숙집 주인의 아들인 손기중이도 같이 계성고등학교에서 입학시험을 보았다. 두사람이 집에 돌아와서 맞추어 보니 손진길이 더 시험을 잘 친 것이 맞다. 그러나 합격여부는 아직 모른다. 채점과 발표 때까지는 일주일이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진길이 경주집으로 내려가서 결과를 기다린다. 형인 손진목은 삼수준비를 하고자 대구에 그냥 남게 된다.

합격발표일이 되자 이번에는 손진길이 아침식사를 하고서 곧바로 경북여객으로 대구로 간다. 계성고등학교 게시판에 가서 합격여부를 직접 보기 위한 것이다. 3년전처럼 부친에게 그 소식을 듣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합격여부를 확인해야 속이 시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손진길 당사자의 초조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완행인 경북여객버스는 무려 2시간 반이나 걸려서 겨우 대구의 ‘신암 주차장’에 도착한다. 손진길이 빨리 하차하여 서문시장 근처에 있는 계성고등학교를 방문하고자 한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정류장에서 부친 선더말 아재가 손진길의 팔을 잡기 때문이다.

손진길이 깜짝 놀라서 부친의 얼굴을 본다. ‘도대체 언제 대구에 오신 것일까?”. 어리둥절해 하는 차남을 바라보면서 선더말 아재가 씨익 웃는다. 그리고 양복 저고리 안에 손을 넣어서 두툼한 편지봉투를 하나 꺼내서 아들에게 준다. 그러면서 말한다; “길아, 내가 먼저 대구에 와서 계성고등학교를 방문했다. 네가 이번에는 보기 좋게 합격을 했더구나. 축하한다”;

그때 손진길은 ‘축하를 한다’는 부친의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몰랐다. 왜냐하면, 그는 경북고등학교에 합격을 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합격점이 낮은 계성고등학교에 합격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선더말 아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아니다. 장남이 두 번 낙방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차남이 대구의 사립명문에 당당하게 합격을 했으니 그것이 위안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이어서 아들에게 말한다; “벌써 학교에 등록금과 입학금을 내고서 이 서류를 받아 왔다. 그러니 나중에 학교소집에만 응하면 된다. 그때까지 하숙집에서 편히 쉬고 있도록 해라”. 그러면서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손진길에게 준다. 손진길은 그때서야 자기보다 오히려 부친이 합격여부를 더 궁금하게 여기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아버지는 말씀을 표나게 아니하셔도 자식의 앞날을 누구보다 더 걱정하고 계시는구나. 그 마음이 오죽 하셨을까?...”. 그렇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아들이 어렸을 때에 선더말 아재는 자신의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함께 다니기를 좋아했던 그러한 아버지였다. 특히 차남 손진길을 많이 태우고 다녔던 것이다;

그 사실을 차남 손진길이 그날 문득 대구에서 회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