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30(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9. 21:37

선더말 아재30(작성자; 손진길)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1967년 여름방학을 맞이한 차남 손진길의 사업적인 잠재능력을 한번 점검해보기 위하여 슬쩍 두가지 일을 맡겨본다; 하나는 돈 심부름이고, 또 하나는 회사장부를 결재하는 일이다.

아직 중학교 3학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큰일을 맡길 수는 없다. 하지만 손수석 자신이 다른 도시의 은행지점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당좌수표’를 주고 현금으로 교환해오는 일을 아들에게 대신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보통 ‘은행 자기앞 수표’라고 하는 것은 은행이 입금을 받은 후에 발급을 한 것이므로 전국적으로 같은 은행이면 어느 지점이라고 하더라도 예금과 출금이 가능하다. 하지만 개인이 발급하는 ‘당좌수표’는 다르다. 그것은 그 수표책을 발행한 지점에서만 현찰로 인출을 할 수가 있도록 제한이 되어 있다;

선더말 아재는 차남이 그 당좌수표를 여물게 현금으로 바꾸어 안전하게 집으로 가지고 오는지를 한번 보고자 하는 것이다.

마침 그 수표의 발행지가 마산지점이다. 그곳 마산에는 지금 막냇동생 손수태의 가족이 완월동에 집을 사서 잘 살고 있다. 그는 한동안 경남 ‘하동중학교’에서 근무를 했으나 1967년 봄에 ‘마산고등학교’로 인사이동이 되어 그곳에 안착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제법 큰 도시 마산으로 이동이 되자 그는 형인 선더말 아재에게 집을 한 채 사달라고 연락했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역시 막내는 막내인 모양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집사는 돈의 절반을 보태어 주었다. 그리고 늘어난 식구를 생각하여 양식을 열차편으로 더 보내어 준다. 그러자 손수태는 학교에 다니기 편리하게 완월동에 기와집을 장만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그해 7월달에 또 아들을 낳았다. 아주 준수한 아들이다. 아들이 둘이 된 손수태 부부는 행복하다;

그러한 행복한 시점에 8월이 되자 형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중3 손진길이 처음으로 마산 완월동 삼촌댁을 방문한 것이다. 친척들과 오래 떨어져 살고 있는 손수태 부부가 조카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맛있는 해물로 식사대접을 한다. 그리고 학교선생인 삼촌이 여러가지 학생지도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손진길은 막내삼촌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그것으로 마음이 좋다. 그 옛날 어린 꼬마 때에 경험한 안 좋은 삼촌의 성격에 대해서는 잊어버릴 정도로 마산에서는 친절하다. 소주를 한 병 반주삼아 마시면서 손수태는 완연한 고등학교 지도선생의 모습이다. 그래서 손진길은 생각한다; “막내삼촌은 역시 학교선생이 천직인가 보다…”.

다음날 오전 중에 손진길은 마산 중심지에 있는 그 은행의 지점을 찾아간다. 그 수표를 제시했더니 어디서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은행직원에게 정확하게 신분을 말했다. 그랬더니 그 직원이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다. 1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지점장실에서 그 직원이 나온다.

그리고 손진길에게 말한다; “학생, 이 수표는 발행자의 구좌에 잔고가 있어야만 현찰로 내줄 수가 있어. 그런데 내가 계좌를 찾아보니 마침 그만한 액수의 돈이 저금이 되어 있구만. 그래서 지금 지점장의 결재를 맡아서 왔어. 하지만 그 금액이 적지 아니한데 어떻게 지니고 가려고 하는가?”.

중학생이 그 많은 돈을 지니고 집까지 가는 것이 위험해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손진길이 안심을 하라는 의미에서 발 옆에 두었던 자신의 가방을 들어서 보여준다;

그 직원이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면서 손진길을 잠시 지점장실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는 현찰의 안전한 지급을 위하여 상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신중한 은행원이다.

지점장실에서 손진길은 그 방의 주인에게 인사한다. 그랬더니 지점장이 잠시 그 방을 비워준다. 그러자 그 직원이 지점장실의 금고에서 고액권 뭉치를 꺼내어 온다. 그것을 받자 손진길이 그 자리에서 하나하나 세어본다. 자신이 본 그 수표의 금액과 맞다. 그러자 그 직원이 내민 영수증에 사인을 해준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에서 꺼낸 검은 보자기에 그 돈을 사서 가방속에 갈무리를 한다.

그 일이 끝나자 손진길이 미소를 지으면서 그 직원에게 부탁한다; “저는 이 돈을 안전하게 경주까지 지니고 가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마산의 ‘시외버스 정거장’까지 곧바로 갈 수 있도록 택시를 하나 불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 직원이 고개를 끄떡이면서 도움을 준다. 그래서 손진길은 무사히 택시를 타고서 마산시외버스 정류장으로 이동을 하고 경주에 가는 버스를 잡아 타게 된다;

마산은 그가 생전처음 와본 곳이다. 구마산과 신마산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깃점에는 ‘몽고간장’의 공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항구를 가지고 있는 그 도시에서는 남도의 거친 파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러한 고향을 그리면서 문학가 이은상은 "가고파라 가고파, 내 고향 남쪽바다"라고 자신의 사무친 향수를 절절하게 시로 표현했다고 한다;

집에 도착한 차남을 보고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묻는다; “그래, 네 막냇삼촌은 잘 살고 있던가?”. 손진길이 보고를 한다; “네, 지난달에 둘째 아들을 얻어 부부간에 매우 행복해 보이던데요. 그 이름을 ‘손인혁’으로 지었다고 했어요. 아버지께 여러모로 감사하다고  말씀 전해 달랬어요”.

그 말을 들은 다음에 선더말 아재가 은행 건에 대하여 물어본다; “그래 그 은행 지점에서는 친절하게 잘 대해주던?”. “네, 은행 자기앞수표가 아니고 개인용 당좌수표라고 하던데요. 그 수표는 그 구좌에 충분한 돈이 입금이 되어 있어야 은행이 발행인을 대신하여 지불을 해준다고 그랬어요. 마침 입금이 되어 있어서 돈을 내주었어요…”.

차남이 자신의 가방을 열어서 검은 보자기에 싼 돈뭉치를 건네어 준다. 그것을 펼쳐보고서 그 자리에서 선더말 아재가 꼼꼼하게 액수를 확인한다. 틀림이 없다;

그 다음에 아들에게 말한다; “돈이란 부자간에도 그리고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 자리에서 직접 세어보고 확인을 해야 한다. 그것이 처음에는 못 믿어서 그런가 하고 기분이 안 좋아도 결국에는 인간관계를 정확하게 그리고 오래가게 만드는 비결이 된다”.

차남 손진길이 빙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아버지, 저도 그렇게 하는 걸요. 제가 그 은행 직원 앞에서 일일이 직접 그 돈을 세어보고 확인을 했어요. 그리고 돈을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하여 시외버스 정거장까지 갈 수 있도록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비용이 조금 들었어요…”. 선더말 아재가 기분이 좋다. 그래서 “엤다, 수고했다”라고 말하면서 고액권 한 장을 선사한다. 차남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 일이 있고나서 며칠이 지나지 아니하여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저녁식사가 끝난 후에 차남 손진길을 안방으로 부른다. 그리고 서랍장에서 서류대장 둘과 전표꾸러미를 꺼낸다. 그 다음에는 자신의 도장과 막대형 작은 도장을 또 꺼낸다. 그것을 차남에게 보여주면서 말한다; “길이 너는 중학교에서 상업시간에 부기와 주산을 배웠다고 했지?”.

당시 경주 문화중학교에서는 중학을 졸업하고 작은 회사의 경리로 취직을 해야만 하는 학생들이 있기에 학교에서 상업시간을 두고 있다. 부기와 주산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아울러 한문시간을 두어 한자도 착실하게 가르친다. 어린 나이에 가난한 집안의 형편 때문에 일찍 취직을 해야만 하는 시골 학생들이 기차편으로 많이 통학을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과목이 필요한 것이다.

그 덕분에 차남 손진길이 주산도 약간 놓고 부기를 배웠기에 회사의 경리장부도 볼 줄을 안다. 물론 전표를 보는 법도 배워서 알고 있다. 그래서 손진길이 부친에게 대답한다; “학교에서 조금 배우기는 했는데 직접 경리장부와 전표를 보는 것은 처음이예요. 하지만 조금만 가르쳐 주시면 제가 할 수 있을 거예요”.

선더말 아재가 차남에게 어떻게 경리장부와 전표를 대조하는지를 설명하면서 먼저 시범을 보여준다. 그 다음에는 일일이 항목별로 결재를 하면서 작은 도장인 ‘만년인’을 찍는 법을 가르쳐준다;

마지막으로는 돈이 들어오고 나간 내용의 장부와 물량이 들어오고 나간 장부를 서로 대조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 두종류의 장부가 서로 맞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원천자료인 전표를 찾아서 대조를 한다. 그것이 일종의 ‘삼각대조법’이다. 그 방법으로 모든 착오와 부정행위를 찾아내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는 청소년 시절 일본 동경에서 고학을 하면서 ‘청년학교’ 곧 야간 직업학교에서 그 방법을 배웠기에 그 방면에서는 달인이다.

그래서 차남에게 말한다; “만약 서로 대조를 해본 결과 착오가 있는 항목에 대해서는 이 별도의 종이에 적어 놓아라. 가능하면 착오가 나는 이유까지 발견하여 그 의견을 적어 놓으면 나중에 내가 보기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손수석은 자신이 결재도장을 완전히 찍는 법을 나중에 가르쳐주겠다고 아들에게 말하고 잠을 잔다.

그날 저녁에 한 세시간 정도 차남 손진길이 꼼꼼하게 서류를 검토한다. 그리고 한 장의 종이에 그 결과를 정리한다. 그것을 한숨 자고 일어난 손수석이 일일이 읽어본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길아, 수고를 했다마는 어떻게 이렇게 지적을 많이 했느냐? 몇 백원, 몇 천원 차이가 나는 것도 모두 적어 놓았구나. 너는 이것이 3사람의 서기가 착각을 한 실수로 보이느냐? 아니면 고의로 돈을 빼먹은 것으로 보이느냐?”.

손진길이 대답한다; “아버지, 제가 보기에는 실수로 누락이 된 것도 있고 또한 고의성이 엿보이는 것도 있어요. 그렇게 주인의 돈을 떼먹으면 적거나 많거나 간에 안되잖아요?”. 선더말 아재가 말한다; “그래, 분명히 그렇지. 그렇지만 서기들의 급료가 많지 않으니 생활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을거야. 물론 갑자기 돈이 필요한 때도 있을 것이고... 그러니 쉽게 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지…”.

그 다음에 이어서 말한다; “그러니 그 사정을 안다면 경리로 일하면서 자신의 급료의 15% 정도 해먹는 것은 그냥 눈을 감아 주어라. 그렇게 해주면 그들은 신이 나서 일하고 사장의 편이 되어 줄 것이다. 만약 그것까지 전부 집어내고 지적을 한다면 그들은 네 편이 되어 주지를 않아. 그러면 부하를 통솔할 수가 없고 또한 한없이 외로워지고 말지. 사장이 그들을 손과 발로 사용하여 돈을 버니 그들에게도 그 정도의 재미는 있어야 되지 않겠니?...”.

  지금까지 학교에서 정확한 산수와 수학만을 배우던 손진길은 생전 처음 듣는 아버지의 강의이다. 그래서 깊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선더말 아재는 평소 차남 손진길이 똑똑하기는 한데 너무 칼과 같이 예리한 성격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성격으로는 사람을 거느리고 살기가 힘이 든다. 그래서 그 단점을 조금 고쳐주려고 그와 같이 말한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속성과 행태를 미리 알고 다소의 여유를 두어야 부하를 효율적으로 통솔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부친에게서 일찍 배운 차남 손진길은 평생 그 교훈을 잊지 아니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인생이 덜 외로운가 보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주고 받는 것’이 매우 분명하다. 그리고 가까운 사이에서는 자신이 조금 손해를 보려고 한다.

1967년 여름과 가을에 경북대학교 역사학과 학생들이 교수들과 함께 경주에 와서 황오동 고분을 발굴한다.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시간만 나면 그 발굴현장을 들여다본다. 그 발굴현장이 바로 자기 집에서 100미터 이내이기 때문이다;

그 옛날 신라시대 어느 귀족의 무덤인 모양이다. 그래서 금장식과 은장식 그리고 옥으로 만든 장식이 출토가 되고 있다. 심지어 신라의 검까지 출토가 된다. 신라토기가 상당히 많다. 그 가운데 인상적인 것은 큰 항아리에 담겨 있는 오래된 물이다. 항아리가 반듯하게 놓여 있었기에 그동안 빗물이 오래 침투를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것을 구경하고 있던 동네노인들 가운데 다음과 같이 해괴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신라의 천년 세월을 뛰어넘어 고대의 물이 담긴 항아리가 나타나고 있으니 그 물을 마시면 무병장수의 효력이 있을 거야. 암 그렇고 말고…”. 그러면서 그 항아리를 발굴해 놓은 곳으로 가서 갑자기 그 물을 마시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서 몇 사람이 함께 그 물을 나누어 마신다. 그 가운데 손진길이 아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자신의 고모이다. 안압지로 이사를 끝내 놓고 잠시 동생인 선더말 아재의 황오동 집에 머무르고 있던 손해선이 그 물을 마신 것이다. 그 이유는 평소에 천식과 신경통으로 고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물을 마셔서 그런 것일까? 다른 형제들은 일찍 별세를 하지만 손해선만은 오래 장수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 먼 훗날의 이야기이고 선더말 아재의 차남인 손진길은 그 오래된 물을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쉽게 잊혀지지를 않는다. 무병장수를 바라는 사람들의 심성이 그토록 어리석은 일까지 벌이게 하고 마는 것이라는 인상을 오래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즈음에 중3인 손진길은 바쁘다. 학교수업을 끝낸 다음에 별도로 자기집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윤암 선생의 공부방에 참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손진길에게는 문화중학교에서 사귄 절친이 둘 있다. 김태홍과 이원찬이다.

김태홍은 경주시내 한약방 집의 막내아들이다. 그의 큰형은 문화중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고 있는 김태중 선생인데 김선생은 경주지역에서 화가로 명성이 나있다. 특히 ‘신라문화제’ 행사에 사용이 되는 소품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그 솜씨가 뛰어나다.

이원찬의 부친은 시내 중심지에서 건축자재를 판매하고 있다. 황오동에 있는 그의 집이 상당히 넓다. 그의 형은 서울공대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머리가 좋은 집안인가 보다.

손진길은 절친 이원찬 및 김태홍과 함께 박선생의 영어교실에서 과외를 하고 있다. 그 결과 영어의 기초는 조금 닦은 셈이다;

그러나 나머지 과목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제대로 배웠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하지만 그가 문화중학교에서 배운 국어와 수학 등은 대구의 중학교와 비교할 때 그 수준이 매우 낮다는 것이 나중에 탄로가 나고 만다. 그때가 바로 1967년 겨울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