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손진길 소설)

선더말 아재28(작성자; 손진길)

손진길 2021. 10. 9. 21:14

선더말 아재28(작성자; 손진길)

 

1966년 여름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경주시 성건동 ‘아랫시장’에 위치하고 있는 ‘생선도가’를 인수하여 국가의 ‘도매시장법’에 따른 ‘경주수산도매시장’을 설립한다. 그는 그때부터 2년 동안 거금을 투자하여 경주시와 월성군 지역에서 가장 큰 공장을 하나 세운다. 그것이 이름하여 ‘경주수산 냉동냉장 제빙공장’이다.

‘제빙공장’에서는 일년사철 얼음을 생산한다. 아직 냉장고가 전국적으로 보급이 되지 아니한 시절이므로 얼음의 수요가 크고 연중 깨끗한 얼음이 필요하다. 따라서 제빙실에서는 이틀에 한번씩 무려 135kg에 달하는 직사각형 얼음덩어리를 200개씩 생산한다;

하루에 13톤이상 생산하는 셈이다. 그 얼음의 판로가 3갈래이다;

첫째로, 그 큰 135kg얼음덩어리를 그대로 트럭에 실어서 여러 ‘직판장’으로 보낸다. 그곳에서는 큰 톱으로 상인들이 원하는 크기로 얼음을 잘라서 판매하고 있다;

여름이면 상인들이 그 얼음으로 빙수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아니면 큰 나무상자에 그 얼음덩어리를 집어넣어서 여러가지 식품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냉장고로 사용한다.

둘째로, 경주수산도매시장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 모든 ‘생선상자’에 그 얼음을 사용한다. 그 큰 얼음덩어리를 강력한 ‘쇄빙기’에 넣고서 작은 ‘얼음 알맹이’로 잘라 낸다;

그것을 ‘생선상자’에 부어주어야 더운 날씨에도 생선의 신선도가 유지가 되는 것이다. 물론 경주수산시장에 도착하는 ‘생선상자’에는 얼음이 이미 들어 있다. 하지만 그 얼음을 보충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유통과정에 있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경주수산물 도매시장에서 그 생선을 상자채로 경매하면 중매인들이 낙찰을 받는다.

그 다음에 중매인들이 자신들이 산 ‘생선상자’에 얼음을 보충하여 소매인들에게 넘긴다. 최종적으로 소매상들이 자신들의 ‘생선가게’에서 소비자들에게 생선을 판매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생선상자’에 여러 번 얼음 알맹이를 보충해야만 한다;

셋째로, 135kg이나 되는 무게의 큰 얼음덩어리를 그대로 다른 지역으로 판매한다. 그 시절만 해도 아예 제빙공장이 없거나 얼음의 공급이 부족한 지방이 많다. 그러므로 ‘경주수산 제빙공장’에 와서 그 큰 얼음덩어리를 수십 개씩 사서 트럭으로 운반해가야 하는 것이다;

당시에 경주 서천내 지역에는 한사장의 ‘경주얼음공장’이 먼저 가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공장에서 생산하는 얼음만으로는 자꾸만 커지고 있는 경주와 월성지역의 수요를 도저히 충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몇배로 규모가 큰 ‘경주수산 제빙공장’이 건립이 되어 얼음을 연중생산하고 있다. 그 결과 경주 월성 지역 뿐만 아니라 인접한 여러 지역에도 큰 얼음덩어리를 그대로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제빙공장만 가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경주수산 냉동냉장공장’을 함께 가동하고 있다. 그 이유는 수산물을 연중 냉동상태로 그대로 보관하거나 아니면 임시로 냉장창고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여름 풍어기에 많이 잡히는 어종을 겨울철 명절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냉동창고에 넣어서 장기보관을 해야 한다. 그래야 신선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종마다 잡히는 시점이 다르며 그 어획량이 일정하지가 않다. 그에 비하여  ‘경주수산도매시장’에서 경매로 팔려 나가는 생선의 양은 크게 변동이 없다. 따라서 당일 경매에서 모두 소화를 하지 못하는 물량에 대해서는 며칠간 냉장상태로 보관하면서 계속 경매에 내놓아야 한다.

그러한 애로사항이 있기 때문에 ‘수산물 냉동냉장공장’은 ‘수산물도매시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공장이다. 그러나 그 공장을 세우자면 너무나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동안 공장을 세우지 아니한 채 많은 경주의 부자들이 ‘생선도가’를 맡아서 운영했다. 그 결과 재미를 볼 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적자에 허덕이다가 모두들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한 ‘생선도가’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현대적인 ‘도매시장법’이 적용되는 ‘경주수산도매시장’으로 만들고 동시에 장기적으로 흑자경영이 가능하도록 ‘경주수산물 냉동냉장공장’을 갖춘 인물이 바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인 것이다. 그러한 선견적인 사업에 대한 판단은 다분히 그가 1965년에 일본을 방문하여 동일한 사업분야를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선례를 통하여 그 사업성을 확신하였기에 그 공장의 건립에 거금을 투자했다고 하겠다. 그 결과 경주의 토착자본가이면서 부동산 부자였던 선더말 아재가 일약 큰 공장을 갖추고 현대적인 도매시장을 경영하는 경주지역의 큰 사업가가 된 것이다.

나무가 크면 그 아래에는 그늘이 생기고 많은 동식물들이 모여든다. 그와 마찬가지로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경주 성건동 아래시장에서 수산물 도매시장을 경영하면서 큰 공장을 가동하자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서 그곳으로 몰려들고 있다;

먼저 일가친척들이 시골 고향을 떠나서 경주시내에 발을 붙이고자 그에게 다가온다.

손수석은 가급적이면 일가친척들과 고향사람들을 먼저 채용하여 경주시내에 자리를 잡고 살도록 만들어 주고자 한다. 그 이유는 그가 혼자서 경주시내에 이주하여 살면서 많이 외로웠기 때문이다. 사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진심을 털어놓고 함께 고민할 수 있는 그러한 오래된 벗이 없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시골출신인 그의 손을 잡고서 이끌어줄 사업의 선배나 조력자가 정말 없다. 그러므로 선더말 아재는 고향사람과 일가들이 경주시내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면 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자 열심이다. 특히 젊은 시절 일본에서 함께 고생한 일가들이 자녀들의 앞날을 위하여 선더말 아재에게 부탁하면 그들의 자녀들을 우선적으로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젊은 나이에 군대를 마치고 전역하여 선더말 아재의 회사에서 열심히 일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경주시내에서 자리를 잡고 일가를 이루게 된다. 그 반면에 시골에 두고 온 농토가 많아서 경주시내로 이주를 하지 아니한 친척도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장조카인 손진화이다.

선더말 아재는 장조카인 손진화를 끔찍하게 아끼고 있다. 그 이유는 손진화가 봉천 할배의 장손이기 때문이다. 효심이 깊은 선더말 아재가 선친인 봉천 할배의 제사를 받들고 있는 장손을 많이 도와주고 있다. 특히 몇 해 전에 큰형인 손수정이 술을 많이 마셔서 간이 좋지 아니하여 일찍 별세하고 나자 장조카인 손진화를 아들처럼 돌본 것이다;

그래서 경주시내 중심지에 있는 가장 목이 좋은 ‘얼음 직판장’을 장조카 손진화에게 한번 맡아서 경영을 해보라고 호의를 베푼다. 그러나 며칠 그곳에서 일을 해본 손진화가 고사를 한다. 여름에 한철 얼음을 많이 파는 것은 좋지만 자신은 내남 너븐들 고향에 가서 선더말 아재의 농토를 관리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당장의 이익을 선호하고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선더말 아재는 그렇게 소견대로 하라고 말하고 만다.

선더말 아재는 자신이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1965년 가을과 ‘생선도가’를 막 인수하여 정신없이 바쁜 1966년 가을에는 강원도 석탄회사를 방문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막냇동생인 손수태에게 부탁한다; “강원도 석탄회사에 가서 수금을 좀 해오너라. 그동안 추곡과 갱목을 내가 납품하고 받을 돈이 많으니 착오가 없이 수금을 해야 한다”.

손수태는 신이 나서 강원도로 출장을 간다. 그리고 수금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돈을 그대로 정확하게 형인 선더말 아재에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도중에 그는 그 돈이 자신의 돈인 것처럼 생각이 된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서 그 돈을 일부 사용하여 술을 사 마시고 기분을 낸다. 형이 아니라 자신이 부자인 것만 같다;

그러한 일을 선더말 아재가 한두 번 경험하게 되자 그 다음부터는 아예 심부름을 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에 선더말 아재는 막냇동생인 손수태에게서 하나의 장점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딸만 셋인 손수태는 아내와 함께 득남하기를 엄청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1966년에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을 얻는다. 참으로 튼튼한 아들이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장애가 있다. 말을 하는데 발음이 새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손수태와 그 아내가 그 아들을 수술하고 고쳐주고자 너무나 열심이다. 그 지극한 부정과 모정을 보고서 선더말 아재가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아들을 그토록 원하더니 이제는 자신의 장남의 앞날을 위하여 또한 저렇게 전심전력으로 마음을 쓰고 있구나. 그렇게 자식을 위하여 애를 쓰는 것을 보니 앞으로 그 아들로 말미암아 집안에 복이 찾아 오겠구나…”.

선더말 아재의 판단이 맞아 들어가고 있는지 그해에 손수태가 발령이 난다. 경남 하동의 중학교에 선생으로 복직이 된 것이다. 당분간 혼자서 하동에 가서 교사생활을 하고 오더니 손수태가 가족을 솔거하여 그곳으로 이주하기를 원한다. 선더말 아재가 축하를 하면서 그곳으로 이사하도록 도와준다;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자 내남 너븐들에 살고 있는 작은 형인 손수상이 부인 박재순과 함께 선더말 아재 손수석을 찾아온다.

손수상이 동생인 선더말 아재에게 말한다; “수태가 살고 있던 첨성대 인근집이 비게 되었으니 우리 식구가 그 집으로 이사하여 한번 살아 봤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주겠나?”.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대답한다; “제가 형님 식구를 첨성대 근처의 집에서 살도록 해드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형님은 고향에 전답이 많은데 그것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손수상이 미처 대답을 하기 전에 그 부인인 박재순이 선더말 아재에게 말한다; “서방님, 형님은 고향이 좋아서 그곳에서 계속 살고 싶어하지만 제가 졸라서 경주시내로 이사하자고 한 겁니다. 자녀들이 공부하고 발을 뻗기 위해서는 시골이 아니라 시내라야 합니다. 자녀들의 장래를 위하여 첨성대 근처로 이사를 해야 한다고 제가 우긴 것입니다”. 참고로 옛날의 첨성대와 그 인근에 있는 논의 모습이 다음과 같다;

 

선더말 아재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손수상에게 물어본다; “그러면 형님도 찬성하신 것입니까?”. 손수상이 겸연쩍은 듯이 말한다; “허허, 나야 집사람이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해야지.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장래를 위하여 꼭 필요하다고 하니 나는 그대로 따르고자 하네. 그러니 동생이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네”.

선더말 아재는 그렇게 하도록 조치를 취해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집안의 장손인 손진화는 시골의 전답을 관리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형수는 생각이 다르구나. 자녀들의 앞날을 위해서는 경주시내에 와서 살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 생각이 진취적이고 앞날을 개척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럴 즈음에 일본 동경에서 손철호 선배가 선더말 아재에게 연락을 취해온다. 자신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서 동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몇차례 찾아갔더니 마침내 방문비자를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며칠 후에 한국을 방문하고 자신의 조강지처인 유촌 댁과 누이동생을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다. 

사업에 바빠서 분주하던 선더말 아재가 그 말을 듣고서 생각해보니 손철호 선배의 그 마음을 새삼 알 것만 같다. 얼마나 가족이 보고 싶었으면 동경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몇 번이나 찾아갔을까? 20년 이상 떨어져 있던 조강지처이고 여동생이 아닌가? 그래서 황오동에 살고 있는 유촌 댁과 그 시누를 찾아가본다. 그들도 그 소식을 알고 있다.

정말 한달쯤 지났을 때에 일본에서 손철호 선배가 경주로 찾아온다. 그때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선더말 아재는 유촌 댁의 집에서 생생하게 보게 된다. 눈물이 없이는 볼 수가 없다. 그렇게 가족을 상봉한 손철호가 손수석에게 부탁한다; “수석이, 내가 이번에 돈을 조금 가지고 왔는데 이것으로 이 부근에 더 넓은 집을 하나 사주었으면 좋겠는데?...”.

선더말 아재가 대답한다; “선배님, 작년에 제게 맡기신 돈을 신용금고에서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이자만 하더라도 큰 집을 사고도 남을 것인데 어째서 또 돈을 더 맡기십니까?”. 손철호가 대답한다; “나는 내년까지 일본의 내 몫을 모두 정리하고 이곳 경주로 와서 살고자 하네. 그러니 큰 집이 하나 필요하고 또한 돈을 조금씩 미리 옮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그 말을 듣자 손수석이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그리고 말한다; “마침 제가 며칠 전에 팔우정에 있는 큰 집에서 살던 지인이 서울로 이주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제가 그 집을 한번 알아보지요. 상당히 넓은 집입니다”. 손수석은 자신보다 10살이 많은 최민호의 집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최민호는 한국전쟁 때 경기도 원당에서 경주로 피난 와서 오래 살고 있다. 경주에서 아들들을 키웠는데 그들이 모두 서울로 이주하고 말았다. 이제는 아들을 따라 서울로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팔우정의 큰 집을 처분하고자 한다. 그 사실을 알고서 선더말 아재가 그 집을 손철호 선배에게 소개한 것이다;

그 집을 살펴본 손철호가 마음에 들어 한다. 그래서 그 집을 사서 이사를 하자 선더말 아재의 집에서도 조그만 변화가 발생한다. 그동안 손수석의 집에서 경주중학교를 다닌 손임락이 경주공고로 진학을 하였는데 그가 차제에 손철호와 유촌 댁이 산 그 큰 집으로 옮겨간 것이다.

손수석의 윗동서인 손태호는 손철호와 상당히 가까운 친척이다. 그러므로 손태호가 손철호에게 부탁하여 허락을 얻는다. 그 결과 손태호의 맏아들 손임락이 그 큰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살게 된다. 물론 손철호와 유촌 댁은 자녀가 없어 쓸쓸하고 외로운 처지인지라 손임락이 그 집에 들어와서 함께 살겠다고 하니 좋다고 승낙을 한 것이다.

그러자 손태호는 자신의 차남인 손경락도 그 집에서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손철호에게 부탁을 해본다. 당시 손경락은 경주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집에서 형과 함께 생활하면 당연히 편리할 것이다.

손태호는 자식이 없는 유촌 댁이 아들 삼아 중학생인 손경락을 잘 거두어 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손철호도 유촌 댁이 손경락을 아들로 여기고 살면 덜 외롭겠다고 생각하여 찬성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만 다른 일로 연결이 되고 만다. 1966년에 손철호의 뒤를 이어 일본 동경에 살고 있는 현지처가 경주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손철호보다 몇 살이 많은 그녀 역시 무자식이다. 그런데 미소년 손경락을 보자 마음에 들어 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양자로 달라고 남편 손철호에게 말한다. 손철호가 어쩔 수가 없어서 친척인 손태호와 상의를 한다; “태호, 나의 일본인 아내가 자네 아들 경락이를 양자로 달라고 하는데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손태호가 묻는다; “그 여자도 돈이 많아요?”. 손철호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손태호가 가볍게 생각하고서 말한다; “나중에 경락이가 양어머니의 제사만 잘 지내 주고 그 재산을 상속받으면 되겠네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니 그렇게 하시지요”;

그러나 그것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소년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그때문에 한동안 어린 손경락이 방황을 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어른들의 경솔한 처사이다. 어쨌든 그러한 일들이 1966년에 경주 팔우정에서 발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