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더말 아재27(작성자; 손진길)
1966년에 들어서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부산을 방문한다. 항구 근처에 있는 수산물 냉동냉장공장 및 제빙공장을 상세하게 둘러본다. 자신도 고향에 그러한 공장을 하나 지어볼 생각이 있다고 말했더니 그 회사의 사람들이 굉장히 호의적이다. 그들은 같은 업종을 하면서 지역 간에 서로 협조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공장을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안내한다.
부산은 한국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따라서 수산물의 경우에도 그 물동량이 많고 소비자인 인구가 많다. 그에 비하면 경주와 월성지역은 작은 고장이다. 그러므로 그 정도로 공장이 클 필요는 없다. 그 점을 감안하면 서울의 ‘조선 냉동’에서 충분히 경주에 ‘제빙 냉동공장’을 세울 수가 있다고 선더말 아재가 판단한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문제가 두가지이다; 하나는, 경주지역 수산물 유통과정에 대한 시장조사를 상세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그러한 공장을 지을 재정적인 준비를 하는 것이다.
선더말 아재 손수석은 성건동 아랫시장에 자리를 잡고 있는 ‘생선도가’에 대하여 은밀하게 알아보고자 한다. 그래서 친척인 ‘최해구’를 만난다. 그는 ‘생선도가’에서 중매인으로 일하면서 집사람과 함께 아랫시장에서 ‘생선가게’까지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를 만나서 경주시내 중심에 있는 고급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식사한다. 그 자리에서 손수석이 물어본다; “해구, 자네 요새 벌이가 어떠한가? 생선을 도가에서 떼어와서 팔아보니 수입이 여전히 좋은가?”. 최해구는 선더말 아재의 사촌 큰 누나의 아들이다. 그러니 손수석의 조카뻘인 5촌 당질이고 나이도 10살이나 어리다. 그러므로 선더말 아재가 ‘자네’라고 부르고 있다.
최해구가 당숙에게 공손하게 대답한다; “저는 젊어서부터 ‘생선가게’를 하면서 잔뼈가 굵어서 그런지 그 일에 재미도 있고 수입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당숙께서는 자주 생선을 사가시는 것을 보니 바다 생선을 참으로 좋아하시는 모양입니다”. 손수석이 선선하게 대답한다; “나는 본래 생선을 좋아하는데 옛날에는 민물고기를 회로 자주 먹어서 ‘간디스토마’로 고생을 한 적이 있어.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싱싱한 바다 생선을 사서 주로 회로 먹고 있지”.
최해구가 말한다; “당숙은 젊은 시절 일본에서 고학을 하고 사업을 하셔서 그런지 생선을 사시미로 즐기시는 모양입니다”. 손수석이 화제를 바꾼다; “나는 그렇게 생선을 좋아하는데 경주와 월성사람들도 나처럼 생선을 좋아하는지 몰라. 자네가 보기에는 어떠한가?”.
그 말을 듣자 최해구가 상세하게 답변한다; “당숙만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경주와 월성에서 소비가 되는 생선의 양이 상당합니다. 특히 추석과 설 대목에는 그 소비량이 대단하지요. 경주와 월성의 시골 양반들은 제사상에 생선이 빠지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명절 대목이 가까워지면 생선값이 무척 비싸집니다”;
선더말 아재가 묻는다; “명절 대목에는 어촌에서 생선이 많이 잡히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지?”. 최해구가 상당히 전문적인 대답을 한다; “어업의 풍흉은 농업의 경우보다 더 심합니다. 생선이 많이 잡힐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곡식과는 달리 저장성이 약해서 금방 상하고 맙니다. 설혹 냉동창고에 저장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보관비용이 대단합니다. 그러니 소비가 팽창하는 명절 대목에는 생선값이 급등할 수밖에 없지요”.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가 말한다; “그러면 대목 때에는 생선도가와 생선장수들이 큰 돈을 만지겠는데?...”. 최해구가 대답한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생선이 많이 잡혀서 생선도가에 물량이 넘쳐날 때에는 생선값이 떨어져서 별로 재미를 못 보지요. 그리고 생선값이 급등하는 명절 대목에는 상대적으로 물량이 적어서 큰 수입을 얻지를 못하지요. 그러니 생선도가를 경영하던 경주의 부자들이 모두 나가 떨어지고 있어요. 생선도가의 사장이 자주 바뀌고 있습니다”.
선더말 아재가 관심이 있어서 그 점에 대하여 물어본다; “지금 생선도가를 경영하고 있는 백사장도 별로 재미를 못 보고 있는가?”. 최해구가 성실하게 답변한다; “백사장이 생선을 참 좋아하지요. 그래서 도가를 인수하여 그동안 경영을 했는데 큰 재미를 못 보고 있어요. 물량을 많이 확보해 놓으면 생선값이 떨어지고 자본이 딸려서 적게 확보를 하고 있으면 거꾸로 생선값이 올라가게 되니 손해를 많이 보고 있지요”.
선더말 아재가 더 물어본다; “그렇다면, 생선이 많이 잡혀서 값이 떨어질 때에 많이 사서 창고에 저장을 해 놓으면 되지 않는가?”. 최해구가 싱긋 웃으면서 대답한다; “참, 당숙도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생선은 제 때에 다 팔지 않으면 썩고 부패해버립니다. 곡식처럼 그렇게 장기적으로 보관할 수가 없어요. 물론 부산과 같은 큰 해양도시에서는 수산물 냉동냉장공장이 있지만 여기 경주와 월성에는 시장이 작아서 그런 창고가 없어요”.
손수석이 물어본다; “그러면 경주에도 그런 수산물 냉동냉장공장을 하나 백사장이 지으면 되지 않는가?”. 최해구가 당숙인 선더말 아재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서 대답한다; “참, 아재도, 그것이 어떻게 한두 푼이 드는 공장입니까? 경주에는 그러한 비싼 공장을 지을 재력가가 없어요. 그래서 백사장도 부산에서 얼음을 사다가 생선상자에 사용하고 또한 많은 물량은 아예 비싼 보관료를 물어가면서 부산의 냉동냉장공장에 맡기고 있어요”.
선더말 아재가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그래, 자신의 냉동창고는 아니지만 부산의 냉동창고를 대신 사용하면 보관이 쉽겠구만... 그렇다면, 백사장이 부산의 공장을 사용하여 꽤 돈을 벌었겠는데?...”. 그 말에 최해구가 고개를 가로 흔든다; “그게 그렇지가 않아요. 경주에서 남은 생선을 부산까지 운송하여 보관을 하고 또 경주에서 필요하면 그 물량을 부산의 냉동창고에서 꺼내어 운반해 와야 하니까 그 운송비가 많이 들고 생선의 신선도가 엄청 떨어져버리지요. 그 결과 좋은 값을 받지 못합니다”;
최해구가 잠시 숨을 돌리고 이어서 설명한다; “게다가 부산의 수산물 냉동회사에서는 수탁을 받아 남의 생선을 냉장하는 경우에는 보관료를 많이 받습니다. 전력요금이 많이 들어가니 그 비용을 수탁자에게 전가하게 되지요. 자신의 어물은 싸게 보관하고 남의 것은 비싸게 돈을 받고 보관해주는 것입니다. 남의 창고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그런 비용을 다 공제하고 나면 별로 남는 것이 없어요. 그러니 백사장이 의욕적으로 생선도가를 인수하여 경영을 하다가 지금은 두 손과 두 발을 다 들고 있지요…”.
그 말을 듣자 선더말 아재 손수석이 구체적으로 묻는다; “그러면 백사장은 생선도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자 하겠네?... 그 인수자는 백사장이 직접 물색하여 도가를 그에게 넘기면 되는 것인가?”. 그 회사의 중매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최해구가 고개를 가로 저으면서 대답한다; “아재는 영 모르시는군요. 생선도가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경주시장이 경영을 위탁한 수산물 도매시장입니다. 그러니 경주시에서 후임경영자를 물색하여 다시 그에게 경영을 위탁하는 형식이 되지요”.
선더말 아재가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그래서 확인을 겸하여 물어본다; “경주와 월성지역의 소비자들의 이익을 생각하여 경주시가 그 수산물 도매시장을 감독하고 있는 모양이구만?... 그러면 중매인과 소매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경주시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가?”. 최해구가 간단하게 대답한다; “시청의 국장은 위임을 받은 경영자인 사장하고만 상대합니다. 중매인들은 수산회사의 경매에 참여할 뿐이지요. 그리고 소매인은 중매인의 물건을 받아서 팔면 되는 것이고요…”;
그 정도이면 충분히 파악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선더말 아재는 당질인 최해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그는 백사장도 만나고 경주시청의 담당 국장도 만난다. 자신이 수산물 도매시장을 맡아서 한번 경영을 해보고 싶다고 하는 의사를 밝히고 인수관계를 논의한 것이다. 그 결과 1966년 여름부터 선더말 아재가 ‘경주수산도매시장’의 사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 회사는 세월과 함께 사라지고 그 위치만 성건동에 있는 ‘경주중앙시장’의 서쪽 곧 다음 그림의 후면이 아닌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장을 도와서 수산시장의 업무를 총괄하는 총무가 있고 또한 3명의 서기가 있다. 서기들은 사장의 직속이고 총무는 현장에서 물건을 운반하는 직원들을 통솔하고 있다. 그리고 회사에 등록이 되어 경매에 참여하고 있는 중매인들이 12명이나 된다.. 매일 새벽에 울산과 포항 그리고 감포와 부산 등지에서 수산물이 경주시장으로 들어와서 아침 일찍 경매에 붙여지고 있다. 중매인들이 떼어간 그 생선을 소매상인들이 다시 받아서 장사를 하고 그 돈을 갚는 형식으로 운영이 된다.
그런데 선더말 아재는 그 정도의 ‘수산물 도매시장’을 운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차제에 ‘수산물 냉동냉장 창고’는 물론이고 대규모 ‘제빙공장’을 건설하려고 한다. 따라서 그 일을 위하여 서울의 ‘조선 냉동’ 회사를 수차례 방문한다. 그들에게 설계와 공장건설 그리고 기계 설비 및 시운전까지 모두 위임을 하는 계약을 체결한다. 유식한 전문용어로 그것이 ‘턴키 베이스’의 계약이다. 한 마디로, 공장을 다 지어 주고 그 운전방법만 가르쳐주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를 주면서 차의 키를 그 손에 쥐어 주는 것과 같다.
공장의 설계와 건축, 냉동기계의 운반과 설치 그리고 시운전까지 전 과정을 거치는데 2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된다. 그 결과 그 공장의 준공식은 1968년 여름에 있게 된다;
그날 경주 월성지역에서는 당시 가장 큰 공장의 건설이므로 경주시장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의 유지들이 함께 준공식에 참여하여 테이프를 끊는다. 세월이 지나자 그 공장마저 사라진다. 그 옛터의 위치만 아래 그림으로 추정해볼 뿐이다;
그런데 1970년대에 접어 들면 경주수산 냉동공장보다 훨씬 규모가 큰 공장들이 경주외곽에 여럿 건설된다. 그리고 신흥부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경제개발5개년 계획의 성공에 따라 공업입국이 된 결과이다. 하지만 그 이전 시대이므로 경주의 토착부자인 선더말 아재는 냉동공장의 건설에 따른 기성고 즉 단계별 건설비용을 차질없이 지불하기 위하여 2년 동안 그 자금을 마련하느라고 혼자서 엄청 고생을 하게 된다.
당시의 3억원이라고 하는 돈은 100만원짜리 집 300채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그는 천북 화산에 있는 농지와 소를 전부 팔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고향에 있는 전답까지 많이 처분했다. 그 결과 선더말 아재는 더 이상 대지주가 아니다. 그는 ‘경주수산시장주식회사’와 ‘수산물 냉동냉장 제빙공장’에 올인하고 있는 사업가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선더말 아재가 자신의 모든 재산을 그곳에 퍼 부은 것은 아니다. 그가 경주와 그 주변에 가지고 있는 알짜배기 부동산을 남겨 놓은 상태이므로 그의 재력의 절반 정도가 그 공장의 건설에 투입이 된 것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전부를 투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만약의 경우에는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 되기 때문이다.
선더말 아재는 절대로 자신이 가진 것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지 않는다. 만약 실패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재산의 절반을 보전하고자 하는 이른바 ‘자기 안보적인 대처법’에 철저한 사람이 손수석인 것이다. 그것 역시 자산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선더말 아재 나름대로의 ‘재태크의 방법론’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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